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온건지,날이 따뜻하다 하늘은 맑고 두껍게 입고있던 옷의 무게 역시 반으로 줄어드는 계절.
오랜만에 집안을 어둡게 감싸던 두꺼운 커튼을 걷어내자 한줌 햇살이 거실로 내려 앉아 동그란 원을 만들어낸다
그 원안으로 슬쩍 발을 집어넣었음에도 별 따뜻함이 없자 뭐하는짓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온다
[지호랑 00이랑]
고개를 돌려 창가에 붙은 스티커를 유심히 살피다가 바람에 너덜거리는게 지저분해 조심스레 떼어내다가 유치한 문구에
또 한번 실소가 터졌지만 그 실소 안에 왠지 모르게 누군가 콧잔등을 쎄게 때리기라도 한듯 얼얼한 느낌이 함께 섞여있었다
작년 겨울.그러니까 1년전 이맘때쯤 우리는 어떤 모습이였나.사람과 사람 사이는 하루 하루가 다르다지만 적어도 그때의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것같다 그때는 겨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있기에 하나도 춥지 않았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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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야!]
창문을 열고 밑에 서있는 너에게 크게 손을 흔들자,하얀 입김을 쉴세없이 내뿜어대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머리위로 연신 하트를 그려대던 너
그런 너를 내려다보다 조금만 기다리라는듯 소리치자 알겠다는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
빨갛게 얼어붙은 코를 연신 옷소매로 문지르던 니가 크게 팔을 벌려 안기라는듯한 포즈를 지었고 나는 기다렸다는듯 그런 너에게 달려가
안겨서는 서로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던것같다.날은 많이 추웠지만 니가 있어서 왠지 모르게 따뜻했던 그러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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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옛 생각에 잠겨있다가 한쪽 구석에서 울리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슨 전화인지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그닥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하는수없이 통화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듯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내려와,다들 기다려]
잊고 있진 않았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현관문 고리를 돌리자 기다렸다는듯
찬 바람이 옷안으로 스몄지만 크게 추울정도는 아니였다.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나 때문에
오래 기다리는게 별로라는듯 팔짱을 낀체로 차 옆에 서있는 선배가 보였고 그 뒤엔 얼른 타라는듯 손짓하는 친구들이 보인다
미안하다는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차에 올라타자 어딘가 모르게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숨이 막히는듯했다
다들 어디로 가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입밖으로 내지 않았고 그저 창문 밖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풍경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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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면 안돼?]
[거기 빠지면 좀 곤란해서 그래]
[그럼 나는? 나 데리고 가면 안돼?]
[됐거든?]
장난스레 내 볼을 몆번 꼬집던 니가 제 몸보다 큰 가방을 등에 짊어지며 내 앞에 서더니 이내 갔다와서 쓰자는듯 놀이공원표를 손에 쥐어준다
바보도 아니고.이건 당일날만 쓸수 있거든요? 괜시리 툴툴거리자 그러면 당일날 갔다와서 새로 끊자는듯 나를 달래며 이마에
짧게 입맞춤을 해준다 그리고는 옆에 서있던 차에 올라타서는 손을 흔들자 선배가 뭐라했는지 머쓱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고 나도 그런 너에게
잘 갔다오라는듯이 차가 떠날때까지 연신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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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움직이던 풍경들이 멈춰서고 이내 차에서 내리자 코끝에 훅하고 니 향기가 나는듯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옆에 서있던 친구를 붙잡자
괜찮냐는듯 걱정을 해오길래 별일 아니라는듯 웃어보이고는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자 익숙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00추모원]
방금전까지는 그렇게 춥지 않았는데 지호 니가 있는곳에 오니 춥다.너무 추워서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아프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파
자꾸만 떨려오는 몸을 잠시 멈추고 서있다 진정이 되자 그 자리에 굳어있던 발걸음도 떨어지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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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양의 비가 예상되오니..]
할일없이 쇼파에 앉아 무료하게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니가 여행을 갔던 지역에 많은 비가 온다는 뉴스를 보았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연락한통 없는 니가 내심 걱정되어 통화버튼을 누르자 연결할수 없다는 안내음만 흘러 나올뿐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같이 간 선배에게
전화를 걸자 꽤 오랫동안 신호음이 가더니 이내 수화기 반대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꼬 그 순간에 티비에서 나오는건지 아니면 내 머리속에서 울리는건지
귀를 찌르는 긴 신호음과 함께 뭔가가 번쩍하고 나가버리는듯 했다 그 다음부터는 빠르게 돌려진 채널처럼 모든것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그 다급한 목소리의 내용이 뭐였는지는 다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니가 많이 다쳐서 본인들로 놀라 나에게 전화를 걸 여력이 없었다는 얘기였다
왜 다쳤는지,그리고 지금 어떤지.이러한걸 묻기에는 그 당시에 나는 핀트가 나가버린 사람처럼,연결이 끊겨버린 모든 신호들이 정지상태였던것같다
뒤 늦게 정신을 차리고 마주한 상황들과 너는 내가 받아드리기엔 너무 크게 망가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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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소매를 들어 몆번이나 너의 사진을 문지르다가 그 앞에 무너지듯 고개를 숙이자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위로를 하려는듯
하나 둘씩 내 어깨를 감싸쥔다 잠시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이내 내가 괜찮다는듯 웃어보이자 다들 안심이 되는지 가자는듯 손을 잡아준다
조금 더 오래 있고싶었지만 잠깐 짬을 내어 온거였기에 아쉬운 발걸음을 떼며 지호에게 눈 인사로 잘 있으라고 인사를 하고선 발걸음을 옮기는데
밖으로 나오자 방금전까지는 그렇게 맑던 하늘에서 한두방울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내 머리위를 작은 방울들이 하나씩 적시다가
이내 손을 펴 그 방울들을 감싸쥐자 한두방울씩 빠져나가 차가운 감촉을 남긴다 너무 차가워서 금세 손이 빨갛게 얼어버린다
너를 보내던 그날처럼 내리는 비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다가 뒤를 돌아보자 시야를 가리는 뿌연 존재에 가려져 내게 손을 흔들어보이는
니 모습이 희뿌옇게 보인다 눈을 깜빡여보고 옷 소매로 눈을 닦아내봐도 계속 뿌옇게 보여 그것이 너라는걸 마음으로 알아차린뒤 얼른 손을 흔들어보였다
추모원 한쪽 구석에서 처량히 비를 맞고있던 사철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팔랑이고 비에 젖어들어 내 발등앞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선다
변함없는 사랑.그래 지호야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해서 겨울이 사라지는건 아니야 겨울은 변함없이 있어 변함없이 내가 그 겨울에 멈춰서
니 옆에 함께 있어.
여리예요.저는 지코군을 굉장히 좋아함돠 얼마나 좋아하냐구요? 많이 좋아함돠.꿀벌분들 사랑해여 무튼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모드라 지코군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망글을.흐흑 그래도 제 감성 그대로 전달할수있기를.주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