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ife - Beck
어서오세요, 정신과 의사 3년차 김 너탄입니다.
w.psychiatrist
0.
드디어 첫 개업. 비록 산을 타고 올라와야 하는, 비포장 도로를 조금 운전해야 하는 곳이지만 꽤나 뿌듯했었어. 도시에 있는 병원에 뭣 하나 꿀릴거 없다고 생각했어, 아 물론 그 생각은 여전하고. 환자는 있을리가 없었지, 그때 남준이가 나에게 왔어. '저 좀 살려주세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털썩, 쓰러져버렸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이였는데 말야. 그때만해도 남준이가 중 3때였지 아마? 남준이에겐 들고 옮겼다고 했지만 사실 중3이여도 덩치가 엄청 나더라. 170이였나, 그래서 그냥 질질 끌고 갔어. 어, 미안. 이거 지금 이실직고 하는거 맞아. 응. 야, 남준아. 나 선생님이다. 그거 내려, 다시 그 자리에 놔라. -궁시렁 거리며 약통 하나를 내려놓는 남준이는 무시하자.-
"저기, 저기요?"
"어? 일어났네."
열이 팔팔 끓던 남준이는 꼬박 3일을 끙끙 앓다가 이제야 가뿐해진 몸을 들어올리고 정신을 차리겠지, 그렇게 눈을 뜬 곳은 병원의 정석. 온통 흰 벽과 흰 침대, 병원이라고 나름 가운 입은 너탄이 있었어. 남준이는 어리둥절 해서 털썩 앉아있으면, 너탄이는 방을 나서서 죽을 끓여 오겠지. 남준이는 똑똑하니까 그 새에 빠르게 상황판단도 하겠지. 다시 들어왔을때 남준이는 웃고 있었고, 너탄이는 갸우뚱 하며 죽을 건넸어. 열심히 먹는 남준이에게 너탄이는 질문했었어.
"친구, 여기 정신병원인데요.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요."
"네, 제가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태어났을 때부터 한달전의 기억까지 아무것도 안나요."
질문을 멈춘 너탄이는 골똘히 생각을 하고 남준이는 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지. '그냥 기억이 갑자기 안나요. 텅 빈것 같진 않고요, 누가 기억 안나게 기억을 가리는 기분이랄까, 제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거 같기도 하고요. 근데 신기하게 지식 같은건 기억나요. 학교 친구들이라던지. 뭐 그런것들. 근데 다른건 하나도 기억안나요. 나는요, 김남준이고요, 16살에 일산에 살고있어요.' 너탄이는 남준이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더니 감탄 해. 중3 맞냐, 나 중3땐 뭐했더라. 새끼, 똘똘하네, 뭐 이런것들 있잖아. 여긴 어떻게 알고 왔을까 궁금증이 생겨 물었었지.
"서울에 있는 병원들은 안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뒤지고 뒤지다가 여기 산속에 있는 병원이라길래. 걍 웃기잖아요, 누가 산속에 병원을 지어요. 손님이 누가 오겠다고, 그래서 그냥 와봤어요."
응, 김너탄이는 생각했어. 그러게, 누가 오겠냐. 이 새끼가? 끊임없이 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남준이였어.
"그날도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집이 어딘지 기억이 안나는거에요. 사실 지금도 기억 안나요. 일산이라는 것을 빼면. 그래서 그냥 무작정 택시 타고 여기 왔다가 택시비 부족해서 중간에 내렸어요. 그래서 걸어왔는데, 사실 기억 안날때부터 머리가 거의 터질거같이 아프긴 했는데 쓰러질 줄은 몰랐네요."
너탄이는 의아함이 하나 생겨, 부모님은? 얘가 이렇게 됐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나? 직설적으로 질문했다간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돌려가며 질문하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남준이의 특이한 증상들에 너탄이는 점점 확신하겠지. 얘, 분명 기억 잃기 전에 사고가 있었을 거고, 그 사고가 지금까지도 김남준을 괴롭히고 있단걸.
"집 주소가 기억이 안나는거야?"
"아뇨, 그냥 집 자체가요. 어딘지,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있었는지도?"
"그건 확신해요, 아무도 없었어요. 항상."
"왜?"
"몰라요, 그냥 기억이에요. 아무도 없었어요."
한쪽눈을 찡그리며 짜증을 내는 듯한 표정에 답하기 싫다, 하는게 드러났어.너탄이는 다른 쪽으로 질문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갈 곳은 있어?"
"아뇨, 그래서 여기 왔잖아요. 기억나게 해달라고, 치료 해서 기억나면 돌아가면 돼죠."
"나 되게 실력있는 의산줄 아네."
"혹시 돌팔이?"
"오래 걸릴 수도 있어."
"전 괜찮아요, 좋아요."
"병원비는 있냐?"
"기억 되찾으면 드릴게요."
1.
"너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 같은거 있어?"
"으음, 그건 왜요?"
"어, 오랜만에 장보러 갈건데 뭐 해줄까 고민중이야."
"저 계란말이, 계란말이랑 소세지!"
"17살 맞아? 이거 애구만."
"제가 너무 커서 애인줄 모르셨나봐요, 쌤도 조심해요. 누가 애로 봄, 너무 작아서."
"오~ 혹시 내 주먹 맛을 보고싶은데 못 볼까봐 돌려 말하는거지?"
"으응, 선생님 다녀오세요. 청소하고 있겠습니다."
"오냐."
그 날도 평범하게 집을 나섰던 ##너탄이였어. 1년이나 지났지만 기억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았거든. 한 삼개월 쯤 후에 ##너탄은 물었어, '너 학교 다닐땐 어땠어?', '네?', '남중이였어?', '무슨소리에요, 쌤.' 제 학교도 기억해내지 못했어. 그 때와 같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짜증스럽게 대답을 건넸어. 그 뒤론 집이 일산이라는 것조차 잊었어, 무언가 점점 남준이의 기억을 갉아 먹는 것 같았어. 그래서 ##너탄은 생각이 복잡했지. 1년동안 진전은 없고, 남준이의 대해 알 수 있는건 점점 적어지고, 아무리 수소문 해봐야 김남준의 가족같은 거라던지, 그런거 찾을 수 있을리가. 영화도 아니고. '너 혹시 김남준이라고 아냐,', '그게 누군데요.' 일산이 촌동네도 아니고. 그렇게 ##너탄은 1년이 지나도 제 애를 찾지 않음에 버려졌거나 혹은 부모님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확신을 한건, 온갖 실종신고를 찾아봐도 김남준이 없다는 거, 김남준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는 텅 비어있고, 김남준은 그것을 의식치 않고 게임만 하는것에 확신을 가졌어. 하루는 가족 얘기를 했다가 반나절 동안이나 방 안에서 나오지 않은 남준이였어. 남준이는 문을 열고 나오면 항상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지. '아 쌤, 배고파요.' 마치 없던일로 만들었어.
"오셔써요, 던댕님."
네? 방문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말하는 남준이에 놀란 ##너탄은 장보고 온 짐들을 스르륵 놓아버렸었지. 남준이 답지 않은 저 애기같은 몸짓에, 꺄르르 웃으며 도망가 버리기에 ##너탄은 멘붕, 또 멘붕이였어. ##김너탄이 멘탈이 쎄지게 된 이유는 김남준이 전부를 차지 한다고 볼 수 있지. 그니까, 내가 일년동안 기억 상실증인 줄 알았던 애한테 인격장애가 있는것 같은데, 근데 그게 하나일지 둘일지 모르는거고, 이렇게 되면 일단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 딱 하나. ##김너탄 = 좆망
"남준, 남준아? 거기 서볼래?"
"으응, 저 주니 형 아니고 모닌데요. 모니."
"모니?"
"응! 모!니!"
##너탄은 일단 침착하게 '모니'와 대화를 이어나갔어. 응, 이것도 석고대죄긴 한데 사실 몬이라곤 상상도 못했어, 쌤. 지금 나니까 말하는거지. 그거 몬이한테 평생 말 안해줄거지, 응, 당근. '모니'는 쭈그려 앉아 손장난을 치며 어떨땐 ##너탄과 눈을 맞췄다가, 어떨땐 다른 곳을 유심히 보면서 대답을 하기 시작했었어. ##너탄은 같이 앞에 쪼그려 앉아 '모니'에게 천천히 질문을 이어나갔어.
"모니는, 몇살이야?"
"여섯쌀."
"모니는, 언제부터 남준이랑 있었어?"
"응, 주니형아가 쌤이랑 놀기 전부터."
"모니는 왜 쌤이랑 놀러 안왔어?"
"응, 못나왔었어요."
"왜?"
"배고파여,"
눈을 찡그리는 '모니'에, ##너탄은 일단 묻는것을 뒤로한채 '그래. 밥부터 먹자.' 하고 떨어트린 짐쪽으로 걸어갔고, '모니'도 총총, 따라와서 짐을 같이 주워주다가 ##너탄이 당 떨어질때 먹으려고 산 초코우유 하나를 들고 빨대를 꽂아 마시면 ##너탄이, 안돼. 밥 먹고 먹어야지. 하면 아이처럼 시무룩, 해져선 초코우유를 내려놓았지. 아이 맞네. ##너탄은 웃으면서 저녁준비를 했고, 머리로는 장난감을 사야돼나. 고민하면서 '모니'에게 다가갈 방법을 생각했었어. 아기들 놀아주는덴 젬병이였는데, 말야. 그리고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아갔지, 말하기 싫으면 절대 말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아도 말하지 않는다.
2.
그렇게 또 반년, 남준이는 어느새 180을 넘어가고 18살이 되었지. 너탄 또한 나이를 한두살 먹어가고, 점점 모니와 남준이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겠지. 서로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는거, 그리고 서로가 했던 일들을 알 수 있다는 거, 기억이 마냥 공통 된다는건 아니고. 예를 들어 모니가 기억하는 옛만화들을 남준이는 기억도 못한다던가. 그런거 있잖아, 그렇게 다른 수많은 기억속에서 물었을때 공통으로 답하지 않는것, 못하는 것, 가족과 집. 병원으로 오기 전의 기억들.
"늦게 일어나네? 너탄씨."
"아,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자고 일어난 너탄 앞에 벽에 기대어 비스듬히 서있는, 모니도, 남준도 아닌 또 다른 인격. 그때가 RM과 첫 만남이였었지. 뜬금없이, 침대에 다시 털썩누워 눈을 감고 다시 생각을 한참이나 했었지, 너탄이는 일어나서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면서 RM에게 말을 건넸고, RM은 아는듯 모르는듯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하겠지.
"그래, 이름이 뭐에요?"
"RM."
"나이는?"
"31."
"와, 뭐 이건. 하하, 그래요. 자기 소개 해줄래요? 나는 알거아니야."
"알지, 김너탄, 25, 정신과 의사, 섹시함."
너탄이는 표정을 확 구겼어, '섹시함?' 그러면 RM은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고선 '섹시하잖아. 가운 입는게 특히.' 하곤 혼자 웃었었지. 김남준이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게된건, 아마 RM때문일거라고 확신하는 너탄이야. 너탄이는 섹시하다는 말을 기각하고선 RM의 이야기를 기다렸어. 풍겨오는 느낌이,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사람,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여러가지,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뭔가 어딘가 슬픈것 같기도 한데, 만족하는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느낌. 어렵네, 그냥 복잡한 사람 같았었어.
"직업은 마피아 보스, 특기는 힘."
"와, 우리 병원에 마피아 보스 까지…, 스펙타클 해졌네요. 우리 병원."
"응, 못 믿겠으면 뭐, 어제 사과 사왔었나?"
나가서 느릿느릿하게 사과를 가져온 RM은 한손으로 사과 부수기 쇼를 보여줬지. 아침에 비몽사몽하게 RM과 얘기하던 너탄이는 정신이 확 들어서 멍 때리자, 하나 더 부술려는 RM에 놀라 '그만,그만!'이라고 외쳤었지. 힘들지도 않다는 듯 쉽게 부순 사과, 부서진 조각들이 처참하게 너탄이의 방바닥을 나뒹굴었어. '청소는 RM씨가 해요.', '윽.' 너탄이는 일단 일어나 머리를 올려묶고 화장실로 향했어, 졸졸 쫓아오는 RM에 가벼운것들을 물었지. 모니에게도 물었던 것들.
"RM씨는 언제부터 있었어요?"
"몰라."
"왜 안나오고, 있었어요? 날 이렇게 아는거 보면 꽤 전부터 있던 것 같은데.
"사과 치우러 간다."
저 짜증섞인 말투, 김남준한테 뭐 물을때랑 비슷하네. 모니에게 물었던 것들도 대답 안해주는 RM에 의아하겠지. 그렇게 세개의 인격을 발견했지만 아무 전진이 없겠지, 김남준은 남아있던 옛 기억들을 점점 더 잊어버리고, 모니는 기분이 좋을때면, 무언가 애매모호하게 답을 주곤 했고, RM은 여전히 묵묵부답. 그렇게 세 인격과 3년을 보내게 되었지.
'오늘 모니 기분 좋네?'
'으응, 오랜만에 꿈을 꿨어요.'
'무슨 꿈?'
'엄마도 만났고 아빠도 만났고'
' … 엄마, 아빠?'
'형아들은 만날 필요가 없었고'
'형들?'
'쌤요, 나 배고프다.'
'남준이?'
'응, 남준이. 몬이가 이제 얘기하기 싫대.'
-
'몬아, 선생님한테 꿈얘기 다시 해줄래?'
'무슨 꿈이요?'
'그, 여행 가는 꿈.'
'나 그렁 꿈 꾼적 없는대.'
psychiatrist
안녕하세요. psychaitrist 입니다.
드디어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게 되었어요. 풀어나가는 방식을 아직도 고민, 또 고민중이에요. 그래도 한걸음 걸어봅니다.
남준이의 세 인격을 첫만남으로 너탄이의 의사로써의 성장과, 남준이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갈거에요.
태형이와 남준이의 만남까지 풀려고 했는데 분량 조절 대 실패네요.
환자들 끼리의 만남으로써 풀어지는 얘기들도, 너탄과의 유대로 풀어나가지는 얘기들도 많을거라고 예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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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쓸 욕구가 뿜뿜 해져요, 재밌게 글을 풀어나가고 싶어져요. 어렵지 않게 풀고싶은데, 어려워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못난 필력이 이럴땐 미워집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의 댓글이 항상 저를 글쓰게 만들어요. 감사합니다, 초록글도 항상 고마워요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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