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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투명한 (ME TOO) 10 完



너는 알아?



무슨 말일까.



내 목소리가 투명하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소리를 볼 줄 알아."





맑은 목소리.



둥둥 물결치는 맑은 네 목소리를 내가 듣는 것처럼,



너도 탁한 세상 속에서 내 목소리를 맑게 볼 수 있다는 걸까.



넌 정상이 아니었니, 민형아.



너도 나랑 똑같아?





"Me too.

나도야, 나도 그래.

너도 알잖아.

왜 모르는 척 해.

기억이 안 났던 거야?

네가 그랬잖아.

내가 보이는 대로 그리라고.

그러면 최고가 될 거라고."





네가 시선을 여백의 침대 위로 떨군 채 시트만 만지작댄다.



칼날처럼 작은 주름이 질 때까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미 투. 나도야. 나도 그래.



같은 말들이 점점이 마음에 점을 찍는다.



너는 지금 네가 나와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그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조금 긴 시간이 먹먹하게 흐려진다.



툭 툭 내리찍는 건 내 눈물이다.



너는 그 위를 고요하게 헤엄쳐 내 눈물을 닦아낸다.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너는 품 안에 나를 가둔다.



네 품 안에서 작은 온기가 꿈틀거린다.



괜찮아, 모를 거야.



아무도 모를 거야.



내 안에 이 감정이 살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야.



우리가 얽혀 새우던 밤과 잠들었던 낮을 아무도 모를 거라고.



그렇게 속으로 말을 씹어대며 네게로 무너진다.



점점이 찍히던 물방울들이 무거워진다.



두텁고 습기 찬 공기 틈새로 네 말소리가 간간이 섞인다.



유리가 달그락댄다.



종이 상자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겹겹의 솜 중 하나를 덜어낸다.



미세한 색이 눈 앞에 베일처럼 겹친다.



나와 같은 너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다.



내 추악한 탐욕으로부터, 네 순수한 이기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도망칠수록 사슬이 내 발목을 점차 조여가고, 나는 눈을 뜬다.



사슬로부터 헤어질 시간이다.





"민형아."





너는 이 모든 걸 예감한 듯, 내 숨을 막는다.



몽롱한 잠이 폐부로 스민다.



푹신한 어둠으로 굴러떨어진다.









빛보다 나를 먼저 깨우는 것은 눈 앞을 뒤덮은 초록색이다.



압생트에서나 볼 법한 기묘한 초록색은 시신경을 규칙적으로 두들겨팬다.



시각의 혹사를 느끼며 나는 눈을 찡그리지만 이내 그것이 귓가에 들리는 소음임을 깨닫는다.



작은 모터 소리다.



묶인 몸을 한껏 몸을 버둥대본다.



다리를 못 펼 정도로 좁은 곳이라는 생각에 당연한 추론 과정이 펼쳐지고,



이내 뇌 속으로 산소가 부족할 거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이 펼쳐진다.



폐소공포증이 그 뒤에 당연한 듯 밀려온다.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맺힌다.



근육이 경직 상태에 접어들고 공포가 손발의 끝을 갉는 게 느껴진다.












죽기 오 분 전이었을 테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차의 움직임이 멎고 찬 공기가 들어온 건.



둔탁한 마찰음이 오렌지 색의 파동을 그리며 물결친다.



이완되는 근육과 함께 진한 쇳내가 입안에서 퍼졌다.



잘근 물고 있던 입안의 살이 터졌는지, 아니면 입술인지는 몰라도 제법 비린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몸의 결박이 풀린다.



자유로워진 몸을 만끽할 새도 없이, 귓가에 익숙한 비명이 들려 허겁지겁 눈가리개를 제친다.



낯선 얼굴이 보인다.



아버지, 그리고 너.



나뒹구는 너는 누군가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있다.



네 손이 구둣발에 밟히는 걸 보고 이성은 뚝 끊기고 만다.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나는 너를 감싼다.



내 몸 위로 미처 멈추지 못한 발길질이 몇 번 쏟아지고,



나는 얼얼한 고통을 등허리에 느끼면서 네 손을 더듬는다.



피비린내가 훅 끼친다.



희여멀건 뼈가 보일 듯 패인 네 손을 움켜쥐고 있으려니 발길질이 멎는다.



움켜쥔 사이로 피가 철철 넘친다.



어떠, 어떻게, 아.



간헐적인 음절만이 뚝뚝 끊겨 떠오른다.



폭력을 제지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이를 가는 자식이 될 줄,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피만큼 짙은 붉은 목소리가 눈 앞을 가로지른다.



투우사를 들이받으려는 성난 황소의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아마 내 몸에서는 투우사의 것과 같은 공포도 맴을 돌 테다.





"당신이,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내 말을 들으라고 했을 텐데, 심아.

실망스럽구나."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잖아!"





"널 데리고 숨으려 한 대가다.

측은하게 여기지 마라."





한때 자신의 자식이었던 사람을 둘이나 짓이겨놓고 하는 소리라니.



그 소리를 하는 게 나의 아버지라니.



피가 눈을 타고 흐르는 것만 같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패인 상처에서 피가 울컥 솟는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살점 위로 눈물이 뚝뚝 떨궈지고 나는 그 순간에도 아플 거라는 생각만 한다.



소금이 상처에 닿으면 쓰리니까.



바보 같은 생각만 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난 당신이 가진 것 좀 있는 화가인 줄 알았는데.

노망나고 미친 폭력배가 아니라."





"가진 걸 잃지 않기 위해서 못할 게 뭐 있겠냐마는,

아비가 안간힘을 썼는데도 딸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씁쓸하구나.

그동안 즐거웠니?"





즐거웠냐고.



해맑던 네가 스친다.



손바닥을 감싸던 너의 입술과 작게 간지럽히던 혀끝과.



같이 맞던 새벽들이, 밝아오던 말간 아침만큼이나 맑던 네 목소리가 아프게 두 눈 앞을 스친다.



네, 아버지.



즐거웠어요.





"민, 형, 민형, 아."





끊어진 소리들을 이으려 해보지만 모스 부호를 남긴 채 분홍색은 엷어진다.



쇳내가 짙다.





"처리는 이 사람들이 할 거다.

쓸데없는 동정은 그만둬."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내 품 안의 온기가 사라진 걸 깨닫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고,



더 이상 네가 따뜻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민형아."





너는 눈을 뜨지 않는다.



사람 목숨은 질기다던데.



자살을 수없이 시도했어도 죽지 않는다던데.



너는 왜 이렇게 쉽게-



사라지니.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독자1
아 민형이가 사라지다니요ㅠㅠㅠ 아ㅠㅠㅠㅠ 작가님 오랜만이네요 개강하고 바쁘시더니 연휴라고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재미잇게 봤어요!!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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