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네, 서방님.
눈 좀 감아 보시오!
눈이요? 왜요? 또 무슨 장난을 치시려고요.
아니! 부인, 내가 그리 부인에게 신뢰가 없단 말이오?
…여기, 눈 감았습니다. 되었어요?
되었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멀었습니까?
됐소! 이제 눈 떠도 되오. 부인!
…우와-. 너무 예뻐요. 예쁩니다. 서방님.
내 눈에는 부인이 훨씬-.
“…….”
눈을 뜨니 익숙한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안개가 끼어 흐릿해진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자 방 너머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왔다.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윤기가 이틀 연속 들이부은 술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와 비틀대는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서자 부엌에서 기다렸다는 듯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일어났냐.”
“나 어떻게 집에 왔어?”
“내가 데리고 왔다, 왜.”
“형은 날 어떻게 찾았는데?”
“어떤 여자가 네 전화를 받아서.”
말을 끝낸 석진이 탁 소리 나게 칼을 내려놓으며 몸을 돌려 윤기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황당함과 의문이 서려있었다. 당장이라도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은 얼굴이었다.
“꿈을 꿨어.”
“뭐?”
어제 저를 데리고 집으로 와준 석진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줘야 하는 것이 맞지만 오늘도 꾼 꿈에, 다른 날과는 다른 꿈에 윤기는 식탁 의자에 앉으며 몽롱한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무슨 꿈을 꿨는데.”
어느새 석진은 하고 있던 앞치마까지 벗은 상태였다. 윤기의 맞은편에 앉는 석진을 보며 그는 기억을 더듬어 여전히 보이지 않는 남자를 그렸다.
“선물 받는 꿈.”
“선물? 누구한테.”
“서방님한테.”
“헐! 너 아직도 그 꿈 꿔?”
“응. 미치겠지?”
“어. 미칠 만하네.”
징하다는 얼굴과 놀랍다는 얼굴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석진을 보고 있자니 어제 제가 했던 행동을 이야기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윤기는 술을 마셨어도 생생히 기억나는 어제의 일을 천천히 꺼내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여자한테 가서 진상을 부렸다고?”
“…그렇지.”
“잘~하는 짓이다. 어이고~ 해장이나 해라.”
석진이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한 한상을 식탁에 차리며 말했다. 이게 다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넘치는 상에 윤기가 작은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들었다.
“미친놈으로 알겠지?”
“당연하지.”
“그렇겠지-.”
쓸쓸함과 아쉬움이 담겨있는 윤기의 목소리에 석진은 흘긋 그를 바라보다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민윤기!!! 전화 받으신 분이세요?’
‘아, 네. 함부로 받아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오히려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무슨 사이신지…?’
‘네? 아! 아무사이 아니에요! 술이 좀 과하셨는지 이상한 말을 하시다 잠들었는데 때마침 전화가 울려서 받았을 뿐이에요.’
‘아- 진짜 너무 죄송합니다.’
석진은 할 말이 있어 전화 건 윤기에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닌 여자의 목소리여서 통화를 하는 순간부터 뛰어오는 순간까지 얼마나 놀랐는지 그 감정을 누구한테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는 내내 그 철벽한테 드디어 여자가 생긴 건가 싶어 얼굴을 보자마자 예의 따윈 내버려두고 무슨 사이인지부터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셈이었다.
‘혹시 피해 입으신 거 있으시면-.’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그저-.’
‘네?’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데 너무 슬퍼하셔서….’
‘…….’
‘혼자 두고 가기 좀 걸렸는데 오셔서 너무 다행이에요.’
이해 못할 말을 하며 윤기를 보는 여자의 눈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술주정을 당한 사람치고는 너무 따스하고 부드러워서 석진은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아무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또 아닐 수도 있고.”
“뭐가?”
맥락 없는 말에 윤기가 주린 배를 채우느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석진을 바라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기력한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었다. 꿈 이야기를 할 때 비췄던 생기 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그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의도치 않게 입술이 열렸다.
“어쩌면 네 꿈이 풀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뭐라는 거야. 제대로 좀 말해봐.”
아까부터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는 석진에 윤기가 인상을 팍 쓰고 말하자 작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그가 느슨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 스토커나 변태 취급 받지 않는 게 급선무겠지만….”
[두부] 님 감사합니다 :->
짧게 끝낼 생각이고, 여주 시점은 안 나올 예정의 글.
글을 여러번 보고 수정하고, 오래 생각하고 쓰면 좋겠지만
그냥 써지는 대로 최대한 짧은 시간내에 쓰는 걸 좋아하는 터라
많이 엉성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