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丹
금단 01
금단金丹, 누군가가 쓰게 말했다. 둥근 데 없이 모난 글자가 입 안에서 뒹굴었다. 묘하게 피비린내가 났다. 금단金丹은 아편 종류의 독물이었다. 마약과 독약, 설명은 그걸로 족했다. 어떤 용감무쌍한 이가 함부로 금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금기의 언어. 그것은 홍등에서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홍등, 우 연이 태어났고 자란 곳. 그리고 벗어나지 못할 곳이다. 홍등은 폐쇄되어 있다. 함부로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듯, 아주 암울하지만 화려하게.
홍등에 대해 설명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법은 없다. 아니, 금단이 법이다. 바깥 사회와는 차별화 되어지는 곳이며,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구역. 일반적인 사회와는 경계 지어진 외딴 섬과도 같다. 굳이 따지자면 제 몸 하나 못 사리는 게 불법이다. 홍등의 시작점에는 연등이 줄지어 있고, 그 내부는 온통 붉다. 조명부터, 혈관 속의 피까지도.
우 연이라는 이름은 연이 살고 있는 홍화紅火라는 가게의 마담이 지었다. 우 라는 성은 연의 친모에게서 따왔다. 연이 태어나면서 친모는 죽었다. 그뿐이다. 연은 친모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가지지 않는다. 마담이 지은 이름은 연 이라는 한 글자, 그것은 연등에서 따왔다. 연등, 널린 게 붉은 연등이니 놀라울 것도 없었다. 다만, 덧붙인 말이 뜻밖의 의미를 부여했다. 줄을 끊으면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리라고. 마담이 그렇게 말했다. 홍등에서 벗어나라는 것처럼. 말을 덧붙이는 마담의 표정이 썼다. 금방에라도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연은 그런 얼굴을 지겹도록 많이 봐왔다. 가게 언니들의 얼굴에서, 마담의 얼굴에서,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거울에 비친 얼굴은 언제나 죽음의 그늘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연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손등의 화상 자국, 어깨의 흉터…. 이제는 어느 것도 방금 생긴 것 마냥 화끈거리는 것은 없었다. 줄지어 있는 가게, 사람, 무엇인지 모를 약과 향냄새, 그리고 죽음. 그 중 가장 가까운 것은 죽음이었다.
“연!”
“저 자러 가요.”
“잠도 못자는 게 무슨. 심부름이나 갔다 와.”
마담의 말이었다. 연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은 지독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대략 10살 무렵 생긴 것이었다. 정확히는 모른다. 눈을 감으면 꿈을 꿨다. 그 탓에 언제부턴가는 잠을 자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기도. 그래서인지 늘 눈이 뻑뻑했다. 연은 마담으로부터 표지가 검은 가죽으로 되어있는 공책을 받았다. 장부였다. 가죽이 다 닳아있었다.
“알지? 금란.”
“네네, 다녀올게요.”
“금란에 이번에 결혼하는 아가 있다더라. 홍등 떠난다니까 얼굴이 확 폈던데.”
마담에게서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터져 나왔다. 연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부터 마담은 홍등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녀는 누군가가 홍등을 떠나길 바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담은 꼭 자신이 홍등을 떠나 결혼이라도 하는 사람마냥 볼을 붉혔다. 연은 그것이 이해되지 않아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을 뿐이었다. 홍등, 벗어나 본 적 없었기에. 마담은 그런 연을 눈치 채고는 부자연스럽게 눈을 깜빡이더니 공중에서 손을 두 번 휘저었다.
“조심히 다녀와.”
조심히 다녀와. 손짓과는 상반되는 말이자, 마담이 연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마담이 연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친모가 죽고 짐 같은 연을 떠안아 기르겠다고 했을 때부터? 연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물음을 던지는 대상은 없기에 언제나 미제의 물음으로 남는다. 연은 끝끝내 자신은 답을 알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물음을 던지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 같아서? 아아, 연조차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역시나 하늘은 검었고, 홍등은 붉었다.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정도로.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가게에서는 각기 다른 향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홍화는 강한 장미향을 풍겼다. 어떤 이도 홍화가 화花가 아닌 화火라는 사실을 모른다. 마담의 말대로라면 화火로 바꿨다고 하니, 정확히 하자면 변경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문 거였다. 영문은 마담만이 알 거라고 연은 생각했다.
“어, 연 아냐?”
연을 보고 아는 체라도 하려는 속셈인지 저 멀리서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홍화의 손님이었다. 눈은 약이라도 한 모양인지 잔뜩 풀려 있었고, 덥수룩하게는 아니어도 거뭇거뭇한 수염자국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그의 손에 허리가 붙잡혀 있었다. 연은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귀찮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매끈하게 이어진 돌 길. 연은 그 정중앙에 서있다.
“연. 이 여자 대신 너랑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어때?”
“가긴 내가 어딜 가요.”
“같이 이거나 하러.”
남자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코로 빨아들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약이라도 하러 가는 모양이지. 연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이제는 그런 말에 흥미조차 가지지 못했다. 눈이 퍽퍽한 게 건조했다. 잠을 못 잔 지 며칠 째더라. 하루, 이틀, 사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날밤을 샌 날을 헤아리는 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습관이었다. 흐려진 초점. 연은 눈을 감고 싶었다.
“지랄하지 말고, 약이나 하러 가세요.”
하다 죽어 버리는 것도 괜찮고. 연이 버석하게 메마른 투로 지껄였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으니까요. 남자는 그런 연의 말에 익숙하게 웃었다.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아, 대꾸하지 말 걸. 남자에게 유흥거리를 제공한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옆에 선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새삼스럽게. 하지만 사실인 걸요. 연이 덧붙였다. 연등의 불빛이 태양처럼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홍등을 강렬히 녹여버릴 것처럼. 연의 뼛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연은 마저 걸음을 옮겼다. 손에 들린 장부는 꽤나 오래 연의 손을 탔다. 마담이 연에게 잔심부름 외에는 잘 시키지 않는 탓이었다. 장부를 가져갈 곳은 금란金蘭이었다. 왜 장부를 금란에게 가져가는지, 알 수 없었다. 금란은 홍화만큼이나, 그러니까 단순히 말하자면 잘나가는 가게였다. 홍등의 여자는 홍화와 금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간혹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기도 했다. 장부 작성은 마담이 했기 때문에 이 역시도 마담의 필체였다. 만년필의 잉크가 흥분감에 울컥 터져 나오는 것처럼, 악에 받쳐 몸부림치는 것처럼 적혀있는 이름. 일종의 블랙리스트이자 곧 죽을 이들이었다. 누가 죽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연은 장부를 자신이 배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언제든 장부에 ‘우 연’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새겨 넣을 수 있으니까.
금단의 시작점을 본 적이 없다. 정확히는 시작점을 알지 못하니 매일 드나들던 곳이 금단이었대도 모르는 것이었다. 마담은 내게 금단을 알려주는 것 대신, 언제나 몸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언제부턴가는 마담은 금단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발화마저도 금기시된 것이었다.
“언니, 저 왔어요.”
“어머. 연이 왔니?”
금란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연을 반겼다. 연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여자들이 벌떼처럼 연에게 몰려들었다. 그중에도 환한 얼굴로 반질반질한 피부를 하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입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광대는 솟아있었다. 아, 결혼한다는 그 여자. 아무도 연에게 그녀가 홍등을 떠날 예정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연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홍등을 떠나는 게 저렇게까지 좋을 일인가 싶었다. 연은 끝끝내 모를 일이었다. 홍등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조차 없다. 우 연, 제 이름은 그렇게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안녕하세요.”
“어, 어, 홍화. 맞죠?”
답지 않게 연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흔치 않은 상황에 금란의 여자들은 금세 자지러지며 웃음을 토해냈다. 어머, 얼굴에 좋아 죽는다고 써 있나보다. 얘. 그렇게 말하면서. 연의 직감이 맞은 모양이었다.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가슴까지 파인 옷. 부드럽지 못한 재질의 원피스에는 구김이 가있었다. 끝은 헤져 실밥이 풀어져 있었고, 흰 옷이 군데군데 때가 타 있기도 했다. 아, 그래. 웨딩드레스. 그것 같았다. 연은 제대로 된 드레스를 본 적은 없었으나. 결혼, 결혼이라니. 사랑하는 남자와? 홍등에서 만나? 연은 끝없는 물음을 던졌다. 여자는 그런 연의 궁금증을 모르는 체로 웃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예의 없는 년이라고 따귀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생각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로 솟아오르는 반감과는 다르게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은……. 홍등,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홍등이 맞던가? 과연 금란이라고 할 수 있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홍등, 어둠을 좀먹는 홍등의 피.
“홍화. 네, 맞아요. 우 연.”
“반가워요. 우리 인사는 처음이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하는 건데. 나 내일 떠나요.”
홍등으로부터, 영영. 여자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확고한 다짐, 아니 그것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니 간절한 바람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여자의 말이 무엇이 즐거운 건지 주위에선 박수나 쳐댔다. 짝, 짝, 왜인지 연은 속이 메슥거렸다. 박수소리가 무엇을 연상시켜서? 그러니까 무엇을? 연의 기억 한 구석이 찢겨져 나간 것만 같았다. 깔끔하게 잘려지지는 못한 듯 이토록 연을 부식시키는 두려움을 남기면서.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 터지는 폭죽. 귀가 멍멍했다.
홍화紅火. 연을 부르는 말이었다. 가게의 이름이었으나, 사람들은 연을 홍화라고 불렀다. 이름을 모른 까닭도 있었을 것이나, 홍화의 다른 여자들에게는 칭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홍화, 오직 연의 것인 듯. 홍화, 홍화, 홍화……. 연은 한참이나 그 말을 씹어댔다.
“홍화!”
“오랜만이에요. 마담.”
“온 김에 같이 술이나 한 잔 해야 하는데 말이야. 아, 물론 단 둘이.”
금란의 마담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던 담배를 다시금 물었다. 백색의 필터에는 그녀의 붉은 립스틱 자국이 찍혀 있었다. 마담이 눈을 찡긋거렸다. 금란의 마담과 단 둘이 술을 마신 적은 없다. 아직까지는. 홍화의 마담과 셋이 마신 적은 있다만.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더라, 그 날이 누군가의 기일이었는데. 아무튼, 그렇다고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재즈풍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술을 마시던 날이었으니. 표현상으로나 기일인 거지, 홍등에서 그런 걸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담배를 쥔 손이 발발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약의 부작용이었다.
“마담, 마담!”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갔으나, 거센 힘으로 잡아당겨지는 팔에 이끌려 간신히 두 걸음 내딛었을 때였다. 개미떼처럼 뭉쳐있던 무리가 한 순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를 감싸 안은 남자. 남자의 손에 들린 칼. 아아. 짧은 순간 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멍청하기 짝이 없지. 간혹 저렇게 어리석게 구는 이들이 등장하고는 한다. 다물어지려는 입새로 헛웃음이 새어나간다. 홍등, 홍등에서? 멍청한 새끼.
손에 들린 칼이 붉은 조명에 번쩍거렸다. 날이 잘 섰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금란의 마담이 연을 무자비하게 끌어당겼으니까. 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건의 현장에서 멀어졌다. 마담? 연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연이 고개를 다시금 뒤로 돌렸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연이 몸을 흠칫 떨었다. 칼 따위는 무섭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손에 목이 졸리는 정도야 전혀 두려울 게 아니었음에도. 남자의 발걸음이 연을 따라갔다. 손에 들린 칼, 남자에게 목이 졸려진 여자도 함께. 뒷문으로 나가, 어서. 마담이 속삭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금란의 출구였다. 언제든 열릴 것처럼 자물쇠는 풀려있었음에도 아무도 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문의 손잡이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손잡이를 붙잡자 불쾌한 거미줄의 느낌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차라리 붙잡혀 있는 목이 자신의 목이면 좋겠다고.
문이 열리고 마주한 것은 낯선 길목이었다. 금란의 뒤편, 누구도 감히 상상하려 하지 않았을 곳. 연이 뒤를 돌았을 때는 언제 그곳을 빠져나왔냐는 것처럼, 신기루였다는 것처럼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애당초 열린 적이 없던 것처럼. 연은 또다시 미궁에 빠진다. 자신을 뒷문으로 밀어 넣은 금란의 마담, 목이 잡힌 여자, 문을 굳게 닫은 마담. 어째서? 연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라면, 어째서 연을 구하기 위해? 연은 삶에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다기보다는 죽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연은 간혹 살아있는지 죽어 있는지 헷갈리곤 한다. 연을 갉아먹는 죽음. 어째서?
연은 두 갈래의 길 앞에서 망설이기 시작했다. 쥐새끼 하나 없는 낯선 거리, 무거운 공기. 연은 직감적으로 더 좁은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 이상이 나란히 걷기 힘들어 보이는 길목, 하물며 꽁초 한 개비조차도 없었다. 잘 다듬어진 돌로 이루어진 홍등의 바닥과는 다르게 시멘트 길이었다. 걸을 때마다 신발 밑창이 직직 끌렸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빛과는 멀어졌다. 연은 계속 걸었다. 홀린 듯, 무언가를 따라가듯.
연의 발걸음이 멈췄다. 맞은편에 사람의 인영이 있었다. 눈을 끔뻑거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과 시선이 얽혔다.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멍멍하던 귓가에서 심장 고동소리가 울렸다. 쿵, 쿵, 쿵. 내게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린가? 아니야, 이건 내 심장 박동 소리다. 일시적으로 숨이 멎었다. 눈앞이 잠시 흐렸다. 십여 년 전의 기억과 겹쳐진다. 반짝이는 두 눈, 그것은 나를 보고.
“…….”
“…….”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사람의 인영은 분명 남자였다. 두 눈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의 착각이 아니었다. 달빛에 남자의 흑색 머리가…, 달빛? 연등이 아니고? 생소한 단어에 연의 사고회로도 멈췄다. 연이 뜸을 들이면 들일수록 남자는 연과 가까워졌다. 심장이 뜨거웠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건가? 목 끝에서 콱 막혔던 숨이 바람 빠진 풍선마냥 조심스럽게 새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연은 등을 돌렸다. 다리가 바들거렸다. 마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담, 피, 남자. 연은 입술을 깨물곤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숨을 참은 건지, 숨이 막힌 건지 모른다. 어느 것이래도 상관없다. 발바닥이 뜨거웠다. 눈시울도 함께 달아올랐다. 한동안 건조하던 눈동자가 단시에 축축해졌다. 갈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대도.
탕.
그 순간이었다. 큰 총성이 홍등을 울렸다. 연은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암전되는 홍등. 총성이 홍등의 전원이라도 되는 양. 그제야 연은 안정을 되찾았다. 참으로 아이러니, 사람에 두려워 도망치곤 죽음에 안심하는 꼴이었다. 연은 그대로 홍화를 향해 걸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진이 빠졌다. 거리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오직 우 연뿐. 저 멀리로 불 꺼진 홍화가 눈에 들어왔다. 쿵쿵쿵, 연이 문을 두드렸다. 마담. 자신임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고.
“얼른 들어와!”
“…….”
그제야 굳게 잠겨있던 홍화의 문이 열렸다. 마담의 얼굴이 문틈 새로 드러나고 연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홍화의 여자들은 초조한 사람들 마냥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눈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총성을 계기로, 오늘의 홍등은 암전. 죽어버렸다.
“어딜 갔다가 이제야 와. 금란에 장부만 전해주고….”
“…마담.”
연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마 만에 축축한 눈망울을 하는 것인지. 그러나 연은 몰랐다. 자신의 꼴을. 마담이 살리고자 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날의 연을 마담이 다시 보고 있는지조차도. 연은 조심스럽게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보이는 것은 마담의 붉은 발톱. 그마저도 흐렸다. 마담은 연의 앞에 서서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입을 다물곤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마담은 연의 눈에서 본 것이었다. 그날의 연,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불필요한 두려움을 두 눈에 심어버린 그 날을.
“들어가.”
한 마디로 연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마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연은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지나다니던 언니들이 연에게 은근하게 시선을 보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들도 무언가를 모르는 체하는 것이었다. 어지러웠다. 모두가 모르니,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연은 발걸음을 옮겼다. 홍화의 3층, 연의 방이 있는 곳이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계단이 힘없이 삐걱거렸다. 금방에라도 썩어문드러진 계단이 연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온몸이 축축 쳐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이불이 연을 반겼다. 연은 그 위에 제 몸을 던졌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다리를 접어 허벅지를 배에 맞댔다.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두 눈, 그것이 자꾸만 연을 괴롭혔다. 십여 년 전 그날처럼. 연이 눈을 감았다.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듯 펼쳐지는 생생한 장면. 연은 10살 남짓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나이를 헤아리지 않은 지 오래됐다. 어둠 속에는 남자가 있었다. 연은 혼자였고, 남자 역시도 한 명이었다. 번쩍거리는 두 눈에 연은 살의를 온몸으로 맞았다. 아, 아, 입이 채 벌어지기도 전에 남자의 손에 든 칼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칼을 높게 쳐든 남자, 그 뒤로……. 값비싸 보이는 황금빛으로 도색된 큰 물 항아리를 든.
…마담. 연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무언가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박살난 것이 항아리였는지, 남자의 머리였는지 연은 알지 못한다. 그와 동시에 미지근하고도 질척거리는 피가 연의 얼굴에 튀었다. 미약하게 튀기던 피, 역겨운 피비린내. 연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는 연을 껴안던 마담의 뜨거운 품. 아니, 어쩌면 피로 뜨거웠을지도 모르는 그 품. 연은 그 안에서 안정을 얻었다.
연은 자신을 기습한 남자의 얼굴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다. 얼굴을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는 친모를 버리고 떠났다는 얼굴도 모르는 친부의 얼굴이 채웠다. 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혈육, 그딴 걸 따진 적은 없었는데. 제 불행은, 죽음은, 그것이 시초였나? 우 연은 다짐했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죽음에서? 아니, 죽음은 언제고 도망치지 않을 것이었다. 두 눈동자에서. 마담이 죽인 그 남자의 두 눈에서. 죽어버린 남자. 죽어버렸다, 죽어버렸다, 죽어버렸어. 그렇게 상기시키며.
윽. 다물린 잇새로 신음소리가 새어나갔다. 연은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당장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방 한 구석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담뱃갑이 보였다. 연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작게 흔들어보이자, 안에 들었을 담배가 휘청거렸다. 다행히 빈 갑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면 보이는 것은 허술하게 붙여진 벽지였다. 붉은 꽃, 보랏빛 꽃, 온갖 색이라고는 다 가져다 모은 듯 화려했지만 볼품없는 벽지였다. 그것은 마담이 붙인 것이었다.
연이 가슴팍에서 작은 칼을 꺼내어 들었다. 신체 일부마냥 잠시도 떨어지지 않던 것이었다. 그래, 가슴팍에 닿는 차가운 칼의 촉감. 죽음은 그만큼이나 가깝다. 그대로 칼을 들어 벽지를 뜯어냈다. 그리고 드러나는 작은 크기의 창. 마담이 벽지를 발라 막아두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몸과도 같던 홍화. 차마 시멘트 통을 들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마담의 얼굴을 떠올렸다. 벽지로 막아둔 것만으로도 마담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창문은 오래되어 흰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연이 창문을 열자 장기간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듯 먼지가 피어올랐다. 지구가 멸망이라도 한 듯 조용한 홍등. 그 적막을 창문이 열리며 내는 기괴한 쇠 소리가 메웠다. 연은 소리가 새어나갈까 이를 악물고 조심스럽게 열어 재꼈다. 열린 창문으로 찬바람이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주한 거리. 홍화의 뒤편. 방금 전 우 연이 지레 겁먹고 도망쳤던 그곳이었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발발 떨었다. 금란의 마담처럼.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들었다. 문득 떠올랐다. 홍화, 담배는 그렇게 무는 게 아냐. 폼 나게 물어야지. 이렇게. 금란의 마담이 담배를 물던 그 모습, 그 목소리, 그 안정. 홍화. 잠깐의 안정. 연이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었다. 작은 창문에 팔꿈치를 얹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그래서 마담이 우 연을 붙잡아 두는 거였다. 삶에 미련이 없게 구니. 눈 깜짝이면 죽어버릴까.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홍등의 유일한 불빛이었던 연의 라이터가 죽음을 맞이하듯 꺼졌다. 그와 동시에 연은 연기를 빨아들였고, 다시 갈림길로 고개를 돌렸고. 또다시 마주친, 아니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두 눈. 여전히 사람이 있었다. 연은 방금 전 두 눈동자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들이키는 것이 숨인지, 연기인지, 죽음인지. 골목길에서 라이터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짧게 타오른 불, 그리고 불의 주인인 남자의 고개는 틀림없이 우 연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방금 전 그 남자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본능이란 아주 멍청하고도 예리한 감정이었으니. 연은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담배를 피웠다. 그곳에서도 한참이나 담배가 타올랐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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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신청 해주신 분들 사랑해요. 쪽쪽 ♥3♥
거부는 거부합니다.
계속 신청 받아요, 주저 말고 해주세요!!!
<사담>
오랜만입니다.
연재 텀은 많이 길 것 같아요.
몇 달 만에 글을 쓴 건지, 새롭네요.
+) 놀라지 마세요. 이번 글의 주인공 '우 연'이 여러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