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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어
황민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황민현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옹성우는 그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가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옹성우에게 처음으로 주먹을 들어보였다. 가까이 오면 죽여버린다. 이를 악물었다. 히익. 옹성우는 식겁한 표정을 짓다 동시에 울상을 지었다. 황민현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난 지금 화가 났다.
경상에서 옹성우가 유명하다는 건 그저 알고는 있었다. 이유는 딱히 몰랐다. 그저 잘생겼고 다정한 성격 때문이겠거니 했다. 같이 다니는 황민현도 얼굴로 한 몫 했으니까.
하지만 그 유명한 이유가 옹성우가 순정남이라서인 것도, 옹성우가 순정을 바치는 여자가 14학번 미술학과 OOO라고 알려져 있다는 것도,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사귀는 사이로 낙인까지 찍혀있었다. 이제 사귄지 2일, 그러니까 어젯밤부터 1일을 세기 시작한 우리는 이미 몇 백일을 넘긴 장수커플이 되어 있다는 거였다. 작업실 후배들은 옹성우와 내가 썸타는 사이로 알고 있을텐데. 그렇다면 소문의 근원은 경상. 내가 옹성우에게 주먹을 들이민 이유였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가 황민현과 굳은 얼굴로 마주하고 있는 이유.
옹성우 여자친구 OOO가 황민현과 옹성우 사이에서 저울질 중인 천하의 썅년이라는 것.
그리하여 그 소문에 화가 나서 따지러온 나와 자기도 처음 듣는 소문이라며 불쾌하다는 황민현과 영문도 모른 채 경상캠에 등장한 내가 반가워 달려 온 옹성우, 이런 상황이었다. 황민현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퍼진 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정말 나도 처음 듣는거야. 알았으면 진작에 불 껐지. 답답한 듯 말을 이어간다. 나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옮는다더니, 황민현의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감정까지 옮는 것 같았다. 옹성우는 그 사이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무슨 소문? 어리둥절한 표정에 황민현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너는 이런 소문이 도는데 여태까지 뭐하고 있던거야? 왜 옹성우한테 화내... 라고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옹성우의 표정이 굳었다.
ㅡ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우선 바로 잡아야지.
ㅡ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ㅡ 그럼 어쩌려고? 그런 소문 놔두면 더 악질적으로 변해.
ㅡ 좀 더 생각해볼게. 우선 옹성우 내가 데리고 갈테니까 먼저 잠이나 자.
황민현은 정말 피곤한 듯이 두 손으로 얼굴에서부터 머리까지 온통 쓸어넘겼다. 진하게 진 쌍커풀이 많은 말 없이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 같아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친구라고 걱정해주는 황민현에게 좀 자라고 하니,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적비적 걸어갔다. 항상 빈틈 없는 모습이었는데 저런 모습도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옹성우가 전화로 계속 괴롭혔다더니, 결국 저런 꼴이네. 옹성우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ㅡ ..무슨 일인데.
옹성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옹성우의 팔을 붙잡았다.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아.. 황민현.... 괜히 보냈나..
* * * * *
나는 어느샌가 옹성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화가 난 건지 조용한 모습에 식은땀만 났다. 무슨 일인지 얘기해줬다간, 옹성우가 난리칠 걸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더니 집에 오는 내내 저 상태였다. 옹성우에게 말을 하는 건 일을 금방 끝내는 게 아닌, 일을 더 키운다는 거라는 걸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나에 대한 무슨 일이 크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가 된 자신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는 거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일 덕분인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를 보고 웃지 않는 얼굴에 조금 마음이 아프면서도, 선뜻 말할 수가 없는 이유는 정말 있었다.
옹성우는 삶 자체가 시끌벅적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성을 가진 데다가 생긴 것도 잘생겼고, 게다가 공부도 잘했다. 누가 보면 팔불출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언젠가 지나가면서 옹성우 같은 엄친아 만나기도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옹성우의 영향력은 그럴 정도였다.
그러니 그 곁에 있는 내게 저절로 시선이 모이는 건 당연했다. 대학에서도 저절로 쏠리는 시선에 그러려니 한 것도 이미 익숙해서인지도 몰랐다.
고등학교 1학년. 옹성우와 같은 학교를 진학하고, 황민현을 만나고. 옹성우와 황민현이 친하다는 걸 알게 되고, 셋이서 다니는 시간이 많아졌을 무렵. 내게 친구가 옹성우 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여자아이들한테 내가 나쁜 사람으로 말이 돌아가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불여우, 여시, 무슨 년... 그 날 화장실에서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무렵이었음에도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칸막이 안에 들어가는 걸 봤으면서도 들으라는 듯이 내뱉었던 비난들. 열일곱의 소심한 나는 손을 덜덜 떨며 문고리 하나 열지 못했다. 결국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양호실로 기어가듯 움직이던 나와 마주친 황민현. 그 때 황민현 앞에서 결국 울어버렸던 게 탓이었다. 옹성우가 알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건 황민현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양호실에서 두통 때문에 점심 이후로 내내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옹성우가 어떻게 알았는지, 내 얘기를 하고 다니던 여자애들에게 찾아갔다는 거였다. 어떤 식으로 화를 내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얼굴을 쓰다듬던 옹성우도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지친 걸음으로 교실로 들어선 내게 쏠리는 시선과 살갗으로 느껴지는 불편한 침묵. 내게 시선도 건내지 않던 여자애들. 느낌 상 알 수 있었다. 옹성우가 무슨 짓을 했긴 했구나, 하고.
옹성우에게는 그 일이 그렇게 끝났겠지만, 나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날이 갈수록 더 듣기 거북한 이야기들과 날 선 비난들이 많았다. 하지만 옹성우에 대한 내 감정이 그들이 얘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저 침묵했을 뿐이었다. 물론, 황민현과 엮여서 안 좋게 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옹성우는 버스 안에서 내내 차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 삐졌으니, 빨리 이야기를 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네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크게 화를 낼지 아니까. 무시하고, 그저 지나가겠거니하고, 그저 심지가 조금 길어서 오래 타는 촛불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언젠가는 바람이 불어서든 심지가 다 타버려서든 꺼질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니까.
옹성우는 버스에서 내려서, 집 앞까지 가서도 내내 말이 없었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 걷기만 했다. 옹성우가 하고 있을 생각들을 최대한 맞춰보려고 했다. 내가 옹성우라면? 답답하고 화가 나니까 말하라고 닦달했겠지. 아니면 짜증을 부리거나 황민현을 물어뜯거나.. 잘 참고 있구나 옹성우. 미안한 마음이 부풀었다. 옹성우는 집 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뒤를 돌았다. 눈치만 보던 내가 화들짝 놀라자 옹성우가 한숨을 쉰다. 미안해.. 내뱉지 못한 말이 입에 남았다.
ㅡ 끝까지 얘기 안 해줄거야?
ㅡ ...
ㅡ 너 아니어도 어떻게서든 알아 낼거야. 그래도 말 안 할거야?
옹성우의 눈빛이 단호하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옹성우가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아랫입술을 만진다. 깨물지마. 낮게 깔린 목소리어도, 다정하기만 하다.
ㅡ .. 나중에 말하면 안 돼?
억울해. 우리, 어젯밤부터 1일이었어. 우리 이제 겨우 2일인데..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투덜거렸다. 진짜 억울하다. 경상캠에 처음 발을 들였는데도 참 기분 나쁜 이유인 것도 싫었고, 반가운 얼굴을 보고 울컥 화가 난 나도 싫었다. 나도 조금 편한 마음으로 널 보자마자 끌어안고 싶었는데. 어젯밤 두 손을 잡고 얼굴이 새빨갛던 옹성우가 떠올랐다.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 어제 너와 내가 꽃을 사이에 두고 끌어안았던 그 곳인데. 옹성우는 아까보다 조금 펴진 얼굴이었다. 내 반응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두 눈이 마구 흔들렸다.
나 이제 마음 놓고 너 좋아하고 싶단 말이야..
옹성우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어젯밤 스타티스를 품에 안겨주던 옹성우가 보였다. 추웠던 겨울에 내게 손을 건내던 열여섯의 옹성우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나를 끌어안던 스물셋의 옹성우가,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웃어버리는 옹성우가.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래. 머뭇거리던 목소리가.
결국 옹성우와 나는 서로 부둥켜 안고 한동안 제자리에서 버둥거렸다. 화가 났던 게 잠깐 전이었으면서, 내 투정 한마디에 실실 웃어버리는 옹성우가 귀여웠다.
/아주 오랫동안 너를 만났던 그 겨울부터, 지금까지. 네가 알고 느꼈던 날들보다 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내 손 잡아줄 때, 내 옆에서 걸을 때, 내 품에서 울 때, 나를 보면서 웃었던 그 찰나까지.. 네가 없어서 슬픈 날은 많았어도, 네가 있어서 슬픈 시간은 없었어.
/그렇지 않으면 확신하지 못한 네가 떠날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말할게. 너무 늦어서 미안해.
/내가 널.. 좋아해.
옹성우는 그 말을 한 뒤, 우는 나를 끌어안았다. 울지 않으려고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눈을 아무리 부릅 뜨고, 입술을 굳게 다물어도, 눈물샘을 내가 어떻게 조절할 수가 없었다. 옹성우에게 정말 해줄 말이 많았다. 네가 없는 날들 동안 내가 느꼈던 아픔이 이 정도였다고. 다 알면서 왜 나를 그렇게 뒀냐고. 내가 널 원망조차 못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하지만 나를 끌어안고 같이 우는 옹성우에게 그 중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내가 울음을 그쳤을 때도, 옹성우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네가 왜 우냐고 말할 수도 없을만큼, 서럽고 마음 아프게. 코와 눈가가 새빨개져서는 훌쩍이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키스했다. 옹성우가 내게 해준 것처럼 눈과 코와 입술에 차례로 입맞춰주었다. 옹성우는 여전히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어. 미안해.. 좋아해.. 미안해... 아니, 좋아해...
그 목소리에 다시 눈물이 터진 건, 너무 창피하니까 옹성우와 둘이서만 알기로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옹성우, 그거 알아? 이제 우린 아무것도 되돌릴 수가 없는 사이가 된거야. 전처럼 친구가 될 수도 없어. 우린 결국에 그걸 넘어버린 거야.
괜찮아. 다 괜찮아. 되돌리지 않아도, 괜찮아. 널 사랑하니까.
: 이제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어
그래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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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메타메타몽몽입니다 *
먼가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왔네요 (?) 다음 화 혹은 16화까지 이어갈 예정이니 중간에 다른 길로 갔다고 화내진 말아주세요 ㅠㅠ
금방 오겠다고 해놓고 이번에도 좀 늦었네요
근데 인스티즈.. 왜 매번 30분간 마음에 들게 써내려갈 때마다 로그아웃이 되어서 임시저장을 해도 안 된 줄도 모르게 해버리죠?
저 정말.. 모니터 부술 뻔했어요.. ㅎ.. 하지만 참고 잘 썼습니다 하핳..
암호닉 이번화에 다 정리해드릴게요 만약 여기에 없으시다! 하시는 분들은 이전 화 말고 꼭 이 글 댓글로 적어주셔야 다음화에 새롭게 추가됩니당
13화 초록글도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부족한 제게 댓글과 추천은 정말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매번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암호닉 꼭 확인하시고 말씀해주셔용
<암호닉>
1 / 고사미 / 설렘옹청 / 파요 / 사용불가 / 민주눅 / 예그리나 / 요정 / 댄싱쥬스 / 댕구리 / 월광 / 옹옹 / 말랑 / 1217
김떡순 / 초초 / 다민 / 10 / 짱짱맨뿡뿡 / 에인젤 / 백제쌀국수 / 라온하제 / 피크닉 / 에투 / 빵빰 / 햄아 / 디디미 / 짹짹 / 김수석
후또란 / 1116 / 곰탱이 / 스무날 / 째니재환 / 자몽 / 옹스더 / 옹옹 / 회장복숭아 / 지오 / 쑤쑤 / 기린 / 수달둥 / 햇살구름 / 푸린
호니 / 댕댕훈 / 뿜뿜이 / 녤뭉치 / 민향 / 등판39 / 영민이의토마토 / 윙깅이 / 호두찌 / 오서우 / 햇님 / 흰둥이 / 쁘띠믾연 / 래번클로
옹성우민현관린 / 블체 / 긴롱궈 / 리본 / 푸딩
투표는 끝이 나씁니당 총 254분(!)의 독자분들이 투표를 해주셨고, 후속작은 전생인연을 기억하는 민현이가 163표를(!) 기록하면서 1위가 되었습니다 짝짝
투표 정말 감사드립니다 ( _ _)
다음 화가 어쩌면 좋아해가 아닌 후속작 프롤로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핳.. 최대한 빠르게 좋아해를 전개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항상 성원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ㅠㅠ 사랑합니다!!
(너의 숨결 하나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ㅠㅠㅠㅠㅠ 나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