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경찰서, 그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깬건 루한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여기는 올때마다 적응이 안되네요."
루한이 조크를 하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그의 앞에 앉아있는 멀끔한 얼굴의 남자가 동감의 표시로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죠."
"그거 참 무서운 매력이네요."
루한이 마저 말을 이으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겼다. 앞서, 루한과 남자에게 자리를 안내해준 또 다른 남자가 루한이 이 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예의주시 하고 있다.
앞에 앉은 남자의 개인 경호원이였다.
그 시선이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던 루한이 그와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상당히 부드러운 인상의 그는 입가에 진 섬세한 미소
를 잃지 않았다.
"호칭은 제 마음대로 불러도 되죠? 김변호사님."
"편할대로 하세요."
"그럼 뭐. 그동안 잘 지내셨죠."
"덕분에요."
김준면. 익숙한 이름 세 글자가 적힌 명패가 루한의 시선에 들어왔다. 조금은 어색하게 웃으며 양쪽 팔을 넓은 소파 위로 들어올렸다. 곧 시선을 피하는 그 남자의 이름은 김준
면. 변호사에서 검사를 준비하고 있는 개인사업자였다.
그리고 루한의 옛 대학 동기. 명패까지 쓰여진 준면의 삶을 보고있자니 한때 창창했던 자신의 시절이 떠오른다. 그의 조용한 대답을 듣고 루한은 고개를 낮게 숙였다.
"그럼 다행이네요."
"네."
"혹시, 괜찮으면 또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퍼져나갔다. 웃고있었지만 웃는게 아닌것 같았다.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결론만 물을게요."
"예."
"제 동생은 어때요."
"........."
"..아, 괜찮아요. 부정해도 할 말 없어요."
"........."
"어떤가요. 그 아이는."
"....바라시는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 그럼 됐어요."
"........."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안 어울리게."
루한이 조금은 땀이 나는 손을 뻗어 커피잔을 들어 올리고 마셨다. 설탕을 안넣었는지 무척이나 쓰다.
"아닌걸 아니라고 해봤자 들킬것 같고..사실 요근래에 엄청 궁금했거든요. 번뜩번뜩 생각나고."
"........"
"김변호사님은 지금껏 어떻게 지냈는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는지. 끼니때마다 밥은 잘 먹는지..주어진 일에 치여서 피곤하진 않은지 뭐 그냥, 그런거요. 모든게 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난감하게."
"........"
"이런거 조금 능청인가요. 오지랖?"
"........"
"딱히 오지랖 부릴만한 권리는 저에게는 어디에도 없다는거 알아요. 김변호사님 부담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네. 루한씨가 걱정하는 일은, 아마 없을겁니다. 괜찮거든요."
준면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경호원이 사무실 문을 열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정적속을 타고 들어온 바깥 바람이 시리다. 그 정적을 깬건 준면이였다.
"잘 지냈고, 밥도 잘 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도 열심히 잘 하고 있고, 적응을 빨리 하는 편이더군요."
"..누가요."
"..저도 그렇고, 그 분도 그래요."
"........"
"걱정은 하지 마세요. 루한씨 부탁에 따라 오래전부터 이미 개인 보호자를 붙였으니 불의의 상황같은건 이제 더 반복되지 않을겁니다."
비밀의 화원 (副題 : 내 사랑, 나의 순수) 03
W. Shelter
준면이 아랫입술을 말아올리며 대답했다. 루한이 묻는건 본인의 안부보다, 다른 사람의 안부인것 같았다. 두 사람은 다른 말, 같은 뜻을 포함하여 대화를 주고 받았다. 준면의
괜찮다는 대답에 루한이 한숨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손이 떨려오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나는것 같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괜찮은척, 아닌척 했지만 사실은 더 듣
고 싶었다. 더. 더. 내 하나뿐인 동생의 근황을. 남의 입에서라도 그렇게 더 듣고 싶었다.
"그 애가 사람을 잘 따르죠. 워낙 성격이 순하고 착해서 사람을 엄청 잘 따를거에요. 어릴때도 늘 제 옆에만 붙어다녔어요. 쪼그만한게, 사람 귀찮게 하는걸 얼마나 잘 하는
지. 지금도 그렇죠?"
"........."
"생각해보니까. 그래놓고 제가 시키는 일은 잘 안했어요. 무조건 저한테만 시켰죠. 이거 해줘, 저거 해줘...저는 그냥 바보같이 다 했어요. 해달라는거, 사달라는거. 원하는거
다 해줬어요."
"........."
"돈도 없으면서 뭘 자꾸 해줬는지."
"........."
"물론 그 나이대 애들이 바라는건 다 거기서 거기니까."
루한이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해맑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기억나는건데."
"..네."
"그..우리 동생. 어릴때도 세상이 흉흉해서,아주 많이 힘들어했어요. 또래 친구들 때문에."
루한이 미간을 찡그리며 검지 손가락을 세워 미간을 두드렸다. 아, 이런 얘기까지는 안해도 되는데. 나 왜 자꾸 뭐가 자꾸만...터지냐.
"그런데 웃긴게, 그때는 저한테 아무것도 부탁을 안하더라구요."
"........"
"그렇게 놀림 당하고. 괴롭힘 당했으면서. 부탁하는건 맨날 형, 맛있는거 사줘. 얼마전에 레고 시리즈 나왔는데 그거 사줘. 바보같은게. 저 같으면 그런거 사달라고 안했죠. 형
혼내줘. 나 며칠전에 걔한테 놀림 받았는데 형이 가서 좀 혼내줘. 그게 그 나이대 애들은 떼 쓸수밖에 없는건데, 그런데 전혀 안하더라구요."
"........"
"부모님한테 말 한것도 아니야. 그 당시 겨우 열 살이였는데. 그런데, 근데도 제가 관심을 안 가졌어요."
"........"
"안가졌어요. 제가 그랬어요."
"..루한씨."
"그래서 그렇게 된거에요. 그 애가. 안타깝게도."
준면이 고개를 들어 루한을 바라보았다. 루한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아래로 내리깐 눈꼬리가 조금 젖어있었다.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 루한이 힘겹게 웃어보였다. 눈가가
빨개졌다. 루한이 곧 침묵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루한씨, 그만."
"..아, 진짜. 난 왜 그랬나 모르겠어. 어릴때 나도 똑같이 겪었으면서 왜 그 애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는지."
"루한씨."
"그거 다 사달라는 이유가 가져다주려고. 맞기 싫으니까. 갖다 주면 안 때리니까. 그래서 그런거였어요. 하하, 진짜. 미치겠네. 어이없죠."
루한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다 한숨과 동시에 터뜨렸다. 미소를 잃지 않던 준면 역시,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하는데."
"루한씨."
"잘 있다니까 나 이렇게 가만히 있는거에요. 거짓말이면, 가만 안둘거에요."
그가 다시 웃었다. 나도 내 감정을 주체 할 수가 없어. 그게 잘 안돼. 어떻게 해야돼.
"루한씨. 이런 일로 주제 넘게 미안하지만, 내가 딱 한 마디만 할게요."
"........"
"그 일에 대해 몰랐던건 루한씨 탓이 아니에요. 뻔하지만, 사실이에요. 그 분이 알리고 싶지 않아했던거겠죠. 피해의식의 일부입니다."
"........"
"과거일로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있다면 그만두는게 좋을거에요. 방금 말했듯이, 현재로써 그 분은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심리치료도 꼬박꼬박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
지 루한씨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영향을 끼쳐도 그런식으로 끼치지 않았다구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하세요."
"........"
"동생분에게 잔인했던건 루한씨가 아니니까."
내가 그만 하고 싶다고 그만 두면 진작에 그만 뒀다. 애초에 이 곳을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피해의식, 그것도 어쨌든 사건이 불러일으킨 성향이라는거잖아. 정말 미치겠다.
오늘은 정상적으로 좀 나갈수 있으려나 했는데. 나는 또 결국.
장난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는 이미 바람에 실려 날아간지 오래였다. 루한은 눈가를 손으로 꾹 누르며 거세게 뛰는 심장을 잠재우려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빠르게 마음 정리 하시는게 좋을거에요."
"......"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 이름을 불러요. 괜찮으니까."
"웃기시네..내가 뭐가 있다고."
"바보같은 미련은 처음부터 갖지 않는게 좋아-"
"........"
"이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합니까?"
".....누가 했는데.."
"김루한. 바로 당신이 한 말이에요."
준면이 일어나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만 가봐, 네 동생에게 미안하다면 하루라도 더 열심히 살아.
마지막 그의 말에 루한은 가슴속 응어리를 대신하여 눈물로 대답했다.
* * *
학교를 결석하고 난 다음날, 민석은 조금 멀쩡해진 몸으로 교복을 말끔히 챙겨입고 학교로 향했다. 그의 작은 오른쪽 손에는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잘 가져다 드려야 할텐데."
봉투를 쳐다보는 민석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학교에 도착하게 되자 민석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것까지 뺏어가진 않겠지, 가자마자 사물함에 넣어둬야겠다. 내가 잃어버리면 안되
는 소중한 물건이니까.
주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자 일순간 그를 향한 여러개의 눈들이 쏟아졌다. 민석은 앞통수, 뒷통수가 전부 따가운것 같았지만 주저없이 제 자리로 향해 걸어
갔다. 발에 걸려 넘어질지도 몰라 일부러 바닥을 보고 걸었다. 어제 하루 쉬었다고 짖궂은 따돌림을 하지 않을 반 아이들이 아니였으니까.
구석에 자리한 제 책상과 의자에 무사히 앉고서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봉투를 들어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는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민석이 은근슬쩍 뒤를 돌아보았지
만 다행히도 자신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옆 반인가? 전학생이 무슨 세 명인가 왔다며."
"어. 들었는데, 걔네 다 3반은 아니고 조금씩 다른반으로 다 나눠서 보냈나봐."
"아냐. 두 명은 같은 반이고 한 명은 다른 반이래."
"아 뭔 상관이야 우리 반 아니면 신경꺼."
민석이 가슴을 졸이며 다시 자리로 와 앉아 가방에서 책을 하나씩 꺼냈다. 반에서는 오늘 학교 이슈로 반짝이게 떠오르는 전학생 이야기가 한창이였다. 민석은 들어도 듣지 않
은걸로 해야 했고, 궁금해도 궁금해서는 안됐다. 그가 책을 꺼내고 노트를 펼쳐놓자, 반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난지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머리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그
럼 그렇지, 그냥 지나갈리가 없어.
"이야..우리 인형, 얼굴이 많이 상했네."
그들은 가끔 민석을 인형, 강아지라 불렀다. 자신들의 소유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대하고 있기 때문이였다.
"많이 아팠어?"
"........"
"대답해봐. 약 좀 사다줄게."
"........"
걱정하는 투로 뱉은 한 남학생의 말이였다. 민석은 긴 속눈썹을 두어번 깜빡이며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머리위로 큰 손이 올라왔다. 민석이 본능적으로 몸
을 한 번 떨자, 비웃는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뭐. 그 약도 다 네 돈으로 사게 되겠지만."
".........."
"아픈건 다 나았지? 그래서 오늘은 학교 출근?"
"...이제 괜찮아."
"그래. 다행이다."
"........"
"야, 우리 강아지 괜찮단다."
"그래?"
"다 모여."
민석의 주위로 남학생들이 모였고, 순간 예고도 없이 날아오는 발길질에 떨리는 두 손을 꼭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5반. 그 교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때, 그 시각 5반의 앞을 지나가는 두 명의 학생이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교실들을 둘러본다고 사이드쪽으로 걷던 한 명이 그 안의
내부까지 슬그머니 쳐다보며 지나가다 보이는 광경에 불현듯 놀라 걷던 발을 멈췄다.
"뭐해 안오고."
옆에 붙어서 걷던 다른 남학생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 교실 내부를 바라보았다.
"저거 뭐야."
"........"
"별, 씨발. 거지같은 짓거리를 다 하네."
교실 안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리를 떠나지도 않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팔을 잡고 매섭게 이끌
었다. 안됐지만 일단은 가자는듯이.
"가자."
"잠깐."
"지금은 안돼."
"........"
"정확히 말하면 너 엮이면 안된다고, 아직."
"알아."
"근데."
"아직은 아닌거지."
"근데. 뭐."
"...아니."
민석의 신음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갔다. 둘은 그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다가도,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처음으로 발견한 남학생의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
청소도 하지 않은 교실에서 여기저기 밟히며 땅바닥을 구르기란 몸집이 작은 민석이 감히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였다. 교복을 빤지 하루만에 또 다시 더러워졌다. 떨리는 다리
를 끌고 화장실까지 걸어가 세면대 앞에 섰다. 수업 종은 친지 오래였다.
"......아아.."
보이지 않는 곳만 맞았다. 그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 말라며 딱 한 번 저항을 했다가 누군가의 큰 손으로 그 작은 얼굴을 맞았다. 때문에 눈안
의 실핏줄이 터졌다. 그나마 눈에 띄는 상처는 그것 뿐이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지금 민석에게 중요한건 변명거리다.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야 걱정을 하지 않을까. 책을 보다가 졸아서 손에 눈을 찔렸다고 해야겠다. 그럼 그냥 넘어가주실거야. 이런 머리만
잘 돌아간다니까. 민석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그런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다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물때에 얼룩져 더러운 표면이 보였지만, 나만큼은 더럽지 않다. 그저 시
원하다. 그 안에 들어가고 싶을만큼 무척이나 시원하다. 힘없이 손을 떨궜다.
먼지위에 굴러 더러워진 마이를 벗고, 그 다음으로 조끼를 벗었다. 아직까지도 단정히 메여져있는 넥타이를 풀고, 안에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러냈다. 민석은 울지
않았다. 늘 있는 일이라 익숙하다. 오늘은 그닥 울고 싶지도 않았다.
셔츠를 벗고 몸 상태를 제 눈으로 확인했다. 늘 때린데만 때리니까 상처가 낫질 않는다. 오늘은 또 얼마나 약을 써야 되는거지. 이제는 그런것까지 계산하고 가늠할 정도가 되
었다. 이걸 웃어야 돼, 말아야 돼.
맞은 부위를 몇 번 따뜻한 물로 쓸어내리다 조금 연해지는 아픔에 맨 손으로 물기를 다시 닦아냈다. 대충 맨 살을 말린 뒤 셔츠 단추를 다시 잠궜다. 셔츠가 조금씩 젖는것 같
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벗었던 옷들을 다시 하나씩 끼워 입으며 마지막으로는 세수를 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그 형은, 눈치 못채겠지.
눈치 채면 안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루한의 생각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 오늘은 안만나야 돼. 안만날거야. 만나면 내가 도망가버릴거니까, 꼭. 만나지 말아야돼.
주문을 걸듯 속으로 그 말만 되풀이하던 민석이 휴지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을 나서려 했다.
"안녕."
"어, 엄마야..!"
그런데 그때, 누군가 화장실 입구의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서서 민석에게 뜬금없는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만난 처음보는 인물에 민석이 뒤로 놀라 넘어가려 하
자, 빠르게 민석의 등으로 손을 받쳐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민석이 놀라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려 하자 소리없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받친 손은 안정적이였지만, 얼굴은 그닥 따뜻해 보이지 않았다.
"놀랐지."
"........."
민석은 학교에 온 이후로 부쩍 말이 줄어들었다. 누구야,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어느새 떨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넌 누구야.
"놀라게 해서 미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민석의 예상 밖이였다. 너가 김민석이야? 유명하다고 해서 보러 왔지, 때려도 돼? 대충 이런식의 대화가 이어질줄 알았다. 그런데 뭐가, 왜 미안하다고
하는거지.
몇 년간 사람에게 당해온 민석이 누군가를 대하는 시선은 다른 사람의 행동과 백팔십도 달랐다.
"말을 잘 못해?"
"....어?"
"아, 아니네. 미안. 말 못하는줄 알고."
민석이 그제서야 경계를 풀고 그를 위 아래로 조심스레 훑었다. 초면에 미안하다는 말만 두번째다. 그가 이마를 긁적이며 살살 뒷걸음질을 치자 그 학생도 똑같이 민석을 따라
한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좌불안석이다. 민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하려는 이야기가 뭘까.
"나 이 학교 처음이야. 오늘 전학왔어."
"...아, 어.."
소문은 빠르다. 오늘 아침에 얼핏 들은것 같았다. 세 명의 전학생 이야기를. 민석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아, 그래. 하고 대답했다.
"너. 5반이지."
"..어떻게 알았어?"
"그래."
내 반은 어떻게 알아낸걸까. 얼굴에 써있나.
그가 말을 잘라먹고, 그 뒤로는 별 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그는 계속 민석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고, 민석은 가끔 눈을 들어올려 그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홱 시
선을 피했다. 그러다 손을 뻗어 민석의 얼굴께로 향했다. 민석이 차마 피하지도 못한채 그대로 서서 자신의 옷깃만 꼭 잡고 있다. 그의 손이 민석의 턱을 아프지 않게 잡고 자
신을 보게 했다. 그렇게 어렵게 오랫동안 마주친 눈은, 순식간에 다른 얼굴로 변해있었다. 알 수 없는 표정, 억지로 화를 눌러내는듯한 표정.
실핏줄이 터졌네.
"내 이름은 변백현이야. 기억해."
"..어..그럴게."
"그런데 너는 언제부터 계속 그렇게 살았냐."
"....어?"
"아니야?"
"아, 그게.."
"너 여기저기 많이 아파보여. 아니라고는 하지마."
"........"
"너, 아프면 병원을 가. 아니면 학교 선생님한테 말하고 양호실을 가던지."
"........"
"가서 누우면 수업 몇 시간은 빠질수 있잖아. 여긴 안그래?"
"........"
"대답 잘 안하네."
꼭, 누구처럼.
민석이 울것같은 표정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왜이래. 넌 누구길래, 나한테 왜 이래..
"말했어. 아프면 아프다고 아무나 잡고 말해. 내가 널 직접 찾아오게 하지 말고."
"........"
"대답."
"알겠어.."
"그래."
그리고 확 손을 놓고 매서운 눈빛으로 민석을 노려보며 그 자리에서 떠났다. 그리고 민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이럴수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 * *
힘겹게 학교를 마치고 민석은 가장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섰다. 학생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선택한것이였다. 조회가 늦었다고 민석을 때릴지도 모르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갑자기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였기에 민석은 늘 철두철미하게 마지막으로 나가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빠져나온 뒤, 이틀 전 자신이 들렀던 편의점 쪽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나갔다. 학교 사물함에서 종이봉투를 꺼내오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민석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짚기 시작했다.
형 집이 이 쪽 근처였던것 같은데..
민석이 손가락으로 길을 짚고 짚어 도착한 곳은, 루한의 집 앞이였다. 그는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고 민석은 길을 정확히 외워 찾아온것이다. 종이봉투 안에 담긴것은 루한의
옷이였다.
집 앞으로 도착한 민석이 긴장한 표정으로 오피스텔 입구로 들어갔다. 왠지, 있을것 같아. 으..싫은데. 있으면 안되는데. 민석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그 날, 도망치듯 나오듯 그 날을 기억한다.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더 선명해진다.
'상처 덧나니까 발라.'
그가 준 후시딘은, 늘 교복 마이 주머니에 챙기기로 다짐했다. 지금도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후시딘의 뚜껑 부분이 손가락에 잡혔다. 루한이 줬던 데일밴드 역시 그날 바로 붙
이고 잠에 든 민석이였다. 관자놀이에 난 상처는 루한의 말대로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니 빠르게 나아갔다. 엘레베이터에 붙은 거울을 본 민석이, 잔머리를 정돈했다.
땀때문에 머리가 말라 붙었다. 한 겨울임에도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머릿결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정도만 건들어서 민석은 여기까지 혼자 올 수 있었다.
그러다 또, 문득 자신의 이름은 변백현이라던 아이가 떠올랐다. 민석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 누구라도 잡고 말 하라고.'
그게, 처음보는 네가 나에게 쉽게 내뱉는 말 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민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민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내렸다.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루한의 집 문 앞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걷다, 드디어 다다르자 민석이 조용히 문 앞에 종
이가방을 내려놓았다.
"끝났네.."
이제 할 일도 끝났고. 다시는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헤어지는건, 이별이다. 이걸 마지막으로 가려니 문득 알 수 없는 서운함이 피어올랐다. 민석은 또 다시 시큰해지
려는 코를 틀어막고, 등을 돌리려했다.
"......."
막상, 그렇게 가려니 뭔가 허전하고 많이 아쉬워 다시 등을 돌리고 문에 귀를 대고 바짝 섰다.
"없나보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티비 소리도. 걸어다니는 소리도. 물 소리도.
"..정말 없다.."
민석이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정말로 없다. 이젠, 진짜. 진짜로.
..정말로 안녕이다.
루한의 집 앞에는 그가 놓고간 종이가방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안에 옷 위에 바르게 놓아둔, 작은 바나나우유 하나도.
* * *
조금 늦은 인사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맛있는 음식들 많이 드셨을지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도 많이 드시고 주무세요! (??)
루한이 동생이 처음 나왔는데 누군지 많이 궁금하시죠..
그리고 백현이와 함께 전학 온 전학생 2명도..
그리고 민석이를 폭력으로 대하는 그 나쁜 놈들도..
나쁜 놈들은 정말로 너무 나쁜 놈들이라 그냥 나쁜 새x들이라 인식 하시면 되구요, 딱히 엑소 멤버를 넣진 않았습니다
루한이와 준면이 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백현이와 민석의 관계들도 하나하나씩 풀어갈 예정이에요
정말 풀 얘기가 많네요 ㅠㅜ 그래도 끝까지 한 번 써보는걸로..
민석아..............사랑한ㄷㅏ..
루한아....힘들지마...흑
암호닉 : 이든 / 치즈스틱 / 연 / 두부 / 텐더 / 히융융 / 초코푸딩 / 홍홍아직도랩을한다 / 올빼미 / 망고주스 /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