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소리가 들려와서 정신을 차렸어.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느껴지는데 눈은 안 떠지는 거야
그래서 뭐지 하고 있으니까 가족들 말소리가 들려. 병실인가봐
수술은 잘 끝났는데 범인이 안 잡혀서 어떡해
하필 거기서 사고가 나가지고 CCTV도 없고
뺑소니가 무슨 말이야
침울한 분위기 속에 눈물을 삼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
친척들도 다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고
중간중간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야한다는 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렸어
너빚쟁은 이런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다시 정신이 혼미해져
한참 후에 다시 눈을 떴는데 너빚쟁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물 안에 있었어
자세히 보니까 병원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하얀 배경인데 어두워서 회색 느낌을 주는 곳이야
가운데에 빛이 나는 기둥이 있었어. 아주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어서 너빚쟁은 너도 모르게
그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그 앞에 도착하니까 누가 옆에서 웃으면서 보고 있는게 느껴져
고개를 돌려서 확인해봤는데 홍빈이가 좋아하는 햇님이야. 똑같이 생겼어
그래서 너빚쟁은 지금 자기가 무슨 상황인줄도 모르고 햇님 아니세여? 햇님? 하니까
햇님을 닮은 그 남자가 너빚쟁 앞에 있는게 지옥행 급행열차인데 이거 타고 싶냐고 웃었어.
순간 섬뜩한 너빚쟁은 정색하면서 그 남자에게서 떨어졌어.
햇님을 닮은 그 남자가 입을 열었어. 자기는 저승사자래.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란 너빚쟁은 그럼 이제 자기 죽는거냐고 되물었어.
햇님 닮은 저승사자는 손가락을 펴서 입술로 갖다대 쉿하는 모양새를 만들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가
너빚쟁은 원래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닌데 불의의 사고가 나서 죽을 뻔하게 되었어.
하늘에서는 죽을 운명이 아닌데 타의에 의해 죽을뻔한 위기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내준다고 해.
그 사람이 원래 일상대로 살아가면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운명이 있는데
그게 사고가 나면서 그 사람이 활동하지 못하니까 흐름이 다 깨진거야.
그래서 그 흐름들을 다시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위안의 선물 겸 시간 벌이 겸 소원을 들어주는 거지
그 이야기를 들은 너빚쟁은 고개를 끄덕여. 그 모습을 본 햇승사자가 그럼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고 너빚쟁에게 물었어
빚쟁이는 방금 전에 자기를 친 범인을 못 찾아서 슬퍼하던 가족들이 생각이 나
그래서 그 뺑소니 범인을 찾아달라고 말해
햇승사자는 의외라면서 그 소원에 책임질 수 있겠냐고 물었어.
보통은 돈을 달라, 오래 살게 해달라, 예뻐지게 해달라 이런걸 소원으로 요구하는데
범인을 찾아달라고 한 사람은 처음이래
햇승사자의 책임질 수 있냐는 질문에
너 빚쟁은 지금은 당연히 범인을 찾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대답했어
햇승사자는 뻉소니범이 잡히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의 운명일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알려줄 수는 없고 힌트 정도만 줄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너빚쟁이 그게 무슨 소원이냐고 찡찡대니까 햇승사자는 싫으냐? 하면서 웃었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너빚쟁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 모습을 본 햇승사자가 기특하다는 듯이 너빚쟁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대신에 자기가 자기 권한으로 선물도 줄테니까 가서 즐기다 오라고 하면서 사라졌어
어두웠던 공간에서 배경이 바뀌고 정신을 차리니 압구정 로데오거리 한복판이야
건너편에 갤러리아 백화점도 보이고 아파트도 보이고
파란버스랑 초록버스가 섞여서 막힌 도로도 보이고 앞에 유니클로도 보이고
많은 가게들이 보였어. 그래서 처음에 너빚쟁은 이게 뭐지 하면서 당황을 하는데
금방 또 구경하려고 가게들로 들어가
그런데 이상한게 가게에 들어가도 직원들이 인사를 안하는거야.
그래서 너빚쟁은 나를 무시하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옷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옆에 거울을 보니까 자기가 안보이는 거야. 너무 놀란 너빚쟁은
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섰는데 옷이 걸려있던 스탠드가
너빚쟁에게 부딪혀서 쓰러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다 너빚쟁 쪽을 쳐다봐
그리고 한층 더 놀란 표정으로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고 다들 가게 밖으로 도망치는거야
너빚쟁도 순간 무서워져서 얼어붙어 있는데 텅 빈 가게 안에 햇승사자가 다시 나타나
신기하지?
방금 잠깐 본 사이인데도 이럴 때 오니까 저승사자래도 괜히 든든한거야
그래서 지금 뭐가 어떻게 된거냐고 햇승사자한테 물었어
지금 너빚쟁은 투명망토를 쓴 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 너빚쟁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통과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목소리도 들리고 잡히기도 해서
주의만 잘하면 범인 찾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햇승사자가 대답했어.
그러더니 자기는 일이 바빠서 이따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사라졌어.
처음에 너빚쟁은 벙쪘지만 해리포터같은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던 능력을
갖게 되니까 그 다음으로는 신났어. 어차피 자기가 사고 난 건 늦은 시간이니까
조금만 더 구경하다가 가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압구정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
그렇게 구경하고 걷다가 걷다가 힘들어서 어느 큰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어.
점점 어둑어둑해지니까 이제 가야겠다 생각하고 공원을 나와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는데 뭔가 낯이 익었어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빅스가 데뷔 전에 찍었던 마이돌 영상에서 봤던
연습실 건물인거야. 어차피 애들은 지금 이사갔지만 그래도 괜히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기웃기웃거리다가 너빚쟁은 너가 다른 사람들에게 안보인다는 걸 깨닫고 건물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가봐. 멀리서 보면 바람 때문에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 처럼 보여
아무도 없어야 할 연습실인데 점점 연습실로 다가갈수록 음악 소리가 크게 나기 시작하는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나 생각하면서 문 앞까지 가니까 노래가 정확하게 들려
'나한테 왜 이러는데 난 너한테 왜 이러는데'
익숙한 가사를 따라하면서 너빚쟁은 조심스럽게 연습실 문을 열려
그 안에선 회색머리를 한 학연이와 빨간 머리를 한 택운이를 비롯한
모든 빅스 애들이 춤을 추고 있어
다칠 준비가 돼 있어를
[암호닉]
코쟈니님
문과생님
치즈볶이님
하얀콩님
레오눈두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