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01
W.대롱
" 집 마음에 들죠?"
" 물론 … 물론이죠.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요."
내 말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부동산 아저씨를 바라보며 나도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내 나이 26에 내 집 장만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괜찮은 곳으로. 저번에 이 집으로 결정했을 때 이미 도배도 끝내고 가구까지 대부분 옮겨 놓았더니 진짜 내 집이라는 게 실감이 확 나는 것만 같다. 황홀한 마음에 집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예쁘다, 예뻐.
" 집이 예쁘네요. 오늘부터 이 집에 사시는 거에요?"
" 네 …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근데 누구세요? "
" 아, 그냥 지나가던 옆집 사람이에요."
" …아, 예."
" 혹시 막 들어와서 기분 나쁘셨어요? 아니, 저는 그냥 옆 집에 누가 이사 온다 얘기만 들었는데 오늘 열려 있길래."
" 괜찮아요, 좀 놀라긴 했지만."
" 죄송해요. 밖에서 뒷모습 보이길래 인사 드리려다가 저도 모르게 놀라게 해버렸네요."
"아, 네, 괜찮아요."
" 이제 옆집 주민일텐데 통성명 하죠, 통성명. 저는 김태형이라고 해요! 그 쪽은요?"
"… 저는 성이름이요."
" 이름 예쁘네! 나이는요? 나보다 나이가 있으시려나?"
순간 당연히 부동산 아저씨인줄 알고 대답했는데, 옆을 보자 순간 아저씨가 30년은 젊어지신 줄 알았다. 왠 잘생긴 남자가 서있어서. 갑자기 내 인생 판타지 장르 되는 줄 알았네. 내 옆집에 산다는 남자는 원래 이렇게 친화력이 뛰어난 지 내가 화가 안났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계속 말을 건다. 뭔가 계속 옆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얘기하는게 왠지 사람을 보고 신난 ….
" …개 같다."
" 네?"
" 아뇨, 그 쪽 말고 … 아니 그 쪽 얘기긴 한데, 그러니까."
" … …."
개 같다는 내 말에 상처 받은, 이렇게 말하면 또 이상한데 꼬리를 축 내린 개 … 아니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는 태형 씨를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뜻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사람이 당황을 하니 입이 왜 이렇게 안떨어지는지. 저 쪽도 상당히 당황했는지 표정에서부터 '나 놀랐고 상처받았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 귀, 귀여워서 한 말이에요."
" … …."
" 속으로 귀여운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와버렸어요! 죄송해요! "
" … 헛, 괜찮아요! 저 귀여움 받는거 좋아해요! "
" …네? "
성인 남자한테 귀엽다는 말은 좀 그러려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귀여움 받는 걸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네? 라고 다시 반문하자 그는 '아니에요! 가볼게요!' 라며 볼이 빨개져서는 옆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역시 신은 공평한가보다. 잘생긴 외모와 함께 이상한 성격을 주셨나봐. 문이 닫힌 옆집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하고 있자하니 부동산 아저씨가 뒤에서 쏙 나오신다.
" 아가씨, 뭐 이제 이것저것 다 확인했고 더 궁금한 거 없죠? "
" 네,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으응, 옆집 총각이랑 얘기하는 것 같아서 잠시 담배피고 왔는데 벌써 들어갔나봐."
" 아, 네, 뭐. 아시는 분이세요?"
" 아는 건 아닌데, 저 집에 사는 사람도 많고 동물도 많이 키우나봐요. 예전에 살던 사람이 그러더라고."
" 사람이 많이 살아요?"
" 몰라, 남자 한 여섯인가 일곱이 산다는데. 개랑 고양이 같은 동물도 키우는 것 같고."
" … …."
" 아이고, 먼저 가볼게요. 다른 손님 올 시간 됐네."
그럼 잘 살아요! 이러면서 쿨하게 자리를 뜨는 아저씨를 보며 내면의 눈물을 마구 쏟았던 것 같다. 아저씨, 이사 과정 내내 그런 얘기 없었잖아요. 조용한 집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왜 말실수 했다는 표정으로 가는건데요! 그렇게 한참을 사라진 아저씨의 빈 자리를 보며 멍하니 서있던 것 같다. 그래도 뭐, 옆집에서 민폐만 부리지 않는다면 상관 없겠지. 그렇게 걱정을 떨쳐버리고선 한동안 이사 준비로 피곤했던 몸을 침대에 뉘이며 옆집을 향해 혼자 조용히 속삭였다.
" 잘 지내봅시다."
애완동물 일 곱 마리와 나
잘 지내보자고 한지 하루도 안 지났다, 이 자식들아. 문 앞에서 들려오는 쾅쾅 소리에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바라보니 새벽 3시 반이다. 아니,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조용히나 들어갈 것이지, 왜 문을 두들기고 난리야. 그리고 안에 있는 사람은 빨리 좀 열어주던가. 시끄러워서 베개로 머리를 감싸보았지만 계속 이어지는 문 두들기는 소리에 조용히 하라고 말하려고 방에서 나와 보니 … 우리 집 문을 두들기는 거였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 누구세요?"
" …문 열ㅇ…."
" 누구시냐구요."
" 문 열어어…."
"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를거에요."
" 집에 들어가야 ㅎ…."
겁을 먹은 채로 문의 걸고리는 걸어놓고 살짝 열어서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술에 취한 듯 내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문을 열라는 말만 반복하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경찰을 부른대도 막무가내로 문 열라고만 하니 이러다가 시끄럽다고 주민 신고 들어오게 생겼네. 짜증이 잔뜩 나서 술에 취한 듯한 그 남자를 째려보면서 보라는 듯이 112를 눌러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있는데 … 갑자기 옆으로 픽 하고는 쓰러져버린다.
" …어어? 저기요."
" … …."
" 문 닫을거에요. 수작질 하는 거 다 아니까 가세요."
분명히 저렇게 쓰러진 척 하다가 내가 문 열면 들어오려는 걸거야. 경찰에 신고를 해놓던지 해야지. 문을 쾅 닫아버리고는 지금 신고해야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은 이미 다 달아나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시 잠을 청해보려고 눈을 감는데 … 왜 이렇게 불안한건지. 혹시 내일 아침에 우리 집 앞에서 얼어죽은 채 발견, 이렇게 기사가 뜨는 거 아닐까? 그럼 내가 죽인게 되는건가? 갑자기 머릿 속을 헤집어놓는 온갖 불안한 생각에 문을 조심히 다시 열어보니 그 남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 경찰에 신고해야겠네. 저기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
아무래도 경찰을 불러야할 듯 싶다. 온 몸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 보니 취객인 것 같아서 112에 전화해서 부탁을 드리고는 남자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사 첫 날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옆집은 또 일곱 명이나 산다면서 어떻게 이 소란이 나는데 한 명도 안나와보냐. 다들 너무하다.
" … 추워 …."
괜히 옆집 남자들을 원망하면서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데 남자가 몸을 조금씩 떨면서 춥단다. 하긴 이 엄동설한에 무슨 정장만 입고 돌아다녀. 그렇게 한 1분 쯤 있었을까. 머릿 속에 이 남자를 잠시 집으로 데려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발 오지랖 좀 부리지말자, 이름아. 라는 생각과 그래도 진짜 동상 걸릴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싸우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했을까, 결국.
" 읏차. 생각보다 무겁네, 이 사람."
오지랖의 승리였다. 경찰 분들 오실 때까지만 잠시 몸 좀 녹이게 하는게 맞는 것 같다. 그 남자를 억지로 끌고 들어와 바닥에 눕히자 그제서야 따뜻한지 계속 웅크리고 있던 몸을 서서히 푼다. 이불을 좀 덮어주려고 하는데 남자가 손에 꽉 쥔 끈이 하나 보였다. 산책 줄처럼 생겼는데 이게 뭐람.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겨 그 남자가 잡고 있던 끈을 손에서 꺼내어 들자 … …뭔가 빛이 팟- 하면서 끈이 사라져버렸다. 새로운 마술 도구인가? 그 상황에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누워있던 남자의 어깨 쯤을 건드려버렸는데 … 정말 말도 안되지만, 정말 정말 진짜 말도 안되는데.
" …고, 고양이."
남자가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아주 귀여운 고양이가.
♡
안녕하세요! 빵긋빵긋..
잘부탁드립니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