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시각 14:00>
용준형이 알려준 대로 제시간에 찾아왔지만 그 많던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발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소름이 끼쳤다.
무작정 발길 닫는대로 걸어가니 투명한 방 안에 사람이 있었다.
"여기 맞죠..?"
"... 어서와."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용준형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넘긴 남자는 나를 쳐다보더니 흰자가 튀어나올 만큼 눈을 크게 떳다.
"자. 여기는 이번 게임에서의 대장. 그리고 여기는 요섭. 함께 움직일거고,"
요섭이란 남자는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안 내켜. 포지션이 뭐야?"
...포지션?
"우리 막내는 저격수를 맡게 될 거야. 그렇게 훈련시킬 거니까."
"훈련... 시킨다고? 지금 뭐하자는 거야. 용준형."
서로가 뜨거운 눈 빛을 주고 받는데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기광이야. 해커로 들어갈거야. 머리색 예쁘네. 그런데 염색부터 해야겠다."
기광의 말에 반 쯤 남은 파란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염색... 돈 없는데..
"왜 파란색으로 염색했어?"
"아... 몰라. 그냥 파란색이더라. 사실 기억이 없거든. 왜 파란색인지 왜 염색했는지 몰라.."
어정쩡하게 웃자 옆에 있던 요섭이 준형의 멱살을 잡았다.
"기억이 없어!!!! 용준형 너 이새끼 뭐 하자는 거야."
"그냥 둬. 표현이 좀 풍부한 애거든."
기광이 옆에 앉아 흐믓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뒤로 보이는 대장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대장은 고개를 돌려 더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요섭과 다투던 준형은 모두에게 게임 참여 신청서를 받은 후 가버렸다.
훈련은 사격 위주였다. 긴 저격총은 의외로 배우기 쉬웠다.
손에 감기는 느낌조차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익숙해졌다.
근접전에서 약한 나에게 저격수는 최적의 포지션이었다.
대부분의 훈련을 저격에만 집중했다.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것도 맞출 만큼.
오늘도 다른 날처럼 사격장에 들어서는데 뒤에서 준형이 나를 불렀다.
"사격은 그만해도 될 것 같아. 근접전이 아직 불안하니까."
나를 가르쳐 줄 사람은 다름 아닌 윤두준이었다.
나무로 된 작은 단도를 손에 쥐어준 두준은 자신에게 덤벼보라며 손짓했다.
단도를 손에 꽉 쥐고 두준에게 팔을 내질렀다.
하는 공격 모두 다 막아내는 두준에 짜증이 일었다.
덤벼드는 순간 발목이 꺽이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던져버렸다.
바닥에 두 손을 짚으며 넘어졌다. 꺽인 발목보아 바닥에 넘어지면서 쓸린 손바닥이 더 아파왔다.
손바닥과 무릎을 털며 일어났는데 두준은 또 흰 자를 드러낸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아무리 봐도... 웃겨.'
두준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두준의 얼굴 옆쪽에 생채기가 생겼다.
"대장 얼굴..."
"단검.. 잘 던지네. 놀슬지 않았어... 가서 소독부터 하자. 피난다."
먼저 대련실을 나가는 두준의 뒤를 따라가 의무실로 들어갔다.
뻐근한 발목에 파스를 뿌리고 손바닥을 소독한 뒤 거즈를 붙였다.
"옛날엔 네가 나한테 해줬던 건데..."
두준의 읊조림에 두준을 쳐다보았지만 두준은 내 손만 만지작거렸다.
<게임시작 전>
커다란 대기실에서 뱃지를 받은 후 게임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커다란 헬기에 올라탔다.
모두 눈을 가린 채로 이동되었다.
"....'
"아..짜증.... 또 안대나 씌우고 진짜.."
옆에서 요섭이 투털거렸다.
프로펠러의 날개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더니 쿵하고 헬기가 착륙했다.
진행요원들의 안내에 커다란 컨테이너같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컨테이너들이 쌓여있었다. 마구잡이로.
배정받은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니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다른 곳의 컨테이너도 문이 닫히는지 여기저기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 안에는 리볼버 한 자루와 무전기, 이어폰 그리고 작은 메모리칩 하나가 놓여있었다.
"리볼버는 막내가 가지고 있는게 좋겠어."
두준은 총을 내게 건네며 요섭을 쳐다보았다.
"난 상관없어. 마음대로 해."
첫 만남 이후로 처음 본 요섭은 의외로 무표정만 지었다.
눈앞에 있는 진짜 총을 보니 실감이 났다. 내 목숨을 내건 게임이라는 사실이.
"야. 정신차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정신 놓고잇지 말랬더니. 아주 대 놓고 긴장을 푸는구나. 네가"
고개를 들어보니 요섭이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요섭을 쳐다보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 머리칼을 헝크려트렸다.
"무기부터 챙겨. 곧 시작이야."
창밖을 통해 컨테이너 박스 수십개가 모여있는 넓은 차고를 보며 챙긴 무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총, 탄창, 품안에 있는 나이프, 허리춤의 무전기까지.
휘슬이 울리며 천장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참가자 여러분께 알립니다. 지금부터 제 2회 'That's just death'의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전에 공지한 규칙들을 모두 숙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규칙위반시 그 즉시 탈락입니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우리가 갇혀있던 컨테이너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본 광경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른 컨테이너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대장... 이번에 몇 팀이 참가했다고 했지?:
"47팀. 얼른 쫓아와. 저번처럼 사고치지 말고."
'That's just death'
주어진 힌트로 목표물을 찾아내서 죽여라.
그 목표물은 누가 될지 모른다.
먼저 제거한 팀이 우승.
죽고싶지 않다면 먼저 힌트를 찾아내어 죽여라.
목표물이든 사냥꾼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