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풍겨오던 담배 향. 처진 눈꼬리. 적당히 까무잡잡한 피부. 저보다 큰 키. 거기에 차려입은 수트까지. 방금 전 희끄무레하게 보았던 사내의 잔상을 떠올리며 홍빈은 제 얼굴을 쓸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 제가 제 성적 취향을 깨닫고나서 처음으로 만난 이상형이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남녀를 만나면서도 단 한 번도 찾지 못했던 이상형을 이렇게 찾아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놓치다니. 홍빈은 처음으로 제 짧은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그 날, 홍빈은 흰우유를 사서 먹었다. 그것도 무려 세 곽이나.
* * *
끌끌, 혀를 차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홍빈의 귓가에 울렸다. 그러니까 넌 그 짧은 다리부터 어떻게 해야된다니까. 웃음 섞인 학연의 핀잔에 머리라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지만은, 유달리 틀린 말이 아니어서 홍빈은 별 수 없이 고개를 푹 책상에 파묻고서 '아아….'하고 앓는 소리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름조차도 모른다. 미치겠네 진짜. 홍빈의 힘 빠진 어깨가 힘없이 추욱 늘어졌다.
"힘내라 병신아."
"고맙다 개새끼야."
"니 그 다리만 좀 길었어도 따라잡는건데."
"안닥치냐?"
아 예. 비꼬듯 고개를 끄덕인 학연이 고개를 수그린 홍빈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때리며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학연에게 쓸데없이 이야기를 해주는게 아니었다. 공연히 힘만 도로 더 빠져버렸다. 완벽하게 제 이상형에 들어맞던 그 얼굴을 떠올리며 홍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딱 한 번만. 애석하게도, 그저 길거리에서 지나쳤던 사람을 이 넓은 도시 한복판에서 다시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밤에 다시 한 번 그 편의점을 찾아가볼까. 홍빈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해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럴텐데. 어디선가 '아. 미안.' 하고 인사를 건네던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원식은 철저히 혼자였다. 다른 부서에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 부서에 저와 같이 밥을 먹어줄 좋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원식은 그저 지갑을 챙겨들며 오늘 뭐먹지- 하고 점심메뉴를 생각할 뿐이었다. 짜장면이라도 먹을까. 그런 생각이 마악 들려는 찰나, 문득 어제도, 그저께도 짜장면을 먹었다는게 생각이 났다. 짜장면이라면 이제 질릴 때도 됐지. 한숨을 내쉬며 원식은 다른 메뉴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다지 생각나는건 없었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짜장면이나 먹는 처지다. 그래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사먹는 것보다야 낫지. 애써 자신을 달래며 원식은 익숙하게 중국집의 문을 열었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자리한 이 가게는 세워진 시기는 원식의 회사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으나, 곧 얼마 후에 회사와 더 가까운 곳에 새로 생긴 큰 반점에 의해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큰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저 근처 가게 상인들만이 종종 찾아오는, 아주 소박한 가게로 전략해버렸다. 물론 그 덕분에 이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원식이리라. 시끄럽지않고, 회사 직원들과 마주쳐서 굳이 불편하게 눈치볼 필요도 없는 이 가게를 원식은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유일하게 마음 편히 끼니를 떼울 수 있는 곳이었다. 익숙하게 짜장면 하나를 주문하고서 원식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알람 하나 없는 말끔한 화면에 어쩐지 조금 씁쓸해졌으나, 회사일에 찌들고 집안일에 찌든 친구놈들이 어찌 연락을 하겠냐-하고 생각을 고치며 핸드폰을 다시금 내려놓았다. 유리문으로 들어온 겨울의 햇살이 원식의 구두코를 간질간질, 제 특유의 따스한 손길로 간질였다.
"…어?"
마악 제 앞으로 나온 짜장면을 먹으려 젓가락을 드는 찰나, 원식의 머리 끝으로 짧은 탄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저를 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원식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다. 혹시나 회사 직원들이면 어찌됐든 인사는 해야하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회사직원이 아니라, 밝은 갈색 머리의 고등학생이었다. 저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있는 고등학생을 바라보며 원식은 속으로 혀를 끌끌, 두어번 찼다. 요즘 고딩들 무섭다더니 진짜네. 염색하고. 이렇게 학교 무단이탈해서 짜장면이나 먹으러 오고. 아주 발랑 까졌어. 우리땐 저런거 상상도 못했는데. 학창시절, 나름 반항의 표시라며 구레나룻을 밀지않았다가 죽도록 얻어맞았던 제 어두운 기억을 생각하며 원식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아팠지. 며칠동안 엉덩이 아파서 눕지도 못했었는데. 짜장면을 먹는 원식의 손길이 무의식적으로 점점 느려져갔다.
그때, 원식의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저기요. 누구라고 굳이 칭하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그 '저기요'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 원식이 고개를 들어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을 바라보았다. 큰 눈. 하얀 피부. 밝은 갈색의 머리. 낯이, 익었다. 원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서 봤지. 요즘 고등학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는데. 희미하게 어딘가의 잔상이 떠오르는가 싶었으나,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던 기억이 원식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누구였더라. 누구였지.
"저, 저, 기억 안나요?"
"…누군데?"
어제 편의점이요. 편의점? …아. 원식은 어젯밤에 들렀던 편의점을 상기시켰다. 그래 맞아. 그때 상당히 잘생긴 고등학생을 본 것도 같았다. 바로 제 눈 앞에 있는 저런 생김새의. '아, 어. 생각났다.' 하고 대답한 원식이 별다른 반응없이 학생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까보다 한층 밝아진 학생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저, 어제부터 진짜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데요."
"응."
"저, 번호 좀 주시면 안돼요?"
원식은 제 코앞으로 다가온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큰 눈이 집요하게 저를 쫓고있었다. 내 번호는 가져가서 어디다 쓰게? 하고 물으려는 찰나,
"나 아저씨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번호 좀 알려줘요."
하는, 당돌한 목소리가 원식의 귓가로 들려왔다.
* * *
얄루! 딸랑이에요!
오늘 오랜만에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어서 하숙집이랑 초코우유랑 둘 다 가져올랬는데,
치즈스틱 먹고 티비 조금 보고 독방 조금 하고 했더니 벌써 시간이..10시가...8ㅅ8....(암전)
아무쪼록 독자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리며, 이만 딸랑이는 물러나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독자님들 엔뇽!
P.S.나 이제부터 독자님들 댓글에 하나하나 답글 달려고 생각중인데..어때요? 독자님들 쪼아? 쪼아요?(윙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