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거 왜 안 붙어! 옆으로! 옆으로 가라니까!
사람이 별로 없는 대낮의 버스 안. 맨 뒷자리 구석에서 게임에 열중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정작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고요한 버스 안의 정적이 깨졌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탕을 옮기는 그 남자는 자신이 내려야 할 정류소의 이름이 들리자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난다. 천장이 낮아서인지, 의자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그 남자의 키가 컸기 때문이지 그 남자는 일어나면서 버스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아! 이건 또 뭐야
그 남자는 내리는 그 순간까지 한 순간도 입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딱히 옆에서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였는데도 그 남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의 일상을 하나하나 담고 있는 드라마라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 딱 그런 느낌. 그런 남자를 반대쪽 자리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재환은 그 남자가 내리자마자 본인도 벌떡 일어나 아저씨 저도 내려요!하면서 얼른 카드를 찍고 따라 내렸다.
탁 트인 대로 옆에 가로수가 울창하게 서있는 인도를 그늘만 골라가면서 아까 버스 안의 그 남자는 걸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손 안에는 게임 화면이 켜진 휴대전화가 있었다. 화면이 햇빛에 비치면 잘 보이지 않는지 손바닥으로 작은 화면을 가려가면서 입으로는 사탕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그 남자는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버스에서 따라 내린 재환은 혹시나 그 남자가 앞을 안 보고 걸어가다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재환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음악이 끊긴지는 조금 오래됐다.
얼마나 더 갔을까. 그 남자는 가게 밖으로 따스한 햇빛을 받고 있는 갈색빛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 그림 좋다. 탁 트인 풍경에 잠시 감탄을 하던 재환도 곧이어 망설이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남자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카운터로 향했다. 커피를 내리고 있던 남자의 뒤에 매달려 그동안 일 잘하고 있었냐며 다정하게 물었다. 커피를 내리던 남자는 컵을 잠시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짧게 응.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남자의 이어지는 말들을 무시한 채 다시 본인의 일에 집중했다. 그 남자는 일에 집중한 남자의 팔을 붙잡거나 목에 팔을 감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안 보고 싶었어? 나는 나는?
오모오모 이건 뭐야? 나 마셔도 돼?
손님은 많았어? 안 힘들었어? 힘들면 내가 도와줄까?
결국 그 남자가 카운터에 나란히 세워져 있던 호출기를 쏟고 난 다음에야 커피를 내리던 남자는 등을 돌려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냉정한 목소리로 그 남자에게 어디 앉아있으라고 말한 다음에 너무나 익숙한 일인듯 쏟아진 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도와주겠다며 몸을 숙였지만 너는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라는 쓴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그 모든 과정을 카운터 근처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지켜보고 있던 재환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왜? 자기가 뭔데 저렇게 막 대해? 남자친구라도 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환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자친구가 있던 자신이 고작 버스에서 게임하는 모습 하나 보고 홀랑 반해서 모르는 카페까지 온 것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이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질투하고 있다니. 복장이 터지는 속을 가라앉히며 그 남자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던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눈이 마주치고 있었던 걸까. 그 남자는 풀이 죽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재미있는 일이 생각난 듯 생긋 웃으며 재환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마침내 테이블에 도착한 그 남자는 재환의 의자 반대편에 앉아 테이블에 팔을 얹어 턱을 괴고 재환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