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의 리드보컬 변백현 X 사생팬 도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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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자연으로 오세요
소문은 그 내용의 질을 따지지 않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거 들었어?"
기준은 딱 두가지이다. 흥미거리가 될 것인가, 혹은
"백현이 아이폰 도둑맞았대."
파장이 클 것인가.
경수는 제 팔뚝보다 두꺼운 대포 카메라를 들고 미친듯이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경쾌하게 울리는 셔터소리에 렌즈에 담기는 피사체들은 포즈를 바꿔갔다. 능숙하게 초점을 맞춘 경수가 다시 한번 셔터세례를 퍼부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과 셔터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철저하게 귀를 닫고 오직 백현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었다. 기계처럼 사진을 찍어대던 경수의 귀에 쑥덕대는 목소리가 날아와 박혔다.
"어제 숙소 앞에서 잃어버렸대. 사생들이 뺏어갔나봐."
"이젠 핸드폰까지 뺏어가는구나. 하여튼."
무서운 것들. 혀를 끌끌 차는 목소리에 경멸이 잔뜩 묻어나왔다. 카메라의 무게에 팔근육이 후들거렸다.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선 다시 백현에게 초점을 맞춘 경수가 셔텨를 꾹 눌렀다.
찰칵.
숙소 근처를 서성이는 팬들은 흔히 '사생'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경수는 3년 째 숙소 앞을 지켜왔다. 경수는 3년간 이름대신 수많은 닉네임으로 불려왔다. 부자홈마 혹은 남자사생. 그가 운영하는 팬페이지 '백설기'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연예부 기자도 혀를 내두르는 고액의 대포를 목에 걸고서 해외 스케줄, 공항, 음악방송 엑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장 먼저 달려가는 그는 악명높은 홈마 사이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시작한 팬질이었다.
"이거 얼마에요?"
뒤늦게 연예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며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는 넘쳐나는 재력을 기꺼이 아들의 취미생활에 투자했고, 공부만 했던 학창시절의 보상은 서울 유수의 대학 입학이었다. 비록 출석 일수는 아슬아슬했지만, 학점을 포기하진 않았다.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끈이었다. 쉽게 놓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모든 지원은 학점이 떨어짐과 동시에 끊길 것을 알고 있었다. 필사적이었다. 두 마리 토끼는 경수의 손에서 아슬아슬하게 붙들려 있었다.
"일시불로 해드릴까요?"
거침없이 카드를 긁어내린 직원이 싱긋 웃으며 딱딱한 케이스를 경수에게 건넸다. 까딱 목례를 하고서 핸드폰 가게를 나온 경수의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번졌다. 백현이가 좋아하겠지. 목에 걸린 카메라가 가볍게만 느껴졌다. 오늘따라 숙소가 붐볐다. 조금있으면 컴백한다는 소식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눈에 익은 얼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친한 홈마들에게 눈인사를 하던 경수가 숙소 앞 계단에 서서 설레는 표정으로 문을 쳐다보았다. 곧 아이들이 나올 시간이다. 라디오 스케줄이 있다고 했지. 시계를 확인하는 손이 초조함으로 작게 떨려왔다. 손에 들린 아이폰이 가로등 빛을 받아 예쁘게 반짝였다. 지이잉-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흩어져있던 인파가 순식간에 개떼마냥 달겨들었다.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꼿꼿이 서 있던 경수가 백현이 나오자, 까치발을 들고 손을 붕붕 흔들었다.
"백현아!"
백현은 약간 지쳐보이는 얼굴을 모자로 가린채 빠른 걸음을 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경수가 아이폰을 높게 들고 소리쳤다. 아이폰!! 백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딱 멈췄다. 높은 비명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아이폰? 백현이 핸드폰 말하는건가? 쟤가 가져간거래? 술렁이는 인파를 헤치고 경수가 백현의 앞에 조심스레 섰다. 여전히 네 앞에 서는 것은 떨린다.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핸드폰만 내밀었다. 기뻐할 백현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며.
"……하."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고개를 슬쩍 들어올려 눈에 담은 백현은 기가 찬 웃음을 흘려대며 경수를 아찔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휘어잡힌 경수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뒤에서 욕지거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눈 앞의 백현이, 제 자신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백현이 순식간에 낯설어졌다.
"너냐?"
경수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핸드폰은 백현의 손으로 옮겨가더니,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처참히 고꾸라졌다. 찰나의 순간, 경수는 백현의 눈빛을 보았다. 더러운 사생새끼들. 무표정한 얼굴의 백현은 그 어떤 것보다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슬로우모션처럼 제 앞을 지나가는 백현을 보면서 경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질적으로 뒤틀려 부숴진 아이폰을 보는 경수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꾸역꾸역 치고 올라왔다. 더러운 도둑새끼. 감히 백현이 핸드폰을 훔쳐? 나가 죽어. 경수는 자신을 향해 일방적으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백현아, 아까 무슨 일이야?"
"걘 누군데?"
밴에 올라타자, 찬열과 준면이 궁금한 눈빛을 던져댔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던 백현이 귀찮다는 듯 눈을 감았다. 백현의 옆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던 종인이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백현이 아이폰 도둑이래. 사생들이 하는 말 들었어."
"진짜?"
"응. 아까 손에 백현이랑 똑같은 아이폰 들고 있던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종인이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근데 아까 백현이가 핸드폰 부쉈잖아."
"니 폰을 왜 부수냐. 찾아줬으면 고맙다고 받아야지."
준면의 잔소리에 백현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사생 편을 들고있는 준면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걔가 핸드폰에 무슨 짓을 했을 지 알고 그걸 덥석 받아요."
"그래도 부순 건 심했다. 너무 넘겨 짚은 거 아니야?"
"그러고도 남을 애들이에요."
백현이 이어폰을 꽂고 창가로 시선을 돌리자, 준면도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밴 안에 새벽공기 같은 서늘함이 맴돌았다. 머쓱함에 찬열이 쾌활한 목소리로 농을 걸었지만, 백현은 모자를 눌러쓴 채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밴이 방송국에 도착하고, 매니저가 내리라고 말하기 전까지 백현은 입을 다문 채, 그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만 집중했다.
집으로 돌아온 경수는 밥은 먹었냐는 가정부 아주머니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선, 제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갔다. 과일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방 문 너머에서 조심스레 물어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필요없어요. 베개에 파묻혀 발음이 불분명했다. 고개를 돌리자, 핸드폰을 살 때 같이 들어있던 충전기따위가 들어있는 쇼핑백이 보였다. 울컥 치미는 감정에 경수가 쇼핑백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저 백현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는 단 한번도 백현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제가 알게 된 홈마들은 대부분 유혹에 못 이겨 백현의 번호를 알아내 남몰래 전화를 걸거나, 꼭두새벽에 숙소에 들어가려 시도하는 등 흔히 말하는 '사생 짓'을 했다. 하지만 경수는 아니었다. 유명한 홈마들은 멤버들의 번호를 교환하며 무언가를 얻어내려 부던히 애쓰는 듯 했지만, 경수는 그것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제가 바라는 것은 백현이 무대에서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고, 그저 행복하게 웃는 것 뿐이었다. 큰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슬플 때면 제가 달려가 위로해 주고 싶었고, 기쁠 때면 같이 기뻐하며 웃어줄 수 있었다. 백현이 웃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돈은 아깝지도 않았다. 백현은 경수에게 기쁨이자, 행복이었고 단 하나뿐인 희망이었다. 지금껏 제게 예쁜 모습만 보여오던 백현이었는데. 그랬는데.
'너냐?'
도둑으로 몰린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었다. 그정도 누명쯤이야 달게 받을 수 있었다. 핸드폰이 아까운 것도 아니었다. 그까짓 핸드폰, 다시 구입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경수의 마음을 후벼파는 것은, 백현의 눈빛이었다. 제게 한참이나 못미치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시리다 못해 에일 듯 차가웠던 그의 눈빛이 제 심장을 도려내는 것만 같아, 경수는 한참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멸과 멸시가 공존하는 그 눈에 담긴 제 모습이 너무나도 작고 초라해서. 기뻐할 백현을 상상하며 남몰래 들떠있던 제 모습이 비참하고 또 한심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삼켰다. 벽에 붙은 백현의 사진이 그런 저를 비웃는 듯 했다.
백현아. 난 그저 네가 웃길 바랄 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큰 바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