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의 리드보컬 변백현 X 사생팬 도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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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자연으로 오세요
[변백현 리즈 갱신.jpg]
[오늘자 컴백무대 백현이 숨멎주의]
[직찍모음 오늘은 변백현의 날]
스크롤만 하염없이 내리던 경수는, 끝내 마우스를 저 멀리 집어 던지고 노트북 전원을 껐다. 양팔로 끌어 안은 무릎 위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노트북 옆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카메라가 참담한 심정을 더했다. 컴백 시기에 맞춰 구입했던 렌즈를 죽어라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푸욱 묻었다. 달도 찍을 수 있으면 뭐해. 백현이 얼굴도 못 찍는데. 애꿎은 머리칼만 마구 헝클어뜨렸다. 출처가 불분명한 감정은 목 언저리에 먹먹함을 남겨두었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욱 우울했다. 차라리 2층으로 갈걸. 안타까운 마음은 부질없는 후회로, 뒤늦은 후회는 미련한 저를 향한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눈 앞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을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기대가 크면 자연히 실망도 컸다. 문득, 경수는 생각했다. 백현아, 넌 신기루를 닮았다. 갈증과 피로에 절어있는 눈이 볼 수 있는, 가장 허황되고 아름다운 형상. 세상이라는 사막 위에서 난, 너라는 신기루를 쫓는다.
숨막히는 스케줄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끝도 없이 쏟아졌다. 공항은 이번 주만 해도 몇 번 째야. 한국 스케줄도 빡빡한데, 중국까지 끌고 가 강행군으로 밀어붙이는 소속사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고운 백현이 얼굴에 다크서클이라도 내려오면 어쩌나. 공항 벤치에 앉아 스케줄을 확인하던 경수가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감지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하루에도 몇 번은 들락거리는 익숙한 공항 루트를 통해 아이들이 나올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곧, 위협적인 대포를 손에 든 홈마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시험촬영을 하는 건지 간간히 플래쉬를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멤버들이 나오기 전에 미리 공항에 있던 경호원들이 우악스러운 힘으로 길을 트기 시작했다. 경호원의 두꺼운 손에 어깨를 맞은 경수가 약한 신음을 흘렸지만, 아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얼얼한 어깨를 연신 주무르던 경수의 눈이 서서히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육중한 무게의 대포를 단단히 손에 쥐고 초점을 잡았다. 흐릿했던 게이트가 또렷하게 잡히고, 멤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꺄악! 찬열아!"
"루한! 루한, 여기!"
쯧. 바로 귀 옆에서 실성할 듯 내지르는 비명에 경수의 눈이 가늘게 찌푸려졌다. 처음 온 애들인가. 침착하게 셔터를 누르는 몇몇 홈마와 달리 직접 얼굴을 보러 온 아이들인 듯 싶었다. 다시 집중을 돌려 게이트로 시선을 모은 경수의 눈에 백현이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경수가 백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오늘만은. 기도하듯 눈을 잠시 감았다 뜬 경수가 몰아치듯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의 외침과, 하이톤의 비명소리, 조금씩 톤이 다른 셔터소리에 귀가 찡하니 울렸다. 백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게이트를 빠져나와 걷고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그 새 살이 빠진 건지 수척해 보이기까지 했다. 뿔테안경으로 얼굴 절 반을 가린 채, 땅만 보고 걷던 백현이 자신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힘겹게 걸친 백현은, 제 이름이 불리는 곳을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다정한 눈길로 카메라 렌즈를 직시하기도 했다. 백현아. 잠잠하던 경수가 목소리를 높인 것은, 백현이 제 앞을 지나치기 불과 몇 초를 앞두었기 때문이었다. 다급해진 경수가 삐끗거리는 목소리를 아등바등 쥐어짜냈다. 천천히 발걸음을 떼던 백현이 제 앞에 다가오고, 경수가 카메라를 바싹 가져다 대고 있을 때였다. 백현은 갑자기 제 옆에 있던 찬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속삭였다. 정확히 경수의 앞에서 고개를 돌린 탓에, 그 날 경수의 메모리카드에 남은 것은, 다른 카메라에 열심히 웃어주던 백현 뿐이었다.
[백설기 요즘 사진 상태 왜 이럼?]
[백현이 탑시드 자리 내어줄 때가 된듯.]
[솔직히 이걸 사진이라고 올림? 뒷태 전문 기자도 아니고.]
마우스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자신의 사진에 감복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댓글은 어디에도 없었다.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경수가 벌떡 일어나 침대로 달려들었다. 베개 두 개를 겹쳐 그 사이에 얼굴을 끼워넣고 달뜬 가슴을 꾹꾹 내리눌렀다. 그럼에도 차오르는 눈물은 갈 곳을 잃고 하얀 베개만 축축히 적셨다. 눈물에 젖은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베개로 단단히 머리를 감쌌다. 눈물은 베개를 뚫고 침대까지 물들일 기세로 터져나왔다. 더운 열기를 품은 한숨이 코와 입을 콱 틀어막았다. 발끝으로 애꿎은 매트리스만 쿵쿵 걷어찼다. 답답한 가슴에서 치밀어오른 눈물은 그렇게 한참동안 그칠 줄을 모르고 흘러내렸다.
"야, 변백현."
"왜. 박찬열."
"너 요즘 자꾸 나한테 붙는다?"
꿍꿍이가 있으면 서둘러 밝히는 게 좋을것이야. 의심을 가득 품은 찬열이 백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할 일 없이 핸드폰만 쥐고 꼼지락 거리던 백현이 확 고개를 들어 찬열을 쳐다보았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쏘아붙이는 백현을 보자, 어이가 없어진 찬열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번에 공항에서도 그렇고! 아니, 그 때 귓속말은 왜 한건데. 별 시덥지 않은 내용 가지고."
"그럼 팬들 다 있는데 동네방네 소문 다 내면서 말하리?"
"이게 삐뚤어져가지고."
"팬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장면을 연출해 준 것 뿐이야."
이 멍청한 도비놈아. 아직도 그렇게 팬심을 몰라서야. 백현이 혀를 끌끌 차며 눈썹을 들어올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찬열을 뒤로하고 거실로 향한 백현은 여느때와 같이 쇼파에 몸을 뉘였다. 예정되어있던 지방스케줄이 갑작스러운 폭우로 취소되고 몇 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니저와 쇼핑하러 나갔던 세훈은, 언제 들어온건지 컴퓨터 앞에 쪼그려 앉아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오센. 언제 왔어."
"아, 오센이라 부르지 말라니까요."
"깝친다, 또."
"내 옷은 안 사왔어?"
"제가 왜 형 걸 사와요."
디비디를 보며 팝콘을 우물거리던 종인과 준면이 세훈의 대답에 몇번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쇼파에 기대 영혼없이 장면을 눈에 담던 백현이 저를 부르는 세훈의 목소리에 시선을 떼지않고 대답했다.
"백현이 형."
"오냐."
"형 꺼 아이폰, 그거 찾았어요."
"그 때 숙소 앞에서 부순 거 까먹었냐?"
"맞아. 완전 가차없이 내리꽂았지."
"그 때 그 애 얼굴을 형이 봤어야 되는건데. 진짜 불쌍했다니까요."
세훈의 말에 준면과 종인이 몇마디 덧붙이더니, 곧 화면에 키스씬이 등장하자 무서운 속도로 영화에 집중했다. 백현은 세훈의 뒷통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야. 종인이 말대로 그거 부순 거 너도 봤잖아."
"그쵸. 보긴 봤는데."
"근데 찾긴 뭘 찾아."
"우리가 본게 형 아이폰이 아니야."
세훈의 말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개를 기울이며 세훈을 쳐다보던 백현이 이마를 긁적였다. 뭐라는 거야, 쟤. 키보드를 맹렬히 두드리던 세훈이 아씨- 죽었어 라며 짜증스럽게 키보드를 내리쳤다. 휙 고개를 돌린 세훈이 백현의 얼굴을 보더니 픽 헛웃음을 지었다.
"형이 완전 잘 못 짚은거에요."
"……."
세훈이 주머니에서 무언갈 주섬주섬 꺼내더니, 그것을 매끈한 거실바닥 위에 올려놓고 백현 쪽으로 슈욱 슬라이딩했다. 깔끔하게 백현의 앞에 멈춘 그것은, 세훈의 말대로 도둑맞은 줄 알았던 백현의 아이폰이었다. 당황한 백현이 주울 생각도 못한 채 내려다보고만 있자, 세훈이 다시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매니저 형이랑 숙소 들어오는데 경비 아저씨가 줬어요. 며칠 전 순찰 돌 때, 주차장 구석에서 찾았다고. 우리 벤 근처에 떨어져 있던데, 그 쪽 거 아니냐고."
"……."
"어쨌든 팬이 주운거 아니니까. 또 이런 일 있으면 폰 압수래요."
"……."
"미안하죠? 그 애."
세훈이 쉴 새없이 마우스를 놀리며 말했다. 백현이 형한테 주려던거 새 것 같았는데. 세훈의 마지막 말에 백현이 아이폰을 주워들었다. 케이스에 새겨진 이니셜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전원을 키자마자 주머니에 그대로 쑤셔넣었다. 시야가 답답해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백현은 눈꺼풀을 꾹 닫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잇새로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 날의 섬광이 백현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깜빡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커다란 손으로 눈두덩이를 덮었다. 칠흙같은 어둠이 백현을 덮쳤다. 또렷하게 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와 제 귓가를 후벼팠다. 떨치려 해도 끈덕지게 달라붙는 절박한 음성이 다시 한번 제 옆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울음을 섞은 그 목소리가 저를 원망하는 것 같아, 핸드폰을 손 안에 넣고 꽉 움켜쥐었다. 답답한 숨이 시원하게 터져나오지도 못하고,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