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민석에게 연락이 왔다.
민석이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에 종대는 잔뜩 들떠 전화를 받았다.
항상 미니형미니형 친근하게 부르며 먼저 다가갔지만
찬백처럼 허물없이 지내기엔 시간이 부족한건지 민석이 좀처럼 마음을 활짝 열지 않는 것 같아 요즘 속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연락이 오다니 종대는 드디어 민석과 친해진건가 싶어 매우 기뻐했다.
"미니형~!"
-종대야. 바빠?
"아니! 하나도 안바빠!"
거짓말. 종대는 지금 매우 바빴다.
공연준비 핑계로 모든 스케쥴을 뒤로하고 연습실에 드나들던 종대였다.
공연까지는 참아주었지만 공연이 끝나고부터는 매니저가 종대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캔슬되었던 모든 스케쥴까지 한꺼번에 들이미는 매니저에 종대가 발끈해 투정을 부렸다가 결국 한대 맞고나서 꼼짝없이 스케쥴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지금도 밀려있던 화보촬영으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오랜 촬영에 지쳐있던 종대가 방긋 웃으며 전화를 받자 매니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종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매니저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민석과 통화를 이어나갔다.
"무슨일이야?"
-혹시 지금 잠깐 볼 수 있을까?
"지금? 나 보고싶어서 연락한거야? 어디로 갈까??"
-음... 그게...
"응? 뭔데 그래??"
종대의 대화에 매니저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가긴 어딜가?! 팔짱을 낀채 무섭게 노려보는 매니저에 종대가 슬쩍 자리를 피했지만 매니저는 끝까지 쫓아다니며 눈빛으로 종대를 압박했다.
-크리스 기억나지? 크리스씨가 널 좀 만나고싶어해. 시간 괜찮아?
"..."
그 이름을 어찌 잊으랴.
종대가 우뚝 서더니 표정을 굳혔다.
매니저는 한번도 본적없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런 종대의 변화에 매니저도 멈춰서서 종대의 표정을 가만히 관찰했다.
종대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수화기 너머의 민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종대야? ... 김종대!!!
"어... 어?"
-왜그래?
"아,아니. 형, 미안해. 지금 바빠서 못나가겠다. 나 일하러가야해서... 이만 끊을게!"
-어? 아.. 조,종대ㅇ...
뚝.
단호하게 거절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종대에 매니저가 기특하게 종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표정을 심각하게 굳히고있는 종대를 보며 많이 나가고싶었나... 하고 일을 강요한 것이 살짝 미안해졌다.
"많이 힘드냐? 좀 쉬게 해줄까?"
매니저가 종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종대는 아무말도 없었다.
끊어버린 전화기를 한참 내려다보고는 획 돌아서 다시 촬영현장으로 가는 종대에 매니저는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주위사람에게는 항상 웃어보이던 종대가 한없이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은 너무도 어색했다.
종대의 변화에 화기애애하던 촬영장 분위기도 순식간에 착 가라앉는 것 같았다.
매니저는 종대가 많이 힘들어서 그런거라 생각하며 이 일이 끝나고는 좀 쉬게 해야겠다 결정했다.
"또 무슨 말이 하고싶어서 보고싶다는거야?"
팔짱을 끼고서 크리스의 얼굴을 떠올린 종대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면전에서 깠으면 됐지 또 무슨 할말이 남아서 얼굴까지 보자는건지 종대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또 부정적인 말을 들어버리면 그나마 잡고있던 자신감이 진짜 땅속으로 곤두박질 칠 것 같아 그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종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유명가수에서 한사람의 평가로 인해 이렇게까지 추락해버리는 자신에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감독이 다시 종대를 찾았다.
고개를 도리질치고 뺨을 두어번 두드린 종대는 정신을 차리고 기운내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한편, 민석은 전화가 갑자기 끊어지자 당황했다.
분명 처음엔 밝은 목소리로 말하던 종대가 크리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확 변했다.
분명 바쁘지않다며 어디로 가면되냐고까지 물었다.
그런데 크리스 얘기에 갑자기 일하는 중이고 바쁘다며 돌변한 종대에 민석은 넋이 나갔다.
크리스에게 자신있게 데려가겠다며 당부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민석은 이제 어쩌나 싶었다.
도대체 무슨일이지...
사실 크리스가 갑자기 종대를 찾으며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왔을 때도 궁금했지만,
착하디 착한 종대가 크리스의 얘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나오니 더욱 궁금해졌다.
민석은 하는 수 없이 혼자라도 약속 장소에 나가보자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