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심심해.. 심심하다고... 이럴바엔 차라리 일하는게 낫겠어..."
혼자인 집에서 소파에 벌러덩 누워 티비를 시청하던 종대가 중얼거렸다.
모처럼 휴식을 준다더니 집에서는 나가지 말라는 매니저의 역설적인 명령에 종대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종대에게 집에서 혼자 있으라는 것은 쉬라는게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으라는 것과 같았다.
종대가 급하게 폰을 뒤지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ㅅ..
"야아!! 어디냐?!"
-아, 귀따가워. 알아서 뭐하게?
"나 심심해... 나 오늘 쉬는데 집에 놀러와라!"
-싫은데?
"아, 왜애애!"
-나랑 박찬열 바다가는 중. 그러니까 빠이짜이찌엔~
"헐! 뭐야, 왜 나 빼놓고 가는데!!!"
-딱 들으면 모르냐? 데이트잖아. 끊는다.
"어? 어! 야!! 변배....ㄱ!!!"
매정하게 끊어진 전화에 종대가 울먹거리며 폰을 내려다보았다.
커플지옥 솔로만세...
소심하게 외치는 종대의 눈가가 점점 촉촉해져간다.
하는 수 없이 연락처를 다시 뒤져보는데 민석에게는 전의 일이 걸려 연락도 못하겠고 루한은 아직 너무 먼 존재였다.
그나마 가장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모양이니 종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에서 티비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지쳐갔다.
매니저에게 전화해 일이나 가져와라 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는 순간 앞으로 자신에게 휴식이란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란 예감에 그러지도 못한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나가고 보는거야!"
결국 종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강행군을 택했다.
일단 자신이 유명인이란 자각이 있는 터라 완전무장을 하고 나온 종대는 뿌듯함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종대는 몰랐다. 그 완벽함때문에 오히려 더 눈에 띈다는 것을...
"일단 나오긴했는데... 어딜 가지?"
무턱대고 집을 벗어나긴 했으나 막상 갈 곳을 잃은 어린 양 신세에 한숨을 쉬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한심하기까지한 모습에 울컥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터덜터덜 골목을 걸으며 그저 발가는데로 직진하던 종대의 귀에 낯선 발자욱 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종대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져 갔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크리스였다.
다행히 자신의 얼굴은 가려져있어 그는 모르겠지만 종대는 크리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질색했다.
앞서 걷던 종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분탓일까? 뒤에서 들리는 발자욱 소리도 같이 빨라지고 그와의 거리가 전혀 벌어지지 않는 듯 했다.
마음이 급해진 종대가 결국 뛰기 시작했다.
몇분을 뛰었을까. 이정도면 됐겠지... 하며 뒤를 돌아보는데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크리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크리스가 제뒤를 쫓아오는게 확실해지자 종대는 죽기살기로 뛰었다.
"아악! 도대체 왜 따라오는건데!!!"
뛰면서 악을 쓰는 종대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일까 이제 크리스도 소리를 지르며 종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잠깐만! 좀 멈춰봐요!!!"
"그럼 따라오지 말라고오!"
막다른 길에 막혀 결국 멈춰야했던 종대가 상체를 숙이고 숨을 헐떡였다.
곧 도착한 크리스도 숨을 충분히 고르고 나서야 종대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아직 엎드린 종대 앞에 크리스가 우뚝 서자 종대는 약간 움찔하더니 땀을 닦으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당신, 스토커짓도 합니까?"
종대가 표정을 잔뜩 굳히고 나서 딱딱하게 말했다.
다짜고짜 스토커라니? 크리스는 기가 막혀 헛바람을 내쉬었다.
크리스가 무엇을 내밀자 종대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시,신고할겁니ㄷ... 엥?"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크리스의 손에 들린 것은 자신의 지갑이었다.
지갑과 크리스의 얼굴을 번갈아보던 종대는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 크게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크리스는 자신이 김종대라는 사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종대는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크리스의 손에서 지갑을 확 낚아챘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종대는 지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종대가 그대로 굳어버리자 크리스가 몸을 숙여 지갑을 주웠다.
운이 매우 나빴다.
하필이면 지갑이 펼쳐져 떨어지는 바람에 지갑을 줍는 크리스가 멈칫했다.
아주 잘보이게 꽂혀있는 주민등록증에는 아주 낯익은 이름과 얼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 김종대?"
젠장...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다.
종대가 질끈 눈을 감으며 머리 속에서 수백번 자신의 머리를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