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끼이이익.....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빗길에서 미끄러진 차 한대가 가드레일을 박으며 멈추었다.
밤길이어서 도로에는 차가 많이 없었기때문에 다행히 추가적인 추돌사고는 없었다.
범퍼가 찌그러져 연기가 나는 차 안에서 힘겹게 밖으로 빠져나온 인물은 종대였다.
심하게 부딪혔는지 팔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지만 피가 흐르는 곳은 팔 뿐이었다.
놀란 가슴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겨우 기어나온 종대는 아직 차에서 나오지 못한 매니저를 발견하고 넋이 나갔다.
아.. 119 번호가 뭐였지... 한참 멍청한 고민을 하던 종대가 귓가에 들려오는 싸이렌 소리에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천천히 눈을 감고 쓰러졌다.
***
"야."
"어? 왜??"
"뭐 필요해??"
"..."
종대의 한마디에 찬백이 하던 일을 멈추고 침대로 달려와 고개를 들이밀었다.
몸을 뒤로 내빼며 질색하던 종대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갑자기 왜 웃어?"
"머리 다친게 이제야 이상해졌나?"
갑자기 종대가 웃음을 터뜨리자 찬백은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종대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백현이 진지하게 종대의 이마를 짚자 그는 더욱 크게 웃었다.
사실 종대는 외로움을 감추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찬백과 함께 하고는 있었지만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이번 사고가 나고 누워있는 매니저의 강요로 인해 입원하게 된 종대는 연습실에 갈 수 없게 되자 더욱 초조해졌다.
그런데 사고 소식을 듣더니 바로 달려와 종대를 부여잡고 몸을 샅샅히 훑어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에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와 종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지금은 병실에서 번갈아 밤을 새우며 종대 옆을 지키고 있는 찬백이었다.
괜히 부끄러우면서도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그들의 마음에 서서히 녹아들며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더욱 밝게 웃었다.
"변백현... 나 나가고싶은데.."
"안돼."
그건 그거고 단호한 백현은 여전했다.
웃음을 멈춘 종대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에게 말했다.
하지만 곧 다시 침대에 눕혀져 강제로 취침당하는 종대는 백현을 보며 계속 징징거렸지만 백현은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입원한 뒤로 병실밖으로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화장실까지 딸린 병실이라 그 핑계로도 나가지 못했다.
이 큰 병실에서 혼자가 아니란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병실 안은 너무도 갑갑했다.
하지만 두 눈을 도끼처럼 뜨고 지키고 앉아있는 백현과 그의 뜻을 지켜보이겠다는 듯이 문 앞을 막고 서있는 찬열에 종대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결국 다시 눈을 감아야했다.
병실들의 불빛이 모두 꺼진 캄캄한 병원에 끼익-하며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음에도 소리가 크게 울리자 당황한 종대는 기겁하며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는 백현을 살폈다.
다행히 소리에 깨지 않았는지 아직 색색거리며 자는 백현을 확인한 종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백현아, 미안... 작게 속삭인 종대는 살금살금 병실을 빠져나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후... 이제야 살 것 같네."
병실 밖의 공기를 크게 들이마쉰 그는 어깨를 당당히 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이 잔뜩 신나보인다.
처음 둘러보는 터라 병원의 지리를 잘 모르는 그는 안내지도와 표지판을 일일히 확인하며 빨빨거렸다.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던 종대가 조금 지쳤는지 휴게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지만 몰려오는 갈증에 다시 일어나 털레털레 자판기 앞으로 걸어가더니 마른 침을 삼켰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환자복에서 동전이 나올리 없었다.
물끄러미 자판기에 있는 캔을 바라보던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그의 어깨에 턱 무언가 올라앉았다.
"으아ㅇ.. 읍!"
갑작스런 기척에 놀라 소리를 지르려던 그의 입이 누군가에 의해 막혔다.
바둥거리는 종대의 심장이 쿵쿵 뛰어왔다.
귓가에 쉿, 하고 속삭이고는 손을 내린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있는 크리스였다.
종대가 기가막혀 손가락을 덜덜 떨며 그를 가리켰다.
"어, 어째서 여기에..?!"
경악하며 자신을 보는 종대의 시선에도 태연하게 자판기에서 음료 두개를 뽑아 든 크리스가 하나를 내밀었다.
아까 종대가 빤히 바라보던 음료였다.
음료를 내려다본 종대는 침을 넘겼지만 곧 새침하게 크리스를 째려보았다.
"뭐에요. 진짜 나 따라다녀요?"
종대의 말에 크리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종대의 눈이 더 찢어지자 음료를 억지로 그의 손에 쥐어준 크리스는 그대로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거 안보여? 크리스의 말에 종대가 눈을 가늘게 뜨고 가슴팍에 새겨진 글씨를 읽었다.
"정형외과... 크리스..? 의사였어요?"
"그렇지. 그런데 입원한건가? 어디 다친거야?"
"... 왜 반말이에요?"
의사였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종대가 크리스의 반말을 눈치채고 인상을 찡그렸다.
크리스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나보다 어리잖아. 하고 대답하는데 종대는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진짜 뭐 저런 사람이 다있나싶어 기막힌 눈으로 크리스를 멀뚱히 올려보다 몸을 획 틀었다.
이제 구경도 다했고 그다지 보고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병실로 돌아가려는 종대를 크리스가 붙잡았다.
"얘기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