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굉장히 찝찝한 기분으로 잠에 들고, 일어나서 찝찝하게 밥을 먹고, 씻은 다음에 찝찝한 상태로 학교에 갔어.
왜냐고?
어제 재환이 뜬금없는 자기소개를 한 뒤 사라져 버렸거든.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
넌 그곳에 몇 분간 멍하니 서있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덕분에 잠도 별로 못 잤어.
같은 학교 학생인 걸 아니까,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학교까지 왔어.
그런데 그 애를 찾을 방법이 없네.
남녀공학이지만 분반이었고, 너한텐 남자반을 찾아갈 베짱이 없었거든.
그래도 너는 재환이 다시 찾아올 거란 확신을 갖고 있었어.
이유는 몰라. 그냥 왠지 그럴 것 같으니까.
너는 네 책상에 앉아 수업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어제의 재환을 떠올려.
"내 이름은 체셔야."라고 했던 재환.
체셔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
그래서 너는 몰래 책상 밑에서 스마트폰을 켜 인터넷을 들어가게 되지.
그리고 검색창에 '체셔'를 검색했어.
그러자 바로 보이는 고양이 사진에 너는 조용히 탄성을 질러.
어릴 때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였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잠시 그 동화책을 읽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한 게시물을 터치하여 들어가 보니 꽤 통통한 고양이가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웃고 있어.
귀엽기도 하고 뭔가 소름 끼치는 그 표정이 참 매력적인 고양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또 머릿속에 떠오르는 재환의 웃는 모습.
네 생각에 재환은 고양이보단 강아지에 가까웠고, 웃는 모습도 그리 소름 끼치진 않았던 것 같아. 오히려 이 고양이보다 더 귀여운 편이였지.
고양이 사진 밑에는 그 고양이에 대한 설명이 달려있었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둥 재주를 부린다.]
어제 재환이 보여줬던 것과 같은 재주였어.
그래서 자신을 '체셔'라고 했던 걸까.
너는 스마트폰을 다시 서랍 속에 넣어두고, 생각에 잠겨.
이재환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 같은 걸 말이야.
분명 체셔 고양이는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텐데 그것과 똑같은 능력을 쓰고, 자신이 그것이라고 소개하는 이재환은 대체 뭘까.
_
결국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넌 재환을 만나지 못했어.
너도 찾아가려 하지 않았고, 재환도 널 찾아오지 않았어.
그냥 이쯤 되니 어제 겪었던 일들이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근데 그 생각도 얼마 안 가 깨져버렸지.
저녁 급식을 먹고 불 꺼진 어두운 체육관 안에 서서 멍하니 시간을 때우고 있는 네 앞에 재환이 나타난 거야.
서서히 나타난 것도 아니라, 정말 갑자기 나타나버려서 너는 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
또 재환이 손을 뻗어서 너를 일으켜 줘.
뭔가 떨떠름해보이는 표정이었어.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막상 네가 그 장난에 넘어가서 놀라면 저렇게 표정을 지어버려.
너는 교복 치마를 털며 재환에게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해
"제발 그렇게 불쑥 나타나지 말란 말이야."
재환이 머쓱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여.
그런데 그 웃음도 얼마 안가 찌푸려졌어.
네가 재환의 볼을 잡고 늘렸거든. 재환이 당황해서 네 손을 잡고 떼어내.
"뭐 하는 거야."
"혹시 가짜인가 싶어서."
이번엔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재환이야.
"정말 엉뚱한 건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다니까."
너는 그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재환의 어깨를 덥석 잡아.
"나 진짜 궁금해 미칠 것 같거든? 네가 말하는 것들과 네가 쓰는 그 능력이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말이야."
재환이 그 말을 듣고 잠시 벙 쪄있더니,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
그리고 제 어깨를 잡은 네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는 입을 열어.
"네가 직접 알아내야할 듯 싶은데..."
"....."
"뭐, 힌트 정도는 괜찮겠지."
한번 더 이를 드러내며 웃는 재환.
"앨리스는 정말 꿈을 꾼 걸까?"
***
어느새 너는 교실로 들어와 책을 펼쳐둔 채,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어.
방금 전, 재환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앨리스가 정말 꿈을 꿨을까, 라니.
대체 재환은 그 동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동화 속에서 나온 걸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다가 바로 접었어.
그리고 네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그 질문뿐만이 아니었어.
재환이 너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서서히 사라지면서 한마디를 더 했거든.
그리고 너는 그 말을 듣고 더욱 혼란스러워져 버렸고.
"어두운 곳 좋아하는 건 여기서도 변함이 없네"
이제 시계토끼나 모자장수도 등장을 시켜야...겠죠.
아...막막하다ㅠ 심지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랑 전혀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ㅎ
댓글달아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그리고 제 사랑 암호닉:루시퍼님 나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