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게는 뭐야?"
가게 이름부터 심상치가 않았던 옷가게는 하릴없이 걸어다니던 내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 안녕하십니까, 손님?
...?
약간은 불투명한 문을 열자마자 반기는 건 점원도 점장도 가게 주인도 아닌 녹음된 목소리였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약간은 격양된 톤의 목소리는 남자의 것이었고, 그 목소리는 꼭 어디선가 날 쳐다보며 말하는 듯 해 보였다.
- 그렇게 안 둘러보셔도 전 가게 안에 없습니다, 손님.
이거봐. 대체 어디서 나를 보고있나 가게를 훑던 내 눈빛을 보란듯이 집어낸 목소리 때문에 오히려 흠칫 놀라버렸다.
- 옷 보러 오신거죠, 훤칠하신 손님? 어휴 핏은 충분히 살겠네요? 자- 저쪽으로.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발걸음 아래 바닥에서 불빛이 들어왔다. 불빛은 손가락 모양으로 내가 가야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 여기요?"
어느샌가 허공에 짖..고 있는 날 발견하였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 네, 거기 맞습니다. 그래도 손님은 소리 안질러서 다행이네요, 보통 다른 사람들은 비명지르며 나가기도 잘하던데.
약간은 아쉽다는 투의 목소리는 피식거리며 웃는 것을 끝으로 여담을 마쳤다.
"다른 칸은 왜 안보여줘요?"
목소리에 집중하다보니 옆을 안봐서 몰랐던 사실은 화살표가 이끄는 방향으로 가자마자 옆에 있는 옷칸의 불이 꺼지면서 반대방향의 옷들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어, 손님의 집중 분산을 막기 위해서랄까요?
"분산? 무슨 분산이요?"
- 옷을 고르다가 다른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무심코 골라 놓은 옷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되거든요. 골라놓은 옷을 다 평가한 후 다른 옷에 관심을 가져야겠죠?
나름의 신조인 듯 꽤나 또박또박 거의 읊어내려가듯 말한 목소리는 얼른 골라보시라는 듯 옷칸을 내 앞으로 한칸 당겼다.
사실 보통이라면 놀랄 일이기도 하겠지만, 이정도의 상황에서 옷칸이 저절로 당겨지는 것즈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옷 센스 좋으시네, 모델일 하세요 혹시?
따발따발, 입에 모터라도 달았나보다. 집중 분산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고르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목소리.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옷을 고르자 옷칸이 뒤로 밀리고 어디선가 갈아입는 피팅룸이 나타났다.
- 자, 갈아입고 나오세요.
"혹시몰라서 그러는건데. 피팅룸도 보고있는 건 아니죠?"
- 글쎄요..? 손님은 좀 궁금하긴 하네요.
낄낄, 장난스레 웃은 목소리가 얼른 입어보라는 듯 피팅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피팅룸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뒤에서 문이 저절로 닫혔다.
닫힌 문을 뒤로하고-잠겼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고-피팅룸을 살펴본 나는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이게..피팅룸이야?"
- 그럼요, 피팅룸이죠.
"야, 안나가?!?!?!?"
- 거기 없는데요?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 뭐, 그렇죠. 보고있지는 않지만, 들리긴 하거든요.
말은 그렇게 한다지만,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을 지 몰라 주춤주춤거리던 나. 그러나, 그마저도 잠시. 피팅룸의 내부 모습에 더이상의 의심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피팅룸에는 옷에 걸칠 수 브릿지나 바지와 같이 찰 수 있는 벨트 등이 여러가지 걸려있었고, 반지나 목걸이, 혹은 반지 등의 액세서리도 벽면 한가득 걸려있었다.
또한 벗는 옷을 걸어놓을 수 있는 옷걸이가 있었으며, 그 옆에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내가 들고 온 옷보다 한 치수 작거나 큰 옷이 한벌씩 걸려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조용한 분위기의 음악과 은은한 향수.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질만큼 신비한 분위기의 푸른 빛이 도는 방.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의 방에, 한참 넋을 잃고 있었다.
- 화장실도 아닌데, 혹시 똥싸나요 손님?
"ㄴ, 네? 아니요!"
- 피팅룸이 좀 신기하죠? 마음에 드는 액세서리까지 착용하고 나와주세요, 손님.
"아, 예."
이런 서비스까지 있을 줄이야.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몽환적임에 반해 시중에 파는 것과 비슷한 청바지를 고른 난 걸맞는 액세서리까지 착용하고 피팅룸 밖으로 나왔다.
- 진짜..
"...네?"
그리고 걸어나온 내 모습을 본 듯한 목소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 여러모로 좋네요, 손님.
"잘..어울려요?"
- 원래 핏이 있는 손님이니, 안 어울릴 리가 없죠.
기계가 가로막혀 있음에 틀림없을테지만, 분명 그 너머의 목소리 주인은 웃고 있었다.
"고마워요. 이걸로 계산할게요. 얼마예요?"
아무리 뒤집어보아도 바지에는 그 흔한 상표도 없었다. 그러니 가격표도 있을리가.
- 가격은 됐고,
"...."
- 값은 다른 걸로 받을래요, 손님.
분명 내가 피팅룸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저 들떠있는 목소리였던 저 기계음이, 묘하게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들려 나 또한 침을 삼킬 무렵.
- 키스.
채 대답도 하기 전에 가게의 불이 죄다 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약간 차가운 것이 볼을 감쌌고, 그와 동시에 무언가 말캉하면서 차가운 것이 입술에 닿았다.
입술을 벌리고 혀-라 생각하지만 그러기에는 사람 체온보다 차가웠기에-같은 것이 들어왔으나,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나는 밀쳐낼 틈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짧은 키스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상점 안은 불이 꺼지기 전과 똑같았다.
- .....
"....."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