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에 사람이 들어왔다. 젊은 남자였다. 엄마는 전화로 네 나이 또래이니 친하게 지내라고 잔소리를 했다. 귀찮았다. 외국으로 사업한다고 나가놓곤 뒤늦게 걱정은. 거실 쇼파에 앉아 넓은 집을 둘러보았다. 쓸데없이 드럽게 넓다. 남는 방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집 주인은 젊은 여자랬다. 누군 뼈빠지게 일해서 겨우 쓰리룸의 집을 구했는데 누군 앉아서 입금되는 돈을 확인만하면 된다니. 조금 억울했다. 주인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서 괜히 슈퍼가는척 현관을 뺀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코빼기도 안보였다. 알고보니까 윗 층에 사람 안사는거 아냐? 이상한 생각도 잠시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윗 집 여자. 궁금하다. 생활비가 바닥났다. 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이젠 통장에 돈이 하도 쌓여서 문제였다. 돈이 넘치는데 할 일이 없고 친구들은 시험이니 개강이니 바쁘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돈 벌일도 없으니 좀이 쑤셔 죽을거같았다. 아. 주문한 옷 배송왔나 나가봐야겠다. 요즘 내 사람의 낙이라곤 이것 뿐이다. 심심해. 봤다. 방금. 집주인 여자를. 근데, 보긴 봤는데. 아. 미친.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거야. 망했다, 빠른 시일 내로 이사갈 곳을 찾아봐야하나. 다행히도 오전에 배송완료라고 떴던 택배가 현관 앞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슬리퍼를 꿰어신고 쭈그려 앉아서 택배를 확인하는데 뒤에서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 이건 좀 오바고. 유리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건 팩트다. 아무튼, 깜짝 놀라서 쭈그려앉은 그대로 고개만 돌려 계단 아래를 확인했는데 웬 스트라이프 셔츠를 차려입은 남자 한명이 입을 헤 벌린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뒤늦게 문 잠기는 소리가 난걸로 봐선 새로 이사왔다던 젊은 남자같았다. 음. 난감했다. 이건 다 이 건물 구조가 특이해서다. 대체 지을때 무슨생각을 하면서 지었길래 2층에서 올라가는 계단과 주인집에서 내려오는 계단이 똑같은거지? 하필이면 올라가는 계단과 우리집 현관이 나란할건 뭐한말인가. 놀란건 그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인영 때문인데.. 텀블러 떨어지는 소리에 천천히 일어선 여자때문에 눈이 빠질듯이 커진게 느껴졌다. 사실 조금 웃겼다. 훑어보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텀블러, 손 끝에 대롱거리는 이어팟, 어깨선이 딱 떨어지는 하늘거리는 재질의 셔츠와 발목즈음에서 끝나는 슬랙스까지.. 생긴것도 눈꼬리 올라가고 콧날 날카롭고 한번 삐끗하면 서류 엎을것마냥 생겼던데. 얼굴의 온갖 구멍은 다 확장시켜서 나 놀랐어요 하는게.. 잘생겼더라. 응. 잘생겼다. 그 남자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작은 발. 흰 다리. 큰 티셔츠. 마른 팔목. 이쁜 어깨. 몸을 일으킨 여자를 보고 순간 눈에 담은 모습은 그랬다. 잠깐 나왔다 들어갈 생각이었는지 티셔츠 하나만 입은 모습이, 좀..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보고 선 그 등 뒤로 오후의 햇살이 부서지는데.. 후광이 비치는 줄 알았다. 나이 23먹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천사 같았다 해야하나. 화장기 없는 모습마저 한 폭의 그림마냥 어우러졌다. 그 모습을 미친 사람마냥 넋 놓고 바라본것 같다. 한마디로. 미쳤다. 미치겠네. 그 여자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나중에 다시 밖으로 나오니 그 남자는 자리를 떠난 후였다. 밖으로 나가는것 같아 보였는데 일 보러 나갔겠지. 내가 진짜 웃기다고 생각한건, 바닥에 떨어뜨린 텀블러는 그대로 두고갔다는거다. 자기가 신데렐라야, 뭐야. 어쨌든 나는 그걸 주워서 집으로 들고왔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닦아 창틀 앞에 올려두기도 했다. 마르면 가져다줘야지. 텀블러를 두고왔다는걸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알았다. 그래도 바로 집 앞이니까 그대로 있겠지, 생각했는데. 밤에 도착해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거있지. 그 순간에는 화가나서 개발새발 온갖 욕은 다 중얼댔는데. 그 텀블러를 가져간 사람이 주인여자라는걸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거다. 안녕하세요. 이거 버려두고 가셨길래 주워왔는데요. 혹시 신데렐라세요, 하고 물어보려다가 입다물고 그냥 웃었다.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네. 아. 어디갔는지 한참 찾았는데. 감사드립니다. 괜찮으시면 안에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 오늘도 티셔츠 한 장만 입으셨네요? 물으려다 말았다. 처음부터 이러면 혹여나 겁먹고 도망칠까봐. 가까이서 보니까 환장하게 이쁘기까지하네. 좋아요. 제 이름은 김도영이에요. 전 김이름이에요. ..담요라도 드릴까요? 아. 괜찮아요. 집 밖으로 나갈일이 별로 없으니까 박스티 하나만 입고있는게 습관이돼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끼이익-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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