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너무 넓어 동거인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연락이왔다. 대학생인데 집을 구할 시기를 놓쳐 편도 두시간짜리 통학을 하게 생겼다는 눈물나는 사연이었다. 당장 짐을 싸서 우리집으로 오라고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길줄은 난 전혀 몰랐지. 당연히 기숙사에 붙을줄 알았다. 성적순으로 자른단걸 알기에 안일하게 있던게 문제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집을 구하려니 괜찮은데가 없었다. 학교 근처 고시원에라도 가봐야하나, 할때 기적적으로 적당한 가격의 좋은 조건인 집을 발견했다. 거의 동거인 느낌의 홈쉐어이긴 했지만, 뭐. 찬물 더운물 가릴때가 아니니 당장 계약했다. 그리고 약속한날짜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갔는데.. ..이름이 뭐랬죠? 아 정재현. 나이는 97년생. ... 근데 제가 정말 성별제한 안써놨어요? 아, 네 아니 못믿는건 아니구.. 네 죄송해요.. ..어쩔수 없죠 같이 사는수 밖에. 머저리처럼 난 내가 여자만 받음에 체크를 안 한줄 몰랐다. 몰랐으니까 전화연결 한번없이 만나보지도 않고 계약한거겠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해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싶다. 정재현입니다. 97년생이고.. ..그런데 저 쫓겨나나요? 지금 저 의심하세요..? ... 그래서 이제 어떡하죠. ....네에???? 인사만 한 후에 억만년같은 정적이 흘렀다. 그 후에는 큰 일인거 같은 일을 별거 아닌 일마냥 처리해버리는 대담한 여자에 당황했다. 아니 내가 나쁜놈이면 어쩌려고? 물론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지만.. 무방비하게 박스티 하나만 입고있는, 오늘 처음 안 이 여자가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내 코가 석자인데 왜 오늘부터 이 속담이 자주 떠오를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건지. 재현이-나이가 같길래 호칭정리는 빠르게 끝냈다-는 나이 가 어린거치고 요리를 꽤 했다. 내가 라면 물도 못맞추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을때 꽤나 당황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니. 그래도 계란후라이 정도는 할 줄 안다고 했는데 기각 당한게 잘 한일이었다. 덕분에 깨끗하다못해 새것마냥 빛나던 식기와 요리도구들이 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지방도 날이 갈수록 축적되고 있었다. 으음... 이러니까 우리 꼭 신혼부부같다. 그치. 언젠가 아침에는 이런 말을 했던것만 같다. 그랬더니 김이름이 뭐랬더라, 먹던 에그스크램블을 뱉을뻔한걸 꾹 참더니 물 한컵을 원 샷 하고는 아무렇지 않은척 대꾸했었나. 지랄말고 밥이나 먹어. 귀 끝은 빨개져선 말하는데, 정말 너무 귀엽지않니. 이름이는 정말 귀여웠다. 아닌척 주위를 맴도는게 꼭 고양이같다고 해야하나? 이 말을 들으면 또 씨뻘개져선 정재현, 너 계속 헛소리 할래? 할테지만. 타격감 0이다. 귀여워 죽겠어. 정재현은 정말 이상한 놈이다. 마치 나를 밥만 축내는 애완동물 보듯이 취급한다니까. 언제는 정재현이 학교가있을때 뭐라도 해두려고 청소기를 막 돌리고있는데 때마침 정재현이 들어온거다. 중문을 건너오다 나를 발견하곤 몸을 멈칫,하는데 뒤이어 웃으면서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곤 방으로 가는거있지.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있으려니까 왜 더 안하고? 하면서 걸치고있던 남방을 벗는데 그때 되게 애완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진짜 웃겨가지곤.. 어 재현아 왔어? 누구라도 김이름을 애완동물 취급 할수밖에 없을거다. 이건 전적으로 이름이 탓이다. 방금도, 나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문 앞으로 쪼르르 마중나오는데 어떻게 안 귀여워할수가 있겠어. 가끔은 내 눈치를 보기도 하는데 사랑스러워 미칠것같다. 아. 요즘은 티 안에 짧은 반바지를 챙겨입던데. 아마 나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귀엽긴. 이렇게 김이름 일상에 내가 자연스레 덧그려질때엔 주체할수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혹은 내가 뭘 할때마다 기대에 찬 눈으로 아닌척 바라본다거나.. 그럴때면 귀여워서 괜히 계속 주방에 서성거리게 된다. 그 눈을 안본사람은 절대 모를거다. 얼마나 귀여운지. 얼마나 놀려먹고 싶은지. 그리고 얼마나 이겨먹고 싶은지. ...앞으로 평생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나만 알게. 오랜만에 도영이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전에는 맨날 만나서 놀고, 고작 한층 차이지만 저녁마다 맥주 한캔씩 하고 그랬었는데 왜인지 재현이와 같이 산 이후로는 얼굴 보는 일이 뜸해졌다. 내 생각인데, 아마 모르는 남자랑 둘이 사는건 아닌거같다고 만류했던걸 안들어서 그런것같다. 그래서 도영이한테 봐, 아무일도 없지? 재현이 착한애라니까.라고도 했었는데.. 우리 오랜만에 얼굴본다고, 너무 좋다고 막 웃었는데 도영이 얼굴이 미묘했다. 왜그러냐고 묻고싶었지만 재현이가 내게 질문을 해서 타이밍을 놓쳤었다. 별로 중요한 질문도 아니었는데. 이름이에게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듣던 김도영이란 남자를 처음 봤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곳 위험하구나. 으음. 웬만하면 더이상 사람을 안 들였으면 좋겠는데 속편한 우리 김이름이는 새 하우스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설치고있다. 이번에는 정말 남자만 아니면 좋겠는데. ..생각할수록 웃겼다. 이름이한테는 호칭 필요없이 이름만 불러도 된다고 했다는데. 그래놓고 나한테 하는말이- 당연히 넌 안되지.라니. ..그렇게 이름이 앞에선 토끼같은 눈을 하다가 둘만 남으니 뱀 눈깔로 바뀌는 모양새란. 아직도 이 넓은 집에는 방이 두개나 비어있다. 남자가 들어올거면 차라리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게 김이름이 누구건지 알려줄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어. 도영아. 아.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고? 하우스메이트? 당연히 아직도 구하고있지. 응 응. 어, 알겠어. 그럼 그때 연락 줘- 곧 이 집이 동물의 왕국으로 변하게될지는.. 미지수 아닐까? ㅡ 수정해야하는데 실수로 올려버려서 야금야금 수정 했네요 하하...ㅎㅎ 저번 글에 댓글들 전부 다 감사드려요!! 이번편도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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