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美
w. 리조트
춤을 추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참 이상해진다.
평소엔 경망스럽기 그지없던 저 얇은 팔다리가 마치 기름이라도 발라 놓은 듯 이쪽에서 저쪽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그렇게 또 하나의 동작을 완성시킨다. 갓난아이를 다루는 듯한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손끝에 미세한 바람이 일렁여 마음을 간질이는가 하면, 한순간 태세를 전환하여 상대를 모조리 씹어먹고 찢어발겨 놓을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드러내며 가녀린 제 한 몸 부서지게 살벌한 그 발구름은 마치 사나운 흑곰 하나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덮쳐버릴 듯한, 되려 아군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위협적인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아..."
지레 겁먹은듯한 누군가의 외마디 탄식이 미처 삼켜지지 못한 채 맞은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리 사이에서 비집고 흘러나온다. 그 두려운 외침에 보답이라도 해주려는 듯, 정호석. 너는 마무리를 위해 동작을 정리한다.
놀이기구로 따지면 바이킹. 끝을 앞두고 너는 네가 보여줬던 그 모든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그러고 나면, 네가 추는 그 모든 춤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끝날 듯, 말 듯 가벼운 발걸음이 무대 중앙을 배회하다 이내 한 군데에서 멈추어 선다. 은은한 미소를 걸치며 이미 박수가 쏟아질 준비가 끝나고 인사하기만을 기다리는 반대쪽의 군중들을 바라보며 잠시 나와 등을 진다.
허리만 숙이면 모든 것이 끝나건만, 굳이 동작 하나를 추가한다. 짧은 턴 한번에 그들과 멀어진 너는 특유의 따뜻한 미소를 온전히 나에게만 보여주려는 듯 눈을 맞추며 저쪽 무리의 시선들을 철저히 배척한다.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손을 가슴에 대고는 경의를 표하는 듯한 일련의 행위는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곧이어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그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여자의 비중이 좀 더 크다. 저들끼리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그 아무도 이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만은 올곧게 나를 봐준다.
인사치레를 급히 마무리하고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비어있던 나의 옆자리를 채운다. 그제서야 그들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옆자리의 나를 보고는 다행히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정면으로 마주친 눈빛은 너를 보던 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나를 향한 동정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썼다지만 그마저 냉소적인,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하지만 항상 나를 내려다본다.
니가 뭔데.
"여기 학원 진짜 유명한 곳인데. 우리 동아리 춤추는 영상 보고 나한테 연락왔었어. 괜찮은것 같아?"
누구나 할 수 있는 대화였다. 그러나 겉으로 포장된 평범한 대화는 우리들 사이에 있어서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오늘같이 이런 곳에서 가장 작아지고 외로워할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너이기에 일부러 앞서 말했던 사실을 다시 알려주며 한껏 경직된 마음을 풀어준다.
상처받은 아이를 엄마가 달래주듯. 토닥토닥.
"뒤돌아서 나한테 인사 해주는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거. 동시에 가장 수치스러운거."
"..."
"....초라해. 알잖아."
나는 항상 날을 세웠다. 가공된 단단한 은빛 철이 아닌 오래되어 거무접접한 나무로 만들었다 해도 한없이 날카로웠다. 보고만 있어도 베여버릴 듯한 길다란 나무날들은 절대 남을 향하지 않았다. 지표로부터 수직으로 세워진 여러 개의 날들이 내 주위를 둘러싼다. 남들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기보단, 이쪽을 향하는 손가락질로부터 순전히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다 가끔은 자신이 세운 날에 손가락이 베여 흉이 질 때도 있었다. 상처가 나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도 치료하지 않는다. 상처 속에 박혀있던 작은 나무 가시에서 나온 세균들이 천천히 상처를 잠식하고, 끝내 살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다. 몸을 조직하던 근육이 수축하고 목과 턱으로 올라가 입마저도 제대로 열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야 그것이 파상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이 온 몸에 퍼져 그 자리에 누워 쉬이 일어날 생각조차 못한다. 예방만 잘 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제서야 깨닫고는 결국 또 자책한다.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외로움의 나락에 빠져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 버린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우물 밖은, 애석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주위를 둘러싸던 날들이 천천히 방향을 돌려 나를 향하게 한다. 그 속에서 또 몸을 웅크려 본다. 위험한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 강강술래의 주인공이 되어본다. 눈 앞에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위협적으로 지나간다.
날카로운 나무 날 한개, 손가락, 피, 파상풍, 고통, 개구리, 우물, 밤, 또 나무 날. 두려움에 울먹이다 문득 어떤 소리 하나를 듣는다. 시끄러운 잡음 속에서도 구별할 수 있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소리가 난 쪽을 찾아 고개를 돌리면 조금 더 뚜렷이 들려온다.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다가온다.
"김여주!"
"...어?"
그래, 너였다. 그 목소리.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미약한 한숨에 어깨가 움찔, 떨린다. 큰 손이 나의 이마에 잠깐 닿았다 떨어진다. 그 작은 움직임에 향기가 묻어난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니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웃음 끝에는 항상 봄이 스민다.
"안 초라해. 누가 그래."
"...."
"적어도 내 눈엔 아니야. 알았지?"
가늘고 길게 뻗은 손에는 물러섬이 없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잡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얇은 손가락. 뼈와 핏줄이 적절하게 도드라져 손목 까지 이어져 있는. 손톱마저 정갈한 그 섬섬옥수에 시선을 집중하다 그제서야 제 것이 생각났는지 무안하게 서 있는 짧고 굵은 손에 눈길을 돌렸다.
어느 하나 저 섬섬옥수와 닮은 구석이 없다.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두 손 중에서 결국 큰 손이 먼저 작은 손을 홱 잡는다.
호석은 내가 불안해할때면 항상 손을 잡았다. 나약한 마음씨를 가진 나에게 있어 그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람이 많을때의 경우는 달랐다. 절대로 남의 눈에 튀지 않고 싶었지만 결국 모두가 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왜 잡아."
"잡으라고 내민 건데."
"..."
"떡볶이 먹으러 갈래?"
출구 쪽으로 먼저 이끌며 넌지시 물어온다. 여전히 잡고 있는 손으로 수십 개의 눈동자들이 내리꽂힌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우리들의 마지막 퇴장은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끝났다. 오늘도 당혹감에 서려 발갛게 물든 내 얼굴은 숙여진 채 들 엄두조차 못했고 너는 늘 그랬듯이 모르쇠로 그 시선들을 걷어냈다.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저들의 반응은 뻔했다. 정호석 같은 친구는 나한테 있어 과분한 존재임을 저들끼리 지껄이며 또 껌 마냥 씹어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정호석 옆에 여자애 누구지, 여친?'
'몰라, 설마 여친이겠냐. 저 몸뚱아리 좀 봐.'
'정호석 두 명은 붙여놓은것 같네. 얼마나 많이 먹으면 저러냐.'
'미친새끼 조용히 말해ㅋㅋㅋ'
사람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미의 기준에 나는 결격이었다.
-
"누나 되게 핼쑥해졌어."
안주를 뒤적이다 말고 정수리 위로 지민의 꼬인 발음이 툭, 내리꽂힌다.
호석이 떠난 이후로도 끼니를 제때 챙겨먹은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기껏해 봤자 알바 중 남준이 사다 준 햄버거 세트로 근근히 며칠을 버티기도 했으니 자연히 살이 빠질 수 밖에.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는 여느 다른 회식 못지 않게 일반적이고 흔하게 진행되었다. 고깃집 한 켠에 자리잡아 술잔을 맞대며 인사가 오가는 방식. 늘 자리의 분위기는 호석이 주도했었다. 선배를 어려워하는 신입생조차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 정도의 친화력을 가지고선 소외감이 들지 않게끔 살뜰히 챙겨주곤 했으니. 그동안 내가 할 일은 그저 그의 옆에 우두커니 앉아 호석이 소개시켜주는 초면의 타인과 예의를 갖춘 인사 정도만 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호석이 없는 이 자리에 나는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알바가 끝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히 그가 떠나기 전 남겨두고 간 숙제같은 한 마디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미소에 스며 있었던 호석의 모습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
"저쪽 분위기가 잘 안맞는 것 같네요, 그쵸?"
바닥난 인내심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빠져나오자마자 정국이 건넨 첫 마디였다. 10분 전 까지만 해도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것을 본 것 같은데 말이다. 담소라는 안주를 곁들일 새도 없이 묵묵히 술잔만 들이켰더니 어느 정도는 취한 듯 기분이 몽롱했다. 저를 응시하는 시선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담벼락에 나란히 등을 기대었다.
편의점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흘러들었다. 속 갑갑한 어색함보단 정말로 할 말이 없어 굳이 입을 열지 않는 그런 분위기. 술이 들어가면 과한 체력소모를 금하라는 호석의 당부를 곱씹으며 아직까진 찬 바람을 얼굴에 맞대고 있었다.
"호석이 형은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처음 봤어요."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고 고개를 돌리니 달빛을 바라보는 정국의 옆선이 수려했다.
"원장 선생님이, 꼭 보고 싶은 아이가 하나 있다면서. 설득 끝에 형이 추는 춤을 보게 되었어요."
알코올을 핑계로 대기에는 늦어버린 거친 숨이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심장 박동이 가속 폐달을 밟기 시작했다.
"잊을 수가 없어요. 교습비를 받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제안도 마다않고 한 소녀에게 뛰어가던 뒷모습을."
떨렸다. 심장과 손과 눈꺼풀과 제 몸에 붙어있는 모든 것들이 쉬지않고 떨렸다.
잊을 리가. 잊을 수 있을 리가.
싸늘한 그 많은 시선들 위를 걸어다녀야 했던 그 고통스런 순간이 아찔하게 스쳐 지나갔다.
유려히 허공을 응시하던 그의 얼굴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떨리는 눈동자를 뚜렷이 응시했다.
"아름다운 춤을 보고서도, 상처받은 얼굴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만"
"여전히 아파하는 얼굴이네요."
멀건 눈물이 볼을 축축하게 적셨다. 희뿌연 시야 너머로 정국은 분명 웃고 있었다. 비웃음도, 능멸의 조소도 아닌 깨끗한 미소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곳을 한껏 찌른 그가 가증스러웠다.
"뭐하는 짓이야."
가라앉은 지민의 목소리. 싸늘한 표정으로 정국을 노려보다 주저앉은 어깨를 붙잡아 조심스레 일으켰다.
"남준이 형한테 연락 해 놨어요. 가요."
"..."
온 힘을 쥐어짜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도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눈물로 인해 가려진 풍경 속에서 희미해지는 정국의 윤곽과 함께 호석의 향기도 멀어져만 갔기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과거와 또 다시 마주해 버렸다.
아름다웠던 만큼, 아팠던.
-
'정호석 옆에 여자애 누구지, 여친?'
'몰라, 설마 여친이겠냐. 저 몸뚱아리 좀 봐.'
'정호석 두 명은 붙여놓은것 같네. 얼마나 많이 먹으면 저러냐.'
'미친새끼 조용히 말해ㅋㅋㅋ'
'야,'
'....'
'함부로 지껄이지마. 무례한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