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美
w.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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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엔 모두 꽃을 한 송이씩 품고 있으며, 그 꽃이 피는 시기가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청춘이라 부른다. 라고 누군가 했던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 싶다.
청춘. 만물이 푸른 봄철.
푸르디 푸른 세상 속 나는 늘 잿빛이었다. 사계절은 비로 물들었고, 암울하게 젖어 꽃이 필 여지조차 없었다. 10대의 마지막 잿빛을 흘려보냈던 그때 나는 그것이 내 청춘이자 숙명, 발아조차 되지 않은 자그마한 씨앗이라 생각했다.
나의 꽃은, 언제 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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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하자."
"....왜..."
집에서 나와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여지껏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기껏 한다는 말이 '그만하자' 라니.
최근 한달간 제대로 된 식사조차 엄두가 나질 않아 부쩍 핼쑥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일방적인 통보라기보단 그간의 정호석은 너무나도 차가웠기에 이런 식의 헤어짐이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정호석은 그 어떤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였고,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너무나도 차갑고, 아팠다.
"...."
"너 그런 말 할 사람 아니잖아. 갑자기 왜, 이유가 뭔데."
"없어."
"뭘 갑자기 그만둬, 우리 사귄적도 없잖아. 연락 하지 말라고?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
"유학 간다며. 남준이한테 들었어."
초지일관 고정되어있던 그의 눈동자가 그가 유학 소리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왜 남준에게만 얘기해 주었을까. 묻고 싶은 말들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것만 같았지만 꾹꾹 눌러담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차라리 성격이 어쨌니 행동이 이러니 하고 지적이라도 해 주길 바랬다. 속이라도 시원하게.
"..1년"
"지금 그것 때문에 여태껏 이랬던거야?유학 가는거 그거 나한테 숨기려고?"
"..."
"너, 그런 말 그렇게 쉽게 뱉으면 안되는거 알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러면 안되는거 알잖아.."
"미안해."
"이해할 수가 없어. 단 한 번도 넌 그런 모습 보인적 없었는데, 나한테 그 어떤 것도 감춘 적 없었는데... "
예고없이 흘러내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삶의 전부였던 유일한 사람이, 희망의 끈이 위태로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듯이 호석은 매몰차게 나를 내치려 하고 있었다. 본심은 그것이 아님을 일찍이 눈치챘건만 눈 앞의 그는 야속하게도 답지않은 행동을 한다.
"우리가 함께해 온 시간이 얼만데 1년이 대수야. 유학 가도 괜찮아, 몇 년이고 너를 응원해 줄 수 있어.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그러니까..."
울음기가 섞여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보다못한 호석이 조용히 다가와 뒤통수를 감싸 안아준다. 차갑게 뱉은 말과는 달리 그의 품은 한없이 따뜻했다. 늘 그랬듯이,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그의 손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여주야."
"...나 버리지만 말아줘....부탁이야.."
"안 버려, 못 버려. 정말 미안해, 미안..."
조용히 속삭여주던 목소리에도 물기가 서렸다.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먼 곳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엄마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각자의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면서 서로를 다독여주었다.
유년시절과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호석은 같은 나이의 또래만큼 밝으면서도 유독 성숙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마냥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나와는 달리 그는 파동조차 일지 않는 연못과도 같았다. 회색빛 인생 속에서도 밝은 곳에는 항상 호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표정으로.
"기다릴게. 하고싶었던 것들 다 하고 와. 가서 네 모든걸 펼치고 와."
"당분간은 남준이가 많이 챙겨줄거야. 얘기 해놨으니까 걱정말고."
붉은 눈가가 예쁘게도 접히며 웃어주었다. 결국 그도 마음은 쓰릴 것이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2월 말의 찬 공기가 공항 속에서 기승을 부렸다. 끝나지 않은 꽃샘추위에 두터운 코트를 입은 호석이 무언가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곧 작은 젤리 한 봉지를 꺼내 나의 볼에 착 갖다대었다.
"단 것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알았어."
"곧 개강하면 새 후배들 반갑게 맞이해줘. 너 무섭다고 소문났어, 후배들 사이에서."
실없는 농지기를 하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다 호석이 타게 될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양 손 가득 캐리어를 들고 뒤를 돌다 말고는 갑자기 이쪽으로 오더니 자신의 목도리를 풀고는 휑한 나의 목 언저리에 둘렀다.
한층 따뜻한 표정으로 시선이 나에게 머물기를 잠깐, 이내 딱 한 마디를 뱉고는 뒤돌아 멀어졌다. 근 한 달 만에 나눈 짧은 대화였지만 그마저도 소중했다.
예쁜 구슬을 꼭 쥐고 놓지 않는 소유욕 강한 아이처럼 지금까지 그렇게 호석을 제 옆에 둬야지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듯이, 미완성된 나를 벗어난 그의 뒷모습은 하염없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청춘을 찾길 바래 여주야.'
무채색의 길 속에서 봄을 찾으라니, 의미심장한 말에 반박을 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나의 청춘에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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헣흫 여러분 다짜고짜 신알신 울려서 놀라셨죠...?
네 저 맞습니다 리조트에요...
마지막 글 올린지도 거의 1년이 넘은 것 같은데
정신 못차린 글쓴이가 이렇게 새 작품 들고 와버렸네요
하하...맥락없는 등장 죄송합니다.....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