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
"사장님?"
"..."
"진짜 삐졌어요? 진짜로?"
"삐져? 누가?"
"에? 느가 삐져써여?(우물우물)"
귀가 소머즈급으로 밝은지 주방에서 조용히 나누던 대화를 엿듣고는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둘이네요.
"태형오빠 닌텐도 내려놓고 정국이 먹던거 내려놓고. 일은 제대로 못할망정 기승전 농땡이다 이거지?
소진이 반만 좀 닮아봐라, 둘보다 훨씬 늦게 들어왔는데 훨씬 착하고 어? 성실하고 일 잘하고!"
"걔 아직 출근 안했..."
"빨리 일하지 못할깟!!!!!"
"헤헹 정국아 가장~"
오늘도 어김없이 똥꼬발랄한 두 모습이 멀어지고 나서야 한껏 토라진 사장님의 얼굴을 다시 마주볼 수 있었어요.
아,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이구나. 좀처럼 화가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 같아요.
정초부터 웬 난리냐구요?
바야흐로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4수를 헌납한 끝에 따낸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그만 사장님한테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지 뭐에요.
그러고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말도 없었기에 당연히 사장님이 알고 있을 줄로만 알았네요.
그러니까, 시간을 돌려서 10분 전.
가게 오픈 시간을 몇 시간 남겨두고 사장님이 출근했을 때였어요.
"추운 아침...웬 파스타?"
"아 그거, 사장님 아침 안먹었으니까."
"오늘 아침 안 먹었단 소리 아무한테도 안했는데?"
"먹었어요?"
"아니."
"...."
"....아침부터 파스타 좋지. 어디서 샀어?"
"만들었는데요?"
"누가?"
"제가요."
"그래 잘 먹을...뭐? 누구?"
"저요, 나요. 나!"
"아니, 이걸 왜 니가 만들...심지어 맛있잖아."
"사장님도 참.... 자격증 딴지가 언젠데 아직도 실력을 의심하는지."
"뭔소리야, 너 자격증 땄어?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했는데요?"
"너 안했거든."
"했다니까요. 저한테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와 나 막 서운해지려 그래."
"안했어."
"했어요!! 분명 합격자 발표 난 그 당일날 전화로......"
[여보세요? 안 들려?]
"여, 여보세요."
[뭐야 목소리 들리네, 나 지금 쉬는시간이야. 목소리 들을겸 잠깐 전화했는데 바로 촬영 들어가야돼.]
"사장님! 저 양식 자격증 합격했,"
[오늘 촬영 늦어질거같으니까 퇴근하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알겠지?]
"..."
[김탄소? 내 말 듣고있어?]
"....네, 듣고있어요."
[뭐야, 여튼 집 들어가면 바로 문자해. 못 데려다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얼른 들어가요 촬영 늦으면 감독님 눈치 보여요."
[그래.]
"....안 했구나....."
"....뭐하냐 너."
"....."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사장님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을 오늘 한 번도 듣지 못한 것 같아요....
물론 말하지 못한 것은 제 탓이지만 그때 말할 기회를 놓친 건 고의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에휴,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니 사장님 대신 이번엔 호석오빠가 다가오네요.
"한숨 그렇게 쉬면 새해 복 달아난다. 무슨 일 있어?"
"오빠, 남자가 삐졌을 땐 어떻게 풀어줘야 해요?"
"왜, 너 뭐 잘못했어?"
"잘못한거....일단은 그렇다 칠게요."
"음, 일단 남자가 삐지면...칭찬을 해줘!"
"칭찬이요?"
"응. 예를 들면 오늘은 옷발이 좋네요~나 일하는 모습이 섹시하네요~ 이런거."
"...진짜 통하긴 하는거죠?"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는...."
"수단으로는?"
"호비 꿍꼬또, 기싱 꿍꼬또! 쀼쮸뀨쮸!"
"혀 깨물고 죽을께요 차라리..."
일단 해보라니까?! 아예 얼굴을 들이밀고 애교를 부리는 호석오빠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주었어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장난을 치니까 기분이 조금은 풀린 기분이네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호석오빠와 화를 푸는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하고 있었어요.
"사이 참 좋아 보인다? 누가 애인이고 누가 직장동료인지 구분이 안 되네.
이거 참. 방해했다면 미안한걸."
히익....!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서서는 아예 휴게실로 자리잡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장님이에요.
노닥거리지 말고 일이나 하라며 손만 휘젓고 사라져야할 사장님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말투와 표정과 뉘앙스에 호석오빠가 뭔가 눈치를 챘나봐요.
재빠르게 상황파악을 끝내고는 불안하게시리 음흉한 표정을 짓는 호석오빠 때문에 사장님의 못마땅한 한쪽 눈썹이 추켜세워지며 어쭈? 하는 표정이 되었어요.
부디 호석오빠가 눈치껏 꺼져 줘야 할텐데. 속으로 '제발'을 수 천 수 만번을 외치며 기도했지만 역시 신은 제 편이 아닌가 봅니다.
"....니네 뭐하냐?"
가녀린 그 팔뚝에 그렇게 힘은 드럽게 세서는
한 손으로 제 어깨를 확 끌어당겨 거의 품에 안기다시피 밀착시켜놓고는 제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호석오빠에요.
만약 몸에 힘을 주지 않았더라면 함께 넘어져 버리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질뻔 했다니까요!
"내가 말한 거 잊지마. 남자는 애교다!"
그러고는 저의 머리를 아아주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하고 사장님 들으란듯이 쩌렁쩌렁 외치고는 룰루랄라 일하러 사라지네요.
그리고 휴게실 안에는 저와 사장님 단 둘이 남아버렸구요.
.
.
.
저 인간이 진짜로 미쳤나!!!!!!!!!!!!!!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멀어져가는 저 망할 인간의 뒷모습도 그리 오래 보지 못했어요.
왜냐면 그 앞에 우주최강존엄 민군주 사장님이 굉장히 화가 난 상태로 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거든요.
"...."
"아...하하...방금 본 것들은 전부 오해구요...."
"..."
"음...그러니까...아! 사장님! 오늘 옷발 좀 좋으신거 같아요....! 슬랙스랑 위에 셔츠랑..."
"...."
"(정호석이개새끼) 아...니면...일하는 모습이 되게 섹시하신것 같아...요..?
아 그, 그래. 요섹남!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아...하하!!"
"...."
미동도 않는 돌부처에다가 칭찬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요.
눈 깜박임도 없이 저를 잡아먹을 듯하게 꽂히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망할 인간이 얘기한 최후의 수단이 떠올랐어요.
진짜 이것만큼은 안하려고 했건만.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기로 했어요. 아니기만 해 봐라..
"나...꿍꼬또 기싱 꿍꼬..ㄸ..ㅗ...."
"..."
"...쀼쮸뀨쮸..?"
와 진심 저 정도면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할 것 같아요. 죄명은 눈으로 폭행.
애교 때문인지 썩어있던 표정이 아예 적을 대하듯이 살기등등하게 바뀌어 버렸어요.
자, 이제 저는 저기 바깥에서 실실 쪼개고 있을 정호석의 목숨을 쪼개는 일만 남았네요!
그 전에 제 눈 앞의 두 눈에 쌍심지가 켜진 뿔난 군주님을 뚫을 수 있다면 말이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후의 수단인 애교까지 부렸건만 통하질 않으니 이젠 무섭다기보단 이유없는 깡이 생기는거 있죠?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제에요! 그래, 자격증 딴거 말 안한 건 제가 잘못했어요.
근데 이렇게까지 사람 막 무시하고 그래도 되는 거에요? 예????"
"뭐?"
"나 이거 발표뜨고 바로 사장님한테 전화했어요.
근데 사장님 바쁘다고 빨리 끊어야 한다는데 어느 누가 그 상황에서 얘기를 꺼내요?
막말로, 내 남자친구 겁~나게 잘나가서 가끔씩 보면 남자친구도 아닌것 같거든요.
요리 잘하지, 목소리 좋지, 옷도 잘 입지!"
"..."
"와 나 진짜 마음같아선 평생 나 혼자만 두고 보면서 살고 싶은데 왜 유명해져가지고는!!!
티비에 몇 번 출연하더니만 나도 안하는 화장을 하고 사람이 그냥 훈남이 됐어 아주?"
"..."
"요리산데 젊고 잘생겨가지고는 그러니까 여자한테 인기가 많지!
어디 가서 한번 씩 웃어주면 애어른 안가리고 껌뻑 죽더니만! 어디 그 예쁜얼굴 나한테 더 많이 보여주면 덧나요?"
"허...참."
"또...! 그리고 어...또...."
"또 뭐, 또 있어 애인자랑?"
"..."
...아....나 뭐라 씨부린거야....
순간 이성을 잃고 따발총처럼 뱉은 개소리가 나도 참 어이가 없네요.
서서히 돌아오는 너덜너덜한 제정신과 함께 어마무시한 창피함이 자리잡았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사장님은 아예 피식 웃고 있네요.
"아.....비웃을거면 차라리 크게 웃어요. 어디까지 쪽팔리나 보자..."
"싫은데?"
"그럼 화 풀던지...."
"어쭈, 반말?"
"....요...아! 맨날 호칭을 오빠라 부르라면서 이건 왜 안돼는데요!"
"너 그래서 나 오빠라 부르냐?"
"...아뇨."
"그게 내가 오늘 화 난 이유야. 알겠어?"
뭔 개소ㄹ...크흠!
하마터면 사장님한테 또 혼 날 뻔했네요.
애초부터 사장님을 오빠라 부른 적이 한번도 없는데 왜 굳이 오늘 심통인지.
표정을 보니까 이젠 딱히 화나 보이지도 않네요.
"장난치지 말고, 화 풀렸어요?"
"화 안났는데? 처음부터."
"시발 ...뭐라구요?"
"너 자격증 딴거 오늘 처음 알긴 했는데 화는 안났어. 그냥 좀 골려줄까 싶어서."
"...아"
"애교 잘 봤다. 귀신꿈 무서웠어?ㅋㅋㅋㅋ"
"...말 하지 마요...진짜 죽이고 싶으니까..."
"뭐야, 너 화났어?"
그래, 나 화 졸라게 난다 시발!!!!
똑같이 당해봐라 싶은 마음으로 한껏 토라진 티를 내며 휙 뒤돌았어요.
내 화는 얼마나 잘 풀어주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사장님을 속으로 씹었지요.
물론 그 어떤 수작도 받아주지 않을거란 결심과 함께.
..라는 저의 결심은 새해다짐마냥 3초만에 무너지고 말았어요.
뚜벅뚜벅 다가온 사장님이 다짜고짜 뒤에서 저를 안아버렸거든요.
다른 여자는 몰라도 일단 제 마음은 갈대인가 봅니다. 그것도 매우 연약한.
"오늘 이쁜데. 얼굴 좀 보자."
"....하지마요"
"말은 안했지만 너 아까 애교부릴때 귀여워서 미치는줄 알았어.
웃으면 작전실패인데 입꼬리 올라가는거 겨우 참았다고."
"..."
"그거 매일 해주면 안돼? 되게 행복할거 같은데. 막 수명이 늘어날것 같은 그런 애교랄까."
"내 수명도 생각 좀 해줄래요? 그거 두번 하면 나 이세상 사람 못될것 같아서."
"얘 봐, 진짜ㅋㅋㅋㅋㅋㅋ"
혼자서 실실 웃더니 제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그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는데
제가 녹아요, 안 녹아요?
이내 어깨를 돌려 자기를 마주치게 하고는 아주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봐 주네요.
그렇게 쳐다본다고 내가 화가 푸...풀릴...것....풀린 것 같네요.
"부탁이 있는데."
"뭐요."
"오빠 한번만 해주면 안돼?"
"싫은데요?"
.
"한번만, 응? 원래 처음이 어려워."
"그렇다고 내가 계속 그 호칭 쓸거란 착각 절대 사절입니다."
"알았거든."
"...윤기..오..."
"..."
참 나, 오빠소리 듣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세상에서 가장 기대된다는 얼굴로 저러고 있는지.
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오빠소리가 힘든건 나 자신이네요.
"윤기오빠..."
"뭐라고?"
"민윤기 오빠."
그 순간, 뒷덜미를 부드럽게 감싼 손길이 느껴질 새도 없이 순식간에 코앞에 사장님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어요.
입술을 가볍게 쪽, 하고는 그 가깝디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하네요.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움찔움찔 자꾸만 닿는것이 간지러워 참을수가 없어요.
"한번만 더 불러줄래?"
"...윤기오빠."
쪽, 또 한번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는 계속 코앞에서 웅얼웅얼.
지금 이 분위기가 너무 이상하고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다 못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인데 정작 그 원인제공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흡사 오빠소리를 듣고싶어 칭얼대는 애 같은 느낌이랄까.
"앞으로 오빠라 부를 때마다 이렇게 해줄꺼야."
"오빠라 안 부르면?"
쪽, 말캉한 촉감이 닿았다 떨어지고 상대편에서 무어라 말을 꺼낼 때 마다 입술에 얼핏얼핏 사장님의 입술이 스쳐 지나가요.
"계속 오빠라 부르게 될껄?"
"와 근데 치사하게 이 난리를 피워놓고 수습은 이거밖에 못한다 이겁니까? 내가 오늘 세운 공이 얼만데....칭찬에...애교에.."
"왜 더 해줘?"
"됐어요, 맥 풀려서 참 나...."
사장님의 가슴팍을 퍽 밀치고 일어나려는 찰나 잡혀버린 손목의 반동으로 오히려 몸이 휙 돌아갔고
그러자마자 순식간에 들어오는 입술이 달콤해 벗어날 수가 없네요.
그것보다 두 볼을 감싼 사장님의 큰 두 손이 정말 저를 미치게 만드는거 있죠.
유연하게 움직이면서도 눈은 끝까지 피하지 않은것이 또 좋아 배시시 웃어주었어요.
촉, 아까보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소리가 휴게실에 울려퍼지고 마주보는 두 얼굴에 붉은 홍조가 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땐
조금은 민망하면서도 수줍어 둘다 웃어버렸지요.
"끝나고 일 없는거 아니까 밥 먹으러 가자."
"참 나, 내가 없다고 얘기한적 있어요?"
"어 했어. 그러니까 가자."
"나 되게 쉬운여자네..."
"나한텐 그래도 돼."
"갈까, 일하러?"
"...네!"
"기다려, 그전에 정호석 이새끼 자르고 올께. 너 앞으로 얘랑 연 끊어라.
누굴 건드려 이 정신나간 놈이...."
아.
잊고 있었네요.
.
.
.
.
[올해의 신년 계획]
정호석 죽이기
사유: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고 새해떡국 많이 드셨어요?
여러분 말 안듣는 저는 이렇게 글 올리고 사라집니다 총총.....★
그럼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길!
아 참, 암호닉 신청은 받지 않으려구요...8-8
글도 잘 안쓰는데 뭐하러 받나 싶기도 하구....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주 만약에 새 글로 온다! 그때
암호닉 한번 싹 정리하고 다시 받도록 하겠습니다ㅠㅠㅠㅠㅠ
살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