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어느 오후
월간잡지 인터뷰로 촬영을 하러 자리를 비운 사장님 덕에 가게가 하루 쉬게 되었어요.
간만에 얻은 휴일에 늦잠도 좀 자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전화통화도 실컷 해야 하는데 말이죠.
"...하아."
"......."
"...둘 다 적당히 좀 하지?"
같잖은 표정으로 한마디 하니 그제서야 눈가 주변을 비비던 양파를 새빨간 대야 위에 내려놓아요.
사장님이 남겨놓고 간 어마무시한 양의 일 때문에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두가 나와 일을 하네요.
제발 둘이서 일하게 해달라는 태형오빠의 간청에 마지못해 정국이와 함께 산더미로 쌓인 양파 껍질을 까라고 시켰지요.
잘 하겠거니 싶었지만 오히려 조용한 것이 불안해 주방에서 소진이와 감자껍질 까던 일도 제쳐두고 보러 왔더니
역시나 저러고 있네요.
"양파 겁나 매워. 아오! 나올 뻔했는데."
"여튼 눈물은 제가 먼저 흘렸으니까 이긴겁니다?"
쓸데없는 내기까지 걸었는지 승자의 웃음을 짓던 정국이 자리를 털고는 유유히 주방으로 사라져요.
저럴꺼면 왜 둘이 붙여달랬는지.
아련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형오빠가 촉촉한 눈가를 소매로 닦고는 아직도 한가득인 양파더미를 보며 한숨을 쉬어요.
다시 심기일전하려는듯 양파를 집고는 다시 까기 시작하네요.
조금은 불쌍해 보여 옆에서 함께 일을 도와주었어요.
"뭘 갖다줘도 이렇게 잘 노니 참..조기퇴근은 글렀네요."
"해 다 지는데...진짜 집에 안 보내 줄꺼야? 진짜로??"
"반 이상은 해치우고 그런소리 좀 하죠? 어우 근데 양파는 또 왜이리 매운거야.."
"너 뭐하냐?"
시작한지 몇 분도 채 안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를 본 태형오빠가 급히 제 손에서 양파를 빼앗아 가네요.
"양파를 깔때는 뿌리를 제거하면 안돼. 여길 자르면 매운것들이 막 나와서 질질 짜는 거라고."
"쿨쩍, 그거 알면서 왜 정국이랑 내기할땐 잘랐는데요?"
"페어플레이 모르냐? 야 그리고 거기서 이 방법 쓰면 절대 걔 못 이겨. 눈물이 안 나는데!"
"올, 똑똑해 보여요."
"이래봬도 10년차 요리사."
새로이 양파를 하나 건네받아 태형오빠가 가르쳐준 대로 양파를 까니 훨씬 나은 듯 하네요.
그렇게 막 집중하려는 찰나 요란스럽게 문이 열리고 누가 뛰어와요.
"오늘 영업 안ㅎ...엥 언니?"
"안녕!"
손님이 잘못 들어온 줄 알았는데 사장님 사촌언니네요. 배우 민아영.
지난번 사장님과의 오해가 풀린 후에 한번 만났었는데 티비 속의 도도한 여배우와는 달리 옆집 언니같은 느낌이에요.
어딘가 모르게 사장님과 닮았는데 좀 더 활발한 느낌?
한창 바쁠텐데 웬일인가 싶어 조금은 의아하게 바라보니 상큼한 인사와 함께 저를 쌩 지나쳐요.
"태형아아아~~~~~~~~"
"어이쿠,"
"언제봐도 잘생겼어 우리 태형이, 잘 지냈어? 어머 얘 봐.
너 살 빠졌지!"
네, 맞아요. 언니는 태형오빠를 아주 대놓고 좋아한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인사불성하고는 다짜고짜 달려가 태형오빠를 덮쳐요.
태형오빠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피하구요.
그 뒤로 반가운 얼굴이 하나 더 보이네요.
"사장님! 뭘 또 이렇게 바리바리 사왔어요?"
"뭐야 다 있었네?"
"저것들 다 하기 전까진 집에 갈 생각 말라고 했잖아요."
"..그랬나?"
"까먹었단말 하지마요. 열심히 일한거 섭섭해지니까..
오늘은 웬일로 언니랑 같이 왔대요?"
"전화왔어. 배고프니까 밥 해달라고."
"민윤기!!!!!!!!!나 배고파!!!!!!!!!"
태형오빠 옆에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소리를 질러요.
가게에 울려퍼지는 우렁찬 여배우의 포효에 놀란 정국이와 소진이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어요.
정국이는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라 익숙한듯 눈인사를 했지만
그 옆의 소진이는 예상치 못한 워너비와의 만남에 동공이 열심히 지진을 일으키고 있네요.
"정국이 안녕. 옆에는 누구야?"
"언니 저번에 여기 들렀다 간 뒤로 얼마 안돼서 새로 들어왔어요. 그거 알아요?
쟤 언니 완전 짱 팬이야."
"어머, 고마워라. 여기서 유일하게 내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네. 이름이 뭐에요?"
전, 전소진이요. 켁! 콜록!
사레가 들렸는지 숨도 못 쉬고 기침하다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마는 소진이에게 놀란 정국이가 급히 물을 떠다 주었어요.
안절부절 못 하는 표정으로 등도 두드려 주고 괜찮아? 하고 걱정스레 물어봐주네요.
"저 둘이 보기 좋네. 사귀는 거야?"
"곧 그럴거에요. 잠깐만...쟤 너무 세게 때리는거 아냐..? 아프겠다.."
"정국이 걔 아냐? 한때 너 좋아했던."
"언니 쉿..! 소진이 들으면 큰일나요.."
"이야. 나였으면 민윤기 같은놈 보단 정국이 선택한다. 잘생겼지. 착하지. 봐! 저렇게 자상하지."
"나한테 거절당하고 저렇게 바뀐거에요. 과거의 정국이는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니었어."
"민윤기 너한테 잘해줘? 워낙 표현을 안하는 놈이라 고생깨나 할텐데."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또."
"이게 누나한테."
"누나는 무슨. 4개월 차이 주제에. 빨리 가서 장 본것들 냉장고 넣지?"
"연예인한테 명령질? 많이 컸다."
"어오, 저 숨만 쉬면 연예인 타령이야 아주. 여긴 내 음식점이고 난 셰프야. 밥 안 먹을꺼야? 빨리 안 가?"
"밉상이야 진짜."
몇 마디 대치 끝에 마지못한 언니가 자리를 떠나네요.
신경전으로 쓸데없는 체력을 썼다는 듯이 툴툴대다가도 갑자기 휙 뒤돌아서는 저에게 훅 다가와요.
"야."
"...녜?"
두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큰 손으로 두 뺨을 감싸고는 중얼거려요.
"뭐가 이뻐서 표현을 한다고."
쪽, 하고 입술에 말캉한 것이 닿았다 떨어져요.
말은 그렇게 해도 마주친 눈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고요.
이럴때만 빠른 상황파악능력에 귀가 새빨개져 버리고 말았네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니 위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요.
널찍한 품에 저를 가두고는 조용히 읊조리네요.
"양파는 빨간거 말고 파란 대야에 들어있는 거 까랬는데."
"..."
"다시 해야겠네?"
아..
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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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후~ 올리고 신의 직장 보러 갑니다~
호도가~지미나~기다료~~~~~~~
아 참!
내일부터는 암호닉을 다시 받으려구요.
암호닉 신청은 암호닉 신청방으로!!
그롬 모두들 조은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