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도대체 얼마나 들이부었는지 무거워진 눈이 떠지질 않아요.
대학시절 엠티이후로 그렇게 미친듯이 마셔본적이 없는것 같은데 말이죠.
오른손을 들어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려는데 어디선가 손이 나타나 움직이는 제 손을 잡아 내리고
꿈인가 싶어 이번엔 왼손을 들어 눈가에 갖다대니 눈이 있어야 할 얼굴에 다른 무언가 만져지네요.
더듬더듬, 촉감으로는 사람 손인것 같기도 하고.
잡아서 휙 던지니 확 밝아진 시야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뻔 했어요.
"잘 자더라."
"..."
꿈뻑, 꾸움뻑
눈을 감았다 떠도 사라지지 않는걸 보니 꽤나 깊은 꿈인가봐요.
그러지 않고서야 사장님과 제가 한 침대에 같이 누워있을리가 없거든요.
"어어 또 눈 감는다 자지마, 일어나."
"....헐"
부드럽게 얼굴을 감싸주는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그제서야 꿈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지요.
시야를 꽉 채운 사장님의 초초근접한 얼굴 뒤로 얼핏 보이는 벽지가 칙칙한 우리집과는 다른 무늬인것을 알아차렸을땐
"...사장님? 진짜 사장님이에요??"
"잠 덜깬거봐ㅋㅋㅋㅋ 사진감이다 이건."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을 꺼내는 손을 다급하게 잡으니 낄낄 웃다가도 이마에 쪽, 하고 말캉한 것이 닿았다 떨어져요.
그러고는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표정으로 눈을 맞춰주네요.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뻔뻔하게 거짓말 쳐 놓고는 다른여자 만났다기엔 죄책감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양다리를 걸쳤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기보단 뭔데 저렇게 당당하지 싶은 의구심이 들었어요.
양반이 될 성격은 아닌지라 당장이라도 캐묻고 싶은 질문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섣부를 판단을 내리기엔 너무 이른듯해 일단 목구멍으로 삼켰지요.
"무슨 생각해? 오랜만에 얼굴 제대로 보는데 반갑지도 않냐."
"티비에서 주구장창 봐서 딱히 오랜만인것도 아닌데요 뭐."
"그래서 나 없다고 정호석이랑 술이나 퍼마시고. 그치?"
"..."
"집에 들어가면 문자하랬는데 열두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길래 납치 당한줄 알았다.
전화해서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아."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어요.
새벽이 되도록 술을 마시느라 연락이 없기에 전화를 걸어 만취한 여자친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는 그런 레퍼토리.
가끔씩 휴대폰을 만지다 보면 그런 썰들이 올라와 그저 이런 일도 다 있나 싶어 웃고 넘겼던 기억밖엔 없었는데 말이죠.
살다보니 이런 일도 겪는구나 내가.
"나 뭐 실수 했어요? 술김에 잘못한거 없어요?"
"실수? 흠, 알려주기 싫은데."
"...했구나."
"글쎄?"
"나 어젯밤에 무슨짓 했어요? 장난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
"너 뭐 숨기는거 있냐? 왜 그렇게 불안해해. 왜, 술김에 확 불어버렸을까봐? 그게 궁금해?"
"뭐라구요?"
울컥,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것이 치미는듯 했어요.
여자친구를 속여서까지 다른 여자를 만나고는 그 때문에 화가난 애인이 술을 마신걸로 핀잔을 주는걸로 모자라 의심까지 하다니.
저는 그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기 위해 술김에 속상한 마음 사장님께 불어버리지나 않았을까 노심초사해서 꺼낸 말이었는데 말이죠.
이유 없이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니 무심코 던진 농담에 제 표정이 좋지 않은것을 캐치해낸 사장님이 제 손목을 휙 잡아챘어요.
"왜그래 갑자기. 비밀 들켰어?"
"...이거 놔요."
"숨기는거 있네. 눈썹 꿈틀거린다."
"뭐하는 여자에요? 저한테 거짓말까지 치고 만날 정도면 각별한 사이인것 같은데."
"..."
"숨기는거 있네요. 눈썹 꿈틀거리는거 보니."
"일이야. 나중에 얘기해."
"...허."
곤두박질치는 기분에 손목을 거칠게 뿌리치고 급히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왔어요.
쾅, 소리나게 문을 닫아주는것도 잊지 않구요.
무슨 변명을 하던 들어줄 자신은 있었는데 나중에 얘기하자니.
사람도 없고, 구구절절 얘기 늘어놓으려면 적절한 타이밍은 그때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봄기운을 어느정도 품은 쌀쌀한 바람이 머리를 식혀주었어요.
그러나 그마저도 재수없게 느껴져 쿵쾅거리며 발걸음을 옮겼지요.
집으로 돌아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 결국 갈 곳이라고는 딱 한곳밖에 없네요.
짜증나. 거칠게 머리를 한번 헤집고는 결국 그 곳으로 향했어요.
-
"누나, 이거."
"어 땡큐, 근데 이게 뭐야?"
"몰라요, 사장님이 전해 달라는데요?"
"..."
흘끔, 고개를 돌리니 주방 한쪽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쭈뼛쭈뼛 그에게 다가가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네요.
저게 연예인인지 요리사인지.
살벌하게 노려보다 정국이가 건네준 쪽지를 휙 펼쳤어요.
[저녁에 시간 비워놔. 밥이나 먹자.]
그의 성격상 절대로 예쁜말은 할 줄 몰라 그냥 그의 방식대로 뱉고 보는 사장님이에요.
상대방이 자신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험한 말을 툭툭 던지거든요.
어김없이 자기 할 말만 적어놓은 쪽지를 보고 콧방귀를 흥 뀌며 꾸깃꾸깃 구기고는 쓰레기통 대신 호주머니에 넣었어요.
"싸웠어요, 사장님이랑?"
"정국아, 조만간 나 차일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너무 잘나가서 하루하루가 위태롭네. 주변 여자들이 다들 삐까뻔쩍해서 말이지.."
"차이면 나한테 와요. 다시한번 생각은 해 볼께."
"난 이제 늙어서 못쓴다. 저 아이한테 신경이나 써."
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따라 정국이가 고개를 돌리니
알맞은 타이밍에 주문이 적힌 쪽지를 들고 총총 주방으로 향하다가도 정국이와 눈이 마주쳐 흠칫 놀라고 마네요.
쟤 아무래도 너랑 운명인거 같아, 하며 그녀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펼쳐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니 우물쭈물 다가와요.
"소진아, 너 그 주문 받아적은 쪽지좀 줘볼래?"
"예?! 이, 이거요?"
이걸 왜..
말끝을 흐리며 긴장한 듯이 내미는 쪽지를 받아들고는 보여주니 허, 하고 헛웃음을 짓는 정국이에요.
"아 이게 언제적 얘긴데요."
"한때 어찌나 틀려오던지. 드디어 고쳤나 싶었는데 이번엔 얘가 이러네."
[치킨 리즈토]
"어...어...왜요...? 뭐 잘못된거 있어요..??"
"얘 봐ㅋㅋㅋㅋㅋ"
"자 그동안 이랬던 너를 봐온 내 마음을 알겠지? 그런 의미에서 정국이 네가 좀 가르쳐줘.
리조트로 적어오라 그러면 가만 안둔다."
"네? 네?!?!! 잠시만요 언니.."
귀끝까지 새빨개져서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소진에게 입모양으로 화이팅, 하고 뻐끔거려 주었어요.
정국이의 표정을 보니까 싫지만도 않은 모양이에요.
"자 이제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게 자리까지 마련해줬으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이쪽 커플은 지금 싸워서 분위기 안 좋거든."
주문 마저 하러가, 소진을 돌려보낸 정국이 나가려다 말고 휙 뒤돌아 빤히 쳐다보네요.
뭐, 삐딱하게 물으니 픽 웃어요.
"누나,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닮는대요."
"그래. 너도 소진이도 참 서로 닮았다. 한결같이 메뉴 틀려오는거 보면."
"아이 그거 말고..!"
"닮았어요, 두 사람."
"..."
가, 가 빨리 꺼져.
웃으며 사라지는 정국이를 바라보다 다시한번 곱씹어 보았어요.
닮았다고? 사장님과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장님을 만난 이후로 저에게도 변화가 생긴듯해요.
예전엔 귀찮은 일이 있어도 억지로 먼저 해치웠지만 지금은 만사가 귀찮아져 늘어져 있는 날이 많아졌구요.
칭찬에 인색해지고, 또 이유없이 틱틱대는 날도 많아지고.
요즘들어 급격히 식욕도 떨어지고 이유없이 머리가 지끈거리는듯한 느낌도 들고.
전체적으로 사람이 허약해진것 같네요.
닮은것 같기는 하다만,
....좋은거에요 이거?
+)
여전히 갈등은 풀리지 않은채 미궁속으로...
는 그냥 제가 잘못 끊은거. 껄껄
아 참 여러분! 공지사항이 있어요.
나중에 글 올릴꺼지만 이제 암호닉 신청을 그만 받으려고 합니다 8_8
넉넉하게 오늘 자정 12시까지만 받고 더이상 받지 않을려구요..
네 그냥 그렇다구요. 좋은하루 되세요 사랑합니다 ♥
더보기(스포주의, 싫으신 분들은 안보셔도 돼요.) |
지난화 댓글을 보니까 민아영 민윤기 가족이나 사촌관계 아니냐고 한결같이 그러시더라구요. 설마 그러친 않겠죠 자까님?!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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