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깨어났지만 어제의 술은 오늘의 제게 숙취를 남겼다, 머리가 어질어질 아픈 게 딱 죽기 전이였다. 겨우 한 쪽 눈만 떠 핸드폰을 들여다 보자 오전 11시였다, 많이도 잤네 전정국. 대충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속 삼다수를 꺼내 들었다, 먹다 남은 거지만 뭐.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신 물에 그나마 살 거 같았다, 갈증도 어느 정도 해결 됐고 이제 해결 해야 할 것은 제게서 나는 술 냄새였다. 잘 개어 놓은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물에 몸을 풀고 싶었다. 그래야 좀 살만 할테니.
"어, 아 현주야."
욕실에서 나오자 제 핸드폰에 떠 있는 현주의 이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꽤나 긴 신호음이 끝이나고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내가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알아? 헤어지자고 말 하고 전화 끊음 어떡해!' 전화기 넘어 잔뜩 화가난 그녀의 목소리가 제 귀를 아프게 찔렀다. 제가 술에 취해 뱉은 말이였지만 진심였다. 이미 제 맘이 아니라는데 뭐라 하겠는가, 대충 대답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제 길었던 1년의 연애가 이렇게 끝이 났다. 남들은 헤어지면 맘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데 저는 오히려 홀가분 했다. 자유의 몸이 된 듯. 침대에 대충 전화기를 던져 두고 제가 왕창 사두었던 사발면을 꺼냈다, 김치 사발면에 대충 물을 붓고 티비를 틀었다. 니가 좋아한다던 배우가 나오는 영화였다, 이름이 뭐더라.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 다 익은 라면을 한 입 물었다. 이제야 좀 사람이 된 듯 했다, 오늘은 다시 네게 제 감정을 이야기 해야지. 대충 먹은 라면을 식탁 한 켠으로 밀어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한숨 자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여름과 가을의 차이 : 여름 이야기
어젠 지민을 불러 놓고 저 혼자 술을 왕창 마셨다, 대충 현주와의 데이트를 마무리 하고 늘 저와 지민이 만나던 포차에 자리를 잡고 깡소주를 마셨다. 오늘따라 더 쓰냐 어째. 저 혼자 소주 한 병을 다 먹을 때 쯤 지민에 포차에 도착 했다, 녀석은 홀로 한 병을 다 마신 저에 어쩐 일이냐며 자연스레 오뎅탕을 주문했다. 닭발을 잘 먹지 않는 탄소가 자주 시키던 메뉴에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야, 지민아. 막 다른 남자애랑 웃고 같이 밥 먹는 게 짜증나면 이거 좋아 하는거냐?"
제 물음에 지민이 제 앞에 놓인 김치를 먹다 입을 벌리고 화를 냈다, 그덕에 저는 지민이 실컷 씹던 김치를 구경 해야 했지만 말이다. '왜, 현주 바람피냐? 완전 미쳤네. 좋아하니까 당연히 그런 거 짜증나고 싫은 거 아냐.' 라고 말 해오는 지민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는 거라고, 이런 맘이 생길거라 생각도 못 한 제게는 헛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2달 쯔음 됐을까. 저를 좋아한다며 쫓아 다니는 한 학생에 처음엔 별로였다. 짜증도 나고 귀찮았으니까 싫다 했던 제가 어느 새 그 애와 친해 진 것을 안 날은 저도 제 모습에 놀랐다, 그렇게 친해지니 더 여자로 들어 오지 않았다. 그냥,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편하고 편한 친구, 딱 그 관계였다. 제게 너는. 그래서 가끔 제가 좋다며 고백하는 너를 모른 척 했다. 나는 지금으로 만족하니까, 그렇게 1년을 보냈다. 탄소의 후배라며 제게 아는 척을 해오는 현주에 저도 모르게 끌렸다, 너도 이래서 나를 쫓아 다니는 걸까 라며 너를 생각하는 척 하며 제 생각만 했다. 함께 과 회식에서 술을 마셨고 현주와 함께 귀가 했다, 눈을 뜨니 제 자취방에서 다 벗고 제 품에 안긴 현주에 어제 일이 희미하게 생각났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다. 현주와 함께한 시간이 늘어 날 수록 저는 네게 의지 했다, 현주는 뭐를 좋아하고 뭘 싫어 하는지. 이제 와 생각하면 저를 좋아하는 네게 가혹하고 못 쓸 짓이였다. 무심코 생각 났다, 제가 현주에 대해 물은지 3번째 되던 날 코 끝이 빨개져 울던 니가.
"전정국, 너는 너 밖에 몰라. 이 나쁜 새'끼야."
현주의 생일을 앞두고 뭐를 선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오늘 이 포차로 불러내 꼬치꼬치 묻자 너는 술기운인지, 아님 뭐인지 모를 정도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너는 술에 취하지 않았던 거 같다. 제가 화가 났던 것이겠지, 대충 울던 너를 달래고 제게 온 현주의 전화에 우리가 술을 먹던 테이블에 5만원을 두고 나왔을 거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오랜만에 밀려온 너와의 기억에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쓰다, 너도 그 날 오늘의 나처럼 이리 소주가 쓰고 써 미칠 것 같았을까. 괜히 마음 한 곳이 공허하고 아렸다. 대충 지민에게 이만 끝내자며 테이블에 너를 울린 그날 처럼 5만원을 두고 포차를 나왔다. 비틀거리는 제 걸음이 그 날의 너도 이랬을까 하는 의문을 제게 안겼다. 차가운 밤 바람에 어느 새 술은 다 깼다, 비틀거리며 걷던 제 다리가 안내 한 곳은 너의 집 앞이였다. 제가 이런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잠시 불이 꺼진 네 집 앞에 앉아 너를 기다렸다. 기다린지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 보이는 너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나 제 엉덩이를 털었다, 가까워 진 것도 잠시. 녀석과 행복히 키스하는 니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잘못 본 것이라고, 이내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 가는 너에 용감히 말을 걸었다.
"탄소야."
제 부름에 너는 놀란 듯 저를 봤다, 무슨 용기인지 제 입을 통해 헤어지라는 말이 나왔다. 제가 말 했지만 놀랐다. 그래도 괜찮다, 니가 나의 사람이 된다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런 제 모습에 너는 한숨을 쉬고 저를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도 없다. 다 깬 술에 다시 취한 듯 머리가 더 아팠고 속이 쓰렸으니 말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뭐였더라.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너와 처음 만난 그 날을 떠올렸다, 5월 쯔음 여름도 봄도 아닌 그 계절 너는 제게 다가 왔다.
"저, 안녕? 나 그…."
니가 우물쭈물 저를 보고 말도 못 걸자 옆에 화려하게 입고 있던 태형이 입을 열었다, 사진학과 김탄소. '우리 같이 놀래?' 조심스레 묻는 너에 싫다고 답 했다. 제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건지 뭔지. 그냥 싫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형이란 남자가 제가 말 했지 않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였다, 저와 너의. 그 후로도 너는 제게 꾸준히 말을 걸어 왔다. 그런 너에 결국 저는 너에게 잘 대하기로 마음 먹었다, 친구로 말이지. 그렇게 몇 번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어느 새 제게 너는 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너에게 내가 그러길 바라며, 같은 친구이길 바라는 이기적인 맘으로 말이다. 이런저런 옛 생각은 저를 괴롭힐 뿐이였다, 대충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은 준비하고 저는 학교에 도착했다. 저 멀리 보이는 태형에 다가가 먼저 인사를 했다, 놀란 듯 저를 보는 태형에 너에 대해 묻자 넌 고개를 저었다.
"어디 있는지 몰라, 어제 휴학계 냈다던데?"
어깨를 으쓱이며 답 하는 너에 그 김남준이라는 녀석에게 물어야 하나 고민했다, 왜 휴학계 까지 낸 걸까. 자체 휴강을 하고 제 방에 틀어 박혀 캔 맥주를 꺼내 제 입에 들이 부었다. 시원한데 시원 하지 않다. 좋아 하지 않는데 좋아한다, 뭐라 말 해야할까. 제게 너는 어떤 사람이였던 걸까. 단순한 친구를 넘어서 제게 뭐였을까, 답답해 또 맥주를 꺼내 제 입에 들이 부었다. 차갑고 시원한데 답답하고 덥다. 저는 이런 제가 싫다.
니가 휴학계를 낸 시점으로부터 1년이 지났다, 저는 3학년이 되었고 너는 학교에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지만 않으면 다행이였다. 너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이제 어디서 너를 찾아야 할까. 아직도 1이 사라지지 않은 네게 보낸 제 카톡에 고갤 저었다, 마음이 아렸다. 제게 너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였는 명확히 설명 할 수 있어진 지금 너는 제 곁에 없었다. 다시 작년처럼 여름과 가을의 그 애매한 경계의 계절에 저는 작년과 달리 너를 잃은 후였다. 니가 휴학 했다는 말에 저도 휴학을 할까 고민 했다, 허나 이내 헛된 제 욕심이라는 생각에 학교를 다녔다. 제가 너를 따라 멈추는 것은 제 욕심이니까. 별 생각 없이 강의를 듣고 집으로 향하던 중 제게 다가온 목소리에 저는 걸음을 멈췄다. 너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에 혹시 너일까 싶어 뒤돌자 너는 없었다. 너를 닮은 사람만 있을 뿐.
"저, 안녕…?"
데자뷰였다, 너와 내가 처음 만난 날 처럼. 너를 닮은 예쁜 두 눈. 수줍어 붉어진 두 볼, 너를 떠 올리게 하는 모든 요인을 가진 사람이였다. 이름이 뭐라더라, 사진영상학과 송소원이라 했던 가. 너를 떠 올리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5월로 돌아간 듯 했다. 그리고 저는 홀로 생각에 빠졌다, 결론은 너를 잊는다는 것이지만. 이제는 잊어 보려 한다. 안녕, 잘 가 나의 여름아. 즐거웠어, 아프게 해 미안해. 내 여름아, 이제 여름은 여름대로 놓아주려 한다. 여름 덕에 즐겁고 뜨거운 감정에 살았으나 똑같이 여름이였던 저는 몰랐다. 무던히 이제는 여름을 보내 주려한다, 고맙고 고맙다. 제 여름이였던 너에게 인사를 고한다. 잘 가 나의 여름. 그리고 인사를 하며 추가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제 첫 여름이 너라 다행이다, 정말로. 한 때 제 여자친구였던 현주는 제게 여름도 가을도 아니였다. 제게 여름은. 오로직 너였다.
김탄소, 그 이름이 제 여름이였고 제 청춘의 전부였다. 허나 이젠 욕심 가득한 제 세상에서 자유로운 세상으로 너를 놓아 주려 한다.
안녕, 여름.
안녕, 나의 여름.
이젠 정말 안녕, 내 여름아.
안녕하세요,斐 입니다.
엉성하고 빨리 달리던 여름과 가을의 차이가 上, 中, 下 세 편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고 말씀 드렸던 것과 조금 다르지만 외전으로 찾아 왔습니다.
첫 외전 주인공은 여름인 정국이였습니다, 많이 짧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제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이 글을 통해 전달 되길 바랍니다.
탄소에게 여름이 정국이였듯, 정국의 여름은 탄소다 라는 말을 하며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누군가의 여름이 되는 일은 가슴 벅차고 설레이기도 하지만
아플 수 밖에 없음을. 이 사회의 모든 여름과 가을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여름아, 안녕. 이라는 말을 하며 떠나려 합니다.
정국의 여름, 탄소의 여름.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까요. 의문과 함께 여름은 떠나길.
암호닉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사람에 감사 또 감사 드립니다. 여름이여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