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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의 짠내를 더 깊게 느끼고 싶으시다면
브금을 함께하시길 추천합니다.
운다. 변백현이.
소리도 못내고 눈물만 뚝뚝 흘려대고 있었다. 목숨처럼 내 옷소매를 붙잡고.
바닥으로 변백현의 눈물이 투둑-떨어지는 소리가 비처럼 들려왔다. 쉬지않고.
그러다가 얼마전 예쁘게 염색한 새까만 머리칼이 다 흐트러지도록 고개를 세게 내젓는다.
"ㅇ..아니..싫어..싫어..경수야...싫어...아니야.."
이제는 내팔을 두손으로 붙잡고 아이처럼 온몸을 흔들어댄다. 발을 구르면서.
"..경수야...싫어..아니야..안할래...경수야..."
그러다가 그자리 그대로 주저 앉아 내다리에 얼굴을 묻고 크게 울기 시작했다.
"가지마..흡...흑..가지마...경수야..나두고 가지마...나 어떡해...?뭐해..? 니가 하라는대로 다할게...경수야...경수야..."
백현이가 내다리에 매달려 악을 써 우는대로 내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그런 백현이의 반질한 머리칼 위로 손을 얹었다. 손길을 느낀 백현이가 내손에 매달리듯 나를 올려다봤다. 그 와중에도 백현이의 귓볼로 눈물이 맺혀 떨어지는게 보였다.
"백현아."
"응..응...경수야..."
"간다고 안했어."
"안가..?나두고 안가 경수야..?"
"그냥.."
"잘할게 경수야...내가 더 잘할게..응?"
"잠깐 쉬자고 한거야."
지난날, 일본에서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너도 내게 매달려 이렇게 울었었다. 내가 없던 잠깐의 시간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잠깐의 순간마저 널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백현아. 너에게 나라는 의미가 나는 점점 버겁고 무겁다.
지금 내가 가진 분노는 너를 향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향하고 있다. 날 이렇게나 생각하는 너를 쫓지못하고 항상 이렇게 뒤쳐지는 나를 향한 분노. 왜 널 더 사랑하지 못할까. 왜 널 더 생각하지 못할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백현아. 난 도저히 네가 날 얼만큼이나 사랑하고 있는지 가늠도 되지않는다. 내가 이만큼 널 쫓아갔다고 생각하면 넌 이미 저멀리 먼저 가 나를 당기고 있다. 받아내고 받아내고..또 받아내고. 쉼없이 널 사랑해내고 너의 사랑을 받아내고.
널 더 사랑하고 싶다. 네가 주는만큼 나도 너에게 주고싶다. 나도 널 죽도록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백현이 네가 잠시만 쉬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더디게라도 너의 사랑에 가까워질때까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그자리에 멈춰서 나를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너를 떠나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널 이렇게나 나도 사랑하는데.
백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제가 막무가내로 굴때마다 경수에게 저를 회유하라 부탁하던 사람. 백현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주체없이 흔들리는 손짓으로 전화번호를 찾으면서도 경수의 옷자락은 놓지 않았다. 이 옷자락을 놓는다면 경수가 저를 두고 훌쩍 갈 것만 같았다.
간결히 전화를 받는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은 누구에게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경수가 가지 못하게.
"...형..."
-..뭐?
"형...형이 경수한테 뭐라고 했어..?"
-변백현. 너 왜이래.
"형...내가 잘못했어..나 이제 형한테 너라고도 안하고 스케쥴 펑크도 안내고 다 열심히 할게..."
-울지말고 똑바로 말해. 너 진짜 왜그래.
"그러니까..."
-백현아. 변백현. 너 어디야 집이야?
"경수한테...경수한테 나 두고 가지말라고 말 좀 해줘...형이 말 좀 해줘..."
-........
"제발...형...응?..제발..."
-경수가 뭐라고 했는데 이래. 어?
"몰라...모르겠어...나 아무것도 몰라 형...근데...그런데 있잖아.."
-.....
"경수가 나..이제 안좋아하는것 같아...경수가 이제 나 싫어하면 어떡해 형..."
-...백현아. 그만 울고 진정해. 진정하고 경수 좀 바꿔봐. 옆에 있지.
"경수가..나 싫어해도 괜찮아...난 다 참을 수 있어...근데 우리 경수가 싫은 사람 옆에 있으면 힘드니까...응?..형.."
-.......
"빨리...빨리..경수한테 말해줘....나두고 가지 말라고...빨리...형...제발..."
-....알았어. 형이 가지말라고 경수한테 말할테니까 바꿔줘. 그만 울고...
백현은 머뭇대며 경수에게 제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때까지 백현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경수가 가만히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네."
-...경수야.
"......."
-..잠깐 나 좀 볼래.
"...아니요."
-잠깐이면 돼. 물론 이건 너희끼리의 문제겠지만...
"......"
-내가 해줄 얘기가 있어서 그래. 남의 연애사에 끼는건 질색이지만 방금 너도 들었잖아.
"......"
-변백현이 형이라네 나보고.
".....지금...못나가요."
-알아. 너 지금 나오면 변백현 기절해. 내가 갈게. 문만 열어줘.
"..그러세요."
경수는 아직까지 제다리를 붙잡고 있는 백현의 손을 떼내고 마주 보고 앉았다.
"백현아."
"...응."
"나 아직도 화났어."
"......."
"그래서 지금은 조금 너 보기 싫어."
"........"
"실장님 오신대."
"........"
"나 잠깐 나갔다 올거야. 멀리 안가."
제말에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백현이 보였지만 경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믿어."
"......."
"다른데 안가고 실장님만 보고 들어올거야."
"......."
"난 분명히 말했어 백현아."
"......."
"어디 가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
"불안해하지말고 나 믿고 기다려."
이제 너도 나 좀 믿고 그만 불안해했으면 좋겠어 백현아.
"변백현이 너 이렇게 나오는데 가만히 있어?"
"그냥요..."
지하주차장에 있다는 크리스의 말에 내려가 그의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올라타 말없이 앞만 보는 경수를 보던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솔직히 내가 남의 연애에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역할도 아니고 입장도 아니야."
"......"
"나 자체가 아주 요란한 연애를 하고 있거든."
"......."
"이 나이먹고 조금은 쑥스럽지만 뭐..."
농담하듯 건네는 그의 말에도 경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런 경수의 모습에 크리스는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처음 들어보는 변백현의 그런 절박한 목소리. 아니...두번째일지도.
"...백현이 안지도 벌써 6년째네."
"......."
"백현이 열일곱때 처음 봤어. 그때 한창 남자그룹 만들고 있던 때라 캐스팅팀이랑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닐 때였는데 아무리 봐도 괜찮은 애가 없는거야. 오디션보러 오는 것들은 다 눈에 안차고 겉멋만 들고. 어쩌다 막판까지 간 애들은 찬열이나 준면이가 마음에 안들어하고. 민석이야 뭐...애가 착하니까."
"........"
"거의 욱개월을 캐스팅에 매달렸는데도 괜찮은 애가 없는거야. 다른 애들도 점점 지치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세명이서 데뷔시키려고 결심했는데 딱 그때, 백현이를 본거야. 아직도 기억나. 잠시 커피사려고 멈춘 카페 앞이었는데 교복입은 변백현이 멀리서 딱 걸어왔어. 가방도 없이."
"........"
"보자마자 앞뒤 생각도 없이 가서 명함부터 내밀었어. 그냥 무시하면서 지나가는데 내가 끝까지 쫓아갔지. 그때는 목소리도 몰랐었는데. 진짜 변백현은 타고났어. 그 아우라가. 그렇게 일주일을 학교 앞에서 기다리니까 짜증이 났는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회사로 왔어 백현이가. 이거저거 설명을 듣더니 연습생 생활을 숙소에서 한다니까 갑자기 백현이가 하겠다고 하더라고."
"........"
"처음엔 몰랐어. 그냥 기분이 좋았지. 이미지에 딱 맞는 애를 발견한것도 행운인데 애가 노래도 잘하는거야. 최고였지. 그...어머니랑 계약서 쓰기전까지는."
백현이의 어머니.
"보통 부모님들이 계약하러 오시면 이것저것 물어보시는게 많거든. 애가 고생하진 않을지, 학업에 피해가 가진 않을지, 데뷔는 언제쯤 할 수 있을지 뭐 그런것들. 그런데 백현이 어머니은 그런 말씀도 없으셨어. 그냥...정말 사인만 하시고 가셨어. 숙소생활 할때도 다른 애들 어머니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반찬이고 보약이고 바리바리 들고 오셔서 아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가셨는데 백현이 어머니는 그런 것도 전혀 없으셨어."
이미...알고 있던 백현의 과거였다.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됐던 백현의 어린날들.
"백현이가 연습생 기간이 짧아. 1년이 좀 안되거든. 그래서...다른 연습생들 사이에서 견제가 좀 심했어. 너도 알다시피 변백현이 뭐 그런거 딱히 신경쓰는 놈은 아니니까. 나도 데뷔 늦어지고 그런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아니까 적당히 눈감아주고 있었지. 그런데...큰 싸움이 있었어. 연습생만 5년 하던 애가 있었거든. 백현이랑 시비가 붙었어. 뭐..백현이가 계속 무시하니까 홧김에 그랬겠지. 근데 그 애 부모가 좀 유별났거든. 싸움 얘기 듣자마자 달려오셨어. 얼굴에 주먹만한 멍을 달고 있는데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었겠어. 그런데..."
흔들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백현이 어머니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오시는거야. 전화 드렸을때 퇴출 위기니까 꼭 오셔서 상대 부모와 합의를 봐야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알았다고 하시고는 안오셨어. 아마도 애들끼리 치고 박고 한게 그렇게 대순가 싶으셨나봐. 그애 부모는 백현이한테 부모없는 애라고 몰아붙이지 다른 연습생들은 다 구경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내가 어떻게 잘 중재하고 늦게서야 연습실에 내려갔는데..."
그런데도 나는 지금 듣고 있는 이순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백현이가 그때까지 거기 서있는거야.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서서...기다리더라고. 자기 엄마를."
다시 그 찬 연습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오늘처럼 떨었을 그때의 너에게 가고싶다.
"그때 백현이가 그랬어."
그리고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을 너의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엄마가 안와요. 실장님 엄마가 안와요. 그러면서 애처럼 울었어. 정말....일곱살처럼."
경수야...가지마..잘할게..내가 잘못했어..가지마...가지마 경수야...
"그때 내가 생각한게 있어."
아주 굳게 결심했다고 생각했는데...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너의 사랑을 조금은 올바른 길로 옮겨놓겠다고.
"아..진짜 변백현은 몸만 컸구나. 아직 덜 자랐구나. 사랑에 이렇게 목말라 있구나."
결국 이렇게 다시 난 또
"경수야."
다시 너를 보듬을 생각에 두 팔이 아려온다.
"백현이..몸만 컸지 아직 어린애야."
믿으라는 한마디로 너를 다시 무서운 외로움 속에 두고 나온 찰나가 떠올랐다.
믿는 방법을 아직 너는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