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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종] 차가운 숨 19

 

w. 발발

 

 


수능이 끝났다.
진짜 딱 십 분 전에.
시험장이 세훈과 같은 학교, 같은 층이여서 종인은 부랴부랴 도시락통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좁고 어두운 복도 안,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도 세훈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세훈은 이미 나와서 종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한층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둘러 나오는 종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보고 눈을 마주친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끝이었다.

 

"아~~~~~~! 끝이다!!!!"
"풉- 뭐야~"
"아아아아아악~!"
"크크크-"
"너도 소리질러봐, 진짜 후련하다?"
"싫어~"
"아 왜, 다들 미친듯이 소리지르는구만. 와아아아아악~~~!"

 

깜깜한 학교운동장은 군데군데 가로등 불빛이 밝혀주고 있었고, 몇 시간동안 개미지나가는 소리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거짓이였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환의에 찬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시험을 잘봤던 못봤던, 일단 탈출했다는 것이 주였다.
종인도 그 중에 하나였다.
운동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스탠드에 서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세훈도 이렇게 기뻐하며 소리지르는 종인의 모습은 처음이였다.
정말 간만에 보는 순수한 기쁨에, 후련하다고만 느끼던 세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잘 친 것같아?
"생각보단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쁘지 않았어."
"나도. 우리 마지막으로 풀었던 모의고사같은 느낌인데, 이 느낌그대로라면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응. 우리 같은 대학가야지."
"당연하지."
"아 배고프다, 밥먹으러 가자!"

 

세훈과 종인은 인파를 뚫고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다.
대부분 부모님들이 마중나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러 가는 분위기였지만, 종인과 세훈은 둘이 알아서 하겠다고 부모님의 마중을 사양했다.
그에 종인의 부모님은 조금 서운해하셨고, 유진은 겉으로는 아쉬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뭐야, 2번이라고?!"
"당연히 2번이지. 야 originate는 해석을 잘 해야된다고 했잖아."
"아씨...! 에이!"
"괜찮아 1점짜리니까-"
"헐... 1점짜리 틀린거야?"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지?"
"흐엉..."
"너 근데 지금 괜히 그러면서 은근히 굽는거 나한테 맡기고 있네? 종인이 혼날래?"
"...아닌데?"
"맞잖아요, 우리애기님 지금 애인한테 궂은 일시키고 있잖아요. 그 것도 두 접시째."
"뭐, 뭐야 니?!"
"뭐가요?"
"왜이래?! 미쳤어?"
"우리애기 그런 험한 말 어디서 배웠어요? 한 번 혼나볼래요?"
"아 집게 줘, 그런 식으로 사람 못살게 구나? 치사한 놈.."
"흐흐~"

 

수능끝난 기념으로 여행을 간다던지, 콘서트를 간다던지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 사이에서 종인과 세훈은 단 둘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기로 했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삼소를 둘이서 처음 먹어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맘같아서는 중학교, 초등학교도 돌려놓고 싶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였기에 세훈과 종인은 지금부터 처음 해보는 것은 무조건 둘이 함께하고 싶었다.
종인은 처음 듣는 세훈의 간지러운 말투에 어색해하며 세훈 손에 들려있던 집게를 빼앗았다.
세훈이 일부러 평소와 다른 간지러운 말로 눈치를 줘서 제게 고기를 굽게 한다는 것은, 종인 자신이 세훈의 그런 낮간지러운 말에 쑥스러워서 오해한 척 말한 것이였다.
우리애기라던가, 그렇게 달래는 듯한 존댓말은 처음이였기에 너무도 쑥스럽고 온 몸이 베베 꼬였다.
아저씨들이 술기운이 올라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하는 이 시끄럽고 복잡하고 냄새나는 삼겹살집에서 로맨스라니..
종인은 점점 상기되는 볼을 의식했다.
배고픔에 술은 시키지도 않고 삼겹살을 두 접시나 헤치운 상태였다.
술 핑계를 댈 수도 없고, 제가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싫은 종인은 집게를 잠시 내려놓고 달아오르는 뺨으로 손을 슬그머니 가져갔지만, 세훈이 먼저였다.

 

"으이구 우리 애인, 고것 좀 했다고 볼 빨게지는 것 봐- "
"..."
"왜, 그렇게 내가 멋있어?"
"...아 니 진짜 왜그래.."
"내꺼 오늘따라 너무 이뻐서."
"야...아 진짜.. 마시기도 전에 취했냐.."
"어, 너 보고 있으니까 취한다~"

 

쉬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세훈에 종인은 할 말을 잃었다.
얘가 왜이래, 시험잘못봤나...
세훈은 종인이 부끄러워서 타박하는데도 아랑곳않고 종인의 볼을 쓰다듬었다.
세훈의 손길에 뭔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였다.
세훈은 사람을 평온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말은 많지 않아도 이렇게 사소한 행동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
그리고 그 재주를 자신에게만 부리는 세훈에 종인은 행복감을 느꼈다.
계속해서 제 뺨을 쓰다듬는 세훈의 손길을 느끼며 종인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주변은 시장통마냥 시끌벅적했는데, 저들이 앉은 이 구석자리는 투명한 벽이라도 쳐진 듯 고요하고 평온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면 그 사람말고는 아무것도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지금 종인과 세훈이 딱 그랬다.

 

"나 지금 행복한 것 같아.."
"같은게 아니라 행복한거야."
"그렇지?"
"응."
"너는...?"
"나도. 완벽하게 행복해."
"..."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에이..오버하지마.."
"진짜야."
"진짜?"
"응."
"정말로?"
"정말로."
"치..."

 

이렇게 달달하게 대화하는 날이 극히 드물었기에, 종인은 밀려오는 민망함을 감추듯 쓸데없이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제 눈을 한 치도 못치지 않고 깊게 바라보는 세훈에 종인은 또다시 부끄러워져서 괜히 치-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종인에 세훈은 슬핏 웃으며 이제 술 시킬까? 하며 식당이모를 불렀다.

 

 

 

"와.. 나 진짜...."
"스텝 고만 밟아-"
"후으.. 으- 넌 괜찮아?"
"난 멀쩡해."
"이씨! 나만 취했잖아!"
"많이 마셨잖아. 잠깐만, 허리잡아줄게."
"힝.. 너랑 나랑 똑같이 마셨는데 왜 나만 취하냐고..! 오세훈은 병잔데, 내가 병자만도 못하다니..흐엉...."
"아 나 병자만도 못한 애랑 사귀는 거야? 안되겠네~ 헤어져야겠네~"
"안돼! 오세훈 내꺼야!! 영원히 내꺼야.. 안돼- 흐엉.."
"풉-"

 

취한 종인은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술주정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귀여운 술주정에 세훈은 종인의 허리를 슬쩍 받혀주며 주정을 받아주었다.
이렇게 귀여울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마셔볼걸..
세훈은 저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비틀대며 앞서나가는 종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혀를 찼다.

 

"별이.. 안 보인다..."
"그러네,"
"아니다! 하나 있다!"
"어디?"
"여어기~ 세후니별~~!"
"허-"
"내 별.. 이쁜 별.. 나만 볼 수 있지롱~"
"나참-"

 

종인의 애교스러운 술주정으로 이십분 거리를 걷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술이 들어가니 매서운 겨울바람도 별로 차갑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술취한 종인의 솔직한 감정표현에 심장박동수가 올라가서 온 몸이 따뜻했다.
삼겹살집에서 쭉 내려오면 세훈의 집 앞이였다.
아무래도 종인이 취했으니 집을 지나쳐서 종인의 데려다준 뒤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한 세훈은 눈 앞의 집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 걸었다.
걷다가 문득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종인이 궁금해 뒤를 돌아보니, 종인은 세훈의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럴리는 없지만 엄마가 나올까봐 살짝 긴장해서 까치발을 들어 집 안을 들여다보니 불이 꺼져있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세훈은 살짝 한숨을 쉬고는 종인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종인은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검지손가락으로 땅을 슥슥 문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같아서 세훈은 작게 미소지었다.

 

"뭐해?"
"그냥..."
"가자, 안 추워?"
"응.."

 

아래에서 내려다본 종인의 등은 넓고 탄탄했다.
종인은 유난히 몸 선이 예뻤다.
발레나 무용을 배운 적이 없다는 데, 선이 참 유려했다.
세훈은 종인의 뒤로 가서 자세를 낮춰 종인의 등에 제 얼굴을 기댔다.
평평하고 따뜻한 종인의 등에 볼을 맞대니, 종인이 힐끗 뒤돌아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원래 니네집이였지만, 내 집같았는데..."
"근데?"
"맨날 같이 자고 깨고 밥먹고 학교갔다오고 그랬는데,"
"아쉬워?"
"응..."
"나도."
"이제 같이 등하교할 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으이구, 우리 같은 대학 안갈꺼야? 같은 대학가서 자취방얻어서 같이 등하교하면 되지."
"그게 쉽냐..."
"안될건 또 뭐야,"
"그 때는 어른이잖아... 십대가 아니라고.. 이렇게 빨리 십대를 보내기는 싫단 말야... 너랑 어른이라는 타이틀달기 전에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그리고...."
"종인아."
"..."
"김종인,"
"왜에..."
"사랑해."
"뭐, 뭐야, 새삼스럽게-"
"스무 살되면 지금보다 더 사랑할거야."
"..치.. 당연한거 아냐?"
"한 살 한 살 나이먹을때마다 더 많이 사랑해줄게."
"..."
"어른되는거 겁내지 마."
"..."
"니가 돌려말해도 나 다 알아들어."
"..뭐가"
"내가 다 막을거야."
".."
"우릴 향한 손가락질, 욕설, 배척 다 내가 막을거야."
"오세훈..."
"그리고,"
".."
"만약... 정말로 만약에... 엄마가 알게되더라도,"
"세훈아,,"
"내가 다 책임질게, 내가 다 막을거야."
"야...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짐같잖-"
"넌 그냥 내 옆에만 있어줘. 겁내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
"알겠지?"
"..."
"너 없으면 나 병도져서 죽는다?"
"야! 무서운 말 좀 하지마!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네 아주?!"
"풋- 알겠으니까, 너도 알았지?"
"몰라.."
"쓰읍-"
"아, 알겠어.."
"됬어 그럼. 일어나, 이제 가자."
"야 오세훈,"
"왜?"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
"나 이제 진실이고 현실이고 하나도 안 무서워."
"..."
"내 부모님이 알고, 우리.. 부모님이 알아도 상관없어."
"..."
"그러니까 니가 나 책임지려 하지마, 내가 너 책임질꺼니까."

 

 

 

"아...!"

유진은 제 차 곁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짧은 단말마를 내뱉었다.
그 것 뿐이었다.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길게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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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괴롭히는 것도 이제 지칩니당ㅜㅜ 얼렁 자유롭게 해줘야지.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독자1
이제야 와서 보게됐네요 ㅠㅠㅠ 와... 그래도 이제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가는기분이예요 아이들도 작가님도...^^
뭔가 아쉬운데요....ㅠㅠㅠㅠㅠㅠ 매번 조바심나고 안타깝고 그런기분이었는데 오늘은... 이대로 보내기 싫은기분이..막...
물론 작가님을~ ㅋㅋㅋ애들도!! ㅋㅋ 고마워요 잘읽었어요!!

10년 전
발발
ㅜㅜㅜ너무 질질끄는거같아서 죄송한 마음 뿐인걸요ㅜㅜㅋㅋㅋ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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