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상태 알려주세요!
일방통행로에서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던 2종 트럭에 받혔습니다!
왼쪽 어깨와 심장 쪽으로 부딪혀 사고지점에서 5미터 정도 부양해 왼쪽골반으로 추락했답니다!
과장님! 환자가 RH-O형이에요..!
뭐? 젠장..! 지금 혈액 조회해봐!
왜 이렇게 없어?! 심장 부근이라 이걸로는 어림도 없다고!
당장 피 가지고 오라고 해!!
저, 어제 W그룹 사모님 수술할 때 많이 써서...!
그럼 인근 병원에 혈액 요청해, 적어도 7팩은 더 필요해!!
지금 서울시내 대학병원에는 피가 없답니다, 18시간 전 D대학병원에서 교통사고 난 부녀가 RH-O형이라 있는 데로 갖다 썼답니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병원 내 계신 모든 분들 중 바로 헌혈이 가능한 RH-O형이신 분이 계시다면 응급실이나 외상외과를 방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통사고로 수술이 시급한 긴급환자에게 수혈할 혈액이 부족합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헌혈가능하신 RH-O형이신 분은 지금 바로 응급실이나 외상외과로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세종] 차가운 숨 01
w.발발
"너, 안 무서웠어?"
"뭐가?"
"그 때, 나 살려준 날."
"아-"
"내가 너였으면 무서워서 못 했을거 같은데-"
"그 얘기 좀 그만해라, 심심하면 그 소리야."
종인은 재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 번만 더 지각을 하면 백퍼센트 벌금 오만원 당첨이라는 담임의 엄포에 앞 뒤 안 가리고 뜀박질한 것이 화근이었다.
양 쪽 귀에는 떡하니 이어폰까지 끼고 말이다.
종인의 학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함께 자리한 사립재단이여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스쿨 존이 형성되어 있었다.
종인은 스쿨 존에 들어서서 비록 무단횡단이지만 횡단보도를 밟으며 뛰었고, 일방통행로인데다가 스쿨 존이기까지 한 길에서 어이없게도 미친 속도로 달려온 2종 트럭은 횡단보도를 날렵하게 건너고 있던 종인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자신의 몸이 차체에 부딪혔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종인의 의식은 사라졌고, 얼마만인가 눈을 떴을 땐, 온 얼굴이 눈물범벅인 부모님과 그 옆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세훈이 보였다.
"그 때 얘기 좀 자세하게 해줘봐."
"귀찮아."
"빨리-"
"아나.. 정기내원 있는 날이라 병원 갔는데 응급수혈환자있다고 도와달라고 안내방송 나와서 내가 마침 혈액형 똑같아서 가서 너한테 피 줬고 넌 살고, 됐지?"
"좀 그 때의 긴박함과 감정을 실어서 자세히, 형용사 좀 섞어서 묘사해주면 덧나냐?"
"아니 왜 끔찍한 날을 자꾸 설명하라그래- 니 저승갔다가 겨우 돌아온 날인데."
세훈은 그 날 일을 꺼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종인의 부모님도 그 날 얘기만 꺼내면 눈물부터 보이셨기 때문에 차마 자세한 내막은 못 들었다.
그저 세훈한테 듣는 것이 다였는데, 그나마도 대충대충이다.
잠이나 자자.
옆에 누워 등을 돌리는 세훈을 바라보다 이내 단념한 종인도 눈을 감는다.
또 끌어안고 자고 있다.
둘 다 잠버릇이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 거라서 그런지 잘 땐 분명 각자의 베개를 끌어안고 잠이 드는데, 일어나보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다.
유난히 샤워코롱 향기가 오래가는 세훈이 잠결에 종인을 꽉 끌어안아, 깊어진 향기에 번쩍 눈을 뜬 종인이 세훈에게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종인의 오른팔이 세훈 등에 눌려있고, 세훈 오른팔은 종인의 몸 위를 감싸고 있었다.
종인과 세훈은 키가 비슷해서 종인이 한참을 끙끙거리며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에는 세훈이 먼저 일어나서 괜찮은데, 주말이면 학교 안 간다고 늦잠을 자는 탓에 이 고생이다.
흣차- 예민한 탓에 조금만 시끄러워도 벌떡 일어나니 텔레비전도 틀 수도 없게 된 종인이 노트북을 켠다.
"야.."
"뭐야, 깼어?"
"어..."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세훈을 힐끗 보던 종인이 이내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긴다.
몇 시야..
열시 안 됐어.
더 자고 싶은데..
한 번 눈을 뜨면 절대 다시 잠들지 못하는 세훈의 잠투정에 무반응으로 노트북만 쳐다보던 종인이 기계적으로 대꾸한다.
약 먹어.
세훈은 학교를 가는 대신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정기내원일이다.
병원 싫은데...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한 세훈이다.
선천적인 심장병으로 아주 애기 때부터 약을 달고 살았다.
삼시세끼보다 먼저 챙긴 것이 약이였다.
아니,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니까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기긴 했다.
다른 것은 다 괜찮았는데, 어린 세훈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친구들과 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모래놀이를 하며 놀이터를 뛰어놀 유치원 때도, 공차고 이리저리 동네를 쏘다닐 초등학생 때도 세훈은 집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책을 읽거나 조금 괜찮을 때는 그나마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 즐겁게 뛰어노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훈은 친한 친구 사귀는 것이 힘들었다.
본래 예민한 성격은 병 때문에 더욱 날카로워졌고, 위로해줄 친구마저 없으니 까탈스러움은 날로 더해졌다.
참고 참다가 도저히 외로워서 못 견딜 정도가 됬을 때.
그 때 종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세훈은 지금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훈은 종인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종인은 본인의 생명의 은인인 세훈에게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종인 또한 다른 의미로 저를 살려주었다.
눈앞의 익숙한 병원 전경에 세훈이 한숨을 쉬었다.
이것저것 묻고 답하고, 간단하게 검사하고, 약 처방받고.
지겨울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내원하는 이유는, 조금만 뛰거나 무리를 하면 하눌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혈압, 찢어질 듯한 심장, 숨이 꺽꺽 넘어가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알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몸뚱아리.
세훈은 제 심장을 아프지 않게 툭 쳤다.
----------------------------------------------------------------------------
안녕하세요.
세종팬픽이 많지 않은 관계로 직접 나섰습니다^^
이쁘게 봐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세요.
장편까지는 성격상 안될 것 같고, 중편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연재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부탁드려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