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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종] 차가운 숨 03

 

w. 발발

 

 

 

03.

 

제법 바람이 뜨끈하다.
이제 겨우 5월 중순을 지나고 있는데, 벌써부터 하복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많다.
체육대회가 코 앞이라 그 큰 운동장은 연습인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실 창가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바람을 쐬는 세훈과 종인이 조용하다.
체육대회는 둘에겐 의미없는 행사였다.
사람한테는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면서, 운동에서는 농구며 축구며 가리지 않고 좋아하던 종인은 자타공인 체육의 신이였다.
체육대회란 김종인의, 김종인에 의한, 김종인을 위한 것이였다.
그런 종인을 아는 중학교 동창들은 매 년 종인에게 출전할 것을 구걸했지만, 난 체육의 '체'자도 몰라요- 하며 번번이 거절하는 종인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인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 교통사고를 당했고, 하필이면 심장 부근에 손상을 입어서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엔 아무 지장 없고, 재활을 하긴 했지만 격하게 운동을 즐길 정도로 좋은 몸 상태는 아니였다.
종인의 사고를 알면서도 체육대회 시즌만 되면 종인을 찾는 아이들을 보며, 종인이 얼마나 운동을 잘 했는지 알 수 있던 세훈이였다.

 

"넌 좋아하던 운동 못 하는 게 젤 힘들겠다?"
"그닥- 그러는 너는,"
"나야 해본 적도 없으니까 그 느낌을 잘 모르지만, 넌 늘 해왔던 걸 하루 아침에 못하게 된 거 잖아."
"별로- 대신 너 있잖아. 내 장난감."

 

얼마 전 세훈이 그랬던 것처럼 말하며 씩 웃은 종인이 옆에 있던 책상에 풀썩 걸터앉는다.
우린 진짜 서로 맞춤형 인간관계다.
이런 인연도 없지~
장난스레 맞장구 친 세훈도 종인을 마주보며 미소짓는다.

 

 

 

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W고등학교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계획하는 것은 대학합격률이 아닌 체육대회였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이사장의 인생모토 덕분이였다.
운동장을 둘러싼 천막들과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 신나게 울려퍼지는 최신 가요는 그를 알리듯 흥겨워 보였다.
남학생들이 출전하는 축구, 농구, 여학생들이 출전하는 발야구, 배구, 남녀혼성경기인 씨름, 수영, 계주, 마라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응원전.
체육대회는 무려 삼일동안 펼쳐질 예정이다.
여덟 개의 종목 중 단 한 가지도 출전하지않는 종인과 세훈은 다른 아이들처럼 들뜨지도, 긴장하지도 않은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다.
개최식을 하느라 모두 운동장에 나가 있는 탓에 텅 빈 교실에는 세훈과 종인뿐이였다.
반 유니폼도 입지 않고 교복차림인 둘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날라리였다.
새벽에 갑자기 솟는 혈압에 깨어나 하얗게 밤을 지새운 세훈은 이제서야 못 잔 잠을 보충하고 있었다.
책상을 여러 개 붙여 그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세훈을 지켜보다가 종인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진짜 가도 돼?"

 

얼마나 잤을까- 부스스 일어난 세훈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열시 반, 얼마 안 잤다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다.
자리가 불편해서 그랬나?
세훈은 혼잣말하며 옆 책상에 앉아 자는 저를 보고 있었을 종인을 불렀다.
그에 종인은 씨익-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집에 가자고 대답했다.

 

"담임끌고 와서 너 자는 거 보여줬더니 눈물 글썽이다가 데리고 집가라 그러던데?"
"야, 너-"
"내일도 모레도 안 나와도 된다는데?"
"그래?"

 

저를 이용해 동정표를 얻은 종인에 성질내려던 세훈은 체육대회 내내 쉴 수 있다는 종인의 말에 급 화색을 띄었다.
그럼 오늘부터 수목금토일 노는 거야?
어, 이래도 화낼래?
무슨 화? 나 화났었어?
능글맞게 받아친 세훈은 콧노래를 부르며 책가방을 들었다.

 

 

 

간만에 칼질 좀 해볼까?
학교를 나온 종인과 세훈은 종인의 주도하에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향했다.
혈기왕성한 나이답게 런치세트 2개에 피자 한 판을 추가로 주문한 이들은 평소 저들답게 별 말은 안 하지만 편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음식이 셋팅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 점심시간에 교복입은 남학생 둘이 칼질을 하고 있으니 여간 시선집중되는 것이 아니였다.
몇 입 먹었을까, 무얼 상상하는지 지들끼리 소근거리며 꺄악대는 주변 여대생들에 급 짜증스러워진 종인이 고기를 썰다 말고 포크와 나이프를 소리나게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무신경하게 먹는 것에만 집중하던 세훈이 그런 종인을 보고 물로 입을 한 번 헹군다.
왜?
시끄러워서.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는 종인에, 세훈이 다시금 칼질을 한다.
한 입 크기로 알맞게 썰린 스테이크 조각을 퉁퉁 불은 종인의 입에 대주자 종인이 여전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받아먹는다.
세훈과 종인을 아예 대놓고 관찰하던 여대생들은 그 모습에 또 한 번 꺅꺅거렸다.

 

"쟤네 왜 저래?"
"심심한가보지."
"아니, 밥 먹는 사람 처음 봐?"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일부러 소리높여 말한 종인이 고개를 획 돌려 옆 테이블 여대생들을 노려보았다.
자신들에게 쏠린 종인과 세훈의 시선에 민망한 듯 급히 화제를 돌리는 그들에 종인과 세훈도 이내 눈길을 거둔다.
종인과 세훈에게 서로 무언가를 먹여주기란 다분히 일상적인 일이였다.
세훈이 컨디션이 안 좋아 밥 한 술 못 뜰 때면, 약 먹으려면 밥 먹어야 한다며 종인이 숟가락을 들어 반 공기라도 꾸역꾸역 먹였고, 종인이 무언가에 신경이 곤두서있을 땐 세훈이 종인의 입에 먹을 걸 넣어주었다.
그건 갓난아기 때 버려져 8살 때 입양된 종인의 애정결핍을 해소해주는 일종의 심리치료였다.
부모도 해주지 않는 것을 서로 충족해주는 둘은 지난 날 저들이 어떻게 상대없이 살았는지 잊을 정도였다.
이 뜻깊은 행동을 삼류 로맨스소설에서나 볼 법한 행동으로 멋대로 생각하는 타인에 기분나쁠만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어영부영 식사를 마친 세훈과 종인은 기분전환도 할 겸 대형문고에 가서 액션스릴러DVD를 몇 편 샀다.
돌아오는 길에 뭘 먼저 볼 지를 가지고 투닥거리는 세훈과 종인은 영락없는 친한 친구였다.

 

 

 

"아!"
"왜!"
"아.. 갑자기 아팠어."
"사람 놀라게.."

 

홈시어터로 사운드 빵빵하게 틀어놓았는데도 분명하게 들리는 세훈의 짧은 비명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던 종인이 영화를 일시정지시킨 뒤 조명을 켰다.
그 새 하얗게 질린 세훈의 얼굴을 확인한 종인이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너 요즘 자주 이런다?"
"그러게."
"얼마 전에 병원갔을 때 괜찮다고 했다며,"
"어."

 

의심스럽다는 듯 이곳저곳 제 얼굴을 뜯어보는 종인에 웃기지 말라는 표정으로 세훈이 대꾸한다.
내가 니한테 뭘 숨기겠냐?
그건 그런데, 유난히 통증이 잦잖아.
이제 여름되가서 그럴거야, 더워서 혈압상승해서.
작년여름에도, 재작년여름에도 이렇게 산발적이진 않았거든? 그리고 아직 5월 말이거든?
종인의 말대로 요즘 제 상태는 완전 메롱이였다.
혈압이 시도때도 없이 올랐다내렸다를 반복하고, 갑자기 심장에 통증이 느껴지고, 아주 정신없었다.
웬만한 건 종인이 신경 쓰지 않게 참았지만, 이번과 같은 갑작스러운 통증은 참기 힘들었다.
너 괜히 아픈데 귀찮다고 참지 마라.
속마음을 꽤뚫는 종인에 뜨끔한 세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은 뒤 영화를 재생시켰다.

 

 

 

"허억- 크윽-!"

 

안 그래도 컨디션 난조인 세훈이 걱정스러워 쉬이 잠 못 이루던 종인이였다.
아까도 가슴통증을 호소해, 만류하는 세훈을 뒤로한 채 영화도 때려치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잠든 지 얼마나 됬다고 꺽꺽거리며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세훈에 종인은 벌떡 일어났다.
야 오세훈, 숨쉬기 힘들어?
억- 허억-
정신없는 상태로 불안정한 호흡을 하는 세훈에 종인은 마음이 급해졌다.
세훈아, 일어나봐-
자세를 고쳐 앉아 아기처럼 웅크려 왼쪽 가슴을 붙잡고 있는 세훈의 어깨를 살짝 흔들자, 컥 하고 숨을 들이마쉰 세훈이 호흡을 멈춘다.
갑자기 조용해진 세훈에 불길함이 스쳤다.
뭔지도 모르고 속으로 아닐거야를 중얼거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세훈의 코에 갖다댄 종인이 흠칫 손을 치운다.
세훈의 숨이 아주 미세했다.
새끼강아지들 숨처럼 급하고 약한 숨이였다.
어쩔 줄 몰라 뒷 머리칼을 마구 헝클이며 가프게 숨만 들이쉬던 종인은 다시 한 번 세훈의 코에 손을 댔다.

 

"세훈아!"
"..."
"숨...쉬어!!"

 

말이 들릴 리 없는 세훈에 종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인공호흡, 인공호흡!
너무 당황해서 머릿 속이 하얘지고 초점이 흐릿해지는 눈에, 제 허벅지를 매섭게 팍팍 내리치며 정신을 가다듬은 종인이 이제야 생각난 듯 인공호흡을 중얼거렸다.
풍 걸린 사람같은 손으로 덜덜 떨며 세훈의 목을 뒤로 젖혀 기도를 확보하고, 왼손으로 세훈의 코를 막은 종인이 심호흡을 몇 차례 한 뒤, 세훈의 마른 입술에 급히 제 입술을 갖다댔다.
후우후우 다섯 번 정도 크게 숨을 불어넣어주고 가슴께를 쓸어주었다.
또 다섯 번 숨을 불어넣어주고 가슴께를 쓸어주고.
안정적으로 두세 번 반복하니 어느 정도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은 세훈이 고통으로 찡그렸던 표정을 서서히 풀었다.
안도감에 힘이 풀린 종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훈이 돌아오고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종인이였다.
세훈이 죽을 뻔 했다.
방금 전의, 생각만해도 끔찍한 사고에 종인은 북받치는 감정을 실어 엉엉 소리를 내며 크게 울었다.
고통에서 서서히 깨어나던 세훈은 난데없는 울음소리에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펑펑 우는 종인에 당황해 조심스레 종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흐.. 흐윽-"
"왜.. 왜그래.."
"흐읍- 흐어..."

 

서럽게 우는 종인의 모습에 아차 싶어 손을 올려 제 이마을 짚은 세훈이 땀에 젖어 들러붙어있는 앞머리에 조심스레 입을 연다.
..혹시 또 호흡곤란왔어?
...흑
씨발...
제 불안한 목소리에 아무 대꾸 않고 울음을 그치려고 호흡을 고르는 종인을 보고 세훈은 낮게 욕지거리를 했다. 
제 한 몸 간수못해 친구에게 피해주는 자신에 너무 화가 났다.
일단은 종인을 진정시키려고 물을 떠오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종인이 세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예상치 못하게 종인의 품에 안긴 세훈이 앉은 것도 일어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포즈로 안겨있자,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꽉 끌어안는 종인이였다.

 

"..."
"..."

 

한참을 세훈을 끌어안고 있다가 풀어준 종인이 세훈을 슬픔을 담아 쳐다본다.
언제 죽을 뻔 했냐는 듯 살아움직이는 세훈의 얼굴을 보니 좀 전의 두려움이 몰려와 다시금 눈물이 흐르는 종인이였다.
또다시 저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종인에 너무나도 미안해진 세훈이 착잡한 마음으로 두 손을 들어 종인의 눈물묻은 뺨을 닦아주었다.
이미 두 뺨엔 눈물길이 터, 그저 눈에서 나오는데로 눈물이 흘렀다.
기다란 속눈썹까지도 눈물에 젖어 눈을 찌르고 있어 눈가도 닦아준다.
닦으면 또 울고, 닦으면 또 우는 저를 아무 말 않고 지켜보던 세훈이 미안함과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미안해..
고개를 숙인 채 입만 달싹여 반복하는 사과에 종인이 젖은 두 손으로 세훈의 얼굴을 감싸들었다.
기어이 울먹거리며 미안하다 중얼거리는 세훈을 바라보는 종인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고개숙인 세훈을 바라보다가, 숙여진 고개를 들어 종인이 입을 맞췄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세훈이다.
시곗바늘은 5시를 가리키는데, 하절기라 그런지 벌써 날이 밝았다.
멍한 얼굴로 침대 헤드에 기대어 날을 샌 세훈은 제 옆에서 곤히 잠든 종인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은 아직도 잔 울음이 남았는지 한 번씩 찡그리며 흐느꼈다.
새삼 제 옆에 누워있는 종인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종인은 세훈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고는 숨을 불어넣었다.
입술이 닿을 때까진 멍하던 세훈은 종인의 숨을 받고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너 한 번만 더 나 놀래켜, 인공호흡이고 나발이고 다시 한 번 해주나봐라...
딸꾹질을 하며 위협조로 말한 종인은 스트레스로 수술부위가 당기는 지 배를 움켜쥐고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괜찮냐?"
"어?"
"괜찮냐고."
"..어,어."

 

종인과의 입맞춤을 생각하느라 종인이 깬지도 몰랐던 세훈이 종인의 물음에 당황스레 대답한다.
본인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안절부절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는 세훈이 눈에 보이는 종인이다.
인공호흡은 말 그대로 인공호흡이고, 후에 세훈에게 입맞춘 자신이 믿기지 않는 것은 종인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생각보다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냥 늘상 끌어안고 자는 것처럼 아주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에 종인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니 첫뽀뽀 뺏은 건 미안한데, 처음엔 어디까지나 인공호흡이였고, 두 번짼,"
"..."
"두 번짼.."

 

막상 입 밖으로 말을 꺼내니, 두 번째는 변명거리가 없었다.
그에 적잖게 당황한 종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로 문득 왜 내가 그랬나 진지하게 고민에 들어가는 종인에, 세훈이 약간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첫 번째는 기억도 안나고, 두 번째는 사고 예방차원에서 실습한걸로 치자."
"..으응..그래."

 

깔끔하고 간결한 해답인데 뭔지 모르게 찜찜해진 종인의 대답이 허술했다.
그런 종인을 가는 눈을 뜨고 조용히 주시하는 세훈의 눈이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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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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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불완전한 관계의 세종이네요! 우정보다깊은듯 사랑은아닌 아슬아슬한 관계ㅠㅠ 잘보구 가요 작가님!
11년 전
발발
감사합니당!!
11년 전
독자2
세훈이가 호흡곤란이 왔을때 저도 식겁했네요.종인이는 얼마나 놀랐을까요?인공호흡.이게 둘의 관계에 영향을 끼칠꺼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큰영향을 끼치겠네요.세훈이의 눈은 왜 불안해 보이는걸까요?감정이 익숙하지않아서?궁금하네요
11년 전
발발
저두여ㅋㅋㅋ쓰는저도모르겠어옄ㅋㅋㅋ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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