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세종] 차가운 숨 04
w. 발발
하나뿐인 아들내미 얼굴 좀 보자는 부모님의 성화에 일주일 간 집에서 지내기로 한 종인은,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무거워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들왔다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들도 깨작거리던 종인은 공부를 하겠다는 핑계로 제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려 골머리를 앓았다.
인공호흡 사건 이후, 세훈은 그 깔끔한 말처럼 전혀 마음쓰지 않고 행동에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정작 일을 저지른 종인은 그렇지 못했다.
세훈과 종인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상호 공통된 외로움과 병에 대한 공통된 이해심과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이였다.
그렇기에 보통의 친구들보다 진해보이는 관계였지만, 그 것을 굳이 사랑에 비유한다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부모자식 간의 사랑 정도였다.
하지만 그 날 이후 종인은 후자의 사랑에서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전자의 사랑으로 진전하는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에는 게이다 레즈다 하며 동성과의 사랑을 개그소재로도 쓰이는 판이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거부감을 느끼는 종인이였다.
심지어 얼마 전엔 그 것때문에 쌈박질까지 하지 않았나.
제 말도 안되는 감정에 다시 한 번 놀라며 벌떡 일어나 앉은 종인이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그나저나, 이것저것 다 떠나 계속 컨디션 난조인 세훈이 혼자 잘 것을 생각하니 걱정스러운 종인이 핸드폰을 들어 세훈의 번호를 익숙하게 쳤다.
"여보세요."
"나야."
"알아."
"저녁은?"
"먹었어."
"뭐 먹었는데."
"갑자기 치킨먹고싶어서 시켜먹었지."
혼자서 치킨을 시켜먹었다는 세훈이 안쓰러워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까 임금님 수라상을 받고도 맛없는 반찬 투정하듯 깨작거렸던 제가 민망해졌다.
"부모님 좋아하시겠네?"
"으응.."
"그래.."
나 피곤한데,
계속 혼자 치킨을 뜯는 세훈이 상상되어 대답을 잘 못하자, 통화를 마무리지으려는 듯 세훈이 말했다.
전화를 끊으려는 세훈에 마지막으로 약은 챙겨먹었냐, 문단속은 했냐, 잔소리를 한 종인은 어, 어 하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세훈에 마지막으로 잘자- 라고 인사했다.
대답없이 끊긴 전화를 미련스럽게 귀에 대고 있던 종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모처럼 넓은 침대를 혼자 쓰게 된 세훈은 며칠 째 잠을 뒤척였다.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등교하면 그제야 종인을 만날 수 있었다.
16년동안 혼자라는 말이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익숙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굉장히 어색한 단어가 되버렸다.
늘 그래왔듯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고, 쉬는시간에는 창가에 기대서서 바람을 쐬고, 점심시간 때는 둘이 식사를 했다.
지극히 일상적이였지만, 그 속에서 주인공인 저와 종인은 변해있음을 느낀 세훈이였다.
진하게 키스한거였음 모를까, 뽀뽀 한 번 했다고 이렇게 흔들리는 저들이 웃기기도 했다.
사춘기는 벌써 초등학교 때 끝났고, 열아홉이면 성인에 가까운 나인데 고작 베이비키스 따위로 벌벌 떠는 본인들은 참 세상에 둘도 없는 순수한 남학생이라고 생각한 세훈이 결국 육성으로 웃음을 뱉고 말았다.
"뭐야?"
문제집이 세훈이네 있어서 나란히 익숙한 길을 걷고 있던 종인이, 무표정으로 앞만 보고 가다가 갑자기 빵 터진 세훈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푸하하-!"
"이게 미쳤나.."
한 번 터지자 멈출 줄 모르고 웃어대던 세훈은 급기야 심장을 쥐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켁켁-"
"야, 너 심장병있는 애가 그렇게 웃으면 어떡해!"
집 앞 골목에서 무릎을 짚고서서 숨을 고르던 세훈은 종인의 잔소리에 허리를 펴고 한 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이거 완전 미쳤네, 미쳤어.
그런 세훈을 가관이다-하는 표정으로 쳐다본 종인은 코 앞에 있는 세훈의 집을 향해 앞서 걷기 시작했다.
대문 앞에 도달해 자연스레 도어락을 푸는 종인을 물끄럼히 쳐다보던 세훈이 입을 열었다.
우리 키스해볼래?
마지막 번호를 누를 차례였는데, 세훈의 갑작스런 제안에 타이밍을 놓친 종인때문에 도어락이 시끄럽게 삑삑대며 울었다.
뭐?
키스하자고.
도어락에 시선을 둔 채 반문하는 종인에, 밥먹자는 말하듯 쉽게 되풀이한 세훈은 종인을 살짝 밀쳐내고 손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현관에 들어와 신발을 벗는 동안에도 문 밖에 서서 꼼짝않고 도어락 쪽만 바라보는 종인에 맨발로 다시 나온 세훈이 종인을 바라본다.
"왜 안 들어와?"
"..."
"갑자기 나 무섭냐?"
"...야,"
"너 변한 거 너도 알고 있지?"
"..."
"안그래 보이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제대로 해보자고."
"..."
"뭐가 진실인지."
세훈은 항상 판단이 빨랐다.
냉정한 이성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종인은 대체적으로 세훈의 의견에 토달지 않고 따랐다.
이 말도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내뱉은 말일까.
세훈의 말에 대꾸없이 서 있던 종인이 고개를 들어 세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잘 생각해."
"..."
"돌이킬 수 없을수도 있어."
"난 항상 이성적인 사고를 추구해.
아픈 몸뚱아리가지고 감성에 젖어들면 진짜 비참해지거든."
"..."
확신에 찬 세훈에 종인의 눈이 감겼다.
한참만에 눈을 뜨자, 조용히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세훈이 보였다.
복잡한 마음에 좀처럼 결정을 못 짓는 종인이 다시 눈을 감았다.
세훈이 그런 종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항상 핏기없이 차가운 자신의 손길에 느릿하게 눈을 뜬 종인을 주시하던 세훈이 종인에게 짧게 키스했다.
베이비키스에 굳어버린 종인의 입술은 곧 세훈의 얇은 입술에 감싸였다.
통통한 종인의 윗 입술을 감싸던 세훈이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에 놀라 살짝 벌어진 틈을 타 종인의 입 속으로 파고든 세훈은 종인의 입 속 여기저기를 헤집었다.
치열을 훑으며 미동도 않는 종인의 혀를 감싸자, 그제야 반응하며 움직이는 종인이였다.
자연스레 서로의 머리칼을 메만지며 농밀하고 끈적하게 이어가던 키스는 숨이 찬 세훈에 의해 끝났다.
하아..하아... 어땠어?
이미 키스까지 한 마당에 숨길 것이 없었다.
종인은 세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죽을 뻔 했어.
"가?"
"어, 가야지."
집 안에 들어와 문제집만 챙겨 도로 신발을 신는 종인에 세훈이 묻는다.
언제 돌아올거야,
일주일 채워야지. 이틀남았어.
자신을 잡는 듯한 세훈에 살짝 긴장한 종인은 담담한 척 몸을 돌려 현관문을 열었다.
"종인아,"
"왜."
가려는 종인을 부른 세훈이 고개만 돌려 저를 보는 종인을 특유의 무표정으로 바라본다.
"우리 이제 어쩔까."
"...넌 아직 아무 말도 안했어."
"..."
"난 대답했고."
"그래서 그 대답의 의미가 뭔데."
"글쎄.."
말을 흐리며 세훈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종인이다.
세훈과의 키스는, 뭐 이때껏 키스를 많이 해본 것도 아니였지만, 그래도 뭐 요즘 애들답게 해볼만큼 해봤는데,
가히 최고였다.
통통한 제 입술과 얇은 세훈의 입술은 사이즈부터가 알맞았고, 처음하는 키스라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를 잡아 힘있게 리드하는 세훈에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였다.
질척거리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지는 세훈의 움직임은 종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키스 하나만 봤을 땐, 너무 좋았다.
숨이 차 딱 떨어지는 세훈을 다시 잡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들의 키스는 많은 것을 염두해둔 키스아닌가.
세훈은 그걸 묻는거였다.
단지 키스가 좋았는지, 아님 저와 한 키스여서 좋았는지.
종인도 당연히 그 뜻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뭘 숨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 모르겠어서였다.
흔히들 누군가와 사귀기 전에 상대방과 키스하는 상상을 해보라고 한다.
아예 상상 자체가 안되거나 상상만으로도 블쾌하다면 아웃.
하지만 이미 종인과 세훈은 키스했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다면?
종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사귄다, 세훈이와? 세훈이는 지금 사귀자는 말을 듣고 싶은 걸까?
"내가 한 번 물어보자. 넌 어땠는데,"
"난,"
"..."
"여기서 내가 별로였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냐?"
허- 단조롭게도 말하는 세훈에 웃어버리는 종인이다.
싫었냐?
아니,
근데?
아니라고 말해놓고 뜸 들이는 세훈에 종인은 양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너의 그 이성적인 생각을 버리고 말하면?"
"완전 좋았어."
"그럼 니가 지금 하고있는 그 이성적인 결과는?"
"키스가 좋았으면 다음은 뭘까."
"뭐라고 생각해?"
"우리 사귀는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세훈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가족보다 더 의지하고 좋아하는 제일 친한 친구와의 키스가 좋았다,라.
이거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세훈이다.
분명 너무 좋았는데, 그 키스가 좋았으면 사겨야 되는건가.
사귀면 어떻게 되는건가, 사귀면 지금보다 종인을 더 좋아하게, 아니 사랑하게 되는건가.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건가, 저도 종인도 남잔데.
생각이 생각을 물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았다.
제 말에 대답않고 인상만 쓰고 있는 종인을 바라보았다.
딱히 종인도 당장 우리 사귀자, 이럴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얘도 나같은 생각을 하는건가.
아 이거 지식인에 질문이라도 남겨야하나,
좀 전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복잡해지는 세훈이였다.
"...일단 나 갈게, 가서 따로 생각해보자. 계속 있다간 아무것도 안돼."
"그래, 월요일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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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너무 질질 끄는 느낌을 받으실수도 있지만, 후반엔 뽤로~뽤로~엘티이파이처럼 급전개랍니다.
그게 또 막장의 묘미죠ㅋㅋ
혹시 문법에 어긋하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감사히 고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