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탤총] 정신병동 04
아니, 글쎄 아ㅡ 해보라니까요? 눈 딱 감고 해줘요 좀. 쫑알쫑알. 같이 바람쐬러 나가자고한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이 인간은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걸까. 태일의 앞에서 김밥을 들어 입 앞에 들이대며 아ㅡ 입 벌려보라고 재촉하는 경을 태일이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졌다는 듯 끝내 입을 벌렸다. 아이구, 착하다 우리 태일이! 하고 깔깔웃는 그를 보고는 뭔가 애호박이 말을 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드는 태일이다.
"…밖에 나오니까 좋아요?"
"당연한거 아닌가."
"태일 씨 미안해요."
"뭐가요."
"그냥…. 그냥 미안해요 내가."
"사람이. 좀 알아듣게 얘기해요. 답답하게스리."
꺼내주고 싶어도 꺼내 줄 수가 없어서.
경은 차마 그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김밥이나 먹자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태일에게 또 김밥을 먹였다. 사실 오늘도 민혁이 면회를 올 것이다. 매일 면회는 오지 않았어도, 병원에는 꼭꼭 들리는 민혁이었으니. 항상 병원에 올 때마다 민혁의 시선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가 병원에 올 때마다 경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마 제가 태일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걸 알면 무슨 반응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민혁이 자신과 같은 마음인지 꼭 확인하고싶었다.
곧 그가 올 시간이지만 개의치 않고 느긋하게 태일과 소풍아닌 소풍을 즐기고 있던 경의 시선이 태일의 뒤로 향했다.
아까부터 계속 누가 저기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 병원에 언제쯤에 들어가나?"
"……."
"이봐요. 박 선생. 지금 뭘 보시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소리 하는거에요. 방금 내 뒤에 계속 봤잖…."
"…태일아."
"……우지호…."
"태일아…. 태일아 내가 진짜 미안해. 태일아…."
"저…저리 가. 왜 이래."
"태일 씨 이리 와요."
"댁은 누구신데 태일이보고 오라가라 합니까."
"이태일 담당 의사 박경입니다만. 그쪽은 누구신데 태일 씨한테 반말에. 다가가는겁니까."
"이태일 애인입니다만? 지금 이태일한테 손 대는건가요? 좀 담당의사라도 기분 나쁘네요."
약간의 신경전도 맴도는 대화에 태일은 그렇게 넓진 않지만 좁지도 않은 경의 뒤에 어버버거리며 서있기만 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태일의 머리에 스치는 초인종 소리, 살려달라는 인터폰, 들어오는 덩치의 사람들….
이 곳에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다.
더 이상 이 곳에 있기가 버겁다. 힘들다. 아프다. 1년 전에 자신을 먼저 내친 우지호가ㅡ저를 못잊었다고 다시 만나는건 어떠냐며 자신을 설득하던 민호의 말을 들었을 때 혹시나 했지만 넘기긴 했다만ㅡ대체 무슨 작정으로 자신을 다시 만나려 하는건지. 왜 민혁과 함께 이런 짓을 했는지. 물론 태일도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아직 저에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 안에만 모든걸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아직 우지호를 만나서 얘기하기에는 버겁다.
"경 씨."
"태일이 얼굴 좀 보게 잠시 비켜주시면 안 될까요."
"싫은데요?"
"경 선생."
"아, 태일 씨. 왜요?"
"…들어갈래요."
"어딜요?"
"…병원으로 갈래. 들어가고 싶어요."
그 곳만큼 편한 곳이 없는 것 같아.
경과 함께 외출해서 밖으로 뛰쳐나가 안 들어오려던 태일의 계획은 무산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래도 지호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보다는 오히려 정신병동이 더 편하다는걸 느껴버린지라 몇 초라도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기만했다. 제 팔을 잡아 끌며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한 태일을 본 경은 지호를 한번 쳐다봐주고는 태일과 함께 뒤돌아섰는데,
"이태일"
"……."
"태일이 형. 내 말 듣고 가."
긴 팔로 태일의 손목을 가로 챈 지호가 태일의 두 눈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여기서 너 놓치면, 널 볼 수가 없다고."
"…그게 뭐."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사과 할 수가 없었다고!!"
"…사과?"
"미안해. 내가 미안해요."
갑자기 답지않게 무릎을 꿇고는 자신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지호를 보고는 태일이 당황했다. 아니 답지않게가 그런 뜻이 아니고 제가 아는 우지호는 이렇게 사과에 익숙한 편이 아니다. 갑자기 이렇게 사과하는 지호의 모습에 태일이 어쩔 줄 몰라하니 옆에 있던 경이 간신히 태일과 지호를 떨어뜨리고는 둘이 천천히 얘기하라며 음료수 자판기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니까, 지금. 미안하다고?"
"응. 내가 미안하다고. 그거 알아?"
"뭘."
"너 면회 지금 민혁이 형만 갈 수 있어."
"…응?"
"여기서밖에 못 만난다고. 나 면회 못 가서 형한테 사과도 못 해."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난거냐."
"이 일은 민혁이 형이 총대맨거 알지? 내가 미쳤었나봐. 어떻게… 내가 어떻게 형을 정신병동에 집어 넣냐고."
민혁이 형이 자기 도와주면 태일이 형을 다시 나한테 돌려놓을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혹해가지고 그랬어…. 큰 손으로 마른세수를하며 연거푸 한숨만 쉰다. 그 꼴을 보다보니 지호가 안타까웠는지 태일이 토닥토닥. 어깨를 쳐 준다.
이미 여기 들어온걸 어쩌겠어
왜 그랬던지 이유도 이제는 필요없다. 이유를 알아도 이 곳에서 나가기는 힘들테니. 알아봤자 달라질 건 없다.
"이런 만신창이 꼴. 보니까 내가 더 힘들다. 태일아."
"……."
"쓸대없는 미련이라도. 이젠 부정 안할거야. 진짜 내가 마음 다잡았거든?"
"어어…."
"너가 쓰던 물건들 보면 진짜 살맛도 안나. 진짜 머릿속에서 네가 안 떠나잖아…. 나보고 는거야…."
"지호야."
"태일아. 다시 돌아와주면 안돼? 내가 여기서 꺼내줄게."
"우린, 우리는 이미 1년 전에 끝나지 않았냐. 네 손으로 네가 직접."
"…이태일."
태일 씨! 사이다? 콜라? 어떤거? 골라요 골라ㅡ 태일은 양 손에 음료수를 골라 뛰어오는 경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콜라. 경 씨 고마워요. 그 와중에도 나름 지호를 챙겨주는 경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지호 씨는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레몬에이드 뽑아왔어요. 아, 나 환자 순회 돌아야 하는데. 정신병동이라지만 순회 돌아줘야해요. 지호 씨 안녕히 가세요.
지호는 괜히 얄미운 말 몇마디 하고 사라지는 경만을 노려보았다. 내가. 곧 이태일 내 손으로 빼 낼거니까. 각오하시는게 좋을거라며 이를 으득으득 갈며.
여기까지가 원래 써놓은걸 끌어올린거구요, 앞으로 05부터는 시간 날때 써서 데려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