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남자복이 아주 많을 상이야!!!! "
점보는 걸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거의 끌려오듯 온 점집이였다. 처음 와보는 점집은 생각보다 냄새도 별로였고 무엇보다 장식들이 너무 다 화려해서 눈이 아팠다. 그리고 계속 무릎을 꿇고 있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나는 빨리 나가고 싶어서 친구 다리를 계속 찔러대며 눈치를 줬는데 친구는 무당의 말에 집중하느라 내 시선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참 우스웠다. 이런걸 믿는 친구도 우스웠고 귀가 따가울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무당도 우스웠다. 내가 한참이나 속으로 비웃고 있는데, 무당이 친구를 보며 얘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남자복이 많을거란다. 나는 무슨소린가 싶어 다시 물었다.
" 네? "
" 이번해에 남자를 아주많이 만날거야!!! "
" 그게 무슨.. "
" 조심해!! 남자때문에 한방에 성공할수도 있지만 남자때문에 폭삭 망할수도 있는 상이야!! "
" .... "
헛웃음이 났다. 저걸 믿으라고?
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 저기요 "
인상을 더이상 구길곳이 없을만큼 인상을 쓴 한 남학생이 우리집 문앞에 서있었다. 키가 엄청 커서 거의 올려다 보듯이 봐야 했다. 또, 잘생기긴 겁나 잘생겼다. 떡준 오빠보다는 아니지만 말이야.
" 네?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 표정을 본건지 못본건지 남자는 염색을 많이 해서 상할대로 상해보이는 머리카락을 답답하다는 듯이 커다란 손으로 탈탈 털었다. 그리고 삼백안 눈을 뜨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 그쪽 맞죠? "
뭐가 맞다는 건지. 남자는 확신에 가득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진짜 맞고싶나.
" 네? 그게 무슨.. "
" 저희집 벨튀한사람. 그쪽 맞잖아요. 아니 제가 좋으면 좋다고 말로 하시던가 왜 짜증나게 벨튀를 하고 난리야 씨발 "
이건 무슨 개소리일까. 남자는 처음엔 나에게 조곤조곤 말을 하다가 점점 격해져갔다. 내가 이미 벨튀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으며 말을 하는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잘생긴 오빠를 기다리며 집에서 얌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더군다나 생전 처음보는 얼굴이였다. 그런데 다짜고짜 와서는 하는말이 벨튀했냐, 씨발 이런거라니.
" 저 아닌데요. 착각하신거 아니세요? "
" 그쪽 아니시라구요? "
" 네. 저 오늘 집에서 나간적 없는데요. 의심가시면 씨씨티비 확인해 보시던가요 "
나는 '씨씨티비' 에 조금 더 힘을 줘서 말했다. 아까까지만해도 가자미눈을 뜨며 의심을 하고 있다고 얼굴로 티를 팍팍내던 남학생은, 내가 조금 화를 내는듯한 목소리를 내자 당황한듯 보였다. 동공이 좌우로 급격히 흔들렸기 때문이다.
" 아니라시면 사과 드릴게요. 제가 워낙 요즘에 벨튀에 시달리다보니 "
남학생은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듯이 미소를 머금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아까는 무슨 ' 솔직히 불지 않으면 니 주둥아리를 찢어버릴거야 ' 라는 얼굴로 쳐다봤으면서 착한척은.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아랫집은 지나가지 말아야 할거 같다. 아, 근데 얜가? 엘리베이터에서 잘생긴 애가 이사왔다더니..
" 뭐, 그럴수 있죠 "
" 근데, 혹시 OO여고 다니세요? "
아까부터 궁금했거든요. 남학생은 진짜 궁금했다는듯이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까딱이며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짝다리를 짚으며 나를 내려다 봤다. 짜증나게 키는 존나 크시네요. 나는 존나 땅달이구요.
" 네 그런데요 "
" 사실 제가 착각한 이유가 저희집 벨튀한 애 교복이 그쪽 교복이였거든요 "
" 그래요? "
" 네. 근데 혹시 몇살인지 물어봐도 되요? "
" 19살이요 "
" 우와, 신기하다. 동갑이구나 "
" 19살이에요? "
" 네. 근데 저 최근에 그쪽 아랫집에 이사왔는데, 모르셨나봐요? "
" 네 "
" 그럼 지금부터라도 친하게 지내요. 저는 OO 남고 다녀요 "
" 그래요. 친하게 지내요 "
오세훈이라. 왠지 별명이 많을거 같은 이름이다. 예를들면 실세훈이라던가 오미자라던가 앵무세훈이라던가. 아니, 내가 왜 오늘 처음본 애 별명을 줄줄이 꿰고 있지?
" 근데 저희 말 놓아도 되는거 맞죠? "
" 네. 편하실대로 놓으세요 "
" 그래 "
나는 그냥 예의상 편할때 놓으라고 한거였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놓아버리는 남자, 아니 오세훈이다. 아, 왠지 친해지면 피곤해질거 같은 스타일이야. 별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아니였지만 말이야.
" 근데 너 집에 안가? "
" 아, 가려고 했어 "
" 그래 그럼 잘가 "
" 응. 앞으로 자주 보자. 안녕 "
오세훈은 교복바지에 넣어뒀던 손을 슬쩍 꺼내서 한껏 수줍은 얼굴로 양손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계단으로 빠르게 걸어내려갔다. 그러고보니, 참 껄렁하게도 생겼다. 나랑 동갑이면 고삼일텐데 염색에 피어싱에 한껏 줄인 바지에. 꿈이 치킨배달인가?
옆집을 훔쳐보고 있어요
오세훈이 간 뒤, 나는 소파에서 과자를 찹찹대며 잘생긴 오빠를 기다렸다. 한 30분 지난거 같은데 우리집 문앞을 지나가는 사람 조차 없었다. 이쯤되면 올때가 됬는데..
' 띵동 '
왔다! 떡 오빠!
" 안녕 고삼애기? "
오빠는 뛰어왔는지 숨소리가 규칙적이지 않았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언제 갈아입은건지 하얀 티셔츠는 땀 덕분에 살짝 시스루티셔츠로 변해갔다. 한 30분 못봤을 뿐인데 왜이렇게 반가운건지.
" 뛰어 오셨어요? "
" 어떻게 알았어? "
" 이마에.. "
오빠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떡을 안들고있던 손을 들어 손등으로 이마를 빠르게 닦아냈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 왜요? "
" 나 기다렸구나? "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내 표정을 본 오빠는 웃음을 참기위해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나 어떻게 안거야.
" 아..아니에요! "
" 그럼 왜 신발이 짝짝이에요? "
나는 머리를 숙여 내 신발을 한번, 잘생긴 오빠 얼굴을 한번 쳐다봤다. 문 열고 나올때만 해도 분명 짝짝이로 신고있다는 느낌은 아니였는데. 보니까 운동화 한짝, 슬리퍼 한짝이였다. 그것도 한껏 구겨신은 채로. 오빠는 뭐가 그리 웃긴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없이 웃었다.
" 그거는.. "
" 알았어 알았어 안놀릴게요 "
내가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 애꿎은 슬리퍼만 구겨대니 오빠는 더 크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안놀린다면서 웃는건 또 뭐야. 비웃는거야?
" 자. 여기 떡. 나 기다린거 같은데 늦게와서 미안해요. 중요한 전화가 와서 "
"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빠 "
" 오빠? 나 오빠아닌데? "
" ? "
" 오빠라고 그러면 기분은 좋은데 죄짓는거 같잖아요. 아저씨라고 해 아저씨 "
누가봐도 아저씨라고 불릴 얼굴은 아니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했다. 나에게 아저씨라 함은 배가 조금 나오고, 머리는 반은 벗겨져야 아저씨다. 그런데 머리는 갈색으로 염색하고 얼굴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아저씨라니. 내가 죄짓는거 같다.
" 아.. 네. 뭐 "
" 근데 혼자살아요? 학생인데? "
" 아뇨. 부모님 여행가셨어요 "
" 그렇구나. 위험할텐데.. 그럼 내가 자주올까요? 반찬도 좀 가져다 줄겸 해서 "
" 저야 좋죠. 안 그래도 이웃이 없어서 심심했거든요 "
" 음.. 알겠어요.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됬네. 그럼 나중에 봐요 고삼애기! "
오빠, 아니 아저씨는 급한일이 있는지 큼직한 시계를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양손으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거의 뛰어갔다. 양손 인사라니.. 갑자기 오세훈이 생각나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 맞다! 이름! 이름 안물어봤다!
" 아저씨! 근데 이름이 뭐에요? "
" 김민석! 김민석이야~ "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가며 나에게 소리쳤다. 김민석이라. 이름조차 완벽하다. 근데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왜이렇게 먼거야. 다른 아파트는 집 문 옆에 바로 엘리베이터 있던데. 나는 죄없는 아파트를 속으로만 실컷 욕하며 문을 쾅 닫았다. 그러자 문 밖에서 종이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문을 슬쩍 열고 쭈그려 앉아서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 개인 과외 >
OO대학교
20살
도경수
01012345678
개인 과외라고 적혀있는것을 보면 분명히 과외 종이는 맞는데 종이에 쓰여진 글들은 매우 간략했다. 종이에 쓴 글들만 보아도 성격이 매우 조용하고 차분할거 같았다. 조용한 수업은 별론데. 하지만 나는 지금 고삼이고 선생님을 고를때가 아니였다. 나는 계속 앉아있어서 쥐가 난 다리를 주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구겨진 소파에 덩그러니 놓아진 핸드폰을 잽싸게 주워 번호를 저장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 누구세요? "
티는 안냈지만 나는 이사람이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 가 아닌 '누구세요?' 라고 해서 순간 당황했다.
" 어... 과외종이보고 전화드렸는데요 "
" 네 "
" 과외 하려구요 "
" 집 주소가?"
" OO아파트 OOO동 OOO호요 "
" 나이는? "
" 고삼이요 "
" 내일 12시 괜찮아요? "
" 네 "
" 그럼 그때 봐요 "
취조 하는 줄 알았다. 경찰서에서 형사가 범인한테 하는 취조 말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목소리가 낮아서 좀 놀랬다.
***
발신자 : 엄마
과외 구했어요
참으로 짧은 문자였다. 그러나 엄마와는 농담따먹기 할 사이는 아니였기때문에 문자는 대충 저런 식이였다. 엄마 아빠가 여행을 간 뒤로 전화를 한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문자는 자주 주고 받았다. 그래도 하나뿐인 딸이라 걱정은 되는지 꼭 하루에 한번씩은 '밥 먹었니', '공부했니' 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하지만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문자였다. 문자 수는 5글자를 넘어가지 않았고 문자 내용은 기계가 찍어내는것처럼 언제나 동일했다. 부모님이 안계시면 조금이라도 탁 트인 기분이 들줄 알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였나보다. 부모님은 문자로도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급격히 우울해진 기분을 풀 곳이 없어, 만만한 찬열이에게 문자를 했다.
발신자 : 박타녈
우리집 ㄱ
수신자 : 박타녈
ㅇ
왜 문자를 저따위로 하나 싶겠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찬열이와는 응애응애 할때부터 알던 사이다. 볼꼴 못볼꼴 다 본 사이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도 서로 알고 있는데, 내가 찬열이한테 항상 밥먹듯 하는 말이 우리 부모님이 찬열이네 부모님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
' 띵똥 '
그래도 고삼이라고 공부나 할까 싶어 티비를 끄고 소파에서 일어난 순간 벨이 울렸다. 아, 박찬열.. 쓸데없이 빠르고 난리야.
" 문열렸어 들어와 "
무슨 강아지도 아니면서 내가 들어오라 소리치니까 냉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찬열이다. 찬열이는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뒤뚱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저새낀 무슨 인사도 안해?
" 야 몇일만인데 반갑지도 않아? "
" 19년동안 질리게 봐왔으면서 반갑냐? "
" 아니 "
" 그럼 그렇지 "
박찬열은 참 한결같다. 말투나 습관 이런거 말이다. 말투는 항상 틱틱대는 말투이고 습관은 너무 많아서 패스. 하지만 맨날 틱틱거리는건 아니다. 가끔 뭐, 츤데레 짓도 한다. 예를들면 내가 요리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요리재료를 잔뜩 사온거 말이다.
찬열이는 요리천재다.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살때도 요리장난감만 잔뜩 사던 애다. 옛날엔 부모님이 다 해주셔서 요리천재찬열이를 쓸 일이 없었지만, 여행을 가신 뒤로 부터는 이렇게 거의 항상 부른다. 그냥 차라리 우리집에서 살았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욕을 할지도 몰라 아직은 제안하지 않았다. 근데 곧 제안해볼 생각이다. 어차피 쟤는 요리사가 꿈이라 공부도 안하기 때문이다.
박찬열이 주방에서 뭘 계속 꼼지락 대더니 갑자기 인상을 팍 쓰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내가 소파에서 안도와주고 뒹굴거리니까 조금 화난거 같았다.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어떻게 하면 찬열이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하고.
" ..ㅇ..왜..? "
" 참기름 없어 사와 "
씨발
사진 구하는거 너무 힘들다! (찡찡)
그치만 우리 독자님들 말투 너무 예뻐서 힘내서 쓴다! (찡찡)
암호닉
뭉이님
세훈님
로운님
감자튀김님
암호닉 신청은 언제나 환영 데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