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너는 내 마음에 빛을 밝혀.
BGM 바닷길-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 //www.youtube.com/watch?v=VPeyx58n-MI (찬열이의 입장에서 읽어주세요.)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너와 함께하는 지금도. 그래 나는 어쩌면 너라는 사람에게 첫 눈에 호감을 가졌는지 모른다. 아니 그랬다. 나도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 할 만큼. 나를 쳐다보지 않는 척하며 아주 끈질기게 쳐다보는 너에게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아주 어린 아이 같은 눈빛을 내며 교수님을 바라보며 수업을 듣는 너를 어느 누가 싫어할까. 그리고 나를 아주 맑은 눈으로 쳐다보는 너를 대체 어떻게 내가 나쁘게 생각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너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나는 일부러 아주 조용히 너를 뒤따랐다. 네가 어디를 가는지, 어떤 수업을 듣는지. 네가 이런 나를 알게 된다면 소름끼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너를 아주 몰래 따라갔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아침부터 네가 언제 학교로 향하는지 보기 위해서 내 집 베란다에서 102동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월요일 수업을 너와 같은 수업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는 맨 뒤에 앉아서 너를 지켜봤다. 그리고 뒤통수가 참 폭신폭신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이 올 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네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학교 그 어디에서도 너를 찾아볼 수 는 없었지만. 나는 금요일까지 기다렸다. 너에게 말 한마디를 걸기 위해서.
금요일 경제학원론 시간에 강단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는 너를 보며 볼을 꼬집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 네 이름을 듣고, 참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장한 채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마치 없는 막냇동생을 보는 느낌이랄까. 부산에서 온 20살의 경수야, 우리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자. 나는 경수 바로 다음번에 자기소개를 했다. 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네가 더 신기했다. 마치 네 눈빛이 나를 보며 친해지고 싶어요! 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수업 내내 나는 내 뒤에 앉은 너 때문에 뒷머리가 따가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를 돌면 네가 놀라겠지? 네 놀라는 모습도 보고 싶었으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았다. 이걸 구실로 네게 말을 걸어야지, 그리고 친하게 지내자고 해야지.
“ 경수라고 했지? 도경수? 성이 특이하네. 근데 왜 나를 그렇게 쳐다봐? 나 뚫어지는 줄 알았어.”
나는 가방을 싸고 있던 너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웃었다. 내 물음에 너는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렸다. 당황한 네 모습도 역시나 귀여웠다. 너는 아주 조금 생각하다가 내 책을 보면서 저 책이 신기하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말했다. 아주 어린 아이의 해맑은 거짓말처럼 들려서 나는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너와 조금 더 얘기하고, 걷고 싶었기에 나는 같이 제본하러 가자는 핑계로 너를 이끌었다. 복사실로 가는 동안에 나는 너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부산 어디에 살았는지, 왜 경제학과에 왔는지. 그리고 너와 같이 산다는 그 친구는 대체 누구인지. 누구 길래 너를 옆에 두고 사는 행복을 누리는 건지. 그리고 형은요, 라고 묻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형이라는 말이 어색한지 더듬는 너의 모습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20살 남자 중에 이런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제본 값을 내주었다. 그리고 너는 내 팔을 잡으면서 왜 돈을 내주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서 네가 귀여워서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너는 한참 멍하게 서 있다가 마실 거라도 사겠다며 나를 카페로 이끌었다. 아마 내가 네게 귀엽다고 한 게 네게는 아주 큰 충격이었던 듯 했다. 바로 앞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도 못 보고 길을 걷다가 차가 경적을 울리기도 했고, 카페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다가는 심지어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했다. 나는 네 손을 잡아주면서 너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야한 생각을 하냐고 물으며 너를 살짝 놀렸다.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크게 웃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네게도 먹이고 싶었다. 좋은 것을 너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너는 빙수를 기다리는 동안 말을 꺼낼까말까 안절부절 했다. 그리고 많이 어색한지 영수증을 들어 쪽지모양으로 접고 있었다. 나는 꼼지락대는 네 손을 보면서 세상에 네가 너무 귀엽다고 소리를 치고 싶었다. 나는 너도 보고, 빙수도 먹어서 그 날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러면서 나는 네게 앞으로도 빙수를 같이 먹으러 다니자고 말했다. 너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는 의미로, 물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네가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원래 이렇게 친절하냐고 물었다. 사실은 너 같은 아이들에게만 친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할까봐 아주 돌려서, 순화시켜서 말했다.
“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근데 너도 나랑 친해지고 싶은 거 아냐?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모를 수가 있나. 그러니까 나 궁금한 거 몇 개만 물어봐도 돼?”
너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빨개졌다. 네 양 볼을 두드려보고 싶었다. 네 볼을 쳐다보며 나는 아주 잘 익은 자두를 생각했다. 나는 네 일상에 대해서 물었다. 수업시간에는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그 이외 시간의 너의 생활이 궁금했다. 그리고는 네 전화번호를 물었다. 앞으로 아주 많이 연락할 테니, 잘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너는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너는 번호를 입력하며 내게 왜 혼자 사냐고 물었다. 나는 그래서 아주 솔직히 대답했다. 내 대답에 미안해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성격마저 착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네 머리를 아주 살짝 두어 번 쳤다.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그리고 같이 간 개강총회에서의 너를 보면서 앞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거절할 줄도 모르고, 게임을 잘 해서 술을 안 마시는 방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빨개지고 술에 취해가는 너를 보며 나는 근심이 쌓였다. 다른 누군가가 너를 귀여워하면 안 되는데. 마치 내 것을 빼앗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집에 갈 때 네 손목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손을 잡기엔 아직 친한 사이는 아니니까, 딱 우리 사이만큼 어색하게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네 가방을 들어준 나에게 너는 허리가 굽어질 듯이 인사했다. 나는 네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꼭 잡고는 나중에 꼭 밥 사라고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는 네 뒷모습을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집은 여전히 텅 비어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과 누나가 저 세상으로 떠난 이후 내 집에는 온기가 사라졌다. 나는 혼자가 싫었다. 항상 집보다 학교를 더 선호했고, 혼자가 싫어서 대학도 가지 않고 군대에 먼저 다녀왔다. 거기선 최소한 누구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혼자임을 잊기 위해 가족이 내 곁에서 사라진 후 아주 열심히 살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셨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정도 효도는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도 아주 열심히 공부했고, 제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내 주위를 둘러볼 새 없이, 공부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공부만 했다. 그리고 아주 밝은 척하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었고 혼자 잠을 자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친구가 아주 많이 필요했다. 그래도 매일 집에 오면 허전함을 느꼈다. 언제나 밝은 만큼, 그림자도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네 생각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오래, 그리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세상에 너를 만들어주신 네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나는 너와 아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느끼는 이 미묘한, 물음표 짓게 하는 내 감정에게 대답을 내려주고 싶었다. 너와 같이 밥을 먹고, 빙수를 먹고, 그리고 집에 걸어가고, 또 공부를 했다. 나도 내가 어떤 감정인지 확신하지 못했었으나, 네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네가 내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됐으면 했다. 그래서 내 외로움을 채워줬으면. 내 말에 웃어주고, 나와 말투가 비슷해져가는 너를 보며 나는 아주 기뻤다. 네가 나에게 스며드는 것 같아서. 그렇게 언젠가는 네 생활이 내 색깔로 모두 물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내 생활이 너로 많이 물들어 있는 것처럼. 그래서 너에게 아주 잘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네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내 옆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너와 처음 영화를 같이 보던 날, 나는 너를 보면서 중학교 때 첫 사랑에게 느꼈던 설렘을 느꼈다. 어쩌면 영화 내용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우리가 손을 잡았을 때 나는 정말로 세상에 소리치고 싶었다. 얘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너무 좋아서 세상에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내 세상에 네가 가득 찼음을 인정했다. 경수야, 너를 내가 사랑한다고.
그 마음들이 커져가면서 네 여러 부분들 중 보이지 않고 내게 들려주지 않는 것까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네 페이스북 계정도 뒤져봤고, 네 핸드폰을 맡아주는 척 하면서 네 핸드폰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문자 내용도 봤고,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도 봤다. 그 때 나는 너와 백현이라는 친구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내게 물드는 너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네가 내게 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만약 네 두발로 내게 오지 않게 되어도,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나는 네게 고백했다. 네가 백현이라는 친구에게 주는 감정을 내가 갖고 싶다고. 그리고 네가 내 그림자로 가득한 내 집에 들어와 빛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이렇게 멋있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내 집에 네가 와서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경수 너에게 처음으로 입 맞추었다. 정말 그 당시에는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서, 내게는 너 밖에 안 보였다. 그래서 너를 느끼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네게 입 맞추었다. 나와 입 맞추어 주는 너를 보면서 나는 곧 네가 오게 될 것이라는 느낌에 세상을 모두 가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와 정리를 하면서 힘들어 하는 너를 바라보면서, 나는 소리 없이 좋아했다. 그렇게 많이 괴로워하며, 그를 향한 네 감정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네 두발로 내게 걸어오길. 네가 내게 올 것이라는 사실에 확신하면서도, 너를 기다리는 일은 내게도 지치는 일이었다. 기다리는 나날들이 거의 2주가 다 되어가면서 이러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나 네가 내게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는 네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말했다. 원래 갖고자 하는 게 손끝에 닿을 만큼의 거리에 있을 때 더 안달이 나는 법이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너의 백현이를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쯤 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너를 데리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연적을 만나는 것이네. 내 첫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우리 엄마가 자신에게 연적이 생겼다고 했었다. 아주 예전을 추억하며 나는 그를 기다렸다. 그는 빛이 바랜 것 같았다. 내가 그를 만나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경수의 얼굴보다 몇 배는 힘들어보였다. 그는 내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어떤 준비인지 묻지 않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꽤 오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다가 아주 먼 훗날에 혹시 자신이 경수를 찾게 되었을 때 그 때도 빛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경수에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아이의 마음의 주인이 바뀌었을 뿐. 아마 앞으로는 괴로워하는 경수를 생각하는 그와 내가 가장 힘들겠지. 그를 바라보며 아주 오랜만에 담배가 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내 집으로 너를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에게는 아주 잔인한 부탁이었겠지만, 나는 내 집을 밝혀줄 네가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그 날부터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너와 같이 쓸 침대시트를 세탁했고, 잘 보지도 않던 TV도 닦았으며, 네 옷을 넣어두기 위해서 옷장도 정리했다. 나도 그 못지않게 너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곧 너만 들어오면 이 집이 완벽해 질 텐데.
너는 이틀 뒤, 새벽에 내 집 초인종을 눌렀다.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이제 우리 집이 된 집의 현관문 앞에 서있는 너를 보며 나는 아주 밝게 웃으며 말했다.
“ 이제 여기가 네 집이야.”
네가 이곳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졌다. 그리고 너는 짐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와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형이 부모님이 없어서 좋아요. 안 미안해지거든요.”
나는 너다운 생각에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미안해지고 싶지 않겠지. 그래서 나는 너를 위한 조언을 했다. 누구에게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 네가 그 동안 어떤 감정을 가지고 그 친구를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에게만 온 힘을 쏟아봐. 그게 그 친구를 위해서도 좋을 거야. “
사실 내 바람이었지만.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외로움에 묻혀서 살지 않을 거야. 경수야, 네가 여기 내 옆에서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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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학 402호 쓰면서 제일 밝게 쓴 글입니다. 어느새 돌아보니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찬열이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ㅠ_ㅠ
사실 지금까지 찬열이의 분량이 많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찬열이도 아낀답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을 찬열이의 모습을 기뻐해주세요.
그리고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제가 진짜 거의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PS. 우울한 마음 여기에 다 두고 가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