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I don't know (찬열side)
그러지 마. 화내지 마, 나 … 무섭다. 네가 화내면 무서워. 또 다시 널 놓아야 할까봐 무섭다. 백현아. 절망에 가까운 분노가 담긴 네 목소리에 심장이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가슴이 뻐근하게 당겨올 만큼 빠르고 불안하게 뛴다. 제 어깨를 억세게 움켜쥐고 있던 백현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자 벽에 세게 부딪혔던 아픔도, 네가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 잊고 찬은 다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언뜻 백현에게 손끝이 닿았다고 느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순식간에 찬은 중심을 잃고 무너져버렸다. 안 돼, 안 돼. 보지 마. … 백현아, 제발. 이런 모습 따위 보지 말아줘 … 찬은 차라리 그대로 백현이 돌아서기를 바랬지만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 제 뺨을 닦아주는 손길에 찬은 절망했다. 끝내는 제게 모질지 못한 그의 서툰 다정함이 슬퍼서 … 너를 보내야 하는 줄 알면서도 보내지 못하고, 매번 네 속이 상하게 만드는 내게 화조차 낼 수 없게 만들어. 백현아, 나는 대체 너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걸까. 이런 나를 … 너는 왜 사랑하는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박찬열, 너 ─ 네가 뭣 때문에 여기 끌려왔는지 알아? "
" … 알아. 어머니의 빚 때문이라며. "
" 웃기네. 그깟 술값이 얼마나 된다구. 모르나 본데, 그 여자 미치긴 했어도 알콜 중독은 아니였어. 게다가 왕년에 잘 나가던 무당이었다구. 그녀가 벌어들인 돈이 얼만데 고작 술값이 없을까? "
" … 그게 무슨 뜻이야 ? "
글쎄? 무슨 뜻인지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네 어머니는 따로 있잖아. 그 어머니의 빚이란 말이지 … 청년이 비죽 웃으며 말끝을 흐린다. 그러나 이미 나올 말은 다 나온 상황. 철컹철컹. 족쇄에 붙들려 움직일 수 없는 소년이 발악하듯 몸부림친다. 눈물로 흠뻑 젖은 소년의 뺨을 청년이 긴 손끝으로 느릿하게 쓸어 내리며 소년의 뺨에 묻어 있던 물기를 제 혀 끝으로 가져가 할짝, 소리 내어 핥는다. 보통 사내 놈 눈물은 맛이 없는 법인데 ─ 네 눈물은 맛있네, 박찬열.
" 그 남자도 참 독하지. 어쨌든 사랑하던 여자의 핏줄인데 말야. "
" … 아니야. 그녀는,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닌데 왜 … "
" 바둥거리지 마. 예쁜 손목에 상처가 나잖아? 그러니까 포기하랬잖아, 내가. 넌 죽어도 여기서 못 나가."
" … 왜 이제 와서 … "
절망에 찬 소년의 중얼거림에 청년이 빙긋 웃었다. 그거야, 박찬열 네가 열 일곱이 되었기 때문이지. 그녀가 너를 낳았던 나이 말이야. 그리고 네가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여자의 '진짜' 아들이 죽은 나이기도 하고. 너도 알잖아? 네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 여자의 아들은 열 일곱에 죽었어, 신병으로. 그러니까 네가 애타게 부르짖는 그 애는 너를 데리러 못 와. 너는 이미 죽은 사람이잖아, 박찬열. 청년의 마지막 말에 소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백현아 … 나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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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찬, 맞습니까? "
" … 예. 전데요. "
오랜만에 가게에 나온 찬은 홀의 구석진 곳에 서 있다가 가게 내의 자질구레한 일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방 일을 도우려 들어갔지만 한창 손님들께 대접할 안주를 만드느라 바쁜 듯 싶던 주방장, 경수가 어느새 찬을 봤는지 손 다친다면서 그를 도로 홀로 내보냈다. 그러나 아무도 찬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이방인처럼 떠돌고 있던 찬을 붙잡은 것은 낯선 얼굴의 남자였다. 오너에겐 미리 말을 해뒀다면서 가게 밖으로 찬을 데리고 나온 남자는 잠시 찬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마치 평가를 받는 것 같은 그 매서운 시선에 찬은 어쩐지 죄인이 된 기분으로 움츠러 들었다. 누구시죠? 라고 묻지도 못하고 그대로 뱀 앞에 놓인 개구리마냥 굳어 있는데, 한참 만에 남자가 입을 연다.
" 서영호라고 합니다. 저희 보스, 아시죠? "
" 네? … 보스요? "
" 예. 설마 모른다곤 안하시겠죠. 백호파의 주인, 변백현이 제 보스십니다. "
" … 백호파? … 누가 … 설마, 백현이가요? "
" 예. 순진한 척 하지 마십시오. 청룡파 구역에서 호스트로 구르실만큼 구르신 분이 설마 적대 조직 보스 얼굴도 모르셨다는 말 따윈 하지 않으실 테고, 좋게 말로 할 때 저희 보스 곁에서 떨어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백호파, 찬이 있는 이 거리의 ‘주인’을 자처하는 청룡파와는 사실상 적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조직의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그 백호파의 주인이 백현이라고. 아니야. 아닌데, 저기, 아저씨. 백현인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백현이는 … 그렇게 대꾸하려던 찬은 그제서야 백현에 대해서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에 사는지는 물론이고,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찬은 백현에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 넌,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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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말이라서 어제 새벽에 신나게 글쓰고 오늘 퍼자려다가 댓글 때문에 소환됨. 댓글 단 독자님들 고맙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