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낮기온이 40도를 웃돌 것으로 보입니다'
뙤약볕아래 발톱을 세워 귓등을 긁고 있는 저 자.
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선 내 발이 조금씩 저려온다
"아, 쥐났다. 으, 덥긴 더럽게 덥네.
야, 넌 털도 많은게 무지하게 덥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앞에 턱하니 놓여진 참치캔을 다시한번 드밀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한발짝 다가와 혀를 낼름 거린다.
"넌 좋겠다.
카만히 있어도 이렇게 밥챙겨주는 나같은 사람도 있고
그런 나같은 사람보다 널 더 좋아하는 정택운도 있으니까. "
쳇. 말하다보니 진짜 조금 서럽긴 하다.
정택운이 제일 좋아하는 거. 그게 너라서.
그는 유난히도 작은 동물을 좋아했다.
자기보다 작고 여린건 보듬어 줘야 한다며
무뚝뚝하게 고양이 털을 쓰다듬으면서
나에겐 보여준적없는 그 해맑은 강냉이를 다 드러내는 것이다.
"이왕이면 나도 고양이였으면 좋았을걸."
혀를 날름거리며 수염이 물든지도 모른채 참치캔에 얼굴을 드밀고 있던 그가
내 말에 픽- 하는 비웃음을 내보이곤 다시 우아하게 물그릇을 핥는다.
"그래, 너도 나 무시하는 거지?"
사박, 거리는 풀소리와 함께 몇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의 발소리가 들린다.
가뜩이나 말도 없는 정택운은 발소리 마저 평온하고 조용하다.
마치 남에 집에 숨어든 요 고양이처럼.
"얜 말 못해"
"알아, 근데 말수는 너랑 비슷할걸"
피식- 웃으며 나를 내려다 보는 정택운의 얼굴에 맺힌 땀이 턱선을 따라 도르르 흘러내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좋아 보이는 땀이다.
"이겼구나?"
"응"
말 없는 고양이만큼 조용한 그는 승부욕에 있어서는 얌전하지 못했다.
뭘 하든 자신이 이겨야 하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이기적인 부분이었다.
"잘 놀았어?"
"응, 물어 뭐해"
보드라운 털을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돌아올리 없는 대답을 바란 그에게 냉큼 고양이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그는 다정하다.
물론,
고양이에게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늘 그렇듯, 먹고 자고"
"응. 잘했어"
마치 나에게 온 칭찬인양 그는 항상 그렇게 다정했다.
"나는?"
"..."
털을 쓰다듬던 그 하얀 손이 순간 멈칫 하더니 나를 지그시 올려다본다.
그 순간도 채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그의 시선을 뺏는 건 내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 온난화 하던 속보가 현실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볕 더위에 지쳤는지 아니면 그의 대답에 지친건지
"이젠 나 쳐다보기도 싫어?"
아.실수다. 자각한 것과 동시에 털을 쓰다듬던 정택운의 손이 멎었다.
단지 그 뿐이다
"됐어. 네 대답 들려주지 않아도 돼.
충분해. 이젠"
보지 않아도 상처입었을 정택운의 눈을 마주하기 싫어
몸을 휙 돌려 자박 자박 걸음을 내딛었다.
들리지 않는 발소리에 애먼 신경만 예민해져 발끝에 채이는 조약돌을 틱 차버렸다.
"그래. 정택운의 다정함은 여기까지지."
우뚝 멈춰서 올려다 본 물빛 하늘엔
소리없이 내뱉는 기분좋은 웃음도 있고
그의 귀인에게 내밀었던 물그릇도 있었지만
살폿 손을 쥐어봐도 잡히는 건 없다.
" 아, 진짜 이번엔 제대로 상처받았어"
다시 손을 내려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길,
몰래 온 묘손님이 살던 정택운의 집에서 우리집까지는 약 4시간
버스를 타지 않으면 그날은 어김없이 정택운을 못보는 날.
그는 한번도 나를 찾아온 적이 없다.
하릴없이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진다.
그에게는 모진 말이었을 그 것들을 곱씹으며 발길을 재촉했더니
어느새 빽빽한 주택가 사이로 우리 집이 저 멀리 내 시야에 들어온다.
"휴.."
애꿎은 바닥만 보며 터덜터덜 걷다가 마주오는 사람과 턱하니 부딪혀
"아, 죄송합니다"
하고는 옆길로 몸을 비웠더니
손목을 낚아채는 하얗고 긴 손이 보인다.
여기에 있을리가 없는 그 예쁜 손.
"어디가"
"집"
"왜 대답 안듣고 가"
초코파이같은 남자가 바로 너니까,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니까 그래. 그러니까
"왜 나 안쳐다봐"
"별로"
하고선 묵묵히 바닥과 눈싸움을 하고 있으려니
내 볼을 움켜쥔 정택운의 하얗고 큰 두손.
볼이 미어져라 꾸욱 누르는 그 손아귀가 너무나도 얄미워
손을 들어 택운이의 팔을 잡고 떼어내려는데
"내 대답"
택운아. 넌 문장형으로 말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해. 란 말은
속으로만 묵묵히 삼켜졌다.
정택운의 입술이 왼쪽볼에 한번 쪽
형평성을 위한답시고 오른쪽에 한번 쪽
태평양처럼 넓은 내 이마에 쪽
그리고 시선을 마주한 내 눈에다가도 쪽. 쪽.
마지막은 단내나는 입속에다 쪽.
아니, 헤집고 들어온 건 니 입술이 아니지만
손에 붙잡힌 내 볼이 아려와 설핏 눈을 찌푸리려니
이내 손에 힘을 풀고 내 입속을 찬찬히 맛보던 정택운은
금새 입술을 떼어내고 내 다리를 잡아 자기 어깨에 들썩 짊어졌다.
"야. 정택운!"
"쉿. 대답 하는 중이잖아"
"알겠으니까 좀"
"아니, 아닐걸."
"뭐가?"
"넌 분명 모르는거야"
짐짝처럼 정택운의 어깨에 실린 내 손이 그의 등을 탕탕 치며 어지러움을 호소하자
그는 얄밉게도- 내 허벅지에 입술을 대고선 이내 혀로 짓이겨 살짝 깨물었다.
"아파! 왜 깨물어!"
"표식"
"난 고양이 아냐"
"응 알아"
그리고선 반대쪽도 같은 모양을 내겠다며 쪼옥 입술을 댄다.
"그거 알아?"
"뭐"
"고양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이름표를 달면돼"
"근데"
"너도 그래"
"내 말 들었어? 나 고양이 아니라고"
"그래, 그러니까 표식. 니 온몸에다."
그래. 정택운은 이다지도 다정하다.
혹여 나를 잃어버릴까봐 내 몸에 표식을 새겨준다고 할 만큼.
짐짝을 둘러맨 정택운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그는 내 다리로 자신의 허리를 감게 했다.
마주보는 정택운의 눈에는 낮에 보았던 기분좋은 웃음이 온데간데 사라져 있다.
"미안"
"뭐가"
"너 내가 울릴거거든"
목덜미에 닿은 그의 입술이 이내 쪽- 하고선 옆구리를 따라 내려오더니
다시 혀로 지나온 길을 따라 내 살을 자근자근 씹어 올린다.
"아... 비키니 입긴 글렀다"
"괜찮아"
"입는건 난데, 뭐가 괜찮아"
"내 앞에선 안입어도 돼,
아무것도"
빨개진 내 얼굴에 키스를 퍼붓는
정택운이 유일하게 이기적이게 되는 순간.
더보기 |
빠르면 내일, 혹은 다음날 캠퍼스로맨스 장편 시작합니다! 즐감하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