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Cards :: 행운의 기사
23. 위기
우진은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녀를 똑똑히 보고서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아침, 피곤에 찌든 몸을 챙겨 나올 때까지만 해도 우진은, 온 신경이 다 죽은 사람처럼 행동했었다. 아픈 진영이를 두고, 오랜만에 단 둘이 차에 남은 상태에서 다니엘은 무심하게, 툭 던졌다.
“나이는 스물 둘. 현 킹 직계동생이고, 십 년 전에 지 부모 죽고 숨겨져서 없는 듯이 자랐다더군.”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것도 아니라, 구워삶기 편하겠어.”
그 말을 우진은 조금 더 귀담아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반갑습니다.”
그랬다면, 저 스페이드의 잭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익숙한 여자를 보고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터였다.
“오빠가 있었어요. 세 살 위에.”
“현 킹 직계동생이고.”
“부모님께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십 년 전에 지 부모 죽고.”
“난 버려진 거에요.”
“숨겨져서 없는 듯이 자랐다더군.”
아, 그녀는 그에게 단 한 톨의 거짓도 고하지 않았음을.
“반갑습니다. 스페이드 잭 최민기입니다. 이쪽은……”
“퀸이시겠군.”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척하니 반말로 말문을 여는 다니엘 때문에 민기의 심사가 조금 뒤틀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민기가 자리에 앉자, 그 뒤에 있던 그녀도 허겁지겁 자리에 앉는다. 그 모든 걸, 그가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쪽에서 연합을 신청할 줄이야.”
“……”
“솔직히 놀랐어.”
“……”
“는 거짓말이고. 예상은 했지만.”
그 자존심 굽히고 들어올 줄 몰랐지, ‘그’ 스페이드가. 입술에 힘을 주며 미소를 유지한 민기는 그의 앞으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읽어 보시죠.
“구두로 설명하는 편이 더 좋겠는데.”
“……그럼, 그렇게 하죠.”
“근데, 왜 당신이 주도해?”
“……”
“여왕님께선 벙어리신가?”
응?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이름이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녀에게로 꽂히는 세 쌍의 눈동자. 그 중 하나는 특별히 더 강렬했으나.
“퀸께서 오늘 좀 편찮으셔서, 제가 대신 진행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민기가 그 어색한 흐름을 치고 들어왔다. 그라고 모를 리가 있는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부터, 저 뒤에 서있는 남자가 이름을 찢어발길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반면 이름이는 제대로 고개도 못 들고 허둥지둥 얌전히 앉아있지도 못하는 걸. 제발, 속으로 빌었다. 제발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그래 보이네.”
“……”
“좋을 대로 해.”
“감사합니다.”
“대신.”
다니엘이 턱짓으로 이름을 가리켰다.
“나가.”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얘기에 끼어들지도 못하는데, 여기 둘 필요가 없어.”
“말조심하세요.”
“어차피 인형인데, 안 그런가?”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눈도 못 마주치고. 안 데려온 것만 못한데. 아주 충신이야. 노골적인 모욕, 아마 종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쏴버렸을 것이다. 데리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민기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무례하시네요.”
“갑질이지.”
“……”
“어차피 오늘은 내가 갑인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웃는 얼굴 뒤로, 얼마나 많이 혀를 깨물었는지 모르겠다. 잠깐의 스산한 정적이 흐르고, 이름이 참지 못하고 작게 외친다.
“……나가 있을게요.”
“예?”
대놓고 화가 난 표정의 민기가 그녀를 돌아본다. 미쳤어? 하고픈 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민기를 보며, 다니엘은 슬쩍 뒤에 서있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이쪽도 노골적인 건 마찬가지군.
“안 그래도 머리 아파서, 바람 쐬고 싶었어요.”
“……”
“필요하면 불러요. 어차피 대부분 잘 하겠지만.”
그리고 그녀가 일어선다. 대놓고 퀸을 개무시 했는데도 대적할 생각도 안 해? 여긴 이번 전쟁에서 우승하긴 글렀군. 저 여자앤 어리고, 멍청하고, 도움이 안 돼.
수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 스페이드는 기어오를 생각도 못했다. 민기는 숨죽여 입술을 깨물었다.
“박우진. 너도 나가있어. 너도 필요 없는 건 마찬가지야.”
예? 예. 대놓고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우진도 허둥지둥 대답하고 주섬주섬 방을 돌아 문으로 향했다. 이내 두 남녀가 문을 닫고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다니엘은 실소를 터트린다.
“각자 할 얘기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야지, 안 그래?”
이 남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민기도 그들의 여왕과 저쪽의 기사간의 사정이 있는 것이야 진작 눈치를 챘었으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인 줄은 몰랐다. 이제 민기는 웃고 있지 않았다.
“상사가 멍청하면 부하들이 똑똑해 봐야 소용없는 법이지.”
“……”
“자, 어디 한 번 읊어봐. 똑똑한 부하가 뭘 들고 왔는지.”
우진은 줄곧 제가 다니엘의 등 뒤에 서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이 한 실루엣만을 좇는 그 시선을 들켜선 아니 되었으니. 신중하게. 그래서 그는 함꼐 그 방문을 닫고 나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집 앞으로 나갈 때까지도 그녀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행여 들킬까 봐.
어쩌면 할 말을 찾을 수 없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진이 그 현관문을 완전히 닫는 순간, 먼저 입을 연건 그녀였다.
“미안해요.”
그 네 음절이 우진을 끝까지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뭐가요?”
“내가……”
내가 거짓말을 했어요. 필사적으로 삼키는 울음 뒤에 묻힌 발음들이 불분명했다. 우진은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힘도 들지 않았다. 모든 기운이 손끝발끝으로 빠져나가서 그대로 녹아 내릴 것만 같았다.
“이름 씨는 거짓말하지 않았는걸요.”
“……”
“미안해하지 말아요.”
“하지만……”
“……”
“고의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도 속인 거에요.”
그래서? 그래서 뭘 어쩌자고? 누굴 탓하고 싶은데 책임을 질 사람도 없었다. 원망을 할 대상도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데 그럴 명분도 없었다.
우진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나도……얘기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에이스란 걸.”
“……”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 표정으로……그렇게 말하지 마요.”
“……”
“지금 우진 씨가 날 어떻게 보고 있는 줄 알아요?”
차라리 화를 내요. 그녀는 대놓고 우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것조차 당신의 권력. 한 번도 제가 짓는 표정까지 검열당해본 적 없는 자만이 가지는 권력. 내게는 명분이 없어. 내게는 권리도 없어. 난 당신을 탓할 수가 없어. 손에 붙잡히는 건 모조리 다 부수고 찢어발기고 그냥 엉엉 울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너무 오래 얘기했어요.”
“……”
“빨리 차에 타요. 들키기 전에.”
“우진 씨……!”
우진은 등을 돌렸다. 우진 씨 잠깐만요. 못 듣는 척했다. 우진이 돌아서자마자, 문이 열리고 다니엘이 걸어 나왔다. 흐물텅하게 힘을 잃었던 우진의 몸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뻣뻣하게 각을 잡고 부동자세를 유지한 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의 이름이의 애원도 쑥 먹혀 들어갔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
“박우진, 무슨 짓 했냐?”
“그럴 리가요.”
가시죠. 우진은 그의 뒤에서, 티 나게 억울한 눈망울을 한 이름을 되도록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게 둘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그 때의 신분과 지금의 신분이 틀렸으니, 잘못 알려지면 둘 모두 수렁에 빠질 것이 뻔했다. 다니엘이 차에 탈 때까지 문을 잡고 있던 우진은 운전석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치듯 이름과 눈을 마주쳤다.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놓아버리지 않도록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둘이 무슨 사이야?”
예? 속내를 알고 있음에도 우진은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했다.
“너랑 그 여자.”
“……”
“발뺌할래?”
아니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모른 척 하는 건 독이었다. 여기서 끊어내야 한다고, 우진은 백미러로 다니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차창 밖에 풍경에 열중해있는 듯 보였다.
“……지난번 스페이드 잠입했을 때, 우연히 만났었습니다.”
“그래?”
“그 때 부상 입은 걸, 조금 도움 받았습니다.”
그게 다야? 네, 그게 답니다. 우진은 운전대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더 이상 그가 파고들어올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이 그런 우진의 훤한 속내에 맞춰줄 리가 없었지만.
“근데 왜 울렸어?”
“……”
“네가 울렸잖아. 아니야?”
“……”
“……”
“……글쎄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애초에 대단한 대답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니, 다니엘은 그다지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다. 그가 애초에 우진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나 걔랑 약혼해.”
그건 우진의 심장을 꿰뚫는 내용의 것이었다.
“뭐라고 했어요, 지금?”
“약혼할 거라고요, 당신.”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당신 주둥이가 터진 거였다.
“진짜 미친 거에요?”
“그렇게 보여요?”
“어.”
“……”
“정신 나갔어요, 지금?”
휙, 민기가 거칠게 돌아보았다. 정신 나갔냐고요? 아니요, 완전히 맑아요. 가벼워서 날아갈 것만 같네요.
“내가 말했죠. 우리의 조건은, 손해를 보는 듯하면서도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
“당신이 클럽과 약혼하면, 클럽은 당신을 이용해서 우리 권력을 쥐고 흔들 작정이겠죠.”
“……”
“하지만 당신이 스페이드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나 있었던가요?”
“……”
“우리는 당신을 잃어도 아무런 손해가 없거든요.”
알아들어요? 당신은 우리 미끼가 될 거에요. 클럽을 꾀어내는 미끼가 된 거죠. 당신이 킹만큼, 황민현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정말 다행이었네요.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될 줄은 나도 예상 못했어요. 관절 마디마디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왜? 이게 다 개소리 같아?”
“당신 미쳤어?”
“한 번만 더 말해줄게. 당신은 클럽으로 가게 될 거야. 우리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계약이 있을 수가 없지. 허울만 있었던 너를 그쪽에서 친히 모셔가 주겠다는데. 덕분에 우린 행동에 제약이 풀리는 거지.”
“……”
“클럽은 명분뿐인 널 데려가 알뜰살뜰 보살펴 줄 거고. 우린 그 사이에 전쟁에서 이길 거야. 저쪽이 너를 갖고 우릴 쥐고 흔들 줄 착각하나 본데, 그렇게 해줘서 정말 감사하기 짝이 없지.”
“……”
“우린 네가 거기서 잡혀 죽어도 아무런 해가 없거든.”
“처음부터 난 이 그림을 그렸어.”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온 땅이 요동쳤다. 이 미친 남자가 내게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턱까지 숨이 차 올랐다. 누군가 내 염통을 쥐어 짜고 흔들고 칼로 찌르는 듯이 가슴 한 켠이 아팠다.
“당신이 가서 쥐 죽은 듯이 살면, 우리 입장에선 골칫덩이가 없어지는 셈이고. 당신이 가서 죽으면, 우린 그걸로 열심히 광고를 팔아 화난 사람들 데리고 가서 전쟁을 치르는 거지.”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고?”
“……”
“말하지 않았나요?”
“……”
“우린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거짓말이죠?”
“여태 뭐 들었어요?”
“말도, 말도 안 돼요……”
“전쟁이 일주일 밖에 안 남은 덕에 급해졌어요. 내일부터 진짜 바빠질 거에요.”
“입 닥쳐, 제발!”
소리를 지르는 이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바싹 메말라있었다. 안타깝네요.
“그러게 나한테 결정권을 주지 말았어야죠.”
그에게 반항할 힘도 남아있지를 않았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그녀에게서 민기는 무의미한 시선을 거뒀다.
“……무를 거에요.”
“불가능해요.”
“당신 의견 궁금한 거 아니야.”
“어쨌든 불가능해요.”
“저쪽에서 무르게 하면 돼.”
“어떻게 설득하려고요?”
후, 그는 이제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 만나보게요?”
“어떻게든.”
“그래, 어떻게든 만났다고 쳐. 뭐라고 설득하게요?”
“……”
“더 좋은 조건이 생각 났으니까 그렇게 구는 거 아닌가요?”
응? 더는 그와 할 말이 없었다. 더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가 대신 내 머리에 총이라도 한 발 쏴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이대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으면.
“대놓고 무시를 당해도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
“덕분에 오늘 우리는 최고로 찌질하고 멍청해 보였네요. 차라리 이 제안을 받아들인 클럽에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겠어요.”
“……”
“똑똑해져요. 그 자리다운 대접을 받고 싶다면.”
“……당신 죽여버릴 거야.”
“좋아요, 전쟁에서 승리만 한다면. 죽이든가 말든가 난 상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때 가서 얘기해요. 그리고 그는 날 스치고 지나쳐 간다. 방 안에는 나 뿐인데 온갖 생각들이 닫힌 문을 비집고 몰려든다.
되돌아갈 수가 없다.
*
빠른 업뎃 소취 뽈뽈,,,
갑자기 분위기 로미오와 줄리엣
민기는 나쁜놈~~! 얼레리꼴레리~~~~~~! 나쁜놈이래용 낄낄
물론 진짜 나쁜놈은,,,아닐 겁니다 민기야 사랑해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월요일,,,,,
좋은 하루 보내시고 다음 화에서 뵐 때까지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