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찬디/찬백] 장미에 가시가 있는 이유
written by. 돼지저금통
3. 도경수의 철벽과 찬백의 만남
“경수야-”
“즐.”
그 날, 카페에서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이 후로 종인은 다시 돌아왔다. 찬열이 버젓히 학교에 나오고 있기는 했지만 학년이 다른 탓에 (거기다 찬열은 고3 이었으므로) 자주 얼굴을 보지는 못했는데, 그 막간을 이용하여 종인은 경수에게 업그레이드 된 들러 붙음을 선보였다. 경수는 왠지 모르게 종인이 전보다 더 얄미워서 부러 더 쌀쌀맞게 대했다. 다시 경수의 책상에는 아침마다 초코우유가 놓여 졌다. 그 초코우유를 처음 몇번은 쓰레기통에 쑤셔 박던 경수도, 친구 종대가 불안한 목소리로 「뒤에서 보고 있으니까 빨리 먹어.」 하는 것에는 이기지 못하고 초코우유를 입에 머금고 말았다. 역시 서울 초코우유 맛있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쉬웠다. 이제 경수는 제법 익숙하게, 학교에 오자마자 초코우유를 뜯고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종인이 말을 걸때면 「즐」 한마디로 일축하긴 했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급식실이 좁은 탓에 3학년은 반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2학년인 종인과 경수는 급식실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 종인은 밥 먹는 시간까지 끈덕지게 경수에게 들러 붙었다. 어째 종인이 붙을 때면 그 옆의 허여멀건하고 냉한 얼굴의 세훈도 달라 붙는 것이 둘 다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경수야 그냥 「즐」로 일관하고 무시하며 밥을 먹으면 되는 것이지만, 평범한 일반인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인생을 살아 온 종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네명의 급식실 멤버 조화를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가끔 자신을 보며 눈웃음을 치는 종인이라니…… 어쩌다 경수의 주위에 이렇게 미친 놈들이 꼬이게 된 것일까. 친구의 기구한 운명을 안타까워하며 종대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경수야! 이 고기 너 다 먹어.”
“즐.”
“넌 너무 말랐어 경수야. 이거 다 먹어야 보내 줄거야.”
“즐. 내 발로 갈거거든.”
밥 맛이 뚝 떨어지네. 벌떡 일어나면서 중얼거린 경수의 말에 종대도 세훈도 물론 공감했지만, 살벌한 종인이 무서워서 그저 입을 다물고 식판에만 얼굴을 묻었다. 자신의 말을 쌩까고 그냥 식판을 버리러 가는 경수의 뒷모습에 종인은 자신만 들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까지 튕기다니. 지금 종인의 몸은 아리따운 장미의 가시에 찔려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다! 아직 종인에게는 히든카드, 백현이 있다. 아침에 온 카톡을 보니 백현은 곧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제 박찬열이 꼬셔지기만 하면, 아니 그런 낌새만 보여도! 이제 경수의 비어있는 틈을 파고 드는 것은 종인이 될 것이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종인이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경수야-」 하고 그 지긋지긋한 이름을 부르며 경수를 따라 급식실을 나섰다. 남겨진 종대와 세훈은 이게 무슨 뻘쭘하고 어색하며 어이가 없는 상황인가 싶어서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다가 결국 큼큼 헛기침을 하고 식판을 정리했다. 이 빌어먹을 호모씹게이들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노멀, 노멀, 지극히 노멀의 극치를 달리는 종대와 세훈이었다.
***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야자를 빼먹고 경수가 먹고 싶다는 간식을 사러 나가는 중 이었던 찬열이 누군가의 말에 뛰던 발걸음을 멈췄다. 어디서 부르는 거지? 큰 눈으로 제법 어둑해 진 거리를 탐색하는데, 강아지처럼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왠 허여멀건한 남자애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찬열은 순간적으로 놀라 뒷걸음질 쳤으나 어딘가 모르게 얼굴이 익숙했다. 아, 그니까 그때 그 카페에서, 종인이….
“아, 종인이 친구.”
“네. 여기서 또 보네요.”
“미안, 저기, 이름이 뭐랬지? 변…….”
아무리 생각해도 성 까지 밖에 기억이 안났다.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이름을 생각해 내려는 찬열이 안쓰러워 백현이 피식 웃었다. 이름을 기억 못하다니 좀 서운하긴 한데, 귀여워서 봐줘야지.
“변백이요.”
“엥? 이름이?”
“마지막 글자는 다음에 가르쳐 드릴게요.”
“어? 어어?”
찬열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나오는 것 까지 듣지도 않고, 백현은 천진난만하고 하얀 강아지처럼 생긋 웃더니 손을 흔들며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홀로 남겨진 찬열만이 입을 떡 벌린채로 백현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뭐가 스쳐 지나갔지…. 누군가랑 대화를 한 것 같은데 너무나도 순식간이라 얼떨떨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원래 단순한 성격인 찬열은 금방 툴툴 털어버리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경수가 참치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으니 사줘야지. 친구들도 먹으라고 몇 줄 더 살까 하고 생각하던 찬열은, 친구들과 함께 웃으면서 김밥을 먹는 경수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경수를 탐내는 놈이 그 중에 있을지도 몰라. 그 김종대인가 뭔가 맘에 엄청 안드는데. ……정작 「우리 경수를 탐내는 놈」이 자신의 근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찬열은 엉뚱한 곳을 짚으며 질투심을 불태웠다. 역시 이 멍청한 호모씹게이에게서도 피해자는, 완벽한 노멀 김종대였다.
-
「박찬열이랑 마주침」 는 남들이 보면 의미심장하고 어찌 보면 유치찬란한 문자가 종인에게로 날아왔다. 백현이었다. 그 문자를 받고 침을 꿀꺽 삼킨 종인은 당장에 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저 멀리서 경수가 종대와 매점을 갔다가 오고 있었지만, 종인에게는 지금 사랑하는 장미조차도 우선 순위가 미뤄 진 상태였다.
“야. 어땠음?”
- 음, 귀엽더라.
“아니 말고. 진전이 있었냐고.”
- 야! 첫날부터 뭘 바라냐.
종인의 무식하게 돌진하는 성격 때문에 힘들어 할 경수가 갑자기 안타까워지는 백현이었다. 종인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언제쯤 일을 다 마칠 것 같냐고 물었고, 백현은 솔직하게 좀 걸린다고 답했다. 종인은 지금 미칠 것 같았다. 얼른 우리 장미, 한떨기의 아름다운 장미꽃 도경수를 내 정원에 옮겨 심어야 하는데. 박찬열의 정원 토양에 익숙해져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장미를 볼 때 마다 종인의 심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 얼른 박찬열이 무너지는 그 꼴을 보고싶다.
“아, 얼른 보고싶다.”
- 미친 놈. 급하면 뭐든 안되는 법이야. 좀 기다려.
종인은 경수가 자신의 옆에서 하트모양 입술로 활짝 웃는 상상을 하자 너무나도 달콤해서 꿈을 꾸는 듯한 사랑스러움 듬뿍 담긴 목소리로 아, 얼른 보고싶다. 이랬다. 물론 종인이 보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상냥하게 대해주는 경수였지만, 앞 뒤 다 잘라먹고 매점엘 갔다 오다가 종인의 통화를 들은 경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혹시 그 개새끼 인가?」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백현과 카페에서 처음 보았을때의 눈빛 교환을 떠올린 경수는 종인이 더더욱 싫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뺀질나게 자기를 쫓아 다닌 주제에, 또 그 놈한테 전화를 해서 보고싶다고 씨부렁대는 꼴이라니.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경수는 자신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종인의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중간 손가락을 척 내밀어 주고는, 반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종인은 제가 뭘 잘못한지도 모른 채 전화를 급하게 끊고 허탈한 표정으로 굳게 닫겨 버린 경수의 반 뒷문만 멀뚱히 쳐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종인은 오늘 큰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그것은 바로 경수의 친구인 종대에게 경수의 번호를 따내기 였다. 그동안 경수의 친구기 때문에 종대를 극진히 섬겨(?) 왔는데, 오늘 그것이 빛을 발할 차례였다. 종인은 경수에게 줄 초코우유와 또 따로 종대에게 주기 위한 먹거리들을 가득 챙겨 경수의 반 앞으로 갔다. 마침 경수는 오지 않았고 종대만이 책을 가지러 사물함에 가고 있던 길이었다. 종인은 대뜸 그 앞을 막아서고는 먹거리들이 담긴 봉지를 종대에게 내밀었다.
종대는 사물함에 가다 말고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에 겁을 먹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종인이었다. 수만고의 흑표범 김종인. 물론 요새는 자신의 친구에게 빠져 호모씹게이가 되어선 잘보이겠다고 종대에게 아첨을 떠는 판이었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종대는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상황에 일단 몸부터 덜덜 떨었다. 마지막 만찬이라 이건가. 표정 왜 저래. 이걸 먹고 죽으라는 건가……. 종인의 딴에는 의지에 찬 결연한 표정이었건만 종대의 눈에는 그딴거 다 모르겠고. 그저 사냥감을 물색하는 육식동물의 표정으로만 보였다.
“김종대. 나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미천한 소인의 이름을 기억하여 주시다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종대는 감동하고 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종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부탁이라는게 살인 청부라거나 누구의 밥에 약을 타라 뭐 그런 종류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 탓 이겠지.
“경수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냐?”
저, 머리부터 발 끝까지 호모씹게이 새끼. 종대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네가 알려 줬다고 말 안할께. 정말이야. 나 입 무거워.”
그렇게 다짐까지 안해도 그냥 알려 줄 생각이었다. 종대의 우정은 원래 남자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매우 얄팍한 것이여서,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경수에게 다가갈때마다 무슨 자기를 라이벌 취급하는 찬열에게 한번 좆 되봐라 하는 심정도 있었고 자신에게는 친절한 종인에게 보호 받고 싶은 심정도 있었다. 종대가 경수의 번호를 하나 하나씩 불러주고 종인은 그 번호를 놓칠새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저장했다. 아, 드디어 장미의 전화번호를 겟 했다! 거의 한달만에 일어난 커다란 진전에 종인은 만세를 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종대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준 뒤, 초코우유를 건넸다.
“이거, 경수한테 전해 줘. 고맙다 종대야!”
지나치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종인은 자신의 반 쪽으로 멀어졌다. 종대는 종인이 얼른 멀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곧 경수가 반으로 들어 왔다. 종대는 시치미를 떼며 경수에게 초코우유를 건네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초코우유를 받아 들고 빨대를 꼽는데 갑자기 경수의 폰이 징 울렸다. 종대는 괜스레 찔려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영어듣기 책을 미리 펼쳤다.
“으악!! 이새끼 뭐야!!!!”
아니나 다를까. 벌써 연락을 했구나. 종대가 눈을 질끈 감고 원망의 말을 중얼거렸다. 성질도 급한 새끼, 지가 이럼 난 어떡하라고……. 누가봐도 종대의 범행이 분명한 일이었다. 뒤에서 경수가 발을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종대는 애써 무시하며, 영어듣기를 듣겠답시고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무시하자, 무시하자. 지옥같은 시간이 얼른 흘러가기를 바라며 종대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위로했다.
“야!!! 김종대!! 너지!”
결전의 그 시간이 왔구나. 종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한 옥타브 올라간 경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대는 심호흡을 하고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경수를 돌아봤다.
“…뭐가?”
천연덕스러운 종대의 얼굴에 경수는 잠깐 멈칫했다. 아침에 날아온 「나 종인이ㅎㅎ 번호저장해~」 라는 소름끼치는 문자에 경수는 아. 종대가 나를 팔았구나, 하고 확신을 했었다. 자신의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다가, 오늘 아침에 종대가 학교에 일찍 와 있던 것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종대가 누군가. 자칭타칭 수만고 연기의 신이 아니던가. 이래뵈도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연극부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던 경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단순한 도경수를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말씀.
“너, 김종인한테 내 번호 팔아 넘긴 거. 너 아니야?”
“헐, 걔가 니 번호도 암?”
“진짜 너 아니라고? 어…… 이상하다.”
“뭔 소리야. 앉아서 초코우유나 먹어.”
역시나 의외로 단순하고 멍청한 도경수. 이상하다,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종대의 말을 따라 잠자코 자리에 앉아 초코우유를 뜯었다. 오늘도 어김 없이 서울 초코우유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노란 빨대를 입에 물면서 경수는 폰을 만지작거렸다. 찬열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은 것인지 답장이 없었다. 하여간 고3이 맞는지, 2학년인 경수보다 훨씬 지각을 많이 한다. 경수는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문자함에 들어갔다. 아까 종인이 보낸 문자가 읽히지도 않은 채로 있다. 카톡이 아닌 문자라 경수가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종인은 알 수도 없을 테지만, 왠지 읽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읽지도 않았다. 즐 이라거나 꺼지라거나 하는 답장을 할까 말까 경수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시 폰이 웅- 하고 울렸다.
“으악!!”
1교시 지리 선생이 들어오다가 경수의 비명을 듣고 놀라 책을 떨어트렸다. 와하하- 하고 애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고 선생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는 것이 경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 열심히 들어♥ 프사 예쁘다 경수야ㅎㅎ」
라고 날아온 종인의 카톡이었다.
아 시발… 하트 뭐야…… 프사 어딜 봐도 잘생긴 얼굴인데 뭐가 예쁘다는 거지…. 경수는 닭살스러운 문자에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속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황급히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종인을 차단하려 대화창을 들어갔다. 그러다 호기심이 생겨 프로필 사진을 보는데 제 나이대 남자애들이 으레 찍는 허세 가득한 전신샷이었다. 그래도 잘 빠지긴 했네…. 퇴폐미 가득한 표정에 살짝 풀어 헤친 교복 셔츠와 나른한 포즈가 종인과 몹시 잘 어울려 여자애들이 껌뻑 죽을 것 같긴 하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자, 경수는 어쩐지 기분이 살짝 나빠져서는 인상을 찌푸리고 뒤로가기를 눌렀다. 차단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손가락은 결국 차단을 하지 못했다. 자꾸만 종인의 프로필 사진 위에, 그때 그 카페에서 봤던 허여멀건한 개새끼 같은 놈 얼굴이 겹쳐졌다. 얼른 보고싶다, 하고 꿈결 같은 목소리로 전화통 너머의 개새끼 (로 추정되는 놈)에게 속삭이던 것을 생각하자 입술이 절로 비죽 뒤틀렸다. 저가 좋다고 이렇게 난리를 치면서도! 용서 할 수 없어. 경수는 종인을 놀려 줄 심산으로 짓궃은 미소를 지으며 종인에게 보낼 답장을 입력했다.
한편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폰만 붙잡고 있던 종인은 갑자기 환해지는 핸드폰 액정에 화들짝 놀라 그만 샤프를 떨어트렸다. 답장이 올 줄은 몰랐다. 워낙 까칠하고 가시가 바짝 선 장미느님이시라, 답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겠구나 하고 포기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확인했다. 벌써부터 「나만의 장미♥」 라고 저장 해 놓은 이름이 대화창에서 빛났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글자 씩 읽어 내려 가는데,
「니 프사는 병신같음ㅋ」
헐……. 시발.
아니 장미가 보내 준 답장이니 뭔들 나쁘겠냐만은……. 종인의 현재 프사는 종인과 세훈이 이를 악물고 수백장이 넘는 사진을 찍고 난 후에 건진 필살의 설정샷으로, 이 사진으로 프사를 바꾸고 난 후 옆학교는 물론이요 이 근방에 있는 여고와 공학에서 예쁘다고 소문 좀 난 여학우들이 우르르 연락이 온 전설의 사진이었다. 그런데 벼, 벼, 병신같다니……. 종인은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일단은 화면을 껐다. 잠깐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부러 경수에게 잘 보이려고 제일 멋진 사진으로 설정해놨는데. 쓸데 없는 곳에 멘붕이 온 종인은 더이상 수업을 들을 자신이 없어졌다. 전쟁에서 패배한 패잔병처럼 늘어진 종인의 어깨를 보며 세훈은 그저 백현과 잘 안된건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요새 들어 도경수를 다시 따라다니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백현과는 꾸준히 연락을 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세훈은 종인의 쳐진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잘해봐」 하고 응원했다. 종인은 그 응원에 감동을 먹고, (물론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세훈의 두 손을 움켜쥐며 자식 고맙다. 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요새 어딘가 나사가 두어개쯤 빠져 있는 것 같은 종인때문에 가뜩이나 바짝 긴장을 하고 있던 주위의 급우들은 심상치 않은 종인과 경수의 분위기에 「뭐지 이 병신같은 분위기는」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뭘 보냐는 종인의 으르렁거림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다시 칠판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한 송이의 장미에 빠져서 죽니 사니 하고 있어도 흑표범은 흑표범이었다.
댓글이 많이 없지만 ㅜㅠㅠㅠㅠ
한분이라도 읽어주시는 분 있으면 계속 쓰겠슴당! 감사해요~
카디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