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찬디/찬백] 장미에 가시가 있는 이유
written by. 돼지저금통
6. 나 바람났어!
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다. 경수는 오늘따라 기분이 썩 괜찮은 상태였다. 요 며칠간 찬열때문에 기분이 바닥을 기다 못해 멘틀까지 뚫고 외핵을 지나 내핵에서 맴맴 돌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만 같았다. 경수는 찬열과 엄마 몰래 맞춘 커플 신발까지 신었다. 그리고 어제 씹어버린 찬열의 카톡에 답장을 해줄까 하다가, 갑자기 또 착하게 대하면 싸이코나 또라이로 볼까봐 차마 보내지는 못하고 그 맘을 꾹 참았다. 생각해보니 어제 카톡을 씹었는데도 한개 더오지도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제 뭘 했을까 의심부터 하고 서운한 맘부터 들었겠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이거다. 어제 바쁜 일이 있었겠지,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바로 씻고 잤겠지. 무한 긍정의 힘으로 의심따위는 날려버린채 경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물론 기분이 쭉 좋은 것은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보고싶고 그리운 찬열의 얼굴 대신 종인의 얼굴이 떡하니 있는데,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 하더라도 아침에 보는 스토커의 얼굴이 심장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놀래 기겁해서 자빠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버텨낸 도경수는 아침에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목으로 꽥꽥 소릴 질렀다. 니가 무슨 면목으로 여길 나타나! 여기가 어디라고! 흡사 대문 앞에 아기를 내던지고 사라졌다가 돌아온 자식에게 윽박지르는 부모의 대사 같았다. 그러나 종인은 어제 한 짓이 찔리기도 하고 해서 평소처럼 뺀질대지도 못하고 죄지은 개새끼마냥 축 쳐져서는 쭈뼛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은 탓에 그 모습이 아주 조-금. 물론 아주 조오오오-금 귀여운 것도 같아서 경수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고 도도한 척 걸었다. 따라오라고 말 안해도 종인이 따라올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또 멀찍히 떨어져서 따라오길래, 일부러 걸음 맞추라고 좀 느리게 걷기까지 했다. 경수가 한발자국 다가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화는 안나보이는 경수의 행동에 종인은 다시 신이 났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데 그게 또 서울 초코우유다.
“오늘은 왜 집 앞에 있어?”
그래도 아침 댓바람부터 집 앞에 찾아 온 적은 없던 종인이었다. 어느정도 선은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집 앞에 있는 걸 보고 간이 떨어 질 뻔 했다. 종인이 빨대까지 꽂아 건내 준 초코우유를 익숙하게 물고는 경수가 웅얼거리는 소리로 묻는다. 종인은 자신이 준 초코우유를 맛있게도 먹는 경수의 입술에 빠져있다가 질문을 듣지도 못하고 멍청한 얼굴로, 어? 하고 되물었다.
“너 아침부터 집 앞에 있었던 적은 없잖아.”
“아…… 그게 어제…….”
어제 종인이 장난을 좀 친 이후로 경수도 뭔가 심란하긴 했었다. 그러나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장난인 걸 알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인은 그게 못내 신경이 쓰였나보다. 집에서 끙끙대며 고민을 했을 종인을 생각하니까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경수는 입에 빨대를 물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헐, 웃었다. 종인은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오늘 경수가 기분이 좋구나. 하느님, 부처님, 엄마 아빠. 오늘 경수가 웃었어요…… 세상에 할렐루야.
“미안했어, 암튼…… 이제 심한 장난 안칠게.”
“…즐.”
“화났었어?”
“장난인데 화가 왜 나? 넌 내가 그렇게 쫌생이처럼 보이냐?!”
“아, 아니… 어제 그러고 가길래…… 근데 왜 카톡 답장은 안했어…?”
카톡 답장을 언제는 해줬다고, 금새 시무룩해진 종인의 표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찬열의 카톡을 기다리느라 종인의 카톡은 보지도 않았다. 원래 답장을 잘 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읽기는 꾸준히 읽었었는데. 어젯 밤 찬열의 카톡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카톡을 마찬가지로 눈이 빠져라 기다렸을 종인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아서 경수는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찌르- 해졌다. 앞으로 아무리 그래도 읽기는 해줘야지. 아니 이응 하나라도 좋으니 답장이라도 해줘야겠다. 경수는 코끝이 찡해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종인을 힐끔 곁눈질 했다.
“귀찮아.”
“그래도 읽기라도 해주라. 응?”
“생각해보고.”
“오늘 밥 같이 먹을꺼지? 종치고 너희 반 앞에서 기다릴게. 오늘 니가 좋아하는 돈까스 나온다.”
이미 종대에게서 입수한 정보로 인해 경수의 취향을 줄줄 꿰고 있는 종인의 말에 경수의 얼굴이 확 펴졌다. 헐 돈까스! 너 오늘 그거 나 줘! 언제 철벽을 쳤냐는 듯, 어느새 무너져 어린애처럼 조르는 경수의 모습에 종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이 예쁜 장미를 어떡하지. 진짜 허리를 똑 꺾어서 우리집 물병에 담아 두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장미가 금방 시들어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종인은 정원에 옮겨 심게 될 그날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참기로 결심했다. 오늘 돈까스는 못먹겠구나. 오세훈꺼 뺏어 먹어야지. 물론 또다시 피해를 볼 10년지기 세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
경수는 현재 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도경수의 폰 화면에는 찬열과의 카톡 대화창이 떠있다. 마지막 시점은 아침 7시 47분. 찬열이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서 보낸 『경수야 잘잤어?』 를 읽씹 한 것이 마지막이다. 물론 답장을 할까 생각을 했었으나 그러면 여태까지 화 내 놓은건 뭔데? 아직은 때가 아니겠다 싶어서 조금 더 참았던 경수다. 그러나 현재 시점 오후 7시 20분. 이제 야자가 시작했다. 경수는 오늘 학원이 있기는 했지만 수업이 취소되어서 시간이 비었다. 만나자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야자를 열심히 하라는 카톡을 보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시간은 흘러 7시 21분이 되고 경수는 초조하게 손톱을 뜯었다.
좋아. 결심했어. 겨우 용기를 낸 경수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자판질을 시작했다. 차마 전처럼 상냥하게는 못하겠고,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볍게 『야자 열심히해』 라고만 보내기로 했다. 침을 한번 더 삼키고 전송을 눌렀는데, 보낸 지 일분도 안되서 카톡을 읽었다. 읽었다 읽었다! 경수는 소리를 지르려던 것을 입을 틀어막음으로써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는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한편 찬열은 백현에게 밥을 사주기 위해 막 나가던 길이었다. 그제서야 오늘 아침에 씹힌 카톡때문에 야자를 안하게 됐다는 사실을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기억해냈다. 『야자 열심히해』 라는 카톡은 여전히 딱딱했지만 그래도 경수가 먼저 카톡을 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좀 놓였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야자를 안한다는 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찔릴 것도 없는데 백현과 만난다는 사실을 경수에게 왠지 말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요새 경수와는 잘 만나지도 못했는데…… 안그래도 좋지 않은 기분에 어쨌든 오해를 할 것이 분명했다. 경수와 마찬가지로 손톱을 뜯으며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찬열은 결국 낙천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차피 오늘 경수는 학원을 갈 것이다. 학원은 학교와 찬열의 집이 있는 동네에서는 멀다. 어차피 백현에게 밥은 학교 근처에서 사줄 것이고, 경수와는 마주칠 일이 없는 것이다. 경수의 친구가 설사 본다 해도 입막음을 하면 그만이다. 생각을 할수록 안심되는 마음에 찬열은 잘근잘근 씹고 있던 엄지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기 시작했다. 『응~경수도 공부 열심히하고 사랑해♥』 마지막 말은 물론 진심이었다. 한시바삐 니가 마음을 풀어 줬으면 좋겠다, 경수야. 그리고는 멀리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백현에게로 걸음을 재촉했다.
“진짜 야자 째고 나왔네요, 형. 신기하다. 이렇게 일찍 만나니까.”
“나도 신기하다. 너랑 거의 야자 마치고만 봤는데.”
“형, 저 스파게티 사주세요!”
“응? 스파게티? 야, 남자 둘이 무슨.”
“남자 둘인게 뭐 어때서요. 학교 앞에 맛있는 스파게티 집 하나 있던데.”
그 가게는 경수와 자주 가던 곳이었다. 워낙 경수가 스파게티를 좋아하기도 하고, 학교 근처에 있는 곳이라 찬열의 학교 학생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거기라면 별 일 없겠다 싶어서 찬열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격도 적당하니까. 아 근데, 우리 경수도 스파게티 먹고 싶을 텐데. 갑자기 밀려오는 경수의 생각을 고개를 저어 지어내며, 찬열은 자신의 옆에서 조잘거리는 백현의 대화에 집중했다.
***
경수는 찬열의 답장을 받고 기분이 훨씬 더 좋아졌다. 역시 오늘은 어쩐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그렇게 기분이 괜찮았나보다. 『응~경수도 공부 열심히하고 사랑해♥』 라니, 예전과 같이 다정한 카톡이었다. 마지막에 붙은 사랑한다는 말에 경수는 괜히 찬열에게 미안해졌다. 찬열은 이렇게 변함 없이 자신을 사랑해주는데 괜히 예민하게 굴었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태까지 혼자 앓았던 것이 무색하게 속이 시원해졌다. 이제는 공부도 잘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학원 수업도 취소된 김에 할 것도 없고 오늘은 야자라도 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종대랑 저녁을 먹고 교실에 남아 있었다. 경수의 눈에 띄게 나아진 기분에 종대도 오랜만에 경수와 장난을 주고 받으며 신이 난 상태였다.
드르륵, 쾅. 이렇게 분위기가 좋을때면 빠져 줄 수가 없는 우리의 김종인은 기분이 좋은 경수보다 훨씬 좋아진 기분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경수의 반 문을 지 반 문처럼 쾅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아 쪽팔려. 경수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나가자.”
어쩐지 종인의 기분이 하늘을 날아 다니는 것 보다 더 좋아보였다.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경수의 책상 앞에 서서 대뜸 나가잰다. 경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인과 종대를 번갈아보며 얘 뭐래? 입모양으로 종대에게 묻는다. 종대는 이게 또 무슨 상황인가 싶다가도 해탈이 되서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나가자는데? 대수롭지 않은 종대의 말투에 경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뭐라는 거야, 너. 어딜 나가? 나 야자할꺼야.”
“됐고, 나가자.”
“아니 어딜!”
“너 요새 밥도 잘 안먹었잖아. 오늘도 돈까스만 먹고.”
“근데 뭐.”
“스파게티 사줄게.”
그러면서 씩 웃는데 그 웃는 얼굴에 가슴이 살짝 떨렸다. 잘생기긴 했구나. 경수의 귓볼이 이상하게 더 발갛게 물들었다. 그리고는 요리조리 눈을 굴리는 것이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분명 김종인은 싫은데, 아직 싫은게 맞는데……가슴 한켠에서 이상하고 살랑거리는 느낌이 고개를 슬며시 드는 것이다. 경수는 억지로 부정했다. 그럴 리 없어. 이건 단지 스파게티 때문이야. 확실히 스파게티라는 말에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근처에, 너 좋아하는 스파게티 집 있잖아.”
찬열과 자주 가던 곳이다. 그나저나 그 집을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대? 경수는 그 정보의 근원지를 알 것 같아 눈을 치켜뜨고 종대를 조용히 노려보았다. 종대는 물론 양심적으로 몹시 찔렸으나 애써 태연한 척 헛기침을 하며 경수의 시선을 피했다. 뇌물을 얻어 먹고 니 정보를 탈탈 털어 줬다는 건, 절대 말 못해. 거기다가 찬열에 대한 복수심도 아주 쪼-금 들어있다는 건 더더욱 말 못하고.
“…나 비싼 거 먹고싶은데.”
“상관 없어, 사줄게. 오빠 돈 많다.”
또 넘어 갈 것 같으니까 오바질이다.
“즐. 꺼져. 안가.”
“미안, 경수야. 미안 미안해. 안그럴게. 제발 가자.”
다시 이어지는 비굴모드에 경수가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는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종인은 옆에서 책을 건내주고 필통에 필기구를 넣어주고 아주 난리가 났다. 흡사 공주와 시종같다. 종대는 그 모습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것 같았으나 아무리 경수의 앞에서 무장해제 하고 있다 한들 흑표범 김종인이 종대에게까지 흑강아지 김종인이겠는가? 결국 종대는 아무말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경수는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종인을 따라 스파게티 집 안에 당당히 입성했다. 찬열과 자주 오던 장소에 종인과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종인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쨌든 서로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같이 있으니까 평소에는 그렇게 싫었던 종인도 썩 나쁘지 않았다. 경수는 늘 앉던 구석자리로 익숙한 걸음을 옮겼고, 종인은 자연스레 경수를 따라갔다.
그러나 늘 앉던 구석자리에 도착한 경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눈을 비비고 몇번이나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말도 안돼. 그곳에 미리 앉아 있는 것은, 미리 앉아있는 두 사람은…… 바로 찬열과 백현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일? 경수는 그냥 벙찌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야자 열심히 하라는 카톡에, 알겠다고, 너도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답장을 주었던 찬열이었는데 아니 이게 정말 무슨 일?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변백현 저 여우같은 게, 사내새끼 주제에 (경수도 남자긴 하지만) 숫가락 위에 예쁘게 돌돌 만 스파게티 면발을 찬열의 입 앞에 들이대는 것이다.
경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시련을 주려고 오늘 아침에 그토록 기분이 좋게 만든 걸까? 세상에 태어나 느꼈던 그 어느 감정보다 복잡했다. 일단은 비참했다. 확실히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경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쪽으로 득달같이 달려가 깽판을 치며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저런 장면을 보는데도 불구하고 경수의 머리는 저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마음이 믿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오해일거야. 그냥 친구지. 남자랑 남자가 무슨. 그러나 결국 자신과 찬열도 게이 커플이 아니었던가? 경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고는 손으로 스윽 닦아냈다.
“…저거 뭐야.”
종인이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경수에 가려져서 뒤늦게 본 모양이다. 백현은 종인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찬열과 경수가 사귄다는 것을 종인도 알고 있다. 분명 종인에게도 충격적인 장면일 것이다. 백현과 찬열을 만나게 한 장본인이 종인이기에 밉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종인을 미워할 겨를도 없었다. 스파게티고 뭐고. 지금은 좀 쉬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경수는 입술을 잘근 씹어 물며 뒤로 돌아섰다. 종인은 당황해서 경수의 손목을 붙들었다.
“어떻게 할까 경수야. 깽판 칠까? 저새끼들 다 엎어 줘?”
종인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경수의 말 한마디면 실제로 그렇게 할 종인임을 경수도 잘 알았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찬열과도 끝이 되버리는 거고, 종인과 찬열의 사이도 저때문에 걷잡을수가 없어지니까……. 경수는 그제서야 아직까지 찬열은 종인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저럴 수 있겠지. 김종인의 친구랑.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종인이 손목을 붙잡는데도 자꾸만 그 손을 뿌리쳤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 끔찍하다. 하늘이 두쪽이 난다.
“나 집에 갈래…….”
종업원이 다가오는데도 황망히 서서 소리 없이 눈물만 펑펑 쏟아내던 경수는 결국 갈라진 목소리로 딱 한마디를 뱉었다. 그 말에 종인은 머뭇하면서도 두말 않고 경수의 손목을 질질 끌고 스파게티 집을 나왔다. 고개 숙인 경수는 보지 못했겠지만 종인의 입가는 딱딱히 굳어 있었다. 그것은 비단 찬열이 백현과 있는 것을 봐서 경수가 상처를 받아 울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니, 경수가 우는 것은 분명 마음이 아팠지만 사실 그것은 종인과 백현이 꾸민 상황이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종인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것은, 경수가 그 꼴을 보고서도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찬열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종인은 그것에 더 가슴이 찢어 질 것 같았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찬열을 향한 경수의 마음만 확인한 꼴이 되버렸다. 종인은 경수의 가녀린 손목을 붙들고 가면서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경수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종인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종인은 경수의 집 앞까지 경수를 데려다 줬다. 문 앞에서 들어가지도 않은 채로 경수는 한참동안을 더 울었다. 종인은 그런 경수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줬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보다. 그래도 이번 일로 확실히 경수는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깽판치러 오지 않는 경수 때문에 종인에게 연락해 상황을 확인한 백현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이라고. 지금 틈이 잔뜩 있으니까 그 틈을 치고 들어갈 생각만 하라고. 곧 넘어온다, 그 말을 마음속으로 수백번 곱씹으면서 종인은 경수를 달래고 또 달랬다. 세상이 무너질듯 흐느끼며 들썩이는 작은 등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미친듯한 소유욕은 도무지 가라앉지가 않는 걸. 종인은 계속 경수의 등을 쓸어내리면서 굳게 다짐했다. 네가 나의 정원으로 오면, 나는 절대 네가 이렇게 울게 하지 않을게. 멍청한 박찬열처럼 굴지 않을게. 종인은 속으로 혼자 몇번이고 되뇌였다. 경수야, 미안해, 미안해.
제가 겪었던 감정을 그대로 써내려고 했는데 부족한 표현력 때문에 갈수록 망해가는 것 같아ㅛ요..흑..ㅠ.ㅠ죄송함다☞☜
그래도 드디어 찬디 갈등의 골이 깊어졌네용ㅎㅎㅎ 봐주시는 분들 댓글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