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여보야 누가 제일 사랑하게.
직장 생활 2년 차. IT 기업 유목민으로 살아가다 반년 전부터 ‘Y’사에 뼈를 묻었다. 오버 워킹과 야근 수당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비양심적 기업 중, ‘Y’사는 회장의 고장 난 의자보다 사원들의 추가 수당을 챙기는 비교적 개념 박힌 기업이라 정평이 났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업무 특성상 외근과 야근이 잦아도 정확한 계산 덕분에 사원들이 끈덕지게 붙어있는 터라 퇴사율보다 단합이 높았다. IT 기업의 이례적인 예인지라, 신입이든 경력이든 입사하고 싶은 1순위 기업 정도 되시겠다.
— 탕비실 커피 믹스 떨어졌대요.
— 막내야, 여기 카드.
— 올 때 야식. 난 만두 안 먹는 거 알지?
— 저번처럼 젓가락 부족하면 안 된다.
……퇴사율이 적다는 건 2년 차를 달고도 막내인 내가 있다는 거다. 개처럼 카드를 물고 핸드폰에 목록을 정리했다. 우리 팀은 맥심 화이트 골드, 김 대리님은 만두 안 좋아하시니까 면으로, 젓가락은 열 개씩. 자동문 센서 앞에서 휙휙 손짓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의자에 두고 온 목도리를 생각하며 외투를 여민다. 오늘부터 한파라던데. 건물이 얼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연말 야근을 누가 좋아해. 8월의 프랑스는 더위 때문에 강제 휴가령이라던데, 한국은 8월이 싫으면 12월에 하던지. 얼어 죽겠는데 다 무슨 소용이야. 느려 터진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제 본 드라마 키스 장면을 되새김하는 딴생각의 장인은 마침내 열린 엘리베이터 앞에서 숨을 참았다.
— 지금 퇴근하세요?
— 아뇨. 커피 떨어졌다고 해서.
딱딱한 발음. ‘다나까’를 사용해야 할 것 같은 이 기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수트 차림의 남자가 왼쪽에 찬 시계를 확인한다. 밖에 어두워요. 바람 때문에 가로등도 꺼졌던데. 지나가는 이 없는 냉랭한 복도에서 나와 마주한 남자는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서류 가방을 바닥에 두고 팔에 걸친 외투를 껴입는다. 코트 주머니 속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상대 눈치를 보는 것도 잠시, 열린 엘리베이터로 남자가 먼저 몸을 들인다.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고서.
15층부터 1층까지. 머나먼 길을 가는 듯한 엘리베이터 우주선에 옅은 향수 냄새가 번진다. 뭐가 그리 좋은지 즐겨 부르는 멜로디까지 허밍 한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밖으로 이번에도 남자가 먼저 나선다. 잡은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 안으로 넣는다. 텅 빈 건물 로비를 나서는 네 개의 발자국.
— 왜 따라와.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 데이트하자.
— 심부름 가는데 무슨.
— 같이 해. 심부름 데이트.
달빛을 가로등 삼아 걷는 길거리. 회사 건물과 멀어질수록 남자의 스킨십 농도는 짙었다. 가로등만 꺼졌지 사람들의 눈도 꺼진 건 아니지 말입니다. 밀어내도 달라붙는 허우대 멀쩡한 남자가 이틀 동안 감지 않은 머리에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 최 팀장님.
— 꼬질아.
— 죽을래?
최승철. 직장 생활 4년 차. 한 달 전 경쟁사로부터 ‘Y’사가 스카웃 한 인재. 명석한 업무 처리는 물론, 까탈스러운 바이어를 상대로 남들이 학을 떼는 거래와 맡은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사시키는 IT 업계의 샛별. 그리고…….
— 여보야, 내 생각 많이 했어요?
결혼 9개월 차.
내 남편 최승철.
OFF ON OFF
; MY S.COUPS
안방에 새로 들였다는 매트리스는 가히 일품이었다.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바쁜 야근을 마치고 매트리스에서 녹아내리는 몸은 정신보다 벌써 잠에 빠졌다. 샤워를 마친 그가 침대 위에 앉아 졸도 직전인 날 깨운다. 머리 말려줘. 화장대에 놓인 드라이기를 손에 쥐여주고 옆에 뻗는다. 물기 머금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눈빛. 장시간 외근이었으니 피곤할 수밖에.
— 머리 다 말리고 누워야지. 감기 걸려.
— 여보야가 말려줘.
— 힘이 없어.
— 뽀뽀해줄까. 힘.
바디워시향을 잔뜩 머금고 볼에 입을 맞춘다. 입술이 닿는 곳마다 붉은 자국이 생겼다면, 당장 내일 심각한 홍조 인간으로 신문 1면을 장식했을 것이다. 볼 뽀뽀도 모자랐는지, 이번엔 두 뺨을 잡고 볼이 아닌 입술을 공략한다. 눈꺼풀 위로 뚝뚝 떨어지는 물기. 그를 억지로 밀어내 구석으로 밀려난 드라이기를 집는다. 감기 걸린 멍뭉이는 섹시하긴 하지만 아픈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아쉬운 표정으로 치대는 그를 정자세로 잡는다. 가만히 있어. 착하지.
— 문자 왔다. 회사.
— 얼굴 똑바로 들어봐.
— 잠 온다.
시끄러운 드라이기 소리를 젖힐 만큼 피곤한 모양새다. 얼추 말린 머리칼을 정리하는 손길을 따라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승철아, 누워서 자. 베개를 정리하며 이불을 들추자 어느새 허리를 감아 나를 눕힌다. 까무룩 잠이 들어도 부족한 새벽, 반쯤 감긴 눈으로 입을 맞췄다. 반듯한 최 팀장이 아닌 헝클어진 최승철이다. 아랫입술을 빨던 움직임이 느려지고 방에는 일정한 숨소리만 남는다. 피곤해도 입은 맞춰야겠다는 의지는 동트기 전까지 계속됐다.
— ……그만.
— 일어나. 심심해.
— …….
— 꼬질이 어제 뭐 먹었어. 배 볼록해.
살살 아랫배를 문지르는 손길에 번쩍 눈을 떴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이른 새벽, 입술을 물고 빨고 괴롭히는 그에 맞서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팔을 잡고 놔주지 않는 힘에 버둥거리다 위로 올라타 실실 웃고 있는 그에게 비보를 전한다.
팀장님, 너 오늘 여덟 시 반까지 출근이야. 티셔츠 안으로 간지러움을 태우던 그의 눈빛이 살벌하다. 매주 목요일, 한 시간 앞당겨 이뤄지는 회의를 유난히 싫어하는 그였다. 대충 이유를 생각하자면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피곤해서, 그래서 나가기 싫을 수밖에 없을 거다. 나라도 싫겠다. 아무 말이 없는 그를 위로하며 품으로 파고들자, 그의 대답은 예상외로 특별했다. 한 마디로 낯간지러웠다는 얘기다.
— 오늘은 더 있고 싶은데. 너랑.
— …….
— 매트리스 바꾸고 나서 제대로 쓴 적이 없네.
비보에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그가 다리로 허리를 감는다. 잠깐만 이렇게 있자. 감긴 눈은 아래로, 얇은 입꼬리는 위로. 단단한 팔은 내 머리를 감싸고 몸을 밀착한다. 팀장님,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누가 봐도 공적인 목소리에 급기야 내 목에 얼굴을 묻고 끙끙 앓는다. 애기야, 좀 일어나. 부모의 마음으로 유치원 등원을 보내듯 깔끔한 정장과 시계, 넥타이까지 완벽한 출근 상태를 만든다. 아침은 좀처럼 먹지 않는 그에게 스프 한두 숟갈 먹이니 어느덧 시계는 여덟 시 십분 전. 문제가 있다면 현관문을 떠나지 못하는 2704호 주인 최승철 씨.
— 여보야.
— 왜.
— 점심 같이 먹을까.
— 회사는 공적으로.
— 뽀뽀도 못 하고.
— 팀장님.
— 승철아.
— 그러니까 왜 우리 팀에 와서는.
— 사랑해.
내 턱을 올려 닿을 듯 말 듯 입술을 움직인다. 애가 타는 건 내 쪽. 할 거면 빨리해. 출근 늦겠어. 그는 웃는 눈으로 빤히 얼굴을 훑었다. 미묘하게 웃는 건 전매특허다.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묘한 얼굴에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볼에 입술을 쪽쪽거렸다. 최승철과 사는 건지, 참새를 키우는 건지.
— 우리 꼬질이, 회사에서 봐.
손 하트를 날리는 우리 최 팀장님.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요.
*
정확히 아홉 시 정각을 노리며 여의도 한복판을 걷는 성실한 사원은 오로지 팀장님, 내 남편을 떠올린다.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근무한 지 한달 째, 사내에서 연애니 결혼이니 말이라도 도는 날엔 가십거리가 되기 십상이니 타인에게 애초부터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 게 나았다. 결과적으로 잘난 그의 주변엔 이성들이 득실댔고 눈으로밖에 내칠 수 없는 내 처지를 한탄했다.
그중 다행인 건, 주변을 조심하라,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라 명시하던 내 손가락을 장난스레 깨물던 그가 처신을 잘한다는 거였다. 식사는 물론이고 회의실에서 추파를 던지는 꼬리 아홉 개 구미호를 단칼에 쳐내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뿌듯했음이라.
……뿌듯하면 뭐하나. 저 사람은 내 사람이다 마음대로 말하지도 못 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가 최승철, 최 팀장의 첫 출근 때는 표정 관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 척 악수하며 인사를 하는 것마저 달달 떨었으니.
— 최승철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되려 침착한 사람은 그였다. 집에서는 베개를 끌어안고 걱정하던 그는 형식적인 목소리와 말투로 순식간에 곁을 스쳐 갔다. 아니 뭐, 연기인 건 다 아는데…… 뭔가 서운한 느낌을 아려나. 지금 이 글 보고 있는 사람들, 내 마음 뭔지 알겠죠.
— [W사 보고서 이메일 첨부 바랍니다]
지금도 네이트 온 쪽지 온 거 보세요. 되게 딱딱하지 않나요? 공적인 건 아는데, 그래도 하트 붙여 주면 안 돼요? 네? 미쳤냐고요? 그런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공적으로 행동하자 못 박아 둔 게 난데 솔직히 웃기고도 남죠. 회사니까 표현은 못 하고. 그렇다고 남처럼 대하자니 그것도 못 하겠고. 계속 같은 딜레마에 머리를 싸매는 건 아마 나만 그런가 봐요. 저 사람은 일에 몰두하느라 이쪽은 한 번도 보지 않으니까.
— 김여주 씨.
— …….
— 여주 씨.
— ……예?
다이렉트로 들리는 목소리에 일제히 사람들의 눈동자가 구석으로 쏠린다. 이름만 불렸을 뿐인데 알몸 해변 정중앙에 서 있다. 미친. 기분 아주 나이스. 내게 손짓하는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 눈을 맞춘다. 깔끔한 책상에 놓인 서류 뭉치 하나. 그가 벗은 안경을 책상에 올린다. 싸해지는 분위기. 그 속의 나.
— 검토하고 올린 거 맞습니까.
— 혹시 잘못된 거라도…….
— 일주일이 짧은 시간은 아닌데.
— 이번 주까지 수정하겠습니다.
—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죠.
7일 밤낮으로 정리한 보고서는 엉망진창이었다. 단순 노동인 매출액 기입과 합계, 심지어 잘린 부분까지. 페이지 수가 많아 뭐 하나 누락될까 조심한 것도 다 허투루 돌아간 것이다. 정적과 가까운 사무실에 손만 꼼지락거리는 나와, 볼수록 한숨만 나오는 보고서를 넘기며 일일이 체크하는 최 팀장님. 타인에게 팔린 쪽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죽고 싶다. 김여주 넌 왜 사니.
— 김 대리님, 김여주 씨 보고서 대신…….
— 아뇨.
— …….
— 할 수 있습니다.
입을 꾹 다문 그가 펜을 돌린다. 화가 난 것도, 그렇다고 환한 얼굴도 아닌 채로. 부리나케 달려온 김 대리님도 머쓱한 표정이다. 졸지에 민폐가 되고 뒤로 밀려날 곳이 없는 막내 사원은 최대한 감정은 절제하려 애썼다. 여긴 회사다. 잘못한 건 내 몫이다. 월급 루팡은 더 이상 하지 말자.
— 내일까지 수정 후 제출하겠습니다.
— …….
— 기회를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땅에 닿을 듯 꾸벅 고개를 숙이고 너덜해진 서류 뭉치와 함께 구석에 처박혔다.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자. 여긴 회사다. 직장이다. 밥 벌어 먹고사는 곳이다. 절대. 절대.
얼굴을 푹 숙이고 눈물을 떨군다. 여주야, ‘Y’기업 샛별이 되고 싶어? 한 달이면 할 수 있겠니? 일 년이면 할 수 있겠어? 예전에 본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대사가 이토록 와닿을 줄이야. 멀찍이 느껴지는 시선을 받으며 몰래 눈물을 닦아낸다. 옆자리 김 대리님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캔커피를 건넸다. 포스트잇엔 ‘팀장 싸가지 ㅜㅜ 울지 마요’라는 글자가 날 위로한다.
— 원래 다정한 사람인데 제가 븅신같이…….
— 예?
— ……아니에요.
점심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사무실을 나섰다. 같이 먹자는 말도 뿌리치고 뜨거운 모니터 앞에서 나 홀로 씨름 중이었는데, 그곳엔 아직 나가지 않은 한 명이 더 있었다. 김 대리님 자리에 앉아 손에 턱을 괴고 물끄러미 서러운 얼굴을 바라보는 최 팀장. 까만 셔츠가 유독 잘 어울리는. 저거 내가 백화점에서 골라준 건데.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 팀쟝닝은 밥 앙드세요?
— 왜 혼자 울고 있어.
— 아닝데여. 저 숙제…… 아니, 일하능데…….
그가 의자를 바짝 당겨 뺨을 훔친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극구 괜찮다 어필하는 내가 안쓰럽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한강으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막내 사원을 묵묵히 쳐다보던 그가 열정적인 마우스 질을 멈춘다. 잡힌 손을 빼 뒤로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챙겼다. 서러워도 공적인 건 지켜야 한다. 저 멀리 김 대리님과 박 대리님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으니까.
— 팀쟝닝도 점싱 드세요.
— 여주야.
— 잘 멍으세요…….
당당한 워킹으로 회사 복도를 가로지른다. 전주 비빔과 참치 마요를 고민하던 육체는 1층이 아닌 옥상에 올라가 물탱크 앞에서 꺽꺽 울음을 토했다. 쪽팔림과 서러움. 정산표도 정리 못 하는 내가 숨 쉴 자격이 있을까? 나는 밥을 왜 먹지? 엑셀을 써도 계산을 못 하는데? 입사는 어떻게 했지? 심사관이 동명이인을 뽑은 건 아닐까?
— 여주 씨, 여기서 뭐해요.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진다. 좋아하는 향이 불어왔다. 옆으로 도망가도 게걸음으로 따라오던 그가 덥석 손을 잡는다. 정확히 말하면 손바닥에 놓인 과일 컵. 기분이 꿀꿀할 때마다 먹는 내 식습관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포도알에 고개를 절레절레, 멜론에 입술을 꾹, 파인애플에 마침내 입술이 열린다.
— 밥도 안 먹고 일하면 누가 제일 속상하게.
— …….
— 울 여보야 누가 제일 사랑하게.
까맣게 그을린 속에 볕바람이 분다. 사랑한다는 말로 쉽게 풀리는 건 반칙 같지만, 그게 당신이라면 뭐 어떨까 싶어서. 손등으로 눈꺼풀을 꾹꾹 눌러 눈물을 잠재운다. 기필코 보고서는 내 손으로 제출하겠다 다짐하며 만회를 꿈꾼다.
하지만 사람 일이 쉬운 게 없다.
방해물은 늘 있었기에.
그것이 이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
— 가위바위뽀.
— 하지 마.
— 내가 이겼다. 뽀뽀.
— 좀! 계산 틀렸잖아!
침대 위, 구겨진 이불 안에서 노트북과 싸움 중인 나와 그 싸움을 지켜보는 그가 한데 엉켜 있다. 회사에서 새벽을 불살라버리겠다는 의지를 굳이 굳이 집으로 끌어당긴 그는, 혼자 일생일대의 가위바위보로 뽀뽀 내기 중이었다. 정산 하나에 볼 뽀뽀, 합계 하나에 입맞춤, 그리고 종합 계획에…….
— 여보야, 이리와 봐. 매트리스 새로 샀는데 괜찮지.
— 근데.
— 되게 튼튼하다. 그치.
— 그래서.
— 내가 더 튼튼해.
이불을 뒤집어쓴 그가 품 안으로 몸을 가둔다. 다소 답답해진 숨에 이불을 들춰내려 손을 뻗자, 그는 깍지를 껴 손등에 입을 맞췄다. 뽀뽀 귀신에 씌었나, 이마부터 시작해 목덜미까지 점령한 입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 지분댔다.
— 나 때문에 우는 거 싫어. 미안해.
— 팀장님이 뭐가…….
— 승철아, 하고 불러주세요.
뜨거운 숨을 토하며 다리로 단단한 허리를 감는다. 그가 귓바퀴를 깨물며 가장 야릇한 목소리를 흘린다. 누누이 얘기했던 공과 사의 경계를 완벽히 흐리게 만드는 음성으로.
— 꼭 내일까지 안 해도 돼.
— …….
— 우리 오늘 할 일 많잖아.
+
— 너 아까 김 대리랑 친해 보이더라.
— 갑자기 키스하다가 김 대리님 얘기는 왜 나와?
— 누가 더 좋은데.
— 농담하는 거지?
— 둘만 또 속닥거려라.
— 레이저 쏘겠네.
— 볼에 뽀뽀.
— 잠깐, 잠깐만.
— 싫어. 왜.
— 노트북. 파일 저장 안 했어.
— 됐어. 이리 와.
— 저장만 누르고.
— 그게 나보다 중요하냐.
— 언제는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했냐면서요.
— 이딴 식이라니. 그 새끼 누구야.
— 너요.
— 또 삐졌다.
— 내가 실력이 없어서 그래.
— 누가 그래. 우리 꼬질이 완전 잘하는데.
— 제발 손 좀 놔줘.
— 싫어.
— 왜.
— 만져주세요, 나.
++
—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 김 대리님.
— 예.
— 자리 안 불편하세요?
— 제 자리요? 저는 괜찮은데요.
— 햇빛 때문에 눈 따가우실 텐데.
— 블라인드 치면 괜찮습니다. 옆에서 여주 씨 도와주는 재미도 있고요.
— 김 대리님은 일을 재미로 합니까. 나만 불편한가.
—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 오늘 야근은 같이 하죠.
— 팀장님이랑요?
— 저도 알아요. 설레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