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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종] 차가운 숨 22(완)

 

w. 발발

 

 

 

"잘 갔다왔어?"
"엉. 겨울산림욕 괜찮던데? 바람이 차니까 더 상쾌하게 느껴지더라."
"다음 겨울엔 나랑 같이가."
"그러지 뭐~ 아 거기 가려면 차끌고 가야 되는데. 거기까지가는 버스없어. 주변에 택시잡을만한 곳도 없고. "
"너 면허 안 딸거야? 그때되면 운전에 익숙해질거야."
"야, 왜 나한테 떠넘기냐? 넌 안 딸꺼야?"
"어. 니가 딸텐데 굳이 딸 필요있나- 에너지 낭비야."
"○○○ 진짜 약았어.."
"..."
"어?"
"...종인아"
"야, 뭐지? ○○아!"

 

이상하게도,
그 애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종인아."
"..."
"입학식 안 갈꺼야?"

 

바르게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종인에게 엄마는 한숨처럼 물었다.
바라본다기보다는 그저 멍하게 시선을 뒀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였지만, 엄마는 종인의 시선 끝을 따랐다.
천장에는 십 년 전 어린 종인이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하며 신나게 붙였던 야광별자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어린 것이 붙여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헥헥거리면서 얼마나 꼼꼼하게 붙였는지, 여태 하나도 안 떨어지고 붙어있다.

 

"어젯밤에도 보니까 환하게 빛나던데, 시장에서 산 것치고는 정말 오래간다. 그치."

 

엄마는 방 안 가득한 무거운 공기를 없애보려는 듯 짐짓 방정맞게 말했다.
종인은 여전히 대꾸않고 눈만 깜빡일 뿐이였다.
전에 술 취해서 했던 말들 다 기억난다.
저만 볼 수 있는 별.
항상 같은 자리에서 빛날 줄 알았는데,

 

"안 빛나요 이제."
"어제 너 자나 하고 들어왔는데 아주 짱짱하게 빛나던데?"
"안 빛난지 좀 됬어."

 

종인은 힘없이 눈꺼풀을 닫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불이 호흡에 따라 불규칙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오늘도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에 엄마는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구정이 지났고, 신입생 오티도 끝났고, 이젠 입학식도 시작되었다.
종인은,
혼자 스무 살이 되었다.

 

 

 

49재를 지내고 이제야 한숨돌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남자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듯한 유진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갓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짜리 학생들이 배움직한 정자세로 쇼파에 앉아있었는데, 마치 로봇처럼 느껴졌다.

 

"세훈엄마, 이 집 정리하고 가자."
"..그래야지."
"...부동산에 말하니까 안그래도 눈독들이던 사람많았다고 금방 팔릴거래."
"어.."

 

애초에 네식구 오순도순 살려고 지은 집이었다.
같이 한 날은 일 년도 못 채웠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희망처럼 놓지 않았었다.

 

"이젠 정말 쓸모없는 집이다..."

 

처음에는 종인이에게 물려줄까 싶었다.
애초에 제 집이기도 하고 세훈이와의 추억이 깃든 집이라서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혹시나 하고 물어봤었다.

 

"제가 그 집을 원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그 집에서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종인은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면서 저를 보는데, 그 순하고 커다란 눈이 얼마나 날카로워보였는지 아마 종인이 양부모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남은 세훈이 유품은 제가 가져간다고 했다.
어차피 미국으로 아예 가신다니 세훈이 기일도 제가 혼자 알아서 챙기겠다고 했다.
앞으로 만나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안녕히 가시라는 말도 없이 등을 돌려 먼저 절을 나서는 종인이를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산다는 사람 만나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계약해요. 하루라도 빨리 한국 뜨고 싶어.."
"그래.."

 

 

 

전화를 건 종인이 입을 떼지도 않았는데, 건너편에서 먼저 말을 했다.
중년남자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조차도 불안하게 만들만큼 엉망이었다.
종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 두서없는 말을 잠시 들었다.
제가 전화를 잘못걸었나 싶어 귀에서 휴대폰을 떼어 화면을 확인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이름에, 종인은 다시 휴대폰을 고쳐잡고 귀로 가져갔다.

 

"저 세훈이 친구 김종인인데요, 세훈이한테 무슨 일있어요?"

'

세훈엄마'라는 호칭에 종인은 남자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세훈의 휴대폰은 먹통이고 연결된 집전화는 난데없이 아빠가 받았는데 그마저도 불안함이 가득한 상태로 세훈이 이름을 들먹여서, 지금 통화상대가 친아빠라는 것도 크게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종인이 궁금한 것은 왜 그런 목소리로 세훈이 어떡하냐는 소리를 해대냐는 것이었다.
반대편 손을 들어 엄지손톱 양 끝을 위아래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대답이 아닌 자신의 원래 이름이 불렸을 때, 종인의 엄지손톱 끝자락은 반 쯤 뜯겨서 튕겨나갔다.
아빠는 김종인이라고 소개한 저를 세준이라고 부른 것이 당연하다는 듯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세준아, 세훈이가 이상하다, 어서 와봐, 세훈이 좀 봐봐."
"...왜 그러시는데요."
"세훈이가 갑자기 기절했어, 갑자기-"
"그럼 119 불러야죠!!"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종인의 흥분섞인 고함에 다른 방에서 쉬던 부모님이 놀라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종인 앞에 바짝 다가가는 엄마는 보이지도 않았다.
종인은 밀려오는 불안감에 재차 대답을 요구했다.

 

"구급차 불렀냐구요!"
"불러서 병원갔어..."
"근데요, 뭐가 문제라서 이러는데요, 병원에 같이 있지 왜 집에는 갔는데요!"

 

종인은 제가 이렇게 말을 빠를 줄 몰랐을 것이다.
생각보다 말이 앞섰다.
아까와는 달리 조용한 상대편에 종인은 고함을 질렀다.

 

"아저씨!!"
"..세훈엄마 도착했나, 이쯤되면 벌써 도착했을텐데, 전화를 걸-"
"세훈이는 어쩌고 집에 갔냐고요, 세훈이 안정된거예요?!"
"세준아,"
"...네, 빨리요."
"나 지금 무섭다.."
"..뭐가요"
"나 지금 도망친거야.."
"무슨소리예요, 알아듣게 말해요."
"넌 날 이해해야되..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거 온 세상 아버지들은 다 이해할거야, 너도 이해해야되."
"...무슨일이예요, 세훈이는 괜찮냐고요.."

 

종인은 아까 느꼈던 소름끼치는 느낌이 또다시 몸통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왼쪽 눈썹으로 차가운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언젠가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어느 날, 인도에서 주행하던 오토바이에 살짝 부딪힌 적이 있었다.
너 은근히 감이 좋다?
이 순간, 놀람과 장난기 섞인 그때의 세훈이 떠올랐다.
종인은 온 몸이 감전된 것처럼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곁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종인의 곁에서 통화소리를 엿듣던 엄마가 놀라서 떨리는 손으로 종인의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세훈이요... 세훈이 괜찮아요? 빨리 대답해요.."
"한국도착하자마자 집으로 갔는데.. 정말 오랜만에 세훈이 봤는데... 얼굴 마주하자마자 소리만 지르고.."
"싸웠어요..? 애 다그쳤어요?"
"..."
"그래서 어떻게 됬냐고요!! 세훈이 어떻냐고요!"

 

 

 

종인아.
니 이름이 불리지 않아, 나 분명히 니 이름 똑똑히 기억한다?
애쓰지마 종인아.
아냐..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내 목에 이상이 생겼나봐, 목에서 콱 막혀서 나오질 않아.
괜찮아 종인아, 당연한거야.
뭐가 당연해, 어떻게 당연해..
이젠 세상에 없는 이름이잖아.
...
당연한거야.. 익숙해질거야..

 

종인은 조용히 눈을 떴다.
분명 잠을 자다가 깼는데,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냥 눈을 감고 있다가 뜬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꿈을 꾼건지 아니면 정말 방금 전까지 세훈이와 대화를 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종인은 그 날 이후 생각이 멎어버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끔 보다 못한 부모님이 억지로 일으켜 외식을 하러 가기도 했다.
부모님은 종인이 먹고 싶은데로 가자 하셨고, 종인이 식당을 골랐다.
하지만 제가 원해서 간 식당에서 종인은 아무것도 입에 넣을 수 없었다.
생각나는데로 말해서 도착한 곳은 하필이면 세훈이와 함께 했던 곳이였다.
무의식에서도 종인은 세훈을 쫓고 있었다.
세훈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질때까지 저는 세훈을 알지 못했다.
항상 함께 했지만 세훈이 혼자 짊어진 그 짐을 다 나눠지지 못했다는 것이 종인은 충격이었다.
세훈이 알고 있는 것은 저도 알고 세훈의 고민이 제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세훈은 저를 약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섭섭하면서도 미안하고, 화나면서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가 이럴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말을 안했을 세훈이지만, 그렇게 가버리고 나니 원망스럽기도 하다.
종인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엄두가 안났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거라는 것을 아는 나이지만, 그 말은 제 3자였을 때나 먹히는 말이다.
당사자가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아무도 모른다.
장례를 준비하면서 친부모에게 종인이 처음 꺼낸 말은 아는 척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은 제일 친한 친구를 잃은 종인의 슬픔을 이해하면서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에게 기댔을 만큼 본인들이 부모로서 사랑을 주지 못했나 반성하기도 했다.
종인은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섰다.
이제는 천장에 닿다 못해 고개를 숙여야만 할 정도로 자랐다.
코 앞에 펼쳐진 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하나하나 떼어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여전히 밤이 되면 빛나는 이 별들을 동무삼아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형! 갈거죠?"

 

종인은 신이 나서 좋다고 어깨동무하는 후배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그래도 마냥 좋다고 헤헤거리던 후배가 다른 아이들에게 빨리 쇼핑가자고 닦달했다.

 

"야야, 먹을 것 사러가기 전에 화장품가게가서 썬크림 좀 사고 가자. 스프레이로 하나 사야지 편할 것 같은데?"
"어, 스프레이가 낫지. 그럼 요 앞에 있는 드럭스토어가서 사면 되겠네. 종인이형도 하나 살거죠?"
"됬어 난. 뿌린다고 안 타냐. 그리고 난 간다는 소리 안했는데."
"아 진짜 이 형은 무슨 이학년이 십학년처럼 말해, 아 욕 아니예요! 억양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뒤진다.."

 

물놀이 갈 생각에 들뜬 남자무리는 건너편 스토어에 들어갔다.
종인은 정말로 갈 생각이 없었지만, 일단 따라들어갔다.
더운건 딱 질색인데, 그래도 가게 안은 에어컨이 빵빵하니까.

 

"썬크림! 썬크림! 아 여깃다!"

 

애들이 썬크림을 찾는 사이, 종인은 바디제품코너로 가서 서있었다.
바디제품을 보러는 것은 아니고, 에어컨바람이 그 쪽이 제일 강하게 불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한참 어린 동생들 바라보는 것처럼 들떠서 썬크림을 고르는 아이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까칠한 종인에게 제일 살갑게 구는 아이였다.

 

"형 뭐 고르게요? 나 좋은 거 아는데,"
"아니 그냥,"
"이 브랜드 알아요? 이거 작년에 한정판으로 미국에서만 팔던 건데, 올해 정식으로 나왔어요. 이거 향 짱 좋아, 맡아봐요."

 

그러면서 시리즈 중 코롱 하나를 집어들고 허공에다가 칙칙 뿌렸다.
미세한 입자들이 사방에 퍼지면서 향을 뿜었다.
종인의 머리 위에 살포시 앉아 향만 남기고 증발해버렸다.
찌를 듯한 향기들이 종인의 온 몸을 감싸안았다.

 

'가져, 엄마가 사왔더라. 이거 한정판이래.'

 

"어때요? 진짜 좋죠?"

 

'우리 엄마 맨날 똑같은 선물을 두 개씩 사오잖아. 하난 쓰고 하난 장식하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 난 그런건 취미없으니까.'

 

"아..."
"아 이거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
"세훈아..."
"짱 좋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좋죠?"
"내가 너를.."
"형! 진짜 쓰러지면 어떻, 형! 형!"

 

다음 생엔 내가 너로 태어날게.
니가 혼자 아팠던 거, 내가 대신할게.
그래서 또 다시 만나면,
이전에 공평하게 아팠으니까,
행복하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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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에 완결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에필로그 업뎃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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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이야기가 이렇게 끝이 나네요. 죽는것 만큼 깔끔한것도 없긴하죠.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고통은 결코 깔끔하지 못 한다는게 죽음의 가장 큰 단점이지 않을까싶네요.종인이는 아마 세훈이를 쉽게 잊지못 하겠죠. 그만큼 사랑했었으니 어찌하겠어요.그래도 훌훌털어 버려야 세훈이도 편하지 않을까요. 세훈이도 진짜 억울하겠죠. 죽고싶지 않았을텐데, 종인이와 함께 하고팠는데..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좋은 작품 감사드려요 :-)
10년 전
발발
사정이 있어서 정~말 늦게 답남깁니다ㅜㅜ 진짜 말도안되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맨날 감사한다고 그러는데 진짜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어서ㅜㅜㅋㅋㅋㅋ 진짜 감사했습니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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