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찬열] 사신밀담 07
(부제 : 쫓는놈 쫓기는 놈 쫓아내는 놈)
" 작전 27, 권총이 필요해요. 싸구려 중에 아무거나 줘도 괜찮을 거 같은데. "
" 세훈 권총 필요하대, 루한이 전했어! "
우판이 넘긴 권총을 받은 세훈이 쾌남답게 안에 탄환을 넣었다. 탄환이 뭔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찬열은 지금 말할 정신도 없었
다. 뒷좌석에 태워진 찬열은 겉보기에는 얌전히 앉아있는 것 같았다. 그 내면을 보면 전혀 달랐지만.
" 내래 이 간나들 때문에 살지를 몬하겄네, 내래 엽총으로 죄다 간나새끼들 쏴버리갓어 "
" ........ "
" 응, 왜? 찬열아. "
" 아..아아아아니에에에에에에요.. "
찬열은 차마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지금 제 앞에서 북한말을 하시는 수호라는 분이 무섭기도 했고(그것이 더킹투하츠의 패러디라는 것
을 알았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겠지만), 워낙 운전이 난폭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는 탄환들이 날아다니고, 태워져있는 곳은 하얀 봉고에 같
이 있는 사람들은 우판 형 빼고 다들 어딘가 낯이 익긴 했지만 죄다 초면이었다. 그리고 우주도 아닌데 제 몸이 유체이탈을 했는지 허공으
로 떠오르는 느낌도 받아야 했으며,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을 한꺼번에 겪은 찬열이 멍하게 쌍권총을 쏘아대는 흰둥이 닮은 남자애를 향해 간
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하도 무서워서 어버버버하며 목소리가 무슨 목욕탕처럼 짙게 울렸다.
" #*@*#@#*@exoplanet$(#$*#(*$#$*( "
" 네? 뭐라구요? "
" 궈거궈궈궈거ㅜ거권총그그그그그렇게게게게게게게게게함하함함함함부러.. "
" 아, 막 쏴도 되요. 안 걸려요 형. "
얘네들은 허접이라 도술도 못 써요, 형. 이게 최선이에요.
찬열은 소년이 상큼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오, 맙소사. 분명 미자다. 흰둥이가 크면 이렇게 생겼을 테지. 특히 얼굴이 완전 순수하게 생
겼다. 근데 아무렇지 않게 총을 쏘고 있다. 곧 앗싸-투킬-!! 하는 소리에 찬열은 결국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이 소말리아
였나? 나는 지금 미래에 와 있는 건가? 울상이 된 찬열은 그저,
" #(#@(*#*@#@*#&*&@*&#?!?!?!?!? "
난폭운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단체로 양복을 빼입은 채 멀미약을 붙인 나머지도 신나게 총을 갈기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 니..니시팔럼아? "
" 루한 한국말 잘해, 안 그래도 돼. "
아, 네. 고개를 끄덕인 찬열은 멍청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봉고차가 하늘을 날고 있는 지금 상태부터 느닷없이 "님이 주작이라능" 하고 말을 하면 "올ㅋ" 할줄 알았던가? 찬열은 도
통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까 그 난폭운전을 일삼던 소년의 이름이 루한이라는 것과, 나머지 둘의 이름도 전부 알았지만 멍
해진 얼굴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중딩때 무협지에서나 읽었던 "알고보니 내가 주작"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고자라
니!
" 그래서, 제가 주작이에요? "
" 응. 찬열 주작, 우리 지켰어. "
" 아까 걔네들은 저승에서 온 놈들이고? "
" 응, 루한 거짓말 안 해. 염라 심복들, 하급 요괴라 힘쓸 필요 없었어. "
" 그럼 아까 그 난투극이 일어나고도 멀쩡했던 건요? "
" 그건 결계를 쳐놔서에요, 결계를 치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그냥 통과되죠. 아, 그리고 탄환은 부적이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형."
아..그렇구나..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아까의 싸움 때문이었다. 찬열은 곧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이 흰둥이를 닮은 남자
아이도 앳되보이는 남자애도 거짓말을 하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주작이 된 이유가 뭔데요? 설마 말도 안 되는 세계평
환가 싶어 찬열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 염라, 요괴 불러들여. 찬열 주작 환생, 요괴 찬열이 죽여야 해. "
" 아.. "
" 못 죽이면 나라 망해. "
세계평화 맞구나.
그럼 저도 이런 거 할 수 있어요? 물으니 끄덕끄덕한다. 그럼 안 죽나요? 여전히 끄덕끄덕한다. 알았어요. 무슨 일을 당할지 무서워진 찬열
이 결국 제안을 수긍하고 말았다. 부루퉁하게 내밀어진 얼굴이 삐죽거렸지만, 안하면 나라가 망한다니 뭐 별 수 있나.
" 짐 좀 챙겨서 오면 안 돼요? "
" 그거 벌써 타오가 갔어. "
타오는 또 누구에요? 있어, 울보 이무기 하나.
준면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껌을 짝짝 씹었다. 잠을 아홉 시간밖에 못 잤다고 하면서.
도착한 태산은 넓은 기와집이었다. 기와긴 기와인데 안에 유리도 있었고 TV도 있었고 컴퓨터도 있었고 위치추적기도 있었고 다 있었다. 찬
열은 다시 멍청해졌다. 청학동일 줄 알았는데. 근데 이상하게 아궁이가 있다. 보일러는 자연이에요? 묻자 네! 전기료 아까워요! 하는 세훈
의 힘찬 대답이 들려온다. 참 별난 집안이구먼.
" 찬열 때문에 은시경 못 봤어, 루한 착해. "
" 으..은시경? "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한을 보고 허허허 너털웃음을 지은 찬열이(자신도 팬이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물었다. 스물은 되었을라나?
이렇게 어려 보이는데.. 고딩 정도로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 이천구백 살! "
찬열은 다시 멘붕했다.
찬열은 몇 번이고 루한에게 어르신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루한이 거절했다. 늙은 할아버지같아서 싫다고 했다. 나이 많지 않아요? 하니까
다시 루한 나이 많아! 환인네 외동아들이야! 한다. 그럼 어르신 아니냐고 하니까 루한은 루한이라고 한다. 그 와중에 세훈이 전 열아홉이에
요, 하고 상큼하게 웃었다. 현역 고등학생이란 소리다. 찬열이 멍청하게 세훈을 쳐다보았다. 수호도 우판도 루한과 마찬가지로 이천구백 살
이라고 했다. 역시나 아저씨나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둘다 거부했다. 형이라고 불러, 거절은 거절한다. 역시 수호도 네이트판을 꽤 한 모양
이었다. 짐을 풀어달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찬열이 제 방으로 안내하는 세훈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곧 청룡이 돌아올 건데 청룡과 방
을 같이 써야 한다고 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 워낙 넓어서 혼자 쓰기엔 넘 썰렁했다.
" 내일부턴 형이랑 저랑 같이 수련해야 해요. "
" 수련이 뭔데? "
" 괴물 때려잡으려면 해야 하거든요. 제대로 못 배우면 진짜 죽어요. "
" 아.. "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세훈도 세훈이지만, 안지 겨우 세 시간이 조금 넘어가는 주제에 그것을 수긍하고 있는 찬열도 상당히 정신나
간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호구왕이라 그런가? 두뇌 전두엽은 장식입니다. 그런 거 돌아가는 거 관심 음슴. 학교 다니는 거야?
네, 요 근방 분교 다녀요. 역시 고등학생은 풋풋하다. 싱글싱글 웃는 세훈을 바라보던 찬열이 떠오르는 생각에 다시 물음을 던졌다.
" 그, 그럼 그 총질 말고 다른 것도 있는 거야? "
" 그거 거의 안해요. 이번엔 너무 약해서 그런 거고, 더 쎈 애들은 그런거 쨉도 안 먹혀요. "
" 응..그래.. "
찬열은 울고 싶었다.
그래도 설마 죽을까 싶어 희망을 가져보았다. 내가 슈퍼맨이래는데 설마 죽겠어, 슈퍼맨은 안 죽잖아. 근데 난 고생하잖아? 난 안될거야.
비관에 빠졌다가도 다시 꿋꿋히 희망을 가져보인다. 뭐, 안 죽으면 되는 거지!
찬열은 세계평화를 위해 장래희망을 잠깐 접어두기로 했다.
은시경이나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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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한이 외동아들인 이유는 선대 환인이 수많은 자식들을 뒀지만 해모수나 환웅처럼 사고나 치고 오는 바람에 빡쳐서 그 다음 환인부터는 아들 한명만 낳게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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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죄송합니다 우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