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새낀 학교 와서 하는 게 뭘까. 학교를 넘어 나라에 이바지하는 교육에 힘쓰지는 못할 망정 늘 항상 언제나 잠이나 퍼자고 있는 제 짝지, 이재환을 보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칙을 탱탱볼 튕기듯 가볍게 튕겨내고서 물들인 저 노란 머리카락을 보라. 어쭈 손톱에 매니큐어는 안 발랐나 기웃거리며 봤지만 다행히 손톱은 멀쩡했다. 실컷 짝의 꼬라지를 관망한 후 더는 관심 없는 척 코스프레를 시전하며 칠판 쪽으로 주의를 돌렸을 때였다. 분명 한국말인데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넘실넘실 기어와 한 귀로 흘러든다. 뇌 속을 빙빙 돌더니 3초도 안 돼서 반대쪽 귀로 흘러나갔다. 아아, 그 후 깨달았다. 옆자리에서 사경을 헤매며 잠이나 처자는 이재환이나, 돌대가리인 저나 도찐개찐 막상막하 오십보 백보라는 것을.
딩동댕 종이 치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처든다. 웬 일로 물기가 서리지 않은 제 입가를 만족스레 긁적이며 여즉 잠이 덜 깬 눈으로 저를 빤히 쳐다본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그 전까지 신나게 구경했으면서 아닌 척 열심히 공책에 펜을 놀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됐든 이재환은 반에서 아주 또라이였으니까. 지 등 쳐다보면서 한심스러운 눈빛을 쐈다는 걸 알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자고로 모름지기 남자는 과묵해야 진국이라던데 이재환은 그 반대다. 아주 반대다. 물론 나도 말이 많은 수다스러운 성정이었으나 이재환은 더욱 과묵하고는 상극이다. 남극과 북극이다. 게다가 뒤끝도 대단했다. 최악이었다.
“야.”
“왜.”
“지금 몇 교시냐?”
“3교시.”
“어라. 말이 짧다?”
또라이 새끼….
“3교시 데스.”
“아직 3교시 밖에 안 됐냐? 시간 졸라 느리네.”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 라는 말이 목구멍 끝자락을 가르고 솟아올랐지만 피의 의지로 버텨냈다. 이재환 시간 개념 없는 건 진즉에 알고 있던 사실이라 그러려니 넘어갔다. 뭐 저번 월요일 아침엔 혼자 계속 발광을 부리더랬지. 무슨 좋은 일 있냐. 뭐 잘못 먹었냐. 아오이 소라가 새로운 영화를 찍냐 물었더니 ‘오늘 불금이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두 손 모아 하늘 위로 치켜 올리더라. 그 가련한 모습이 불쌍해 같이 동조해주며 거짓 기쁨을 함께 나눴었다. 그마저도 청소 시간 주번이 바뀌는 걸 발견한 뒤로 들켜버렸지만서도. 결론을 말하자면 이재환은 병신이다.
“차학연 나 배고파.”
“어쩌라고?”
“보름달 빵 먹고 싶어.”
마치 보름달 빵 사줘 라는 투로 이야기하는 꼴이 못내 역겨웠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짤짤 털어보였다. 돈 없어. 청렴한 국회의원의 모습으로 고개를 흔들며 미리 거절하자 이재환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해갔다.
“야. 너 보름달 닮았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절대 둥근 얼굴형도 아니었고 통통한 체형도 아니었기에 이재환의 비유는 낯설기 그지 없었다. 뭔 소리야 저건 또.
“개기 월식.”
이재환은 수업 시간 한 시라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하루는 뭘 하는 지 너무도 궁금해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힐끗 구경한 적이 있었다. 책상 위에 펴진 것은 다름 아닌 8절 스케치북이었는데, 때 아닌 색칠공부라도 하는가 싶었다. 하긴 네놈 정도면 옷입히기 스티커를 사서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나 그림 졸라 잘 그려.”
이재환이 별안간 이야기하며 스케치북을 불쑥 들어보였다. 급작스레 눈앞에 들이밀어진 종이에 인상을 찡그리고 초점을 맞췄다. 오 대박. 실로 잘 그린 그림 하나가 있었다. 때타지 않은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넌지시 이재환에게 물었다.
“너 혹시 그거냐?”
“그게 뭔데.”
“지능이 모자란데 어느 한 방면으로 천재인 그런 사람.”
“닥쳐. 난 그냥 천재인 거야.”
벙슨…. 육성으로 욕해준 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과서로 고개를 돌렸다. 또 뭘 해대는 지 한참을 꼬물짝대던 이재환이 말했다.
“다음엔 네 그림도 그려줄게 짝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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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썼던 짧은 조각입니당.
왕의 남자로 돌아올 것 같네요! 어남이랑 스카프도 얼릉 들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