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나는 김태형씨랑 부쩍 친해졌어.
아직도 어른들 계실 땐 데면데면하지만 이젠 적어도 방에선 하루에 한마디씩은 해 ㅋㅋㅋㅋㅋ
"동아리 뭐 들었어요?"
"학교 극단에 들어갔어요"
"아.."
"김태형씨는 어느 동아리예요?"
"난 아무데도 안들어갔어요. 알다시피 강의끝나면 회사가서."
사실 김태형씨는 참 많이 바빠보여. 우연인지 의도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같은학교를 다니거든. 물론 과는 달라. 하지만 나는 동아리도 들고 알바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뒤져보고 하면서 대학생활 알차게 즐기는 반면에 김태형씨는 아침에 회사갔다가 강의들으러 학교 잠깐 와서 강의만 듣고 바로 다시 돌아가고..지금 집에선 내가 제일 한가한 사람이라서 맘껏 투정도 못부려..ㅠㅠ
"전 내일 부모님 집에 다녀올게요"
"네 알겠어요. 늦게 오진 마요"
"내일 출장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평택 다녀오는 거라서 금방 와요"
"아..."
어때. 많이 친해졌지? 아니면 말고....ㅎㅎㅎ
근데 사실 나 알바 몰래 계속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학교주변이라서 들킬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한거야. 그래서 친해진김에 그냥 허락을 맡자는 생각으로 김태형씨한테 다시 말을 걸었어.
"저기...저 아르바이트...그냥 하면 안되나요?"
표정이 좀 쎄하게 굳는데 아...그냥 계속 몰래 할걸...하는 생각이 들었지.
근데 단호하게 거절할거란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어.
"대체 왜 스스로 돈을 모으려는 거예요? 그렇게 찔끔찔끔?"
한달에 적어도 150은 버는데...찔끔찔끔이라니...
역시 재벌. 이라고 생각 하면서 솔직하게 털어놨어.
"결혼전에...혼자 여행갔다오고 싶어요."
"대체 왜요?"
"그냥...지금까지 혼자해본게 없어서 여행이라도 꼭 혼자 준비해서 가보려고요..제 힘으로 돈 벌어서"
"포부는 당차지만 외국나갔다가 험한일 당하면 어쩌자고 나랑 상의도 없이 그런 계획을 세웠어요?"
화를 참고 있는게... 느껴지는건...나뿐이니? 나는 결국 알바에 대한 허락을 끝까지 받지 못하고...과제 준비에 돌입했어.
나는 자유전공1학년이라 아직은 과제가 그렇게 힘든 수준은 아닌데, 김태형씨는 경영학이라서 그런지 정말 책이 엄청 많았어.
"저기.."
"조용"
그래, 전공서 붙들고 있는 사람 부른 내가 잘못이지...에휴 ㅠㅠㅠㅠㅠㅠ 나는 노트북 자판 몇번 두들기다가 결국 먼저 침대들어가서 잤어.
왜냐하면 내일 일찍 일어나서 동아리 연습실 청소하러 가야 되거든. 아참! 나는 알려진 약혼상대는 아니고 그냥 결혼하기 전에 적응 겸 들어와서 사는거라서 아직 나는 정말 일반인이야. 그래서 유명인 of 유명인인 김태형씨와 다르게 프리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
내가 아마 아침강의가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짐만 책상위에 얹어놓고 잠깐 커피사러 도서관건물 옥상에 올라갔어. 우리학교 도서관건물 옥상전망이 진짜 죽여주거든? 그래서 늘 커피사러오면 난간에 잠깐 기대서 학교 관찰하곤 하는데, 오늘은 경영관이 눈에 띄길래 그냥 물끄러미 경영관에서 나오는 사람들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이 보이더라? 이거 김태형씨 맞지? 내가 착각한것도 잘못본것도 아니지? 어디서 꽃을 받아서.....
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문득 여기는 옥상이고 저기는 땅이라는 것을 기억했지.
그러므로 불러봤자 안들리겠지. 혹시 나 사다주려고 그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하진마.
우린 아직 서로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야. 전화번호도 건네준적없는 사이에 대뜸 꽃을??? 말도 안될걸~
난 저 사람이 다른 여자 동기들에게 저 꽃을 받았다고 봐. 흥.
"얘야, 각은 이렇게 잡아야지"
"네. 어머니.."
집에와서 벌써 와이셔츠를 몇벌째 다리는건지. 옷을 거는 법도 따로 배운다니까? 내일은 내 어깨가 남아나지 않을거야....오랜만에 알바 없는 날이었는데...
더 분한건 나의 이 노동이 모두 남에게 받은 꽃 향기나 맡는 김태형씨를 위한 일이라는 거야.
이걸 어머니한테 말씀드릴수도 없고.....
암튼 오늘은 아버님께서 가족 모두가 모여서 식사를 하자고 한 날이어서 어머니랑 큰어머님이랑 할머님이랑 같이 차를 타고 일식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어.
근데....사실 내가 극심한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단 말이야. 근데 아버님이 내가 집에 들어온 지 꽤 됐는데 가족외식이 없었다면서 특별히 예약한 곳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거절도 못하고 그냥 따라왔지...내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야. 사실 새우튀김만 먹어도 속이 메슥거리거든...
"기쁜 마음으로 건배하자"
아버님의 말씀과 함께 모두가 술잔을 맞추었고, 나는 살짝 홀짝인 다음에 내려놓았지.
곧 코스요리로 회랑 초밥이 들어오는데 그 생선냄새맡으니까 머리가 띵-한게 아주 죽을거 같더라구. 해산물 알레르기 있는 친구들은 다 내 맘 이해할거야 ㅠㅠㅠ
점점 얼굴은 창백해지는 것 같은데 김태형씨는 아버님이 주시는 술만 계속 받아먹고 나랑은 눈 한번을 안마주치더라고...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식은땀이 뻘뻘나면서 점점 눈물도 나는 것 같고...뭔가..역겨웠어. 그냥 그 방에 퍼진 냄새들이 미치게 만들었다고 해야겠지?
결국에는 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룸을 나가서 정말 미친듯한 속도로 화장실에 가서 한번 게워냈어. 사실 오늘 먹은게 커피밖에 없는데, 안그래도 빈속이어서 더 울렁거렸나봐. 그 후에 힘이 빠져서 한동안 화장실칸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아예 밖으로 나갔어.
밖에서 숨통이 좀 트여서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까 김태형씨가 나왔더라고. 땀도 식고, 이제 울렁거리지도 않아서 웃으면서 반겼지. 그땐 그래도 경황이 없어서 꽃 사건은 잊어버려서....ㅋㅋ
"괜찮아요..?"
"네 저 괜찮아요"
"왜 그런거예요.."
"이건 김태형씨한테만 말하는거니까 어른들께는 얘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소곤소곤 심한 해산물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해줬지. 그랬더니 잠깐 기다리라면서 금세 김태형씨가 식당안으로 들어갔어.
내가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설마 또 저번처럼 금세 고자질하진 않겠지...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리는데..내 클러치백을 들고 나왔더라구.
"가요"
"어딜 가요?"
"오늘 좀 쉬어야겠다고 말씀드렸으니까 일단 여기를 떠나요"
"제가 어른들께 직접.."
"이미 즐겁게 식사중이세요"
김태형씨가 날 자기 차로 밀고가더니 조수석에 태웠어.
분명히 첫 썰에서 내가 그 사람은 가부장적이라고 말했지? 나도 절대적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안먹어요?"
피자사줬어. 배불리 먹고 집에 들어가서 모처럼 꿀잠을 잤지 뭐야.
어머니도 오늘은 봐주셨거든.
나는 아무래도 괜찮았지만, 1년에 이런 날이 한두번 겨우 올까 싶어서 그냥 무조건 쉬었지. ㅋㅋ
가부장적인 김태형씨를 볼 수 없었던 하루였던 것 같아.
대신, 그 꽃사건은 언젠가 꼭 해명을 듣도록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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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글에 올라갔었는데도 제가 게을러서 며칠 뒤에나 찾아왔네요...멱살잡혀마땅합니다 ㅠㅠㅠ
댓글로 사랑을 표현해주시면 너무너무너무감사할것 같아요!!!
많든 적든 짧더라도 무조건 다 답글달아서 감사를 표현할게요^^
첫썰 많이많이 사랑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