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악연을 사랑한 적 있나요?
시완이 이름 모를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가면, 험상궂게 생긴 중국인 두명이 시완을 보고 웃으며 떠들기 바쁘다.
시완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비웃는듯 했다.
정상적인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이 곳에서 일을 한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두컴컴한 긴 복도를 지나, 선명한 핏자국이 묻은 큰 방의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그 안에 사람들이 모두 시완을 바라본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있던 시완보다 더 어려보이는 남자가 기다렸다는듯 시완에게 다가와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름은 김태형 26살.
"형 오늘 일 하나 들어왔어요."
"아, 어."
"수천동에 사는 여대생인데.. 외동딸인데다가 부모님은 3년 전에 교통사고로 다 사망하셨고, 친척분들이랑은 연락도 잘 안 되고..
다른 주문은 없었구요. 그냥 화재사고 난 것 처럼 처리해달라고 하시네요."
"이름이 뭔데?"
"아, 제가 이름을 말 안 했군요.. 26살 김석류.. 어쩌다 NJ한테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불쌍하죠?"
NJ가 누구냐면, 이 바닥에서.. 그러니까 이 청부살인업체를 돈주고 산 대기업 사장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을 목적으로 청부살인을 했는데. 1년,2년.. 시간이 지날 수록 NJ는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을 모두 죽여달라했다.
NJ가 무서운 것은 이 문제가 아니다. NJ는 이들에게 싸이코라 불린다. 시체에 화장을 시켜놓는다던가, 매니큐어를 발라놓으라던가.. 특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
"김석류 알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오늘 하면 될 것 같아요. 알바 끝나서 들어오는 시간은 새벽1시."
"그래."
새벽1시..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을, 오늘까지 이름과, 얼굴도 몰랐던 여자를 죽여야만 한다.
이들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러면, 하나뿐인 아픈 내 여동생이 죽을 수도 있다.
12시.. 그녀가 일을 끝내고 터덜터덜 아무도 없을 주택 집으로 들어섰다.
비밀번호는 뭐가 또 저렇게 간단한지.. 금방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고나서 들어간 그녀의 손이 참 가늘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여자는 분명 활짝 웃고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정말 죽이기 편하게도 양 옆 집에는 노부부와, 청각장애인 한명이 살고있다.
이 여자가 죽으며 소리를 질러도 도와줄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벽에 기대어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나를 악마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내가 일부러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죄책감에 시달려 살다가 지금까지 꿈에서 그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내가 그렇다고해서 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죽인 것도 아니고.
"……."
난 미쳤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가 잘못 된 것이고, 악마가 분명한데.
나는 나 스스로를 말도 안 되는 말로 위안하며, 동정하려 하고 있었다.
마른세수를 하다 얼굴에서 손을 떼지도 못한채 나는 한참 있었다. 일년에 세 번씩..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도, 내 동생도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참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 자신과, 내 동생을 위해 인간이길 포기 한 괴물.
새벽2시.. 그녀의 집에 있는 모든 불이 꺼졌다. 이제서야 씻는지 욕실에만 불이 켜져있다.
이제 그녀를 죽여야만 한다. 몇 번째의 살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떨리고, 무섭다.
문 앞에 다 와서야 그녀가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가 꽤나 컸고, 지금에서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비밀번호를 치고 집으로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이 된 신발장과 좋은 냄새.. 신발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TV위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있었다. 넋놓고 가족사진을 보던 나는 물소리가 꺼지기 무섭게 욕실 앞에 서서 대기를 한다.
문을 열고 나올 그녀의 목을 조를 예정이다. 처음으로.. 나는 처음으로 맨정신의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덜컥-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
그녀의 목을 두 손으로 꽉 잡아 힘을 주었다.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가 목을 조르는데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아무 표정도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눈을 하고있는 그녀에 나는 심하게 떨리는 손을 거뒀다.
그리고 난 뒤돌아 내 머리를 헝클이며 거친 숨소리를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누구세요."
누구냐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 했다.
나는 당신을 죽이러 온 사람이에요.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항상 말하기가 어렵고, 무서웠다.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꼭 그녀를 죽여야만 하고, 나는, 내 동생은 꼭 살아야만 하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를 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잘도 말했을 내가 그녀를 보며 망설이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여태까지 잘 했잖아. 근데 왜?
고갤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무서운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온 몸을 떨고있었다. 나도 떨리는 내 손을 겨우 꼭 다른 손으로 붙잡고선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을 죽여달래요."
"…네?"
나는 겁에 질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 거실 소파에 앉아 가족사진을 또 보았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아무말도 않고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
한참 지났을까,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데도 도망을 가지 않은 그녀가.. 방에 숨어서 신고를 할 수 있는 그녀가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신기해서 물었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어요."
"……."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살려달라고, 방에 숨어서 신고해도 되잖아. 왜 그러고 있어요."
"그쪽도."
"……."
"그쪽도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요."
그녀가 내게 한 말은 꽤 치명적이었다. 몇 번의 살인을 했는데도 난 아직도 사람을 죽이는 게 무섭다.
"…돈이요?"
"예."
"모아둔 돈이 있기는 한데.. 돈이 필요한 건가요?"
"아니요. 돈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최대한 멀리 떠나세요. 뉴욕도 괜찮고.. 이탈리아도 꽤 괜찮네."
"……."
"그대신 그쪽 다시는 한국 못 와. NJ가 죽을 때 까지는.. 다른 나라에 가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붙어 지내요.
그쪽이 한국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고 있는다면 그 다음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그쪽을 죽이러 올 거야.
더 매정하게 구구절절 이딴 소리 하나 늘어놓지도 않고 잔인하게."
"왜 저를 죽이러 오는데요..?"
"누군가 당신을 돈주고 죽여달라고 부탁했어요. 원래는 당신을 죽이고.. 집에 불을 내려고 했거든요. 그래야 내 임무가 끝나니까."
"그럼.. 왜 저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건데요?"
"이제와서 이런 말 하면 웃기지만 저도 사람이니까요."
그녀가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쪽이 자는 동안에 내가 불을 질렀고, 연기 냄새를 맡은 그쪽이 창문을 열고 뛰쳐 나간 걸로."
"……"
"그래서 나는 그쪽을 죽이는데 실패한 걸로."
그 말에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아,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죠.
"글쎄요."
나는 일어나 라이터를 손에 꽉 쥔채 말했다.
"경찰서에 신고 하지 마세요. 증거가 없으면 도와주지도 않을 사람들이라, 그냥 내일 당장 도망가는 게 더 도움 될 거예요.
돈 먼저 챙겨요. 지금 돈 챙기고, 도망 갈 창문 앞에 서있어요. 연기가 나면 바로 나가시면 돼요."
이 말을 끝으로 작은 방에 불을 붙이려 작은 방 문고리를 잡아 돌렸을까.. 차가운 내 손을 잡아주는 그녀에 고갤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섭지도 않은가, 자기를 죽이려고 목까지 조른 사람의 손을 덥썩 잡다니.
"같이 도망가요."
그녀가 한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왜 눈물이 나려는 걸까.
어두운 집 안에서도 밖에서 빛나는 가로등 덕분에 내 표정이 조금은 잘 보였을 것이다.
말 없이 흐르는 눈물을 본 그녀는 내게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꽉 잡아줄 뿐.
사람 하나 믿은 적 없던 나는 오늘 처음으로 처음보는 사람을 믿게 되었다.
긴생머리의 그녀는 단발머리가 되었고, 지저분한 머리를 하고 있던 나는 깔끔하게 머리를 잘랐다.
20살 미용을 배우던 내 동생이 잘라준 머리였다.
동생과 함께 이불을 덮고 앉아있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듯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보이면
동생과 함께 숨죽이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웃긴지 모르겠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하실.. 복도를 지나면 중국인 두명이 또 내 얘기를 나눈다.
내 머리를 가리키는 걸 보면 머리 잘랐다고 얘기하는 거겠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할말이라도 있는듯 말이다. 그럼 난 아무일도 없듯 대충 눈인사를 한다.
"……."
나를 안 좋게 보는 조선족 사람들과는 다르게 애매한 눈을 하고있던 태형이 자식이 나에게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아 질질 끌었다.
방 안에 있는.. 또 다른 작은 방. 나를 구석으로 몰아 넣은 김태형이 내 어깨를 꽉 잡은채 급히 입을 열었다가, 주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형 어제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어떻게 돼?"
"김석류 못 죽였잖아."
"죽였는데."
"화재현장에서 김석류는 없었어."
"도망갔나보지."
"…형."
내 어깨를 너무 세게 잡기에 손을 뿌리치고나서 입을 열었다.
"정말 도망이라도 갔나보네."
"한 번도 이런 실수 한 적 없잖아요 형."
"나도 사람인데 실수하면 안 돼?"
"설마 형.."
"……."
"일부러 풀어준 건 아니죠?"
"……"
"왜 대답을 안 해요? 정말 풀어주기라도 한 거예요?"
"…그래."
내 말에 김태형이 마른세수를 하더니 내 옆을 지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불안한듯 바삐 내 옆을 왔다갔다 하는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여태 그런 실수 한 번 안 했던 사람이 왜 이제와서! 일부러 풀어준 거 알면 엄청 화날텐데."
"나랑 같이 있다면? 내가 숨겨주고 있다면."
"……."
"그럼 날 죽이려나."
"형!"
"알아도 모른 척 해. 들키지않게 잘 숨어 지내다 보낼테니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형 미쳤어요? 보스가 알기라도 하면.."
듣고싶지 않았다. 네가 날 이해해주지 않을 거란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네가 내 편을 들어주고, 웃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병신같았다. 김태형을 지나쳐 걸었다.
"……"
"라면? 밥?"
"……"
"라면 콜."
내 동생은 말을 못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말도 못했고, 듣는 것도 못했다.
이틀사이에 그런 내 동생이랑 언제 친해졌는지 서로 웃기까지하는데 나까지 웃음이 나왔다.
청양고추를 하나 갖고와 먹으라며 내게 들이미는 동생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석류 언니는 멀을 줄 안다며 계속 먹으라기에 나는 또 고갤 저었다.
"……."
나는 동생과 수화로 대화를 한다. 그런 나와 동생을 보던 그녀는 내게 물었다.
"안 혼났어요..?"
"…혼나긴요. 아무 말도 안 하는데요 뭐."
"…다행일까요."
"다행이라 생각해야죠."
"그런데 그쪽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둘이요."
"동안이시네.. 난 또 나랑 거의 동갑인줄 알았는데."
"…에이 그건."
어제까지만 해도 웃을 수 없었던 우리는 이틀이 지나서야 조금은 웃을 수 있었다.
동생이 잠들고 우리는 거실로 나와 맨바닥에 앉아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았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족사진이라도 챙겨 나올 걸 그랬어요."
"…다들 도망칠때 돈 챙기던데, 그쪽은 가족사진 얘기네요."
"힘들고 무기력할때 보고싶은 게 돈은 아니잖아요. 가족이지.."
"…그러네요."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그럴까."
또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한참 뜸을 들이듯 어둡게 쳐진 커튼을 바라보다 또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생각도 못한 질문이었다. 여태 내가 죽인 사람들과 얘기를 여유롭게 나눌 때도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유명한 회사 대표셨는데 어쩌다 청부살인업체 보스한테 찍히게 됐어.
나랑, 동생이랑 보는 앞에서 아버지랑 어머니를 살해했고.. 우리도 죽고 싶지 않으면 자기 밑에서 일을 하래."
"……"
"나 혼자였으면 아마 난 죽고 말았을 거야. 동생이 있으니까 그러지 못 하겠더라고. 동생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어."
"……."
"사람들을 여태 여덟명을 죽였는데. 나.. 여태 사람들 죽이면서 고맙단 소리 들었어. 되게 웃기지?"
"왜요…?"
"당신이 이런 일이 있어서 죽어야한다고 설명까지 다 해주고, 여유롭게 얘기도 몇십분 나누고..
준비 해 온 수면제 먹이고 작업을 시작했어. 어차피 죽을 사람들.. 아프지 않게 보내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는데.
사람들은 나한테 죽을 걸 알면서도 고맙다고 그래. 난 전혀 고마운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
"그 사람들 얘기를 들어주다보면 30분이 흐르기도 하고, 1시간도 흐르기도 해.
자기가 행복했던 순간들, 불행했던 순간들까지 다 듣고나면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고..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난 또 바보같이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 그래봤자 살인자일 뿐이면서."
"저는 이해가 가는데요."
"……."
"저도 그쪽 손에 죽을 뻔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알겠어요. 그분들이 왜 고마워했는지..
날 죽이러 온 사람이 오히려 착한 목소리로 고통없이 죽여주겠다고 하는데.. 나한텐 중요할지 몰라도, 그쪽한텐 중요하지도 않은
시덥지않은 얘기들을 들어주기도 하고.. 나같아도 고마울 것 같아요."
"……"
"나 괴롭게 죽기는 싫단 말이야. 진짜 못된 사람들 같았으면 그냥 가자마자 죽였을 걸요?
그쪽처럼 수면제 먹이고 죽이는 사람이 어딨어?"
"내가 무섭지 않아?"
"전혀요."
"난.. 내가 무섭던데."
그런 나의 손을 덥썩 잡아주는 그녀의 손은 꽤 따듯했다.
내 손을 꽉 잡아준채 놓아주지 않는 그녀는 내가 밝게 웃어주었다.
그저.. 괜찮다는듯 위로하듯 말이다.
"김석류 너 햄버거 좋아한대서 사왔는데."
태형이 녀석도 석류와 친해졌다. 그것도 둘은 동갑이라서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걱정을 하던 녀석이 한달정도 지나니 괜찮다 생각했는지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기 시작했다.
"석류랑 시원이랑 성격이 잘 맞나? 완전 딴판인데.."
"나 시원이랑 잘 통하거든?"
"아.. 그러셔..?"
"너네는 몇 번 봤다고 벌써 짱친이야?"
태형이가 보이지않게 식탁 밑으로 내 손을 잡는 그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태형이가 곁눈질로 식탁 밑을 보다가 훅- 하고 고갤 숙여 손 잡은 걸 보고 놀리듯 소리쳤고
뒤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있던 동생 시원이도 우릴 보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형 그럴 줄 알았어! 김석류 너는 왜 나한테 숨기냐? 형 내 거야."
"내 거야."
"내 거야!!"
내게 달라붙어 서로 거라며 내 팔을 잡아당기기에 허탈한듯 웃었다. 왜들 이래..
급히 둘에게 벗어나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난 내 거야."
"아아!!"
"아!!"
어두운 밤.. 시원이가 자는 걸 보고선 방에 들어와 창문을 조금 열고 담배를 피고 있었을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석류가 뻘쭘한듯 들어와 내게 웃어주었고, 나는 급히 담배불을 끄고선 창밖에 내던졌다.
"안 자고 왜."
"잠이 안 와서요."
"3시인데 잠이 안 와?"
"네. 오빠는 왜 안 자요?"
"난 뭐.. 잠이 별로 없어서."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석류에 멍하니 서서 석류를 내려다보니, 점점 가까이 다가온 석류가 내게 입을 맞췄다.
당황하지 않고, 석류의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그리고 허리를 쓸어내리며 움직여 방 문을 잠궜다.
일주일 뒤.. 석류가 만들어준 도시락 두개를 챙겨가 태형이와 먹을 생각에 들떠있었을까.
문을 열자마자 유독 더 심하게 나는 피비린내에 인상이 써졌다.
그리고.. 익숙한 소파 앞에는 가슴팍에, 배에 수차례 칼에 찔린듯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아직 정신이 있는지 나를 바라보며 가라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김태형에.. 조선족 하나가 태형이의 어깨를 또 내리찍었다.
난 그 조선족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 꺾어 칼을 떨군 다음으로, 배 위로 올라타 때리기 시작했다.
"……"
나를 뒤에서 공격해오는 또 다른 조선족들.. 그 다음으로 보이는 NJ
NJ는 여유롭게 팔짱을 낀채로 주저앉은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김석류 어딨어?"
"내가 어떻게 알아 병신아."
"김태형도 똑같이 말했는데. 둘이 짰나?"
"……"
"임시완 네 집에서 여자 두명 있다고 그러던데.. 그게 네 동생이랑 김석류는 아니겠지?"
"……."
"네 동생까지 잃고싶지 않으면 김석류 그 여우같은 년 당장 죽여.
지까짓게 뭔데 나를 무시해!!"
"뭘 잘못했는데. 무시할만 하니까 무시를 했겠지. 왜? 고자라서, 안 서서 많은 여자들이 무시했어?
그래서 그 많은 여자들 돈으로 다 죽였냐?"
"뭐?"
여러명이 나를 짓밟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집단으로 맞는 건 또 처음이니깐.
"……."
쉴새없이 나를 때리는 조선족들.. 그리고 그만 하라는듯 손짓하는 NJ가 나를 내려다보다가 작은 나이프로 내 옆구리를 찌르고선 말했다.
"김석류한테 전해. 돈이 없으면 까불지 말라고. 이 대한민국에선! 돈 없는 새끼들을 살 수 없다고! 그대로 전하라고. 알겠어?"
"……."
"태형이가 죽어요? 그게 무슨.."
"…어."
"……."
"떠나."
"…떠나요?"
"시원이랑 같이 떠나. 당장.. 시간 없어."
"오빠는요."
"난.."
"오빠도 같이 가요. 왜 나랑 시원이만 가요."
"난 할 게 있어."
"…할 게 뭔데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나랑 시원이만 떠나라고 하는지..
"내일 비행기도 예약해둘게. 새벽에 가는 게 좋겠어."
"안 가요."
"김석류."
"안 갈래요. 혼자서 뭐 하려고? 태형이처럼 죽어버리려고?"
"안 죽어. 내가 왜 죽어."
"태형이 죽은 것도 그렇고.. 오빠 배 꼬맨 것도 그렇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들이 죽고, 다쳐서 무서운데.
어떻게 나 혼자 도망가요. 나 못해."
"내 말 좀 들어 제발."
"안 갈래요."
눈물이 났다. 세상에 전부가 사라지고 혼자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던 난 겨우 또 내 전부를 찾았다.
임시완이란 전부를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데 또 전부를 잃으라니, 난 절대 하지 못 한다.
한참 울기만 했을까, 그는 내 손을 꼭 잡아준채 말했다. 아주 조근한 목소리로.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
"내일 자수하러 갈 거야."
"……!"
"너는 증인이 될 거고, 나는 내쪽에 있는 녀석들 다 감방에 쳐넣을 거야.
조선족 새끼들은 도망가서 못 잡겠지만, 보스랑.. 국적이 한국인 녀석들은 다 감방에 넣을 수 있어."
"……."
"너는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가 있었던 얘기들을 해주면 돼. 알겠지."
"…그럼 오빠는요? 오빠도.."
"난 괜찮아. 걱정 하지 마."
거짓말인 건 알고있었다. 그가 내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하는 그가 오늘만큼은 너무 미웠다.
"태형이 장례도 못치루고 그 자식들이 그냥 땅에 파묻었어."
"……"
"태형이 눈 편하게 감게 해줘야지.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진 다 해볼게."
며칠이 지났을까, 경찰서에 몇 번이나 들렀고.. 결국 이 일은 온 세상을 휘젓는 제일 쇼크한 사건이 되었다.
그는 3년동안 핸드폰으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왔고. 종종 몰래 동영상도 찍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인생사들 까지도 녹음을 한 덕에 일은 더 쉽게 풀렸다.
누군가는 그를 슈퍼맨이라고도 불렀으며, 가면을 쓴 살인마라고도 불렀다.
TV를 틀면 모두 다 그의 얘기, 그가 잡혀있었던 곳 얘기 뿐이었다.
NJ도 사형.. 그리고 청부살인업체에 있었던 한국인들은 모두 다 사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자수를 한 그에게도 사형이란 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의 면회 날이다.
"일찍왔네?"
그는 내게 해맑게 웃어주었다. 그를 알게 된지 3-4개월.. 그중에 제일 밝은 미소였다.
그는 끝까지 남의 생각 뿐이다.
"시원이도 같이 왔어요."
"응. 둘이 커플룩 입었네? 질투나게."
"면회시간 10분이래."
"많이도 줬네. 어떤 마약쟁이한텐 5분 줬다던데."
"……."
"좀 웃지?"
내 시선이 빨간 색 명찰에 향해있자, 그가 급히 입을 열었다.
"밥은? 밥 먹었어?"
"…아니요."
"밥 왜 안 먹었어?"
"배가 안 고파서요.."
"…그래도 먹어야지. 시원이 라면 좋아한다고 둘이 맨날 라면 먹었지."
"……"
"뉴욕으로 갈 거지?"
"……."
"꼭 가. 가서 아침에 꼭 베이컨 토스트 먹고싶다며, 네 로망이라며?"
"…오빠가 없잖아요."
"……"
"오빠가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금방.. 금방 나가면 되잖아."
"거짓말."
"……."
"나 임신했단 말이에요."
"……."
아무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시원이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지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매정했다. 이게 현실이긴 하지만, 난 너무 속상했다.
"지워야지. 응?"
"…안 지워요."
"…지워 당장."
"……"
"…간다."
일어나 면회실에서 나가버리는 그에 나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오늘만큼은.. 시원이가 들을 수 없다는 게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형 날_
"525번 나와."
"……."
숫자를 부르는 소리에 시완이 힘없이 일어나 교도관들에게 양쪽 팔을 잡힌채 걸어간다.
시완에게선 오늘이 마지막일 텐데.. 아무말도 않는 시완이 불쌍하기도 한지 교도관들이 시완을 힐끔 보았다.
그렇게 한참 말 없이 사형장에 다 와갔을까.. 사형장 안에는 사형도구가 보였다.
"……."
뒤늦게서야 나오는 눈물.. 교도관들은 아무 말도 없이 시완을 바라보았다.
사형장 안으로 밀어내 시완의 얼굴에 검은 천을 씌웠을까, 시완은 소리친다.
"우리 애.. 애기만 보고 죽으면 안 될까요? 네? 아니, 여자친구가 애 낳는 것만 보게 해주세요..제발요.."
그런 시완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빨리 하라는듯 눈치를 주는 사람들..
시완은 겁에 질린듯 손을 떨었다.
20년후_
딸의 손을 꼭 잡은채 누웠다. 딸은 내게 왜 이러냐며 오글거린다며 괜히 짜증을 냈고
나는 어울리지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딸, 아빠 보고싶지."
"어."
"……."
"그렇~게 잘생겼다며? 우리 두고 먼저 간 거 생각하면 미운데.
예쁜 얼굴 주고간 거에 고맙긴 해. 내가 엄마 닮았어봐, 이런 얼굴 안 나왔지."
"……"
"어떻게 엄마는 아빠 사진이 딱 한장 뿐이냐? 아빠 안 사랑했지? 어떻게 그런 얼굴을 안 사랑해?"
"딸."
"…뭐."
"이제 너도 성인이니까 이제서야 말하는데. 딸은 내 편이지? 엄마 말만 믿어주고, 들어줄 거지?"
"…당연하지."
내가 이렇게 진지한 적도 없었으니.. 딸도 어색한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 아빠는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는 사람이었어."
"……."
"나도 네 아빠한테 죽어야 할 사람이었고.. 근데 나를 죽이려고 목을 조르던 손이 얼마나 얼음장 같던지."
"……."
"네 아빠도 눈 앞에서 부모님을 잃고, 고모 있지? 고모를 죽인다는 말에 강제로 청부 살인을 하고 있었어."
"……."
"사람들 고통 주기 싫어서 수면제 먹이면서 까지 작업하던 사람이었지.. 뭔 바람이 불었는지 날 살려주고.
자기 집에서 같이 머물게 해줬어. 그렇게 몇개월 지났나? 우리 편을 들어주던 아빠 친구분이 우리 때문에 죽게 됐어.
그 죄책감에 아빠가 자수를 하겠다고 했고.. 네 아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고, 네 아빠도 잡혀갔어."
"……."
딸은 울고있었다. 사실은 예전에 딸이 내게 이런 사건이 있었다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땐 모른 척 그런 일이 있었냐 했었는데.
"면회 날에 네 아빠한테 너를 가졌다고 말했었어. 근데 당장 지우라고 하더라?"
"……"
"근데 난 아빠가 안 밉다?"
"……."
"혼자 남을 내가 걱정돼서, 아빠가 없을 네가 걱정 돼서.. 그게 미안해서 지우라고 했을 거야 네 아빠도.
그러니까..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고, 너무 늦게 말해서 미안해 딸."
아직까지도 생각이 난다. 나의 목을 조르던 그의 손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리고 나는.. 나를 죽이려던 사람을 동정하게되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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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원래 이거.. 쩡국이 걸로 내려고 했었는데 ㅠ_ㅠ 쓰면 머리 엄청 아플 것 같아서
엄청 간추려서 썼어요!-! 흠흠 노래 슬픈 거 들으면서 장면 떠올리는데
왜 눈무리 날까여... 임시완님이라 그런 건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