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 뒤로 성열은 며칠을 더 앓았다. 몸이 가뿐해져서 학교에 다시 나가기 위해 교복을 입다가 성열은 아직도 제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발견했다. 성열은 ‘나는 팔찌, 형은 목걸이’ 하며 제게 목걸이를 건네주며 웃었던 성종이 떠올랐다. 성열은 오늘따라 더 까맣게 보이는 큐빅이 저를 집어삼킬 듯 해보여 목걸이를 풀어 책상 위에 내려놨다. 성열은 쓴 웃음을 지으며 집에서 나왔다.
“…안녕”
“응, 안녕”
집 앞에서 마주친 성종과 성열은 평소와 다른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성열의 눈이 성종의 손목으로 향했다. 어느새 친구들을 만나 웃으며 이야기하는 성종의 손목에 더 이상 팔찌는 없었다. 사실 성열은 알고 있었다, 헤어지기 며칠 전부터 성종의 손목에서는 팔찌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걸.
“성열아, 이제 괜찮아?”
“응, 괜찮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웃으며 성열에게 사탕을 건네는 동우에게 성열은 덩달아 웃어주며 사탕을 받았다. 책상에 엎드려 사탕을 요리조리 돌려보던 성열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시는 선생님에 의해 몸을 일으켰다. 멍하게 칠판을 쳐다보다가 책상을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정신을 차린 성열이 앞을 쳐다봤다. 동우가 웃으며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동우의 말에 고개를 저은 성열이 시계를 쳐다봤다.
눈을 깜박이던 성열이 벌써 첫 교시가 시작 될 시간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첫 교시부터 체육이라는 걸 상기해내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성열은 동우와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은 이틀 전 온 비로 아직도 조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힉, 성열아!”
수업이 시작될 무렵 집합이라는 소리에 운동장 구석에 있던 성열은 동우와 뛰어가다가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반바지였던 체육복 탓에 한쪽도 아니고 양쪽 무릎을 모두 갈았다. 스멀스멀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보고 선생님이 동우에게 성열을 양호실까지 데려다 주라고했다. 동우의 부축을 받으며 성열은 양호실에 도착했고, 동우는 연신 성열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니 운동장으로 다시 나갔다. 양호실 문을 여니 선생님은 어디로 가신건지 보이지 않았다. 멍하게 서있던 성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칠칠맞게 왜 넘어져?”
“서, 성종아”
어느새 양호실로 들어온 성종은 성열을 침대에 걸터앉게 했다. 성종은 소독약, 솜 등을 들고 오더니 능숙하게 성열의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었다. 성열은 약을 바른 무릎을 쪼그려 앉아 빤히 쳐다보는 성종의 머리 뒤로 보이는 시계에 성종의 팔을 쿡쿡 눌렀다. 수업은? 성열의 말에 시계를 쳐다본 성종이 몸을 일으켰다. 누가 칠칠맞게 넘어져서 도중에 뛰어나왔어, 그래서 지금 가려고. 성열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종이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나… 기대하는 거, 하면… 안 되는 거지?”
성열의 말에 성종은 흔들리는 눈으로 성열을 쳐다보더니 단호하게 ‘어’ 하고 대답했다. 성종의 말에 성열은 가슴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기분을 경험했다. 성종은 문을 열다말고 성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내 행동이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면 앞으로 조심 할게”
그 말을 끝으로 성종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성열은 언젠가 성종이 사준 우산을 책상 위에 얹어놓고 다른 우산을 집어 들고 나왔다. 성열은 우산으로 떨어져 내린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로 향했다. 성열의 중앙현관이 눈에 들어오고 그 날의 기억이 빗방울 떨어지듯 성열의 주위로 떨어져 내렸다. 현관에 도착한 성열은 우산을 접어 빗물을 대충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열아, 무릎 좀 괜찮아?”
“응, 괜찮아”
성열이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니 동우가 재빨리 뛰어와 무릎 상태를 물어보았다. 성열이 대답을 하자 동우는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성열은 창밖을 쳐다보다가 어느새 들어오신 선생님의 모습에 창밖의 시선을 교실 안으로 옮겼다. 조례를 시작하신 선생님의 모습에 성열은 멍하게 칠판을 쳐다봤다. 어느새 끝나버린 조례에 성열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영어독해, 성열은 조심스럽게 책을 펴고 페이지 한 귀퉁이를 성종이의 이름으로 물들였다. 성열은 그렇게 물들어버린 귀퉁이를 쳐다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흐린 날씨가 성열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문으로 향하는 한 남자애가 보였다. 성열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인영을 주시했다.
성종이? 성열의 눈에 성종의 얼굴이 보였다. 성종아… 성열이 나지막히 내뱉은 말은 성종에게 닿지 못하고 창문에 부딪쳐 부서졌다. 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 기분을 나타내는 것만 같아 성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벌써 겨울 다 되가는데… 설마 다시 장마가 시작되는 건가…”
성열 앞에 앉아있던 동우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왜 이렇게 자주 내리지. 성종은 우산을 꺼내 든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성열은 성종이 그대로 비를 맞고 푹 젖어 버릴까봐 계속 성종을 힐끔거렸다. 다행히도 우산을 펼친 성종은 학교를 빠져나갔다.
-
그 날 이후로 성종은 보이지 않았다. 성열은 간간히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문만으로 성종을 쫒았다.
“성열아, 이 성종, 전학 간 거래.”
“왜…?”
“모르지, 근대 내 예상으로는 너랑 보기 껄끄러워서 간 거 같아”
동우는 성열 앞으로 조심스럽게 바나나우유를 내밀었다. 성열은 빨대를 꽂아 우유를 먹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다가 교문에 기대어 서있는 성종을 발견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성종은 성열과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다. 성열은 바나나우유를 재빨리 마시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신발로 갈아 신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간 성열이 교문에 다다르자 아이들을 쳐다보던 성종이 성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진짜 전학… 간 거야?”
“엄마가 이 학교 가는 거 반대했는데, 내가 형 때문에 이 학교 왔잖아”
“……”
“형이랑 헤어졌으니까 있을 이유가 없잖아, 예전부터 엄마가 가라고 한 학교로 옮겼어”
“그럼 여긴 왜 왔어?”
성열의 말에 성종은 말없이 성열을 쳐다보기만 했다. 한참을 성열을 쳐다보던 성종은 예비종이 치자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뒤돌아 가버렸다.
“…형이 보고 싶어서”
작기만 한 목소리였는데 왜 성열의 귀에는 그렇게 잘 들렸는지. 성열은 그대로 멈춰 서서 멀어져가는 성종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성열이 눈을 한번 깜박거리니 성열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아내고 성열은 교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동우는 성열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성열은 애써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고 자리에 앉았다.
성열의 눈앞으로 성종의 모습이 하나 둘 피어났다. 성열을 향해 웃어주었던 성종, 성열 때문에 화를 냈던 성종, 성열을 걱정해주던 성종, 성열을 위해 울어주던 성종. 성열은 눈물이 점점 차오르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수업시간이 다 되 가서 그런지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성열은 차마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성열아…”
어느새 들어온 동우가 잔뜩 당황한 듯 성열에게 손을 뻗을 듯 말듯 한 자세로 성열 뒤에 서있었다. 성열은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고 동우에게 웃어보였다. 동우는 어정쩡하게 웃으면서 성열에게 사탕을 내밀었다. 성열은 사탕을 받아들고 동우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성열은 수업이 시작되고도 여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계속 창밖을 쳐다봤다. 혹시라도 성종이 다시 교문에 서 있을까봐. 그러나 성종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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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잌ㅋㅋㅋㅋㅋㅋㅋ
여기 친구 그 뭐시고... 친구집! 담주에 못올거 같아서 이렇게 2편 올리고 갑니다 ㅋㅋ
나 수련회 가여...
저번편 읽어주신 그대들!
다 감사드리구영!
아마도 다음주에는 금요일에나 올라오지 않을까 싶네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