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달 간 계속 김태형씨 기분이 바닥을 쳤던 것 같아.
그리고, 난 그동안 김태형씨가 그렇게 매몰차게 굴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되었지.
"너 지금 제정신이야!!!!!"
라는 아버님의 고함과 함께 거실에서 김태형씨가 된통 혼나고 있었어.
나는 위층 우리방에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밖으로 잠깐 나왔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진 않았고.
"바이어들이 니가 내 아들이라고 해서 우리 회사 직원들처럼 널 대해줄 줄 알았던거야? 그래?"
"아닙니다."
"외부미팅 중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거 몰라? 그거 몇분을 못 참고 뛰쳐나와서 일을 이지경까지 만들어?!!! 눈이 있으면 살펴보라고. 주가랑 업계에 도는 소문 못들은거야?!!!"
아버님이 정말 화나셨나봐. 나한테는 늘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셔서 잘 몰랐는데, 김태형씨 얼굴에 종이뭉치를 던지셨어.
나는 더 보면 김태형씨 자존심상할까봐 그냥 방으로 들어와서 귀마개끼고 과제준비를 했어.
그렇게 한시간쯤 지났나?
"오셨어요?"
"말시키지마요. 피곤하니까"
김태형씨가 제멋대로 옷을 벗어놨고, 이젠 익숙해진지도 오래야 그냥 내가 다 모아서 빨래방에 가져다놓지.
그런건 그렇다치고, 김태형씨 기분이 너무너무너무 안좋아보였어. 뭐 좋으면 그게 정상이겠냐만.
"오늘..학교 오셨어요? 한창 선거운동 기간이라 김태형씨 과 선배님들도 많이.."
"말시키지말라고요."
"그래도..."
"그쪽도 들었잖아요. 나 집에서 대놓고 혼났으니까 다 들었을거아니야. 근데 왜 아무렇지도 않게 말걸어요. 나 기분좋으라고? 못들은걸로 해주게?"
"그런거.."
"그런거 아니면 뭐. 이제 내가 아버지한테 혼나니까 같잖게 보여요? 아님 불쌍해보이려나? 밖에선 그렇게 떵떵거리는 재벌4세가 집에선 무시당하고 혼이나 나고?"
"저기 김태형씨.."
"왠만하면 나가줘요. 지금 혼자있고 싶으니까. 내가 나갈 순 없잖아"
하...결국 한마디도 못하고 난 김태형씨를 피해 집 밖으로 나왔어...
갈데가 없어서 동아리 연습실 청소나 해야겠다 싶어서 학교로 갔지.
"어어? 선배님!!! 제가 청소할게요 이리주세요"
내가 생각하는 우리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선배님.
4학년이시라 학교극단 신경안쓰실 법도 한데 이렇게 가끔 와서 비품도 채워주시고 청소도 해주시고 하시더라구.
"이야~ 이렇게 혼자 와서 청소하는거야?"
"원래 같이 청소를 하는데 오늘은 시간 나서 잠깐 와본거예요!
"그랬구나~나도 할 일 없어서 왔는데"
"선배님 취업준비는..."
"아 몰랐구나~ 나 이미 회사원이야! 다만 지금 학생이라 회사에서 편의를 봐주고 있고"
"우와..."
와 나 진짜 바보다. 사실 학교에 소문이 파다했는데 정작 선배님이 진짜 내 앞에 있으니까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지뭐야.
"너도 지금 할 일 없지?"
"네...."
"내가 진~짜로 맛있는 고깃집 아는데 갈래?"
"음...."
"내가 산다"
"네. 가요"
"..하하하하하 설마 내가 새내기한테 더치하자고 얘기하겠니?"
내가 돈 걱정하고 있던 거 티났나봐...
그렇게 한우파는집 가서 진짜 맛있는 고기도 잔뜩 먹으면서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어.
근데도 살짝 불편한 마음이 남았는데 그건 아마도 김태형씨 때문이겠지.
아까 아버님께 혼났을 때가 딱 점심시간인데 점심도 걸렀을거고, 김태형씨 특성상 아침을 든든히 먹진 않기 때문에 완전 배고플텐데...
"선배..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바이어들이랑 미팅할 때...안좋은 일이 생겼다 하면 주로 어떤 일이예요?"
"안좋은 일이야 많지~"
"선배도 바이어들이랑 만나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많지는 않고, 상사님 따라서 한 두어번? 너가 말하는 미팅이 회사로 부르는게 아니고 사석 미팅이지?"
"음...네!"
선배님도 고민을 하시더라구. 그렇게 많나봐...
"보통 꼬투리 잡아서 면박주는거도 있고, 성추행도 간혹 있고..."
"아는 친구 중에 회사들어간 애가 있는데 걔가 바이어랑 미팅 중에 뛰쳐나왔대요"
"???너랑 같은 나이인데 벌써 회사에 들어갔단 말이야?"
"...아...그...걔가 고등학교 때 기업이 후원하는 그 고등학교 뭔지 아세요? 거기 나와서 고3 때 인턴십 하고 올해 취직했어요!!"
어느새 내가 1학년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
"음...혹시 추행이 아니었을까?"
"추행..."
"너 친구가 여자애지?"
"아니요!! 남자애예요"
"남자애...그럼 더 확실해지는데?"
"남자인데요...?"
"보통 남자들은 특히 조직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니까 꾸중들어서 면 구기는 것쯤은 그냥 자존심 한번 죽이고 가는 걸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단 말이야. 뛰쳐나갈 정도까지는 아니지. 근데...뛰쳐나갈 정도였다면....내 생각엔 그 쪽 바이어들이 짖궂게 굴었을 것 같은데"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한데...설마...김태형씨가 여자같이 생긴 남자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있을까 싶었지.
암튼 그 날은 저녁도 선배님이 사주시고 번호도 교환하고 정말 재밌게 보냈어.
김석진 선배님. 스물여섯. 여자친구 없음. 경영학과 수석. 다니는 회사는 비밀. 고기는 소고기만 먹음. 가끔 닭고기도 먹는데 양념치킨에 한정되어있음. 커피 안마심. 케잌 좋아함. 목표는 발레리나랑 결혼하기. 꿈은 배우 데뷔.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어도 배우 오디션은 시간 나면 보러다닌다고 말해줬어. 얼굴은 딱 배우상인데...오디션에 엄~청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어. 운이 안좋았나봐
집 근처까지 차로 바래다주신 선배님은 다음에도 이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고, 모처럼의 휴가 나랑 보내서 정말 알차고 즐겁게 쓴 것 같다면서 좋아해주셨어.
나도 괜히 혼자 침울해지지 않아서 정말 감사했고, 그렇게 좋은 헤어짐이 있고 나서 나는 집으로 들어갔지.
"저녁 드세요...챙겨 올라올까요?"
"네 그러세요"
김태형씨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간소하게 저녁 챙겨서 올라갔어.
"된장찌개 냄새"
"최대한 냄새 안배게 하려고 급히 왔는데..죄송해요. 오늘 저녁 메뉴가 된장찌개였나봐요"
"그쪽은 저녁 먹은거고?"
"저는 먹었어요"
"...."
저렇게 보니까 또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지. 그 된장찌개 냄새 내가 배게 한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괜히 ㅠㅠㅠㅠㅠㅠㅠ
"미안해요 아까."
"예,..?"
"아까. 나가라고 해서 미안하다고요. 두번 말하게 하지마요 쪽팔리니까"
김태형씨가 방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가 온 집안을 뒤덮은 된장냄새에 인상을 찌뿌리고 화장실로 들어갔어.
아이고... 이 냄새 어떻게 빼지...김태형씨 원래 추운 것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환기시키는 것도 싫어할텐데...
나는 화장실 문을 두들기면서 김태형씨한테 말을 걸었지.
"냄새 빠지게 환기라도 시킬까요?"
"네."
그 말 듣고 급히 방에 있는 창문 몇개를 열어뒀지.
30분 쯤 있다가 화장실에 갇혀있다시피 한 김태형씨가 나왔어.
"식사는 치웠구, 제가 밤에 먹으려고 사왔던 도넛이 있긴 한데...드세요. 점심도 제대로 못 챙겨드셨을 것 같은데"
내가 진짜진짜 사랑하는 초코도넛을 특별히 오늘 2개 산 그 도넛을 눈물을 머금고 하나 드렸지.
매정하게도 거절 한번 없이 그냥 먹었어. 김태형씨......
"불 끌까요?"
"아니요. 작업 더 마쳐야돼요."
"네..."
김태형씨가 최근에 눈병이 나서 스탠드같이 빛이 모여있는 것은 보면 안된다고 해서 일을 할 때 방 불을 환하게 켜놓고 컴퓨터 화면도 최대한 어둡게 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요즘 며칠째 환한 전등 아래서 잠들었어.
하지만 나보다 힘든 건 김태형씨일테니까 참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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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많은 사랑 감사드립니다~^^
계속계속 더더더더 길게길게 쓰도록 노력할테니까 지금처럼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알라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