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장 민윤기랑 연애하기 04 (부제 : 설렘 가득한 오리엔테이션)
w. 달비
04-1
“국문과! 두 줄로 맞춰 서주세요!”
안 오길 빌었던, 아니 오지 말았어야 했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단과대 연합 오리엔테이션. 그냥, 딱 하루만 건너뛸 수 있다면 난 이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연습을 하긴 했어도,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쏠리는 긴장감에 토할 것 같았다. 오리엔테이션 전 날부터 장기자랑에 나가는 아이들끼리 따로 판 단톡은 난리가 났었다. 단체 장염이라고 한 뒤에 가지 않는 건 어떻겠냐고. 그리고 다시 만난 지금, 놀러간다는 사실보단 장기자랑의 비중이 너무 커 표정이 좋지 않은 우리였다.
“여기, 여주 너까지. 민주 따라서 1호차 타.”
“네에.”
오리엔테이션 장소까지 타고 갈 버스 인원을 나누는데 민윤기가 딱 내 쪽에서 잘랐다. 헐, 잠깐만. 민윤기 오늘 모자 썼다. 그것도 스냅백. 거꾸로. 오늘도 여전히 멋있는 민윤기 모습에 정신 팔려 있을 때, 나랑 같은 줄에 서있던 보미가 정신 차리고 빨리 걸으라고 재촉해서 겨우겨우 민주언니를 따라 1호차에 탑승했다. 차멀미를 하는 보미 때문에 우리는 앞쪽에 앉았고, 자리를 잡고 앉아 껌이라도 씹으려고 가방을 여는데
“인원체크 하겠습니다.”
....? 민윤기 이 버스야? 이건 뭐, 짜여진 드라마 대본처럼 아주 딱, 딱 맞아떨어지는구만! 아니, 그게 싫다는 건 아니고. 1호차와 2호차로 나뉘었으니 어디든 민윤기는 타겠지, 근데 그게 내 버스였으면 좋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민윤기랑 같은 버스라니. 이 버스가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가는 버스라는 건 참 마음에 안 들긴 한데, 내가 민윤기랑 같은 버스니까 한 번 봐준다.
“윤보미.”
“네.”
“김여주.”
“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 이름에 방심한 채로 껌을 찾기 바빴다. 그렇다고 해도 거기서 끝을 올리면 어쩌자는 걸까. 안 그래도 인원체크 하느라 고요했던 45인승 버스에 내 끝 음이 둥둥 떠다닌다. 당황한 채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만 느끼고 있는데 껌을 쥔 손은 그대로고, 그런 나를 민윤기가 바라보더니 손을 내민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
“너만 먹냐.”
아, 이거. 풍선껌을 하나 빼서 민윤기 손에 얹어주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포장을 까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나는 민윤기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보미가 창가에 앉겠다고 해서 앉히고, 나는 통로 쪽에 앉았는데 민윤기도 통로 쪽이라 직빵으로 보인다. 껌을 받자마자 씹더니 금세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는다.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미랑 떠드느라 정신이 팔리는 듯 했으나, 한 30분 쯤 뒤에 이제 이야기하기도 지친다며 그냥 자는 게 답이다. 하고 각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돌렸다. 슬쩍 쳐다본 민윤기는 많이 피곤했는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떨구고 자는 듯 했고, 나도 따라서 자려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무음 카메라를 실행 시킨다.
(사진)
오빠 잘 주무시네요. 굿잠! - 오전 9:48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노래를 재생 시킨 뒤 잠에 청한다.
그리고 일어났을 땐,
(사진)
너도 잘 주무시네요. - 오전 10:21
.
.
.
와. 개못생겼다, 나.
04-2
도착 후, 점심 식사 전 잠깐의 자유 시간을 가진 다음 오후부터 시작된 오리엔테이션 행사는 그냥 좀, 뭐랄까. 약간 힘 빠진 체육대회 같은 느낌이었다. 빡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느슨한 것도 아니고 적당히 쉬엄쉬엄 운동회하는 느낌? 운동회도 아니다. 해봤자 디비디비딥 같은, 그런 종류의 게임들만 여러 개 했다. 민윤기는 학회장이라 그런지 큰 확성기를 어깨에 메고 행사를 총괄했는데, 그 모습이 또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민윤기는 확성기에 대고 간간히 구호를 불러주며 응원을 유도했다. 뭐, 대부분은 국문과, 옆으로 조금만 비켜주세요. 국문과, 이쪽으로 오세요. 였지만 말이다. 나는 괜히 시선 받는 게 싫어서 가장 뒤쪽에 숨어 게임이 진행되는 것만 구경했다. 아, 중간 중간 민윤기 구경도 하고.
하는 게 별로 없어서인지 행사라고 하기엔 거창한 행사가 대충 끝나고 저녁 식사 전, 약 1시간가량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방에 가만히 앉아 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방 문 앞에 걸린 각 조원들의 롤링페이퍼에 글을 써주기 바빴다. 나는 애들 눈치를 슬쩍 보다가, 민윤기가 없다는 걸 확인 하고, 민윤기 롤링페이퍼를 꺼내 들고 구석으로 가 한 줄씩 써내려 간다. 그냥 별 말 안 했다. 뭐, 한 마디로 줄이면 츤데레 학회장님 멋있어요. 정도? 물론 내 이름은 안 썼다.
그렇게 몇 줄 적은 뒤 슬쩍 다시 꽂아 놓고, 다른 친구들 롤링페이퍼를 쓰면서 눈으로는 민윤기를 찾는다. 내 것도 써달라고 해야 하니까.
“여주야. 윤기오빠 옴.”
임원 방에 있는 건가 싶어서 그냥 친구들 롤링페이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민윤기다.
“오빠!”
“왜.”
“저거 썼어요? 롤링페이퍼?”
“누구. 네 거?”
“네네.”
“아직 아무도 안 썼어.”
“와, 너무했네. 오빠 얼른 제 거 써주세요.”
“이따가. 지금 귀찮아.”
바로 민윤기한테 가서 내 롤링페이퍼 썼냐고, 왜 안 썼냐고 빨리 써달라고 하는데 민윤기는 진심으로 귀찮은지 표정부터 ‘나 존나 귀찮음.’이 드러나 있다. 아니, 버스에서 잔 거 아니었어? 그냥 민윤기를 보내려다가 지금 보내면 영원히 까먹을 것 같아서 그냥 붙잡고 계속 써달라고 했다. 처음엔 계속 귀찮다고, 귀찮다고 안 써주려던 민윤기가 하여간 더럽게 징징거린다며 롤링페이퍼를 뽑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오빠, 길게 써주세요! 길게!”
길게 써달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진심이 있긴 하지만 80% 장난이었다. 아 길게 써야 함~ 하고 약간 놀리는 그런 뉘앙스로 길게 써달라고 한 건데 진짜 무슨 편지를 써오기라도 하는 듯 민윤기는 내 롤링페이퍼를 들고 나올 생각을 안 했고, 민윤기가 내 롤링페이퍼를 들고 있을 동안 내가 지금 몇 명의 롤링페이퍼를 끝낸 건지 모르겠다. 지금이 다섯 명 째던가. 뭐 아무튼, 다섯 명 째 하고 있을 때 민윤기가 ‘다 썼다.’하며 내 롤링페이퍼를 꽂아 놓고 바로 방으로 들어간다. 사실 민윤기가 써준 건 오리엔테이션이 다 끝나고 돌려받을 때 보려고 했다. 꼭 꼭 아껴뒀다가, 마지막에 보고 싶었는데 이미 내 손은 롤링페이퍼를 집은 지 오래지. 내가 나한테 뭘 바라니.
뭐라고 써놨을까 궁금해서 마음 같아선 팍, 그러니까 진짜 팍!!!!!!! 펼치고 싶었는데 이게 뭐라고 조심스럽게 피는 중이다. 제일 위쪽에 안녕. 으로 시작하는 민윤기 글씨가 보인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잘 쓰려고 노력이라도 했는지 볼펜을 꾹 눌러쓴 듯 진했다. 아니 근데, 민윤기가 길게 쓰느라 늦게 나오는 줄 알았더니 고작 다섯 줄 쓸 거면서. 후. 그래도 귀여우니까 참는다. 이게 입 꼬리를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올라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 민윤기가 써준 다섯줄이 너무 귀여워서.
안녕. 학회장 오빠다.
써줬으니까 그만 징징대라.
오늘 오티 장기자랑 잘하고
재밌게 놀아라.
이게 최대한 길게 쓴 거다.
04-3
“장기자랑 준비하는 애들, 지금 내려가서 얼른 준비 시작하자!”
무슨 핑계가 가장 좋을까, 내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면 구급차를 불러주려나? 그러면 나 집에 갈 수 있는 거니? 저녁을 먹고, 또 잠깐의 자유 시간을 보낸 뒤에 장기자랑 준비가 시작 됐다. 오 세상에. 이게 꿈이라고 누가 말해줘. 무대의상을 들고 무대 옆 빈 방으로 들어가는 내 꼴이라니. 나랑 친구들은 모두 등을 보인 채 옷을 갈아입었고, 생전 신어보지 않은 구두도 신었다. 아, 아니 신긴 했었네. 춤 연습 할 때 잠깐. 근데 이게 대체 몇 센티야. 진짜 매번 볼 때마다 적응 안 된다. 이 흐물거리는 블라우스도 마음에 안 든다. 숙이면 똥꼬 보일 것 같은 이 치마도. 하하.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고치고, 그렇게 춤 연습 몇 번 하다가 의자에 앉아있는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민윤기다.
“어, 안녕하,”
“아니야. 앉아. 인사 안 해도 돼.”
민윤기를 보자마자 일어서서 인사하려던 친구를 따라 덩달아 일어났는데 민윤기가 손을 저으며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한다. 민윤기는 한 명씩 의상 체크를 하는 듯, 한 명씩 보면서
“괜찮네.”
그리고 마침내 나한테 시선이 닿았을 때, 민윤기는 그냥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시선을 받아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그냥 빤히 쳐다보기만 하다가 열심히 해. 하고 방을 나가버린다. 그냥 뭔가 막 서운하진 않은데 약간 꽁기한? 왜 나한테는 괜찮다고 안 해주냐! 하고 소리 치고 싶었지만 꾹 꾹 눌러 삼키고 민윤기가 나간 뒤, 다시 춤 연습에 매진한다. 방은 우리가 그토록 들었던 노래 소리와, 구두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로만 가득했다. 그렇게 춤 연습을 하고 있으면 중간에 임원 선배들이 와서 보기도 했고, 화장을 손봐주기도 하며 대기하는데 다른 과 임원인 듯, 누가 들어오더니 조금 이따가 시작하니까 앞으로 나와 있으세요. 라고 말하고 금방 나가버린다.
이런 옷을 입어 본 적도 없고, 이만큼 화장을 진하게 해본 적도 없어서 그냥 내 이런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는 게 부끄러웠다.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굉장히 여성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한 느낌? 장기자랑을 나가는 것도 부끄러운데 이런 옷까지 입으니 쪽팔림은 배가 되어 결국 친구 등 뒤에 딱 붙어서 찌그러져 있었다. 얌전히. 열린 문 너머로는 우리 과 동기들과 선배들이 보이고, 곧 장기자랑이 진행 된다는 진행자의 말에 약간 진정되려던 심장이 아주 요동을 친다. 심장아, 진정해.
“헐, 뭐야. 너네 뭐야. 누구세요?”
화장실을 갔다 온 건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던 정호석과 마주쳤다. 정호석은 우리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이야’라는 말만 몇 번이나 했는지.
“이야. 우리 아가들이 최고네. 우리가 일등이구만!”
진짜 아가들 맞냐며 못 믿겠다는 듯 우리를 번갈아 여러 번 보고 나서야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서는 파이팅 하라고 한 뒤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으으. 곧 시작할 것 같은데. 나는 떨리는 와중에도 민윤기가 어디 앉아 있는지 눈으로 살핀다. 민윤기 보고 춤추려고? 무슨 그런 미친 소리를. 그 자리는 절대 안 쳐다보려고. 안 그래도 지금 부끄럽고, 창피하고, 쪽팔려서 돌아가실 것 같은데 춤추다가 민윤기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갈 거다.
“국어국문과, 준비해주세요.”
아 세상에, 아직 민윤기 못 찾았는데. 준비해달라던 다른 과 임원은 무대 상황을 보더니 ‘들어갈게요.’하고 우리를 무대 쪽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쭈뼛거리며 들어간 홀은 정말 내 생에 이렇게 큰 함성을 받아볼 수 있을까, 하는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가득했다. 우리 과 있는 쪽을 찾아 시선을 돌리니 앞쪽에 앉은 선배들이 ‘국문과! 국문과!’ 하며 응원을 유도하고, 뒤에 줄 맞춰 앉은 동기들도 열심히 응원한다. 그 모습들을 보며 머릿속이 새하얘진 나는 민윤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얼른 대형을 맞춰 서면 이내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실 내가 어떻게 춤을 췄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고 춤을 추긴 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춤을 춘 것 같은 기분이랄까. 노래는 어느새 끝자락을 달려가고, 나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끝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느슨해진 건지, 이 홀의 끝만 바라보고 춤을 추다가 시선이 흐트러진 곳엔 민윤기가 있었다. 민윤기도 무대를 보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나는 눈이 마주친 민윤기에 당황해 얼굴에 갑자기 열이 확 오르려는데 느릿느릿 박수를 치던 민윤기가 나를 보더니 뭐라고 입 모양으로 말하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다시 말해준다.
‘너, 예쁘다고. 잘했어.’
04-4
나 오늘 말리지마라. 여기 있는 술 다 마셔버릴라니까. 장기자랑도 끝났겠다, 이제 마음도 가볍고 신경 쓰이는 일도 없으니 내가 할 일은 오늘 밤을 즐기는 것. 장기자랑은 총 다섯 개의 학과 중 2등을 차지했다. 1등 한 과에서 정말 우리랑 비교도 안 되게 쭉쭉 뻗은 애들이 나와 섹시한 춤을 춰줬기에. 함성도 어마어마했다. 무대 끝나자마자 다시 옷 갈아입고, 홀 뒤쪽으로 들어가 앉아 보고 있었는데 여자들 반응도 반응이었지만, 난 무슨 우리가 공대인 줄 알았다니까. 민윤기가 앉아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우연히 정호석을 봤는데, 저 사람이 워낙 밝고 그런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신난 모습은 처음 봤다. 이거 롤링페이퍼에 적어야지.
어느 학교의 오티가 다 그렇듯, 우리도 이 술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술 게임. 선배들과 섞여 있으니 걸리는 건 당연히 신입생들. 그리고 그 중에서 나. 하하. 니네들 뭔데 술 게임을 그렇게 잘 아냐. 너희 나랑 같은 신입생 아니었니. 갓 스물 아니었냐고. 왜 나만 걸려서 저 맛도 없는 벌칙 주를 연거푸 마시는지. 으. 진짜 맛없다. 처음엔 벌칙 주로 시작했는데 게임을 하면서 두 명씩 걸릴 때도 있다 보니 막 분위기가 고조되고, 벌칙 주 대신 러브 샷도 여러 번 거친 후에 다시 한 번 술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 민윤기와 정호석이 들어온다.
“아, 여기가 마지막 방이네요! 아주 분위기 후끈한데 건배 한 번 합시다!”
“네!”
“구호는 제가 국문과를 외치면 여러분들은 파이팅 외쳐주세요!”
“국문과!”
“파이팅!”
아,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술 게임 한 번 해야죠? 하면서 정호석이 먼저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민윤기가 따라서 정호석 옆에 앉는다. 모르는 신입생들을 위해 호석이 열심히 술 게임 설명을 해주는데 난 1도 모르겠다. 다른 동기들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냥 체념했다. 저 벌칙 주, 또 내가 마시겠구나. 내가 마시고 죽자 했던 술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하.
웬일로 게임은 길게 이어졌다. 내 차례까지 왔었지만 얼떨결에 무사히 넘겨 한 바퀴를 돌았고, 다시 내 차례가 다가올 때 빌었다. 이제 뭔지 모르겠으니, 내 앞에서 누구든 걸려주세요.
“어, 여주! 여주 걸렸다!”
내 앞에서 걸리긴 개뿔. 정호석은 걸린 나를 보며 웃기다는 듯 깔깔 웃으며 벌칙 주를 따르는데,
“아니야. 아까 앞쪽에서부터 틀렸는데 지나왔어. 다시 해.”
“아, 형!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여주 주려고 다 따랐구만.”
“넌 신입생한테 벌칙 주를 먹이고 싶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알았어요. 다시, 다시!”
? ????????????? 내가 술 게임 인지를 잘 못해서 지금 뭐가 잘못 된 건지 모르는 건가? 앞에서부터 틀렸다는데 언제 틀린 거지? 뭐가 어찌 됐든 저거 안 마셔서 좋다. 사실 벌칙 주라고 해봤자 그냥 소주 풀 잔인데, 내가 소주를 못 마셔서 나한텐 정말 최악의 벌칙 주다. 아까 보니까 찔끔씩 따르면서 꽉 채우던데, 다행이다.
술 게임은 계속 진행 됐고, 무슨 나는 또 알지도 못하는 게임을 다른 애들은 다 이해한 탓에 그 게임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민윤기가 걸렸는데 정호석은 아 학회장님과 러브 샷 한 번 해볼까요? 이번 판은 킵! 자, 이게 마지막 판입니다! 저희 이거 하고 갈게요! 라고 외치며 곧바로 다시 게임을 진행시켰고, 민윤기는 그런 정호석을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눈으로 쳐다보며 마지못해 마지막 게임에 동참한다. 그리고 걸리는 건, 그래. 나다. 나. 아까 내가 벌칙 주를 마실 뻔했던 게임이라 당연히 내가 걸릴 수밖에. 나는 벌칙 주를 마시려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정호석이 나보고 뭐하냐 묻는다.
“뭐해, 러브 샷 안 해?”
“네?”
“아, 아까 윤기형 킵 했잖아.”
“러브-샷! 러브-샷!”
....깜빡했다. 난 당연히 나만 벌칙 주 마시고 끝날 줄 알았는데 러브샷이라니, 그것도 민윤기랑.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있자 정호석은 일어나 내 어깨를 잡고 친절히 민윤기 옆자리로 옮겨준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말이에요. 나는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민윤기 눈만 쳐다봤고, 민윤기는 말없이 잔을 채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과에서 러브샷 단계는 1단계까지만 가능하다는 것. 사실 그게 과 행사만 그렇고, 나가서 자기들끼리 하는 건 제지를 못하지만. 아무튼, 본격적인 술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임원 선배들이 누차 당부했다. 수위 높은 술 게임 하다 적발 시에 그 방은 닫아버리고 재울 거라고. 그래서인지 러브샷, 하면 당연히 1단계였고 나랑 민윤기가 해야 할 것도 단지 그것뿐인데, 나는 팔 꼬아서 술 마시는 게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고 이렇게 망설이는 건지. 민윤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술잔만 든 채 민윤기만 바라보고, 주변에선 러브샷을 외치는데 그게 내 귀에는 들리지도 않고. 결국 먼저 다가오는 민윤기에 눈을 질끈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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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려서 저 진짜 깜짝 놀랐쟈나요 ㅠㅅㅠ...엉엉 (감동) 부족하기만 한 글에서 다들 설렘도 느끼시고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ㅠㅠ. 암호닉 신청도 저렇게나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크. 지금은 방학이라 글 업로드 텀이 짧지만, 곧 개강이라 바빠질 것 같아요 ㅠ_ㅠ 그래도 틈틈히 글 써서 올리도록 할게요! :) 아, 대학 가면 저런 학회장 있냐고 여쭙는 분들 많이 계셨는데, 없어요. (단호) 있으면 알려주세요. 제가 당장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볼테니...! 허허. 이번 편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편도 열심히 써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