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장 민윤기랑 연애하기 06 (부제 : 남자와의 생애 첫 포옹)
w. 달비
06-1
‘그 일’이 있은 뒤로 며칠이 지났다. ‘그 일’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민윤기가 술 마시고 전화해서 나한테 전화한 이유가 ‘좋아서’라고 대답한 거? 그때는 너무 벙쪄서 아 뭐냐고 술 취했으면 곱게 자라고 허겁지겁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민윤기한테는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다는 카톡과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는 이야기만 들어준 채 마무리 지었다. 전화 내용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부끄럽기도 했고, 민윤기는 기억도 못하는 것 같기에 괜히 얘기해봤자 민망한 상황만 연출될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냥, 지금으로선 민윤기가 날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으니까. 어쩌다, 실수로 나온 거겠지, 하고.
오늘은 수업이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나는 날이라 집에 얼른 가고 싶어서 약속도 안 잡고 얼른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냥, 오늘은 왠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른 집 가서 씻고,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다가 좀 자야겠다. 수업이 일찍 끝난 만큼 학교도 일찍 갔기에 눈이 너무 무겁다. 으으. 같이 밥이나 먹고 가자는 동기들 유혹을 뿌리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일 먹자! 하고 냅다 뛰어왔다.
“어!”
그렇게 냅다 뛰어온 버스정류장엔 나보다 먼저 도착한 듯 한 민윤기가 앉아있었고, 휴대폰만 만지고 있던 민윤기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헐. 뭐야? 오늘 민윤기도 수업 일찍 끝나는 날인가? 그 전화 이후로 카톡만 했지 민윤기 얼굴은 본 적 없어서 아직 좀 부끄러운데, 이렇게 만나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뭘 보고 서있어, 와서 앉아.
손가락으로 민윤기를 가리키며 놀래서 가만히 서있자 민윤기는 그런 날 보고 그러게 멍청하게 서있지 말고 와서 앉으라고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아니, 누가 멍청하게 서있는대. 그러는 자기가 왜 거기 앉아있고 난리래. 오랜만에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이어폰 꽂고 노래나 들으면서 가려고 했더니. 다시 집어넣어야겠네.
“오빠도 오늘 수업 일찍 끝난 거예요?”
“응.”
“몇 시요?”
“너보단 일찍.”
‘그날’ 이후로도 민윤기와의 카톡은 지속 됐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그래도 민윤기와 카톡을 하고 편한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학회장이랑 친한 사이가 되는 게 어디 쉬운가, 라고 생각해본다.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둘 중 한 명의 버스가 올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민윤기는 민윤기대로 휴대폰을 만지고, 나는 나대로 휴대폰을 만지면서 이거 아까 넣었던 이어폰을 다시 꺼내야 하나, 했지만 차마 그건 아닌 것 같아 이미 다 봐서 새로 고침 할 게 없는 페북만 계속 들여다봤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민윤기 버스가 진입한다는 글자가 떴다.
“오빠. 버스 와요.”
“응.”
“안 탈 거예요?”
“응.”
...? 뭐야, 순간 도라인가? 싶었다. 이거 무슨 여섯 살 먹은 유치원생도 아니고 지금 집 가기 싫다고 땡깡 부리는 건가, 나한테? 아니 이 벌건 대낮에 집 가려고 버스정류장까지 왔으면서 왜 집을 안 가겠다는 건지 나는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어이가 없어서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삼키고 왜 집에 안 가냐고 묻자,
어차피 집 가도 할 거 없어. 너 혼자 있을 거 생각하니 불쌍해 보여서.
뭐래. 누가 불쌍해, 내가? 난 그냥 민윤기가 가면 마음 편하게 이어폰을 꽂고 버스나 기다리면 된다. 물론 민윤기와 함께 있지 않게 된 것에 대해서는 아쉽기야 하겠지만 오늘따라 그냥 조용히 노래가 듣고 싶은 날이었기에 얼른 내 가방에 처박아 둔 이어폰을 꺼내고 싶었다. 근데 그런 내가 불쌍하다니요?
“허, 오빠. 제가 좋으면 좋다고 말로 하세요.”
“...내가 널 왜 좋아해?”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드립을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왔다.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 민윤기가 나를 왜 좋아해? 당연한 말이다. 그 전화로 민윤기가 나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아니, 그건 그렇고 나는 그냥 정말 뭐 ‘그 일’을 생각해서 저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드립이었을 뿐인데 민윤기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비수를 꽂으니 괜한 오기가 생겼다. 뭐, 민윤기가 의도적으로 나한테 비수를 꽂으려던 건 아니었겠지만.
“...오빠 저번에 술 마시고 전화했던 날, 저 좋아서 전화한 거라면서요.”
“…….”
“…….”
“아, 아 그건. 그거는, 선배가 후배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지.”
말을 마친 민윤기는 다시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린다.
뭐, 하긴. 선배가 후배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니까. 근데 휴대폰으로 뭐 이상한 거라도 보나, 귀가 뭐 저렇게 빨갛대.
06-2
이 모든 일이 있은 후로, 민윤기와 오가는 카톡이 어딘가 미묘해졌다. 그러니까,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는데 뭔가 좀 답답해진 느낌? 민윤기야 원래 거의 철벽 치듯 카톡을 해왔고, 이제 나까지 내 감정을 숨기려 하다 보니 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냄새나는 것을 신문지로 잠깐 덮어두는, 그런 느낌? 나는 이제 민윤기한테 의미부여를 안 하려 하고, 그런 내게 예전보다 더욱 짧아지는 민윤기 카톡에 뭔가 느낌이 그랬다. 그래도 내 걸 감추기에 급급해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말이다.
대학교에 가면 시간이 원래 이렇게 빨리 가나보다.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오티 갔다 온 게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학과 엠티 가는 날이다. 그동안 별 일은 없었다. 오티 이후, 학과 수업 받기에 바빴고, 그 다음 행사가 이 엠티였으니까. 저번엔 민윤기와 같은 버스였다면, 오늘은 정호석과 같은 버스다. 내가 아쉬워하는 티를 너무 내자, 보미가 어깨를 찰싹 때리며 얼굴 좀 피라고 안 했으면 내가 그렇게 티를 내고 있는 줄 몰랐을 거다.
오늘도 역시 멀미하는 보미 때문에 앞좌석에 앉게 되었고, 정호석은 우리 바로 뒷자리. 임원이라 앞에 앉는 거 아닌가, 했더니 다른 임원 언니들이 앞좌석에 앉고, 정호석은 다른 임원 오빠랑 우리 뒷좌석에 앉았다. 민윤기와 친해진 것처럼 정호석과도 많이 친해졌다. 아니, 민윤기보다 더 친한가? 민윤기를 대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가 사심인데, 그게 정호석한테는 없었으니 오히려 내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정호석이야 워낙 친화력이 좋아서 신입생 대부분하고 친했지만.
“여주야.”
“네?”
“왜 나하고는 밥 먹자고 안 해?”
“...네?”
“술 마실래?”
‘술’이라는 단어에 기겁하고 아니라고 대답하자 정호석은 바로 깔깔 웃어 재끼며 장난이라고 내 의자를 톡톡 친다. 그러면서 자기 옆자리에 앉은 후배 임원에게
아니, 나는 이해를 못하겠어. 왜 내가 술 얘기만 하면 다들 저렇게 반응하지?
그걸 당신만 모르나 봅디다. 정호석이 술 쓰레기라고 소문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워낙 언니, 오빠들이 정호석이랑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쟤는 우리 과의 술 쓰레기라고 말하고 다녀서 자연스레 신입생들이 술자리에서 기피하는 1순위 선배가 정호석이 되었는데, 그걸 정호석만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호석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렇게 말이 많은데, 술을 마시면 진짜 장난 없다. 오티 때, 새벽까지 안 자다보니 남은 방이 임원 방밖에 없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임원 방에 앉아 마지막 술자리를 했었는데 그때 정말 정호석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사람이 저렇게 말이 많을 수가 있구나 싶은 순간이기도 했고.
“나 이거 들고 왔다!”
아까부터 보미가 가방을 뒤적거리긴 했는데 드디어 찾았다며 뭔 길쭉한 거를 눈앞에 갖다 댄다. 셀카봉이다. 오티 때는 너무 준비 없이 가서 우리 사진을 제대로 많이 못 찍었다며 엠티 때는 사진만 찍어보자고 며칠 전부터 들고 오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더니만, 결국 챙겨 왔나보다.
“오빠. 우리 사진 찍어요.”
“사진?”
“네. 저 셀카봉 들고 왔어요.”
“오오. 대박. 찍자, 찍자.”
오, 생각보다 잘 나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장한 보람이 있다. 아, 민윤기한테 자랑해야지.
(사진)
우리 차 짱잼 - 오전 10:12
보내기가 무섭게 1이 사라진다. 뭐야. 또 버스에서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구만, 이거.
(사진)
우리가 더. - 오전 10:12
자기 옆 좌석에 앉은 임원 오빠랑 찍었나보다.
...귀엽다. 저장해야지.
06-3
오티와 마찬가지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나는 민윤기만 쳐다보는 중이다. 아무래도 민윤기한테 확성기를 박제 시켜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멋있고 난린지. 뭐, 많은 게임을 진행했지만 이번엔 내가 나가는 게임이다. 보통 초등학교나 중학교 운동회에서 많이 하는 쪽지에 해당하는 사람 데리고 나오기. 이거 중학교 때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대학교에 와서도 할 줄이야.
출발선에 서서 대기하는 동시에 시작이라는 말이 울렸고, 나는 냅다 뛰어 가서 가장 가운데에 있는 쪽지를 집어 들었다. 쪽지 내용이... 이거 민윤기인데? 이 쪽지에 적힌 내용에 해당하는 사람이 민윤기라고 단정 짓고 나서 바로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던 민윤기한테 달려갔다. 민윤기는 자기한테 뛰어오는 건 줄 모르는 듯 태평하게 게임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민윤기 손목을 움켜잡는다.
“오빠. 저랑 좀 가요.”
“아, 뭔데. 쪽지 뭔데.”
“아, 그냥 가요!”
“아니 뭔지나 알고 가자ㄱ,”
그냥 뛰었다.
쪽지 내용이 뭔지나 알자며 계속 옆에서 쫑알거리는 민윤기의 말을 싹 다 무시하고는 종착점으로 달려갔다. 민윤기는 그렇게 물어보는 와중에도 안 뛰면 자빠질 걸 아는 듯 같이 달리기 시작했고, 종착점에 도착해 쪽지를 보여주자 확인하던 임원이 쪽지와 민윤기를 번갈아 보더니 막 웃기 시작한다. 아니, 왜? 이거 딱 민윤긴데.
“아, 이거 좀 아닌 것 같은데?”
“왜요! 맞아요!”
“아 알았어, 알았어. 통과.”
민윤기를 데리고 전력질주를 했던 덕일까, 우리가 1등이었다. 신나서 연신 손을 휘두르며 다시 출발점으로 걸어가는데,
“아까 쪽지 내용 뭔데.”
“비밀.”
“아, 뭐냐고.”
“우리 과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이요.”
“…….”
민윤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마음 상해서 저러는 건가 귀여워서 졸졸 따라 붙으며 왜요? 삐졌어요? 라며 놀리자 민윤기는 삐지긴 누가 삐져. 하며 빠른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런 민윤기가 귀여워 계속 졸졸 따라가며 놀린다.
바본가. 우리 과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은 무슨, 우리 과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 데리고 오래서 지 데리고 간 거구만.
06-4
엠티하면? 당연히 술이다. 고로 나는 오티가 끝난 후의 그 고생했던 기억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또 다시 술을 앞에 두고 있다는 말씀. 이게 바로 아가리 금주라는 건가보다. 맨날 말로만 금주, 금주 하면 뭐하나. 술자리만 가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기라도 한 듯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집어 드는데.
오티 때도 그랬듯, 엠티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바로 술 게임.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술 게임을 많이 습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티 때는 주구장창 마시기만 했던 술 게임에서 실력도 발휘하고, 벌칙 주도 피하고. 나 많이 늘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술 게임을 한 뒤,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졌을 때 나는 다른 방으로 피한다. 왜냐면 우리 조에 제대로 주당인 선배가 있는데 내가 상대하기 버거웠으니까. 내일은 멀쩡한 속과 정신으로 집을 갈 거라고 다짐을 해보지만 다른 방으로 옮겨 가서도 내 손에 들린 건 술잔뿐이다. 하하. 멀쩡한 속과 정신은 무슨.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고 술이 들어간 탓인지 술기운이 제법 빨리 올랐다. 술도 잘 못 마시는 게 또 맥주 따로, 소주 따로는 못 마셔서 섞어 마신다고 이렇게 금세 볼이 화끈하게 달아 오르나보다. 이게 내가 취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게 바로 이것. 민윤기한테 카톡 할 때마다 느끼던 불편함이 다 사라진 것.
오빠
어디예요
같이 놀자면서요
무슨 방이에요 - 오후 10:27
민윤기랑은 지나가는 말로 오티 때처럼 오늘도 같이 놀아요! 라고 했었는데, 지금 그걸 가지고 내가 민윤기한테 늘어지는 거다. 술기운이 오르긴 올랐나보다. 정말 멀쩡한 맨 정신에 민윤기한테 저럴 수는 없으니까.
넌 어딘데 - 오후 10:30
저 2번방이요
오빠 어디냐구요 - 오후 10:33
아니 너 어디냐고 - 오후 10:37
취했다. 민윤기 취했다. 제대로 취했다. 이리저리 방 옮겨 다니면서 학회장이랑 부학회장이 의리주 때문에 이미 좀 맛이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민윤기가 이렇게 말 귀를 못 알아듣는 걸 보면 정말 제대로 취했나보다. 저 대화만 서로 몇 번이 오갔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어디냐고 묻는 카톡에, 나는 2번방이라고 카톡 방이 터지도록 느낌표를 붙여대고, 민윤기는 싹 다 무시하고 그러니까 너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의미 없는 카톡들에 지쳐 그냥 내가 민윤기를 찾기로 하고 온 방을 다 돌아다녔다. 마지막 두 방을 남겨두고 들어간 방에 민윤기가 있었고 바로 민윤기 옆으로 걸어가 어깨를 치면 언제 왔냐며 서있지 말고 앉으란다.
“오빠 어딘지 왜 이렇게 말 안 해줘요.”
“뭐가.”
“아 저 2번방이라고 했잖아요.”
“아, 그랬어?”
“…….”
말을 말자. 약간 눈이 풀린 것 같은 민윤기를 한심하게 바라봐주고 자연스레 이 방의 술 게임에 동참했다. 민윤기는 술 게임 할 정신은 남아도는 건지 어떻게 잘 피해갔고, 나는 정신 단단히 붙잡고 술 게임에 응했다.
재미없다. 똑같은 게임만 반복하다 보니 질리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 방에 들어오면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금세 이 방에서 노는 게 재미없어진 나는 민윤기를 툭툭 친다. 그리고는 재미없다고, 이만 나가자는 눈빛을 보내면 민윤기가 용케 알아듣고 타이밍을 보더니 먼저 나가버린다. 나는 그런 민윤기 뒤를 졸졸 따라 나가고.
민윤기랑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냥 걷기만 했다. 어느 방으로 들어갈 지는 정하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고민하면서. 괜히 이 밤중에 민윤기와 단 둘이 걷는 게 너무 이상해서, 민윤기 얼굴만 바라보기도 하고 애꿎은 땅만 보면서 걸었다. 무슨 떨어진 동전이라도 찾아야 하는 것 마냥. 술기운이 올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적당히 오른 술기운에, 좋아하는 사람과 가로등 하나 켜진 밤길을 걷는 기분. 설렜다. 정말 별 다른 상황이 아닌데도, 술 마시다가 잠깐 나온 것뿐인데도 설렜다. 민윤기와 버스정류장을 같이 갈 때와는 다른, 그런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둥둥 떠다녔다.
“아, 춥다.”
아직은 추운 봄이라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말이었다. 엠티에 가기 전에 옷을 단단히 입고 오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추워 봤자 얼마나 춥겠어, 하고 대충 입고 온 걸 후회했다. 겉옷이라고는 달랑 져지 하나. 소매 끝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려서 주머니에 꼭 넣어놓고 연신 춥다며 몸을 떨자,
입어.
민윤기가 지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나한테 던져준다. 눈앞으로 휙 날라 오는 옷 뭉치에 일단 이걸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낚아채긴 했다만 이게 뭔가 싶어서 민윤기를 쳐다보자 입으라고. 라고 말하며 자기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는다. 아니, 윗옷 나보다 얇은 거 입은 주제에 이걸 왜 던져줘, 던져주긴. 이제 자기가 더 추워 보이는구만. 나 참.
추워 보이는 민윤기를 그냥 보고도 내가 이 옷을 입을 순 없어 다시 민윤기한테 나 이제 안 추우니까 오빠나 입어요, 하며 던져주자 민윤기는 그냥 입으라고 할 때 입으면 안 되겠냐고 몇 번 말하더니 내가 한사코 거부하자 하여간 말은 더럽게 안 듣는다며 주섬주섬 다시 입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다시 추워지면 말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이로써 민윤기와 나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다. 민윤기는 밖에 나온 김에 술 좀 깨려고 하는 듯 들어갈 기미가 없었고, 나 역시 너무 급하게 술을 마셔서 잠깐 쉬고 싶은 마음에 민윤기 주변만 맴돌았다. 그리고 아무 말이 오가지 않는 우리 사이에 남은 건 정적뿐. 예전 같았으면 너무나도 불편했을 상황인데 지금은 이 정적마저도 미묘해지니, 술이라는 게 대단하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민윤기와 평소에도 같이 걷던 버스정류장 길과 다를 바 없었을 텐데, 술이 가미된 민윤기와 나 사이에는 단순히 나만 느낄 수 있는 설렘 이외의 것이 있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여주야.”
“네?”
“이리 와봐.”
민윤기가 어느 방 앞에 멈춰 서더니, 벽에 기대 날 불렀다. 길고 길었던 정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날 왜 부르나, 무슨 일인가 싶어 민윤기 앞에 섰더니 그대로 내 앞으로 걸어와 나를 안았다. 술 냄새 대신 민윤기 냄새가 밀려왔다.
-
♡ 암호닉 신청은 [암호닉]으로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민군주 / 슈비 / 설탕슙 / 린월 / 윤기야 / 민피디 / #원슙 / 2m
홉빠 / 영감 /콜라 / 공감 / 슙숨 / 망고 / 론 /민피디 / 민슈가
고망맨 / 민슈가룬 / 망고빙수 / 다고쳐 / 막대사탕 /8ㅅ8 / 침침
윙윙 / 돼지고기삼겹살 /세병 / 으앙 / 너를 위해 / 연꽃 / 인사이드아웃
한시 / 외로운쿠키 / 1600 / 다고쳐 / 눈부신 / 공대생 / 망둥이 / 린봄
맙소사 / 융 / 정꾸기 / 핒짜 / 바람에날려 / 페이볼 / 태태퉤 / 음오아예
로로 / 세뇌천사 / 090909 / 영감 / 뿝뿌 / 소녀 / 미니미니 / 릴리
민슈가슈가룬 / 윤기맘 / 밍융기 / 이쁘2 / 슈가슈가슈가 / 슈민트 / 윤깋
태태퉤
* 겹치는 분들은 굵기 표시 해놨습니다. 바꾸고 싶으시면 [원래 암호닉] → [바꿀 암호닉]으로 신청해주세요 :D *
달비의 말 |
안녕하세요! 달비입니다 :D 개강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업로드를 시키고 싶어 부랴부랴 써봤어요. 이번 편에서 학회장님과 아직 러브라인이 되지 않은 게 아쉬우셨..ㄴ..ㅏ..요.. 잘 보시면 저번 편 부제 끝에 물음표가 붙어있습니다..(또르르)..! ㅠㅠㅠㅠㅠㅠㅠㅠㅠ학회장님께서 술만 마시면 이러나 봅디다...엉엉엉... 처음 썼을 때와 비교했을 때 많은 분들께서 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시는 것 같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 댓글들 읽을 때 엄마 미소 띄우고 읽잖아요, 저. (흐뭇) 제가 글을 쓰긴 쓰는데 매번 시만 써봤지 이런 글은 정말 별로 써보지를 못해서 문체든 스토리든 미숙한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엉엉. ㅠㅅㅠ 앞으로도 열심히 연재할테니 독자님들도 여주와 윤기 학회장님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 함께합시다, 독자님들! 감사해요! ♡ |